[기고] 정신장애인의 소수자-되기: 당사자운동을 통한 탈주의 가능성
[기고] 정신장애인의 소수자-되기: 당사자운동을 통한 탈주의 가능성
  • 배진영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 부센터장
  • 승인 2023.03.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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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의 배치는 정신과적 치료와 결부된 ‘욕망’의 배치
배치 속에서 정신장애인은 여전히 수동적이고 피지배적인 항으로 예속
정신장애인이 유목을 결심하면 탈영토는 반체제 생성과 창조의 전쟁터
소수자-되기는 다수성의 해체 의미...다수자와 다른 차이의 생성
매드스터디는 ‘광기’ 용어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정신의학 담론에 대항
언어의 배치를 바꾸는 베델의집 철학...유쾌한 창조의 변화 이끌어야

정신장애인이 밟고 있는 영토는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이진경, 2006):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 이는 광인(狂人), 즉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광인은 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환자가 된다.”

정신과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을 환자로 만드는 그 특정한 관계란 무엇일까? 물음에 대한 힌트는 들뢰즈의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들뢰즈는 세상의 모든 것을 기계라고 하였다. 유기체, 건물, 도시, 기호, 문화, 생활까지 개별화된 모든 것들은 기계가 된다(김찬수‧김광일, 2011). 분리되어 있을 때에는 무의미했던 이 기계들이 서로 ‘접속’하고 결합하는 순간 하나의 ‘배치’를 이루게 된다.

정신장애인, 정신과 의사, 정신과 약물이 서로 계열화되면 정신병원의 배치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 배치 속에서 정신장애인은 환자로 둔갑 된다. 즉, 정신장애인을 환자로 만드는 특정한 관계란 바로 이러한 배치를 의미한다. 어떤 ‘이웃’을 갖느냐에 따라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다(이진경, 2006).

칼 맑스. [구글]
칼 맑스. [From Karl Marx's Oekonomische Lehren, by Karl Kautsky, 1887]

그렇다면 배치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정신병원의 배치는 정신과적 치료와 결부된 ‘욕망’의 배치이다. 이러한 욕망이 있기에 정신병원은 존속하고, 그 욕망에 따라 정신과 환자, 정신과 의사, 각종 약물, 의료차트와 같은 요소들이 배열되고 사용된다. 즉, 욕망은 배치로서 존재하고 모든 배치는 욕망의 배치인 것(이진경, 2006).

정신적 고난에서 해방되고 싶은 정신장애인은 치료받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정신과 의사는 정신장애인을 치료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정신병원의 배치 속으로 들어간다. 이 배치 속에 위치하는 한 정신장애인은 치료를 ‘받는’ 환자로서 행동하고, 정신과 의사는 치료를 ‘하는’ 사람으로 역할 한다. 즉 정신병원의 배치는 정신장애인과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영토’이다.

‘영토’란 규칙적이고 동일하게 반복되어 있는 공간이다. 정신병원은 철저하게 제도화되어 있고, 엄격한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그 배치 속에 소속된 구성원들에게 규범과 의무를 부과한다.

환자에게는 환자의 정체성을, 치료진에게는 치료진의 정체성이 부여된다. 일련의 질서는 정신병원이라는 배치 속에서 매우 당연시된다. 이러한 점에서 정신병원은 공고한 영토이다. 그 영토 속에서 정신장애인은 수동적이고 피지배적인 항으로 배치된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이 밟고 있는 다른 영토들은 어떠할까? 이를테면 사회복지시설과 같이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접하게 되는 여러 영토들 말이다. 아마 정신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치료진이 사회복지사나 다른 인물들로 대체되더라도, 그 배치 속에서 정신장애인은 여전히 수동적이고 피지배적인 항으로 예속된다.

이러한 계열화가 정신장애인을 따라다니며 유지되는 이유는 다시 ‘욕망’에 있다. 정신장애인을 비정상으로 분류하여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사회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이들이 밟고 있는 영토들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수자-되기’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다른 영토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이 될 수만 있다면, 정신장애 당사자도 얼마든지 ‘탈영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다른 삶의 영토를 찾아, 다른 삶 자체를 찾아, 다른 사유, 다른 가치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사람들이다(이진경, 2006). 그러니 정신장애 당사자도 지금의 영토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새로운 영토로 ‘탈주’할 수 있다.

유목을 결심하는 순간, 피지배적 항에 속해있던 정신장애인은 다른 항들과 대등한 관계가 되고, 더 나아가 기존의 영토를 흔들고 부술 수 있다. 유목과 탈영토는 그 자체만으로 기존 체제에 반하는 ‘전쟁’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화약 냄새가 나지 않는 ‘생성’과 ‘창조’의 전쟁이다(이진경, 2006).

기존의 배치에서 뻗어 나오는 ‘탈주선’은 존재들의 변화를 유도하고 창조를 생성한다(강진숙‧조수연, 2022). ‘탈주선’은 공고한 선을 해체하고 새롭게 변이의 흐름을 생성하는 배치의 방식인 것(Deleuze & Guattari, 2001).

탈주선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하고 잠재적인 사건들을 응축하고 있는 그러한 선이다. 어디로 나아갈지는 모르지만 생성과 창조를 한껏 품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확한 그러한 선이다.

(지식이 짧아 알맞은 비유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매주 토요일 저녁 플라스틱 볼 안에서 숫자가 적힌 공들이 휘휘 돌아가는 로또 당첨의 순간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플라스틱 볼 안에는 무수한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결국 그 주의 행운을 결정하는 숫자열이 무조건 생성되리란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 탈주선에서 바로 ‘-되기’가 실현된다. ‘남성-성인-백인-이성애자-인간’과 같은 다수자가 변화하지 않는 존재 상태라면, ‘여성-아이-흑인-동성애자-동・식물’과 같은 소수자는 상태를 넘어서는 생성, 즉 여성-되기, 아이-되기, 흑인-되기 등등의 상태를 넘어서는 생성을 향해 나아간다.

2022년 9월 20일 정신장애인이 강제입원 과정에서 사망한 사건에 대해 경찰의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용인동부경찰서 정문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 사진.
2022년 9월 20일 정신장애인이 강제입원 과정에서 사망한 사건에 대해 경찰의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용인동부경찰서 정문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 사진.

다수적인 것은 불변하는 권력이다. 소수적인 것은 변화할 수 있는 것, 즉 변화의 역량에 의해 정의된다(김명주, 2017). 따라서 탈주선에서 존재하는 소수자-되기는 다수성의 해체를 의미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재활하고 비장애인의 틀에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장애인-되기를 통해 표준적인 다수자와는 다른 차이를 생성하는 것, 그것이 소수자-되기인 것이다.

이러한 소수자-되기는 하나의 운동이기도 하다. 소수자들 스스로 다수자에 의한 불평등적인 구조를 인식하고, 다수자들로 하여금 소수자-되기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잠재력을 발현하는 것 역시 소수자-되기에 내포되기 때문이다(강진숙‧조수연, 2022). 소수자들은 더 많은 역동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고 이를 다수자들과 공유함으로써 차이의 연대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서구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의 탈주선

1) 반정신의학 운동

정신장애인에 대한 의료적 모델은 지금껏 주류적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의료적 개입과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상과 운동이 존재했고, 이는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이라고 불리운다. 반정신의학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활성화되었고 주로 정신과 의사들이 이끌어간 흐름이다(송승연, 2018).

대표적인 반정신의학자들은 미국 정신과 의사인 토마스 사스(Thomas Szasz), 영국 정신과 의사 로널드 랭(Ronald Laing),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프랑코 바잘리아(Franco Basaglia) 등이 있다(송승연, 2018).

사스는 정신질환이란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정신의학자들이 전문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행하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Carter & Kamens, 2020). 로널드 랭은 정신질환 자체의 존재는 인정하였으나, 이는 사회적 산물이지 시설 수용과 약물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고 바라보았다.

그는 킹슬리 홀(Kingsley Hall)에 설립한 정신치료공동체를 통하여, 조현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화학적‧물리적 치료를 행하지 않고도 편안한 환경과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만 보장되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성공해보였다.

프랑코 바잘리아는 이탈리아의 모든 정신병원을 폐쇄한 의사로 유명하다. 그는 정신질환을 사회정치적 문제로 이해하였고, 정신병원이 사라져야만 정신장애인이 겪고 있는 진정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송승연, 2018).

이러한 반정신의학이라는 사조는 1970년대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동안 정신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때로는 해롭게도 느껴지는 정신과적 치료를 강요당하기만 했다면, 이제 주체적인 자기옹호자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Joseph, 2013; 송승연, 2018 재인용).

이들은 스스로를 정신과 생존자(psychiatric survivor)로 정의하면서 기존의 정신건강 체계를 비판하고 더불어 그로부터 생존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의료모델에 대한 강력한 반발, 정신의학 자체에 대한 부정, 정신장애인으로서 경험한 각종 낙인과 차별을 지적함으로써, 북미에서 처음으로 당사자운동의 문이 비로소 열렸다.

당시 당사자운동을 주도한 북미 단체들로는 ‘오리건 광기해방전선(Oregon Insane Liberation Front)’, ‘정신과환자해방프로젝트(Mental Health Patients Liberation Project)’ 등이 있다(송승연, 2018).

반정신의학운동은 정신의학으로부터의 탈주였다. 특히 사스, 랭, 바잘리아와 같은 반정신의학자들은 당대 여느 정신과 의사들과 같은 교육과 수련을 받고 정신과 의사가 된 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존의 정신의학이 주장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정신의학이라는 안전하고 거대한 울타리, 즉 다수성을 해체하고 소수자가 되는 것을 자처하였다.

지난 3월 7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경기도청 북문에서 응급 이송 과정에서 사망한 정신장애인 사건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지난 3월 7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경기도청 북문에서 응급 이송 과정에서 사망한 정신장애인 사건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특히 로널드 랭은 인간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고, 약물 치료의 대상이라고 바라보는 의료적 모델을 완전히 철폐하여 자신만의 방식을 구축해나갔다. 그가 인간을 바라본 방식은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이었던 기존의 경직된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인간을 그 무엇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저 하나의 실존적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정신과 의사로서의 탈주와 함께 정신장애 당사자의 탈주도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2) 매드 스터디(Mad Studies)와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매드스터디(Mad Studies)는 광기(mad)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탐색하는 학문 영역이다. 광기 그 자체, 광기에 대한 억압, 광기를 질병으로 인식하는 정신병리화, 정신의학 담론과 반정신의학 담론 사이의 논쟁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한다(Menzies, LeFrancois, & Reaume, 2013).

제도적이고 체계적인 정신의학이 시작된 이후, 캐나다 등지의 당사자와 활동가, 학계, 급진적인 정신과의사들의 저항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행동주의이자 연대이기도 하다.

매드스터디는 ‘미친’, ‘광기’와 같이 부정적으로 사용되어온 광기의 용어들을 적극적으로 앞세운다. 이는 정신의학적 담론을 영구화하는 ‘언어의 힘’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누군가를 죽일 것만 같은 여자’의 이미지를 ‘미친 것’, ‘광적인 것’과 연결시켜왔다. 때문에 광기의 용어들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왔다.

하지만 매드스터디는 광기의 용어들을 철폐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포용하고 복구시킨다. 기존의 부정적인 광인에 대한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이를 본질적으로 뒤바꾸는 시도가 담겨 있다. 바로 ‘용어를 되찾는 과정’이다. 여기서 당사자들은 정신적·신경학적 다양성을 외치고, 더 나아가서는 ‘광기’에 대한 ‘자부심’을 연결시킨다(Burstow, 2013).

이는 전문가 집단에 예속되게 하는 환자 정체성에 저항하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생물학적 정신의학의 설명에 도전함으로써, ‘Mad’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노력이기도 하다(Menzies et al., 2013).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지배적인 담론은 대개 그 원인을 생물학적인 것으로 환원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당사자의 삶, 사회적 요인, 환경적 요인들은 의료적 라벨로 덧씌워진다. 당사자의 경험과 지식뿐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마저 묻히고 전문적 지식과 용어들만 대표된다.

여기서 정신장애인이 정신과 전문의와의 관계에서 피지배자로 예속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왜냐하면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그들의 권력을 창조하고 그 권력은 또 다른 지식을 재생산해내기 때문이다(오생근, 1985). 이때 전문의의 언어는 이성적인 것, 정상적인 것으로; 정신장애 당사자의 언어는 비이성적인 것, 비정상적인 것으로 구분된다(Chabmerlin, 1979).

그 결과 정신의학 체제에서 흔히 행해지는 강제입원, 약물투여, 병리화 등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의료행위는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정당화된다(송승연, 2018).

매드스터디는 정신의학 체계 내에서 정신장애 당사자가 경험하였던 모든 억압의 경험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것을 당연시하는 권력구조와 정상주의에 저항한다. 그리고 ‘환자 정체성’에서 행해진 모든 억압들을 포섭하여 ‘Mad 정체성’으로 전환시킨다.

매드프라이드는 기존의 부정적이던 ‘Mad’와 ‘Pride’를 접속시킴으로써, 낯설고 새로운, 또 기존의 것과는 차이나는 개념을 생성하였다. 그동안 ‘광기’, ‘정신질환’, ‘정신장애’는 어딘가 골방에 갇혀있어야 할 것 같은, 사회로 나와선 안 될 것 같은 이미지를 보편화했었다면; ‘광기’와 ‘자부심’의 결합은 그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 모으는 창조적 역할을 해낸다.

이러한 생성은 자연스럽게 다수성의 해체와 파괴를 이끌어낸다. 미친 것에 대한 자부심의 생성은 이들을 미친 자로 규정한 다수성의 권력에 대한 파괴적 효과를 함께 내포하기 때문이다. ‘광인’으로 규정되던 이 소수자들은 스스로를 더욱 ‘광인’으로 규정하면서 진정한 ‘소수자-되기’를 해냈다.

매드스터디는 반정신의학과도 차별된다. 반정신의학은 기존의 것을 ‘파괴’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매드스터디는 ‘창조와 생성’을 통한 파괴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반정신의학과는 다르게, 매드스터디에서는 춤과 즐거움이 함께 향유된다(물론 당사자들의 억압의 경험은 결코 그렇지 않았겠지만).

이는 매드프라이드 운동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당사자들은 억압의 대표적인 상징물들, 이를테면 환자복이나 의사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워 ‘그래, 우리는 미쳤다!’라고 쓰여진 팻말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그 속의 당사자들의 표정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생성, 창조, 탈주를 향하는 길에서 자연히 느껴지는 기대감과 행복감의 표출이리라.

매드 프라이드. [구글]
매드 프라이드. [Superbass (via Wikimedia Commons)]

우리나라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의 탈주 가능성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소수자들의 집단 운동은 인권 지위의 향상을 종종 이끌어냈다. 그중에서도 장애해방운동,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은 장애 당사자가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장이 되었고 실질적인 정책적‧제도적 변화도 이끌어냈다(하경희, 2021).

그러나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는 사회적 낙인과 더불어 자기 스스로에 대한 낙인, 오랜 병동 생활과 치료적 억압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 등으로 이들이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집단적으로 결집하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어쩌면 꿈꾸기 힘든 일이었다. 또 ‘정신장애’라는 낯선 정체성은 장애인 당사자운동 안에서도 포괄되지 못하여, 정신장애인은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가 결성되고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이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라는 정신장애 당사자들로 구성된 그룹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강제입원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 청구, (구)정신보건법 폐지 운동과 같이 정신장애인을 치료라는 미명 하에 비인권적으로 억압하려 하는 의료적 행태에 대한 제도적 철폐를 주장하는 것으로 초기 활동을 시작하였다.

점차 동료지원활동과 같은 당사자 중심의 프로그램의 확대, 각종 서비스의 확충, 차별과 혐오로 점철되는 언론 비판,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사회적 인식 개선 등 다방면에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하경희, 2021).

그러나 한국의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은 다른 장애유형의 사회운동에 비해 조직의 밀도가 높지 않고 그 역사도 짧으며 영향력 또한 크지 않다(최창현, 2022). 또 정신장애인을 폭력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적(국가적) 담론, 정신장애를 신체적 손상으로 바라보고 화학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바라보는 의료적 모델의 보편화 등으로 정신장애 당사자 운동은 큰 어려움에 직면해있다(김현민, 2019).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은 어떠한 탈주를 꿈꿔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욱 적극적인 ‘소수자-되기’를 실현해볼 수 있을까.

먼저, 다른 소수자들을 따라가는 방식보다는 정신장애인만의 고유한 소수자성을 찾아나갈 것을 제안한다. 정신장애 운동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을 모델로 삼아 행해지기도 하였다. 정신장애인의 사회권과 복지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신장애인만의 고유한 소수자성, 독자성을 확립해나가는 것 역시 놓쳐선 안 될 중대한 일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한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만의 색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로는(최창현, 2022) 탈주선에조차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서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을 주도한 당사자 활동가 주디 챔벌린(Judi Chamberlin)은 그의 저서 On Our Own(1979)에서, 대안운동을 할 때에 가급적 ‘당사자들로만 구성’되는 것을 강조하는데, 설사 진보적인 전문가들과 함께 운동을 시작한다 할지라도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야만 기존의 것과 차원이 다른 대안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혹자에게는 주디 챔벌린의 주장이 다소 비당사자를 배척하는 역차별에 가깝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층위에서 바라봐야 한다. 단순히 비당사자와 당사자 사이의 구분에 초점을 두기보다, ‘도움을 주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의 구조가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일반 사회에서 정신장애 당사자는 언제나 도움을 받는 자의 지위를 갖기 마련이고, 그 구조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당사자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방향으로 쓰여지기 쉽다. 주디 챔벌린은 수직의 구조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는 한에서, 비당사자의 지지도 당사자운동에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우리나라 당사자단체에 대한 지자체의 운영방식을 살펴보면, 다소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지자체에서는 정신장애 당사자단체의 사무국장 자리에 전문요원의 자격과 시설 경력을 요구한다. 왜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신장애 당사자들끼리만 활동을 하는 경우 ‘관리’가 어렵고 ‘위험’할 수 있으니 이를 예방하고 감독하고자 하는 지자체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사항은 당사자단체 안에 또 다른 수직구조와 감시체계를 삽입하고, 정신장애인만의 고유한 소수자성과 독자성을 훼손하는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대안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쥬디 챔벌린. [구글]
쥬디 챔벌린. [Tom Olin/MindFreedom International]

다음으로는, 다수자의 소수자-되기를 이끌어낼 것을 제안한다. ᐨ되기 속에서 다수자는 소수자의 낯섦을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인식’ 변화가 이뤄지고 소수자들이 가진 특성이 다른 하나의 표준으로 인정받는 탈영토화가 벌어진다(강진숙‧조수연, 2022).

예를 들어, 매드프라이드 운동은 집단적 시위이기보다 하나의 축제에 가깝다. 비정신장애라는 속성에 속하는 다수자들은 축제의 장에 초대되어 자연스럽게 정신장애라는 소수성을 그대로 또 즐겁게 경험함으로써, 함께 ‘소수자-되기’에 동참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사자단체들이 축제의 장을 펼치고 있다. 매년 시행되는 뷰티풀마인드페스티벌, 또 코로나 이전에 한 차례 시행되었던 매드프라이드 서울이 그러하다. 청주정신건강센터에서 당사자연구로 꾸미는 ‘편견차별대환영대회’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당사자들만의 고생을 당사자들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일만큼 ‘광기로운’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정신장애인들의 축제는 계속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어 바꾸기’를 통한 유목을 제안한다. 앞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언어의 힘’은 가히 대단하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은 것도, 정신장애인의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치부하게 만든 것도, 또 정신장애인의 새로운 정체성을 생성한 것도 모두 언어에서 시작되었다.

일본 베델의집에서 ‘정신질환’이라는 말 대신 ‘고생’이라는 말을 쓰는 것, 의학적 병명 대신 당사자가 직접 붙인 자기병명을 부르는 것도 하나의 ‘언어적 전환’이다. 이를 통해 당사자의 정신과적 어려움은 숨겨야 할 것만 같은 금기시되는 것에서, 보다 유쾌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새롭게 인식된다.

따라서 기존의 다수적인 언어들을 떠나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유목의 여정 또한 하나의 거대한 탈주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무수한 타자들이 덧붙여준 이름을 버리고, 정신장애 당사자들만의 이름을 찾아보자. 그렇게 더 소수자가 되고 더 엇나가보자.

<배진영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 부센터장>

참고문헌

강진수‧조수연. (2022). SNS 페미니즘 독서 커뮤니티 회원들의 정동 체험과 소수자-되기에 대한 사례 연구: 들뢰즈와 과타리의 정동과 소수자 사유를 중심으로. 한국방송학보, 36(6), 5-40.

김명주. (2017). 질 들뢰즈의 “소수자” 개념의 현대 철학적 의미. 서강인문논총, 49, 183-211.

김찬수‧김광일. (2011). 질 들뢰즈의 영토화 이론에 의한 프레임의 재해석. 일러스트레이션포럼, 29, 25-34.

김현민. (2019). 당사자운동에 참여하는 정신장애인의 변화과정 연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박사논문

송승연. (2018). 정신장애인의 대안적 접근으로서 Mad Studies에 대한 탐색적 연구. 비판사회정책, 59, 297-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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