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다이얼로그를 진행하며 아들이 아들이 아니라 고통받는 한 ‘인간’으로 보였다”
“오픈 다이얼로그를 진행하며 아들이 아들이 아니라 고통받는 한 ‘인간’으로 보였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6.0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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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센터서 ‘오픈 다이얼로그 이해와 한국적 적용’ 강의 진행
오픈 다이얼로그는 서비스 시스템을 공급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이념
19년 추적 조사 결과, 초발정신증 환자의 85%가 오픈다이얼로그 통해 회복
핀란드에도 강제입원 있지만 오픈 다이얼로그로 서비스 진행돼 트라우마 안 남아
가족은 당사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경청의 의미 알게 돼...“구원의 빛이 보였다”
'오픈 다이얼로그 이해와 한국적 적용' 강의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오픈 다이얼로그 이해와 한국적 적용' 강의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정신응급 상황에서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대응은 응급입원 이외에는 없다. 공공이송체계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보호의무자는 사설구급대를 부르게 되고 구급대원은 당사자의 몸을 끈으로 묶고 강제적으로 차에 태워 정신병원으로 종잇장 구기듯이 입원시킨다.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당사자는 보호의무자가 강제로 입원시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갖게 되고 병원 내부에서 행사되는 인권침해적 상황에 부딪히며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정신장애인들이 강제입원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이유다.

한국사회는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진 1995년 이후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입원과 퇴원, 시설로 보내는 과정을 획일화했고 그 가운데 정신병원은 당사자의 치료가 아닌 내적 고통의 심화, 사회적 배제를 더 강화해 왔다. 한때 강제입원 비율이 95%에 이른 적도 있었을 만큼 정신병원은 치료의 공간이 아닌 권위주의적 의료시스템에 수동적으로 복종하게 만들었다.

‘대안은 없는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인지행동치료 등 심리상담은 불과 하룻만에 인터넷으로 부실한 강의를 듣고 전문 상담사가 되는 사회에서 누구를 믿고 상담을 시작해야 할지 가족은 모른다. 헤매고 헤매다가 어떤 경우 점집으로 가서 굿을 하라는 말에 복종하게 된다. 인간 심리의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두려움에 더해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그 심연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학회 공식 자격을 가진 심리상담사와의 상담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가족은 이렇게 할 수도, 저렇게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사회 사적이고 폭력적인 입원 시스템에 자신의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다.

'오픈 다이얼로그 이해와 한국적 적용' 토론자들. (c)마인드포스트.
'오픈 다이얼로그 이해와 한국적 적용' 토론자들. (c)마인드포스트.

7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이 막혀 있는 고리를 해체하는 강의가 있었다.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glogue)의 한국적 적용을 위한 가족과 당사자들의 교육과 대화의 자리였다.

오랜 시간 오픈 다이얼로그를 연구해온 김성수 다원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오픈 다이얼로그를 “정신응급의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에게 전문가들이 방향을 억지로 제공하지 않는다”며 “당사자와 가족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어떤 서비스를 받아야겠다는 선택지들을 그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오픈 다이얼로그”라고 말했다.

열린 대화로 번역되는 오픈 다이얼로그는 1980년대 북유럽 핀란드 라플란드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정신 응급 상황일 때 병원 응급실로 바로 보내는 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전문요원 등 정신의료 촉진자들 3~4명이 당사자의 집을 방문해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당사자가 자신의 입원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조력하는 회복 시스템이다.

현재 44개 국가에서 오픈 다이얼로그를 공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 무렵 이론으로 도입됐다. 김성수 원장은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 시절 이 이론을 현실에 적용했다. 하지만 치료 이념에 무지한 경기도의회가 병원의 오픈 다이얼로그 접목을 가로막았고 결국 김 원장은 타의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의 이념 구현은 좌초됐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오픈 다이얼로그를 현실 의료 시스템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의 오픈 다이얼로그 ‘전도사’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도 오픈 다이얼로그를 정신건강 서비스 모범 사례로 포함하고 있다.

김 원장은 “오픈 다이얼로그는 기존의 공급자 중심으로 배치된 서비스를 당사자와 가족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것”이라며 “서비스 제공자들 간 협력 방식을 통해 보건복지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이념”이라고 말했다.

좁은 의미의 오픈 다이얼로그가 그냥 모여서 모임하는 것이라면 넓은 의미는 시스템 자체를 당사자 중심으로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핀란드는 지난 19년 동안 오픈 다이얼로그의 적용과 정신장애인의 치유 과정을 추적 조사한 결과 초발 정신증 환자의 85%가 회복이 되고 사회복귀를 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오픈 다이얼로그가 출발한 라플란드 지역에서도 비자의입원율(강제입원율)이 4분의 1을 차지한다. 강제입원이 모두 사라진 게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차이점은 오픈 다이얼로그를 기반으로 서비스가 진행되기 때문에 입원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진행된다. 이는 당사자들의 치유 만족도를 높이고 치료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입지 않게 된다.

김성수 다원정신건강의학과 원장. (c)마인드포스트.
김성수 다원정신건강의학과 원장. (c)마인드포스트.

오픈 다이얼로그에 참여한 치료진들은 당사자가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을 해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들은 정신응급 상황에서 잠깐 찾아와 진단하고 이후 단절되는 관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만나는 연속성을 가진 관계가 된다. 당연히 환자는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다.

김 원장은 오픈 다이얼로그 원리로 즉각적 도움, 융통성, 책임성, 심리적 연속성 등을 지목했다. 또 입원 초기에 바로 모임을 조직해서 대처하는 방식을 통해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와 대화주의 원칙을 설명했다.

그는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는 진단을 빨리 내리거나 어떤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대화를 통해 원하는 부분을 찾는 것”이라며 “당장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다음 모임 때까지 안전하게 견딜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견디는 과정을 통해 당사자와 가족들이 스스로 회복을 이뤄가는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열린 종결의 경우 ‘모임을 마치지만 언제라도 여러분 중에 누가 모임을 원하면 다시 모임을 가질 수 있다’는 융통성의 의미로 정신 응급 이후의 서비스를 단절시키지 않는다. 이는 환자의 참여자들에 대한 신뢰를 강화시킨다.

특히 김 원장은 “병원에서 회진을 돌 때 의사와 치료진은 환자가 없는 자리에서 약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한다”면서 “오픈 다이얼로그는 치료진이 당사자가 있는 그 자리에서 의견을 내고 같이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이른바 분담의 원칙이다.

이어 설운영 수원시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은 오픈 다이얼로그에 참여했던 가족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설 교장에 따르면 가족이나 당사자가 오픈 다이얼로그를 찾기 전까지는 보호의무자들이 당사자의 욕설과 고함, 물건 집어던지기 등 폭력적 행동 앞에서 깊은 좌절을 느끼고 자신이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죄의식을 느끼는 사례가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오픈 다이얼로그 참여 전에는 자식이 영원히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오는 절망감, 강제입원 시켰지만 퇴원 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좌절감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설 교장은 “아프고 괴롭고 무서울 때 이들은 심리상담을 받고 싶어 했다”며 “병원에서는 약만 조제해 주고 의사는 시간이 없고 심리상담소는 너무 비용이 비싸 도움 받을 곳이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오픈 다이얼로그에 참여하면서 가족과 당사자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픈 다이얼로그를 진행하며 변화된 부분에 대해 가족은 ▲자식의 트라우마와 고통을 이해하고 경청의 의미를 알게 됐다 ▲존중의 대화로 딸이 무척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아들이 아들이 아니라 고통받는 한 ‘인간’으로 보여졌다고 밝혔다.

설 교장은 “이는 전문가와 솔직한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자아를 반추해 정신의 고양을 느끼게 된 것”이라며 “현실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긍정적 자세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사자가 오픈 다이얼로그에 참여하며 변화된 부분에서 가족들은 “상담 횟수가 거듭되면서 자식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며 “부모에게 털어놓지 못한 말들을 오픈 다이얼로그에서 했다”고 말했다.

설운영 수원시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 (c)마인드포스트.
설운영 수원시 정신건강가족학교 교장. (c)마인드포스트.

또 “아들이 자기 병을 인식하고 고치려고 노력한다”며 “오픈 다이얼로그가 죽은 내 아들을 살렸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설 교장은 “오픈 다이얼로그는 첫 회에는 무관심과 수동성을 띄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자신이 겪는 고통을 적극적으로 발언했다”며 “자기 고통을 토로하며 이를 경청하는 (치료)팀원에 감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오픈 다이얼로그 상담 과정에서 가족을 감동시킨 장면에 대해 한 가족은 “나이 든 간호사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나’라고 물었을 때 천상에서 구원의 천사를 만난 것처럼 울음이 터졌다”며 “캄캄한 절벽에서 환한 빛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오픈 다이얼로그가 일반 대화와 다른 점에 대해 가족들은 “질병에 대해 정답을 주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스스로 인식하고 깨우치게 만든다는 점이 다르다”며 “팀원들은 요구하거나 지시하지 않지만 나는 강한 믿음과 압도적인 깨달음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한 가족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따뜻하고 친밀한 대화로 상처를 아물게 해 주고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충격에서 벗어나 삶의 이정표를 찾아나간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친구는 바로 이것”이라고 밝혔다.

설 교장은 “오픈 다이얼로그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경청과 몰입으로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가족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번 강의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가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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