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가 좋은 지역사회 인프라와 찾고 싶은 정신의료를 제공했다면 그가 괴물이 되었을까?”
[기고] “국가가 좋은 지역사회 인프라와 찾고 싶은 정신의료를 제공했다면 그가 괴물이 되었을까?”
  • 이한결
  • 승인 2023.08.06 21: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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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결 경기동료지원센터장 겸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위원
정부가 정신질환 등 정신건강 전달체계를 모르는 국민을 선동해선 안 돼

[기고에 앞서] 최근 발생한 ‘범행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하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게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경험이 그 어떤 말로도 위로받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드릴 수 있는 말이 위로밖에 없음에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하여 ‘포비아’에 사로잡힌 국민 여러분께 이와 같은 인재(人災)가 발생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서현 백화점 흉기 난동 사건 후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현 백화점 흉기 난동 사건 후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발생한 ‘범행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과 관련하여 ‘정신질환’과 연결을 하려는 정부와 언론의 비과학적 사고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는 마치 정신질환 등 심리·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자가 치료받지 않는다면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비합리적 논리에 근거한 사고이다. 한국의 경우 중증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낮지만(검찰, 2018) 일부 폭력적인 이미지를 언론을 통해 노출시켜 편견만을 키우고 있는 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다(서미경, 김정남, 이민규, 2008).

현재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는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전 치료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호도하여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이는 오히려 정신질환에 관한 편견을 키우고 오히려 치료를 방해하며 ‘포비아(공포증)’을 확산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한편, “현행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정부의 의견은 거짓말이다. 한국의 진짜 문제점은 ‘좋은 정신의료적 치료’와 ‘좋은 지역사회 인프라’ 등 제도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처음 사법입원 제도에 대한 논의가 나온 2019년 진주 방화사건을 저리른 안인득 씨 삶의 궤적을 보면 문제에 대한 원인이 나온다. 안씨는 태어나자마자 ‘저소득층, 빈곤’에 처한 상태로 ‘좁은 교우관계’, ‘고교 진학 포기’, 작업 중에 허리를 다쳤으나 ‘산재불인정’, ‘강제입원’등 누가 겪어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한국사회가 그에게 좋은 지역사회 인프라와 찾아가고 싶은 정신의료적 치료를 제공하였더라면 그는 괴물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 현행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은 현상을 은폐하려는 것과 같다. 다른 사건의 아무개 씨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범죄자와 정신질환자를 만드는 사회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점은 빈곤, 실업, 대인관계 문제, 가정불화, 폭력 등 사회 문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개인의 심리·사회적 어려움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사법입원이 오히려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음을 필자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필자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강제입원을 당한 정신질환자의 입원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위원회에서 지역사회 인프라가 없거나 낮은 질의 치료를 경험해 이를 거부하여 강제입원된 경우를 참 많이 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정부의 검토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도 최저 정신의료질을 만드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사법입원제도로는 ‘범행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좋은 치료와 지역사회 인프라’ 없이는 한국사회에서 사법입원만 증가하게 된다.

그 이유는 첫째 법관의 전문성이 없다. 영국의 경우 범죄 당시의 정신상태의견(MSO)을 포함해 재판 당시의 정신상태 역시도 고려한다. 또한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는 판단을 위해서 특정 면허가 있어야 한다. 반면에 국내 법관은 현재 정신질환 등 독특한 현실지각과 정신적 상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따라서 정신과전문의의 소견만 듣고 입원시킬 위험성이 다분하다.

둘째 미국, 프랑스 등 사법입원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는 절차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함께 보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절차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절차조력제도마저 반대하고 있다. 또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역시 의료기관 내 두고 있어 독립성이 떨어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법관에 의한 강제적 입원치료를 허용한다면 문제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입원과 수가만을 주장하였던 의료계 입장만을 인용해 혈세만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 이 소중한 국민 세금을 지역사회 인프라에 투자해야 됨에도 그 돈을 하락장에 투자하려는 정부의 검토는 적절하지 않다.

지역사회 인프라가 없이 사법입원제를 도입할 경우 입원환자만 늘리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초래할 뿐이다. [사진=연합뉴스]
지역사회 인프라가 없이 사법입원제를 도입할 경우 입원환자만 늘리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초래할 뿐이다. [사진=연합뉴스]

셋째, 선발국가의 입법 취지 및 제도와 배치된다. 선발국가의 사법적 입원은 강제입원의 인권침해를 해결하고자 인권옹호를 위한 제도로서 도입됐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사법입원 국가는 지역사회 지원 및 돌봄제도와 함께 운영되며 사법부가 동료지원활동 참여, 지역사회 서비스 이용 등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명령하고 권고한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 제도와 인프라가 부재하기 때문에 이용을 명령할 수 있는 자원이 전무하다. 따라서 사법입원 숫자만 늘어나고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만 초래할 뿐이다.

수준 낮은 정신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국에서 사법입원에 왜곡된 재정 투입을 하는 것은 최근 발생한 문제들의 해결 방법과 거리가 멀다. 2021년 12월 말 기준으로 5만9412명의 정신질환자가 입원해 있는데 그 중 동의입원을 포함한 3만2791명(55.1%)이 강제적으로 입원해 있다(국가정신건강현황, 2021). 치료감호소 등을 포함하면 더 많은 인원이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만약 법관이 이를 판단한다면 약 3만2000명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 비용이 소요된다. 법관 1인 유지비용을 고려했을 때 엄청난 재정적 소요를 초래한다. 또한 그 소요가 원인을 예방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재정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해결 방법은 높은 수준의 정신의료와 좋은 지역사회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다.

첫째, 높은 수준의 정신의료는 법률로서 지금이라도 구현해낼 수 있다. 202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 입원환자 10명 중 7명은 ‘정신병원’을 선택해 입원하고 있지만 입원 치료의 질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15분 이내 진료’, ‘좁은 이격거리 병상’, ‘사설 응급이송단의 높은 활용’ 등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질 낮은 의료 서비스에 관한 최저 수준을 법률로써 정해야 한다.

또한 정신질환자를 성폭행하고 가혹행위를 일삼으며 징벌적으로 격리와 강박을 실시하는 등 강제적인 개입에 대한 일부 정신병원의 행태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높은 수준의 정신의료를 구현해야 한다. 이는 2023년 4월 발의된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에서 최저 의료 수준을 법적으로 정하고자 하였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우리가 구현해야 하는 것은 사법입원제도가 아니라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사람이 가고 싶은 의료 환경과 서비스를 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좋은 지역사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사회 체계는 하나, 약물 및 입원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소득, 교육, 연령, 사회적 지지, 정신질환 및 복합 신체질환 보유 여부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당사자의 욕구에 대응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재정 역시 투입해야 한다(오현성, 2019). 실제 미국, 프랑스 등 정부가 이야기하고 있는 국가를 포함해 국제적 흐름은 당사자가 정책 및 서비스에 참여하고 그들이 원하는 정신건강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에는 독특한 현실지각과 정신적 상태를 포함한 다차원적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동료지원(Peer Support) 서비스가 포함된다(Coffey & Hewitt, 2017: 오현성, 2019 재인용).

세계보건기구(WHO) 및 UN 장애인권리위원회(CRPD) 등 국제기구는 이미 한국정부에게 지역사회 인프라를 구축할 것을 수차례 권고했다. 국제 기준에서 정신건강 서비스의 흐름은 정부가 주장하는 강제적인 개입과 같은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 회복지향적이고 자기결정을 존중하며 비강제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기준을 고려한 서비스가 실제 정신질환자의 회복을 높이고 지역사회 포용을 촉진하며 그 효과성이 검증됐다(WHO, 2022).

정부의 잘못된 진단이 사회구성원 전체를 가두려는 '병든 사회'를 만들게 된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잘못된 진단이 사회구성원 전체를 가두려는 '병든 사회'를 만들게 된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내용은 국제 인권규약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다. UN 장애인권리위원회(CRPD)는 현재 한국의 정신건강 시스템이 ‘고문과 착취’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개선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들은 인권 중심의 복지서비스 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지역사회 체계에 안정적인 재정투입을 해야함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정부의 잘못된 진단으로는 결코 ‘범행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을 방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애꿎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국제 기준과 역행하는 정부 시책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선동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오히려 치료 동기를 떨어트려 사회적 고립과 방치를 강화할 위험성이 있다. 정부의 잘못된 진단이 불러온 파장은 인재(人災)를 계속 방치하고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 전체를 가두어야만 끝나는 ‘병든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다. 정신질환 등 정신건강 전달체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정부가 선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인권친화적이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선진 국가 반열에 당당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정신질환 등 심리·사회적 당사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좋은 치료와 지역사회 인프라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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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2023-08-06 21:58:0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