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대와 방임이 성년기에 정신질환 원인...국내 연구진 최초 분석
어린 시절 학대와 방임이 성년기에 정신질환 원인...국내 연구진 최초 분석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3.08.01 2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동기 학대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질환의 원인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아동기에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방치되거나 학대를 받을 경우 극심한 스트레스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스트레스 상황을 겪게 되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 동안 뇌 신경 회로망 및 기능이 크게 변화돼 조현병 및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발생될 수 있다. 하지만 아동기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질환의 원인과 그 제어 방법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정원석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아동 학대·방임 등 아동기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되는 정신질환이 별아교세포의 과도한 시냅스 제거에서 기인함을 최초로 규명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셀>(Cell) 자매지이자 면역관련 국제 학술지 <이뮤니티>(Immunity)에 발표됐다.

논문 제목은 'Stress induces behavioral abnormalities by increasing expression of phagocytic receptor MERTK in astrocytes to promote synapse phagocytosis'.

연구팀은 뇌에서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별아교세포가 스트레스 호르몬에 반응해 과도하게 흥분성 시냅스를 제거하는 현상이, 아동 학대·방임에 따른 정신질환 발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임상적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정확한 발병 기전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 크게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뮤니티(IMMUNITY)에 게재된 연구 모식도. 아동기의 과도한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는 별아교세포의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GR)를 통해 MERTK 포식 수용체의 발현을 증가시켜 흥분성 시냅스를 과도하게 제거하게 함. 뇌 발달시기의 별아교세포에 의한 과도한 시냅스 제거는 영구적으로 뇌 회로 손상을 초래해 성체 뇌에서 비정상적 신경 활성도 및 사회성 결핍, 우울증 증상과 같은 정신 질환 행동을 유발한다. (자료=KAIST, Cell)
이뮤니티(IMMUNITY)에 게재된 연구 모식도. 아동기의 과도한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는 별아교세포의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GR)를 통해 MERTK 포식 수용체의 발현을 증가시켜 흥분성 시냅스를 과도하게 제거하게 함. 뇌 발달시기의 별아교세포에 의한 과도한 시냅스 제거는 영구적으로 뇌 회로 손상을 초래해 성체 뇌에서 비정상적 신경 활성도 및 사회성 결핍, 우울증 증상과 같은 정신 질환 행동을 유발한다. [이미지=KAIST, Cell]

연구팀은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임상 약물 스크리닝을 진행해 별아교세포의 외부 물질을 잡아먹어 제거하는 역할(포식 작용)을 조절하는 새로운 기작을 발굴했다.

그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합성 글루코코르티코이드(synthetic glucocorticoid)가 별아교세포의 포식 작용을 비정상적으로 크게 높이는 것을 발견했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는 당대사, 항염증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한편 스트레스와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해 분비돼 신체가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글루코코르티코이드에 장기간 노출되면 우울증, 인지장애, 불안 증세와 같은 다양한 정신질환이 발병할 수 있다.

연구팀은 아동기 스트레스로 인한 별아교세포의 기능 변화를 이해하고자 아동기 사회성 결핍생쥐 모델을 활용했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별아교세포의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와 결합해 별아교세포의 포식 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MERTK(Mer Tyrosine Kinase)라는 수용체의 발현을 크게 증가시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별아교세포는 증가된 MERTK를 통해 다양한 대뇌 피질에 존재하는 특정 신경 세포의 흥분성 시냅스만을 선택적으로 잡아먹어 감소시켰으며, 이로 인한 비정상적인 신경 회로망 형성으로 추후 성인기에 사회성 결핍과 우울증 같은 복합적인 행동 이상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별아교세포와 함께 뇌 면역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세아교세포는 아동기 사회성 결핍 쥐 모델에서의 시냅스 제거에는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아동기 스트레스 상황에서 미세아교세포가 아닌 별아교세포가 특이적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에 반응해 뇌의 환경을 조절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발견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간 만능 유도 줄기세포에서 유래한 뇌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스트레스 호르몬에 대한 반응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인간 뇌 오가노이드에서도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해 별아교세포의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와 포식 수용체가 모두 활성화됨을 발견했으며, 별아교세포가 흥분성 시냅스를 과도하게 제거하는 것도 확인했다.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쥐와 인간의 시냅스 조절 메커니즘이 동일하다는 게 확인되면서 인간의 정신질환 치료에도 응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했다.

정원석 교수는 "지금까지 아동기 스트레스와 뇌 질환 발병의 메커니즘은 잘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과도한 별아교세포의 포식 작용이 정신질환 발병에 있어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최초로 증명했다"며 "추후 다양한 뇌 질환의 이해와 치료에 있어서 별아교세포의 면역기능 조절이 근본적인 타깃으로 응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는 KAIST 생명과학과 변유경, 김규리 박사과정 학생과 김남식 박사 후 연구원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재단 중견 연구, 뇌질환극복연구사업, 뇌기능 규명 조절 기술 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