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이 찾아오면 무얼 해주기보다 내 옆에 같이 앉아 있어 주는 걸로도 도움이 되더라”
“환청이 찾아오면 무얼 해주기보다 내 옆에 같이 앉아 있어 주는 걸로도 도움이 되더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8.02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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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정신장애인 컨퍼런스 이틀간 행사 마치고 폐막
당사자연구 시연 진행...청주센터 경험전문가들 발표 이어져
2001년 일본 베델의집에서 시작...2007년 청주센터가 최초 도입
“당사자연구를 통해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자각 생겨”
제3회 정신장애인 목소리 환영대회 토론자들. (왼쪽부터) 박상일, 김종환, 정창훈, 김용성, 성창민, 이영수 팀장. (c)마인드포스트.
제3회 정신장애인 목소리 환영대회 토론자들. (왼쪽부터) 박상일, 김종환, 정창훈, 김용성, 성창민, 이영수 팀장. (c)마인드포스트.

“당사자연구를 하면서 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왜 그런 생활을 했어야 했는지를 깨닫게 됐어요.” (박상일 청주정신건강센터 경험전문가 발언)

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2023 정신장애인 컨퍼런스 제3회 정신장애인 목소리 환영대회에는 환청·망상과 관련된 당사자연구의 소개와 시연이 진행됐다. 100여 명의 청중은 연구 당사자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였다.

2001년 봄, 일본 홋카이도 우라카와 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있던 20대 청년은 이 병원 사회복지사였던 무카이아치 이쿠요시 씨와 마주 앉았다. 통합실조증(조현병)을 가진 청년은 반복적으로 병동 내에서 폭력을 행사했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화가 난다며 전화기를 부쉈다. 무카이아치 씨는 할 말이 없었다. 대신 “같이 연구해 보자”라고 말했다. 당사자연구의 첫 장이 그렇게 열렸다,

청년은 무카이아치 씨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겪는 고통과 고생의 패턴을 분석했다. 고통이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알게 됐고 막상 고생이 찾아와도 대응할 수 있는 내적 힘을 갖게 됐다. 당사자연구의 창시자 무카이아치 씨는 이 연구를 “인간이 가져야 할 당연한 고생을 찾는 것”으로 정의내렸다.

그는 정신장애를 ‘말과 관계의 병’으로 규정했다. 인간은 부당하게 말을 빼앗길 경우 정신질환을 겪게 된다. 정신의료 시스템이 무능력자로 규정해 그들을 병원과 요양시설에서 과도하게 ‘보호’를 내세워 규제할 때 인간은 본래의 내적 속성인 ‘고생’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 인간의 생에서 고생과 고통을 빼앗는다는 것은 삶의 풍요로움과 삶을 개척할 가능성을 가로막아 버린다는 의미다.

이 당사자연구는 2007년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이 한국에 처음 도입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진보된 연구 체계는 국내 정신질환 치유와 회복의 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기존 정신의료 시스템이 등한시하고 긍정이나 부정의 개념도 갖지 못한 환청과 망상을 삶의 실존적 의미로 전복해 연구하는 방식은 당사자연구만이 가진 독특한 특성이 된다.

이번 컨퍼런스는 이 같은 철학적 함의를 가진 당사자연구의 실제적 진행 과정을 참여자들과 함께 재연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청주정신건강센터 소속 경험전문가들이 발표했다.

박상일(43) 씨는 자신의 고생명을 ‘관계의 가위병’으로 이름붙였다. 청주정신건강센터를 다니던 초반에는 센터 아침회의 때도 이어폰을 끼고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 회원이 “오빠, 그렇게 살면 안 돼. 당사자연구를 해 보는 건 어때”라고 물었다.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오른쪽)이 당사자연구를 시연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오른쪽)이 당사자연구를 시연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상일 씨는 “처음에는 나 같은 게 뭘 해, 나 같은 건 없어져야 돼 같은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연구를 하자고 제안해 주니까 일단 기뻤다”며 “막상 해보려고 해도 주제도 생각이 안 나 당혹스러웠는데 진행자가 자신의 가까운 데서 문제를 찾아보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내가 인간관계를 그냥 싹뚝싹뚝 잘라내듯이 끊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제는 관계에서 내가 먼저 전화해서 다가가고 먼저 사과하고 친구들에게 협조를 구한다”고 전했다.

김종환(51) 씨는 “힘든 일을 하다 보면 어느 때에 환청이 온다”며 “증상이 오면 그 압도감에 눌려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종환 씨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종환 씨가 또 환청이 왔구나’라고 다 안다”며 “그때 무얼 해 주기 보다는 옆에 와서 같이 앉아 있어 주는 걸로도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정창훈(48) 씨는 환청과 망상이 심할 때 텔레비전을 켜면 거기 연예인들이 자신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20년 동안 그런 기분에 시달려왔다.

그는 “당사자연구를 하려면 용기와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말을 하면 창피했다”며 “그런데 (연구) 선생님이 기다려주니까 용기를 내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용성(45) 씨는 가상의 ‘감시자’가 있어 24시간 자신의 행동을 감시한다는 망상을 가졌다. 감시자는 늘 용성 씨를 비난했다. 무기력에 빠진 그는 20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당사자연구를 통해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라는 자각이 생겼다”며 “이제는 종교활동도 하고 센터에서 발표도 하고 연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뭐라도 해야 한다. 운동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집에만 있지 말고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창민(44) 씨는 학창 시절 학교폭력을 일상적으로 겪었다. 군대에서도 선임병에게 자주 구타를 당했다. 어느 날 정신질환이 찾아왔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먹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의 연구 주제가 ‘타인으로부터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로 명명된 건 어쩌면 자신을 지켜줄 크고 강한 존재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도피처를 찾다가 마주한 게 당사자연구였다.

창민 씨는 “당사자연구에서 제가 당했던 일들을 말하니까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며 “고생의 대처 방안으로 이제는 음악을 듣거나 밖에 나가서 걷는다”라고 말했다.

정신장애인 목소리 환영대회 '당사자연구' 시연과 청중들.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 목소리 환영대회 '당사자연구' 시연과 청중들. (c)마인드포스트.

이영수 청주정신건강센터 팀장은 “환청과 망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누군가가 보기에는 저게 뭘 하는 거지라고 말할 수 있다”며 “그런데 우리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동료들과 같이 연구한다”고 전했다.

김대환 관장은 “당사자연구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당사자들이 말을 안 한다”며 “말을 안 하는 이유가 말을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오해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사실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숙성의 기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을 뛰어넘으면 말이 많아지게 된다”며 “자기 얘기만 하려고 한다. 일종의 주목받고 관심받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분이 연구에서 말문을 틔워주면 두 번째, 세 번째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자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당사자연구가 동료지원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상일 씨는 “동료지원과 다른 건 우리는 우리의 병을 이야기하면서 그 병과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법을 그들한테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환청·망상대회를 끝으로 이틀간의 제3회 정신장애인 컨퍼런스는 폐막됐다. 행사를 기획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1~2일 동안 진행된 지역사회서비스, 입·퇴원 제도, 위기지원시스템 등 당사자 토론에서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내년 총선에서 후보들에게 정신장애 인권 요구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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