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애학에서 ‘정신장애’ 관련 학문은 거의 없어”
“세계 장애학에서 ‘정신장애’ 관련 학문은 거의 없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2.16 2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천IL, 정신장애인 토크콘서트 개최
당사자가 가만 있는데 예산을 주는 경우는 없어
정신장애 특별법 만들어도 예산 없으면 무의미
장애인복지법 15조는 반드시 폐지해야
자립생활운동 ‘장년기’ 맞아…정신장애에 공간 마련해줘야
지역사회 인프라 부족으로 다시 병원 찾는 구조 벗어나야
서울에 비해 지방 정신장애 운동은 약한 수준

정신장애인의 권리 확보를 위한 당사자조직 강화 및 역할을 주제로 한 정신장애인 자립지원 토크콘서트가 지난 1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주최하는 콘서트는 지난 2016년부터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차별받는 법적 제도적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행사로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이상호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지난 2007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한민국 최초로 인권 실태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2007년 이전에는 하나도 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2조3천억 원의 예산을 정신병원에 지원하고 있지만 막상 정신장애인의 복지 예산은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전 세계 장애운동사에서 당사자가 가만히 있는데 뭐가 필요하세요 하면서 준 적은 없다”면서 “당사자가 (권리를 위해) 싸웠을 때 (장애인 예산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장애인들이 장애 유형을 포괄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1981년이다. 이전에는 장애유형을 포괄하는 조직이 없었다. 그 이전에 장애 정책을 결정한 주체는 ‘시설론자’와 ‘재활론자’였다.

그는 “따라서 정부와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가 첫 번째 문제”라고 정의했다.

이어 “재활론자들이 봤을 때 문제는 우리였고 우리를 정상에 가깝게 만들어보려고 했다”며 “저를 예로 들면 장애인복지관이 제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신병원이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였다기보다는 오히려 왜곡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문제의식이 들었다”며 “엉망으로 쓰여지고 있는 2조3천억 원의 예산의 결정과 선택을 당사자들이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로 문제가 좁혀진다”고 말했다. 그는 해결 방안으로 정신장애인들의 조직된 힘을 강조했다. 조직이 없으면 권력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장애인기본법 안에 모든 유형의 장애인이 동일한 사회권적 기본권을 보장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장애 유형별로 입법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청각장애인의 수화지원법, 발달장애인의 발달장애인법 등이 분절되면서 정부 정책입안자들이 ‘한 군데만 예산을 쓸 수 없다’며 법안을 거부하는 기제로 이용하고 있다.

이 소장은 “정신장애 관련 특별법이 만들어져도 예산이 안 받쳐주면 종이 쓰레기에 불과하다”며 “기본법 운동을 슬로건으로 걸고 이것을 충족시키는 예산을 반영시키기 위해 정치권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권력과 전문가 집단의 획일성과 관료성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전문가 집단에 권한을 준 건 우리들”이라며 “그들이 상품을 개발하고 우리가 선택하는 건데 이 상품에 대해 그들은 설명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전문가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 스스로 혹은 조직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삼호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장은 정신건강복지법의 내용적 결함을 지적했다.

그는 “복지 영역도 지역정신보건센터 중심의 복지이지 신체장애인들이 누리는 자기결정에 의해 자기 주거를 기반으로 한 자립생활 중심의 복지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정신건강 시스템, 그러니까 병원이나 정신보건센터, 보건소와 같은 정신보건 시스템 안에서 관리하려고 하는 의도가 이 법에는 많이 묻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정신장애인을 복지서비스전달체계에서 소외시킨 장애인복지법 15조와 관련해 “이 법으로 인해 정신장애인이 법적으로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됐다”며 “정신장애인이 관리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장애인복지법 15조 개정 투쟁을 강하게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센터장은 “정신장애인은 사회복귀를 요하는 복지서비스가 확보되거나 서비스 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하는데 구축되지 않아서 사회복귀가 어려워진다”며 “정신건강복지법 자체도 정신장애인에게 복지를 제공하지 않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복지법에서 발달장애인의 서비스전달체계를 배제할 경우 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는 조직이 바로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다. 그렇지만 정신장애인이 이 법에서 소외됐을 때도 이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할 수 있는 운동조직이 없다는 것이 윤 센터장의 문제제기다.

그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법안을 입법화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가능성이 있지만 정신장애인의 주체적 역량이 부족하고 사회적 편견은 해소가 안 되고 더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가 정당하고 명분 있게 주장할 수 있는 게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왜 정신장애인만 빼놓느냐면서 여론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자기권리주장대회를 통해 당사자 조직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피플 퍼스트(people first) 운동으로 발달장애 쪽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할 데가 없으니까 그냥 마이크 들고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이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당사자주의 원칙에 의해 당사자들이 조직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공감 얻고 힐링도 가지고요. 만약 우리나라 서울에서 1회 대회를 조직하게 된다면 전국적으로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고 자기주장을 하는 문화를 굉장히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2000년 초반 광주광역시와 서울 동대문에서 최초로 자립생활센터가 만들어졌다. 20년에 걸친 역사가 그 안에 녹아 있다. 윤 센터장은 이를 ‘장년기’라고 표현했다. 장년기는 곧 원숙함과 함께 법적 제도적으로 체계화되고 제도화됐음을 의미한다.

그는 “2000년 초반에 자립생활센터 가 보면 10평 미만의 사무실에 휠체어도 못 돌아다니는 공간에서 2~3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며 “지금은 활동가만 10명 이상이고 활동지원서비스도 100명씩 하는 등 크게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신체장애인들의 자립생활 운동이 원숙기에 들었지만 ‘운동’의 관점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운동이 아니고 자립생활이 전달체계 복지관처럼 돼 버릴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어떤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립생활센터는 작은 복지관이 돼 버리는 거죠.”

그는 “기존의 자립생활센터들이 그들만의 공간이라기보다 모든 장애인들의 공간이어야 한다”며 “공간이 없어서 모일 수 없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빌려드릴 테니까 회의실로 쓰시라고 말해야 한다”며 “이걸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되고 직접 찾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센터장은 장애학과 관련한 서적을 최근까지 10여 권을 번역했다. 그렇지만 그 장애학 속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논문이라 장애학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학은 당사자 학문”이라며 “이 장애학 논문에 정신장애 쪽이 거의 없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정신장애 당사자가 당사자로서 연구자가 없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비정신장애인이 정신장애인 장애학을 언급하는 것은 타당할까.

그는 “정신장애 쪽에서는 정신장애 당사자가 그 부분의 글을 써야 하는 것이지 신체장애인들이 정신장애인들의 삶과 문제에 대해 글을 쓴다면 이는 장애학의 원칙에 맞지 않다”고 언급했다.

윤 센터장에 따르면 미국의 신체장애인들의 가장 급진적인 운동조직은 장애예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크리플(cripple), 즉 ‘병신’이라고 부른다. 비장애인이 비하하는 용어이지만 장애인들은 이 용어를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역사적 언어로 차용했다.

그는 “정신장애 당사자들도 자신이 환자였던 경험을 공유한다”며 “격리된 병원에서의 호나자의 경험이 곧 그들의 정체성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길성 정신장애인 활동가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정신장애인들을 복지전달체계에서 소외시키고 있어 정신장애인들을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은 사회 복귀를 요하는 복지서비스가 확보되거나 서비스 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하는데 구축되지 않으니까 어려움을 겪는다”며 “장애인복지법 15조가 개정되거나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복지법 13조 3항은 정신장애인이 복지관 등 시설을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활동가는 “이는 정신장애인을 복지전달체계에서 배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까지 빼앗는 것”이라며 “발달장애인처럼 정신장애인도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을 특별법으로 만들어서 ▲정신장애인 지원 종합계획 수립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계획 수립 ▲정신장애인 복지시설의 설치 및 운영 근거 마련 등을 요구했다.

그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역할과 관련해 “센터가 중증정신질환자 사례 관리, 자살 예방,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사업, 중독 관련 사업을 맡고 있는데 왜 그런 것만 맡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정신질환자들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지원기관의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정신건강증진체계에서 예산을 보면 지역의 인구 구조나 정신건강 문제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라며 “인프라가 취약하고 인력도 부족해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다시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주거시설의 거주 기간 문제도 그는 지적했다. 현재 주거지설에 들어갈 경우 최대 거주 기간이 3년으로 제한된다. 그러면 서울시 내 다른 구의 주거시설로 옮겨야 하지만 현행법은 서울시를 벗어난 지역으로 갈 것을 요구한다. 서울시에 살았다면 경기도로 가야하고 경기도의 한 거주시설에서 3년을 생활하면 다시 인천이나 다른 지방으로 가야 하는 구조다.

그는 “주거시설이나 공동체주택이나 살 집이 없다 보니까 행정구역을 옮겨다니는 그런 떠돌이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저희 정신장애인들의 인생”이라고 토로했다.

이 활동가는 1996년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그는 하나에서 열까지 세는 방법도 잊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천까지, 더 이상까지 셀 수 있다. 여기에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개입할 수 있을까.

그는 “정신장애인은 신체장애인과 다르게 약을 먹는데 부작용이 일어나고 일상생활도 관리하기 어렵다”며 “일상생활 관리도 못하고 약에 취해 있는데 여기에 장애운동이 개입하면 굉장히 버거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현병의 경우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약물치료와 교육, 훈련, 리더 양성 등 순차적인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돈수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 ‘부산 희망바라기’ 대표는 “지방은 정신장애인 운동과 서비스가 낙후돼 있다”며 “지자체에서 뒷받침이 돼야 하는데 부산시는 복지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산지역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걸음마 단계’라고 토로했다.

“정신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서 동료 지원보다는 같이 밥 먹고 운동도 하고 하는 시스템으로 저희는 하고 있어요. 지원을 받는 게 아니고 사비를 털어서 영화 보고, 연극 보고 합니다. 부산의 정신장애인 복지전달체계는 정신병원 안에서만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의 서비스를 받지만 밖으로 나오면 아무것도 없어요.”

그는 “부산은 서울처럼 장애인들의 편견을 완화할 교육프로그램이 전혀 없다”며 “낮병원에서 인권교육 같은 건 조금씩 하는데 다른 서비스는 전혀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낮병원 회원은 아니지만 낮병원 가서 이야기 들어주고 경험을 나누면서 고통받는 정신장애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거 같다”며 “그래도 다른 장애인들보다 우리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픔은 있지만 서로를 위하는 정신장애인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