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탈원화가 성공한 건 정신병원에 의료급여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
“미국의 탈원화가 성공한 건 정신병원에 의료급여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3.01 02: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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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복귀 위한 정신건강서비스 정책 토론회 개최
치료의 연속성은 서비스들이 연계를 통해 제공돼야
퇴원 계획 수립돼야…한국은 계획 없이 퇴원
입원 치료에 예산 다 쓰면 탈원화 불가능해
약에 대한 정보를 의사로부터 받지 못해
당사자의 치료와 복지 선택권 주어져야
장기입원은 노동능력 상실…회전문 강제입원으로 이어져
애리조나 주 정신보건서비스 우리도 가능해
정신병원에 돈 끊으면 탈원화 진행될 것
입원·약물 편의주의 치료방식이 한국 의료의 폐해
약물·의사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제공되는 서비스에 적절한 수가 책정돼야

미국에서 탈원화가 이뤄진 실질적 계기는 주립 정신병원들에 중앙정부가 의료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핵심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장기입원을 할 경우 정신병원들에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의 수가 청구를 금지한 데서 탈원화가 급속히 진행됐다는 보고다.

오현성 미 애리조나 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역사회 복귀를 위한 정신건강서비스 무엇이 필요한가?’ 정책 토론회에서 이 같은 분석을 골자로 하는 발표를 진행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1963년 케네디 정부에서 주립 정신병원에 메디케이드(의료급여) 수가를 금지하면서 탈원화가 시작됐고 1980년 레이건 보수 정권에서도 정신보건 서비스 재원조달 방식을 바꾸면서 미국 내 정신병상이 급격히 없어졌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 정신보건법에 탈원화를 이야기했지만 지금까지 시설화만 해 왔다”며 “탈원화는 민주적 헌법을 가진 국가에서는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17년까지 우리나라의 정신병원 비자의입원률은 90%를 넘었다.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이 비자의입원은 자의입원으로 대체돼 늘어났다. 왜 그럴까?

오 교수는 “지역사회가 살 곳이 아니기 때문에 자의입원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1993년 8월 한국에서는 정신보건법 제정과 관련된 공청회가 열렸다. 당시 법안에 나온 39개 조항 중 31개가 입원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당시 정신과 의사 한 명은 공청회 발표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 오 교수는 “지금 내가 하는 얘기와 거의 똑같다”며 “27년 전에도 그런 주장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신건강서비스 전달체계에서 ‘치료의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치료의 연속성은 다양한 서비스들이 일관된 연계 과정을 통해 제공돼야 한다는 거다. 입원해서 지역사회로 나올 때 퇴원 계획이 존재해야 한다. 퇴원 계획을 통해서 지역에서 어떻게 살지를 계획하고 서비스에 관한 정보를 받는 것이 치료의 연속성의 개념이다.”

오 교수는 “모든 개인들이 다른 맥락과 증상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맞는 최적화된 서비스 욕구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입원 치료에 예산을 다 쓴다면 한 사회의 탈원화는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급성기 증상이 발생하면 지역사회 급성기 안정화 프로토콜에 참여하거나 단기입원으로 증상을 안정시켜야 하고 퇴원 계획을 빨리해야 한다”며 “지역사회로 나왔을 경우 증상에 따라 다른 서비스를 제안 받고 복수의 서비스 공급자가 연계를 통해 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퇴원 계획을 구축하고 있을까. 오 교수에 따르면 일부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한국의 민간 정신병원들은 퇴원 계획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있다. 장기입원의 폐해 또한 심각했다. 장기입원으로 사회적 기능이 상실되는 경험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오 교수는 “병원이 살아가는 과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일상을 살아가며 기본적 스트레스에 맞서는 과업이 있는데 강제입원한 6개월 동안 이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병원의 ‘금전 구조’에 기인한 왜곡된 한국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의료급여는 병원에 오래 있을수록 병원의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라며 “병원 업자는 병상 차리는 게 중요하니 이런 것들이 퇴원 후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그는 환자들이 약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부분도 지적했다. 환자들의 경우 자신이 복용하는 약 부작용에 대해 의사로부터 정보를 얻지 못한다. 대신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 다니면서 동료를 통해 약 정보를 얻게 되는 게 대다수다.

기초생활수급권을 받지 못한 당사자들의 경우 휴대폰 개통할 때 할인 받는 게 혜택의 전부다. 주거 지원과 생계급여를 받는 게 인간다운 삶의 핵심적 개념인데 이 같은 보편적 복지에서 한참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오 교수는 “부양의무제가 있는 하에서, 정신장애인의 등급제를 만들어놓은 폭력적 구조 하에서 당사자가 기댈 곳은 가족뿐”이라며 “가족 역시 돌봄이 일 년만 지나면 지쳐버린다. 결국 국가 폭력이 만든 시스템의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심리치료는 보편적이다. 보통 10회기로 진행되는데 1~2회기 때 케어 플래닝(돌봄 계획)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치료가 진행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에 정신요법료 항목이 있다. 이 항목에 들어간 예산이 3천억~4천억 원이다. 2017년 한해 정신재활 시설에 들어간 국가 예산은 1890억 원이다. 그렇다면 심리치료에 정신재활시설 예산의 두 배를 쓰면서도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자신이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없으며 그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응답이 많았다고 한다. 오 교수는 심리치료의 기본적 틀이 마련되지 않고 의사들의 자의적이고 주먹구구식 대응으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에 치료의 연속성이 없는 것과 관련해 “사회적 편견, 정신건강 지식의 부족, 입원치료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세 가지 요인의 상당히 크다”고 지적했다.

“환자가 배제된 급성기 증상의 치료 시스템, 장기입원으로 사회적 기반이 무너지는 기능의 퇴화가 돼 버린다. 그래서 입원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지역사회가 없는 것도 당연하고 노동 능력이 없는데 기초생활수급권 받기도 어렵다. 그러면서 다시 회전문 강제입원으로 간다. 이 시스템이 오늘 한국의 모습이다.”

그는 이어 애리조나 주의 정신질환 서비스 모델을 소개했다. 애리조나의 경우 최초 정신질환 진단이 까다롭다. 병원이 아닌 한 군데 조직에서 시스템적 분류를 통해 법적 중증정신질환 진단을 받는다. 이 경우 의료급여에 근거해 정신보건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애리조나 주의 장애등급을 받은 정신질환자 수는 16만 명. 이들에게 들어간 2017년 예산은 1600만 달러(180억 원)다.

애리조나 주는 주정부의료급여(우리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해당)가 있고 밑에 지역행동건강책임국(우리나라의 심평원에 해당)과 여러 민간의료집단이 용역과 계약을 맺는다. 이들이 하는 일은 약물중독 환자 서비스 제공, 중증정신질환자 서비스 제공, 위기 개입 서비스 체계 등으로 나뉜다. 급성기 증상에의 개입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갖춰진 체계다.

한국의 인구는 애리조나 주 인구의 7배 수준이다. 미국의 높은 임금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5000억 원이면 이런 정신보건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는 게 오 교수의 설명이다. 2017년 우리나라 F코드 진단으로 지출된 돈이 4조8천억 원이다.

그는 “우리가 돈이 없어서 이걸 못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지혜롭게 쓰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애리조나 주의 경우 이 주에 한 번씩 정신병원 대표, 정신보건복지센터 직원, 경찰, 동료지원가, 응급구조대 들이 모여서 서비스 제공 논의를 한다. 소비자인 정신장애인이 어떤 서비스를 원하면 자기들 쪽으로 보내라며 홍보하는 자리다. 반면 우리나라는 동사무소 직원과 보건 의료계 직원들이 모여서 사례회의에 그친다.

오 교수는 “(한국은) 이런 조직들이 치료의 연속성을 갖춘 게 아니라 공공의 일부 조직들이 명령에 의해서 갖춰진 체계 안에서 사례 회의를 한다”며 “치료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조직들 간 연락망을 갖추고 협의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생계급여와 주거 지원을 받지 못하면 지역사회 복귀는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부 역시 규제자가 아닌 촉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미국의 탈원화가 실질적으로 이뤄진 건 주립 정신병원에 의료급여를 지원하지 않기로 한 게 결정적이었다”며 “그러면 정신병원은 지역사회로 빨리 내보내려 하게 된다. 결국 돈을 끊어버리면 탈원화는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용을 하는 방식을 바꾸고 돈을 배정하는 방식을 바꾸면 세상이 변한다”며 “당사자와 가족이 의사결정 과정에 들어가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당사자가 느끼는 증상과 다양한 스펙트럼만큼 의료적 지원과 지역복지 지원의 다양화도 따라와야 한다”며 “당사자의 치료와 복지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의료와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연속성이 단절된 상황이 이 과정을 악화시켰다”며 “입원치료와 약물치료가 가장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신보건서비스 체계가 가지는 편의 중심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애주기별 지원과 당사자 조직의 지원으로 당사자의 주체적 정책 참여와 그로써 의로 서비스 외에 지역 복지 서비스의 다양한 자립생활지원 모델링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점태 정신장애인가족모임 심지회 부회장은 “정신질환은 병원에서만 아니라 재활기관 등을 통해서 적절한 훈련 과정을 거쳐 당사자에게 일을 주어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음성 증상 치유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배 부회장은 “약물 치료만 강조해 약만 복용하게 하고 다른 적절한 치료가 안 되면 당사자들은 중증정신장애인이 돼 본인과 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고 지적했다. ‘

그러면서 “당사자의 적극적 치료를 위해 당사자 중심의 접근 방법이 방안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약물, 의사 중심 정책에서 정신건강 관련 선진국처럼 당사자 및 가족 즉 소비자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은식 한국정신보건작업치료학회 회장은 “전문가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할 때 각 영역의 전문성이 모호해지고 비슷한 업무가 주어진다”며 “중증정신질환자관리, 초기 정신증, 소아청소년 사업, 지역사회주민 정신건강 증진 사업, 자살예방 사업 등 실적 압박은 정신건강전문가들이 환자가 아닌 종이와 씨름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만은 정신재활이 발전해 있는데 그 이유는 정신과 수가 체계 때문”이라며 “제공하는 서비스 행위에 대해 적절한 수가가 책정돼 있고 이로 인해 기관은 치료자의 수를 확보해 다양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신과 수가가 제한적이어서 제공하는 서비스조차도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신보건 서비스의 효과적 제공과 정신과 환자의 성공적 사회복귀를 위해 정신보건전문가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작업치료사협회, 정신장애인권연대 카미, 한국정신보건작업치료학회가 공동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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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3-01 17:56:14
정신병원에 돈을 끊으면 탈원화 탈시설화 앞당긴다. 이론적으로 맞지만 현실 적용이 녹록지 않다 그만큼 기득권 의료권력의 갑질이 두껍고 욕심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수가 현실화도 부르짖지만 약타는데 급급한 현실에 소비자 중심의 사고를 하기 힘들다. 양심있는 의사 헌신적인 사회복지사 이익을 멀리하는 시설관계요원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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