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임세원법] 24년 전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실현하자
[칼럼/임세원법] 24년 전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실현하자
  • 오현성 교수
  • 승인 2019.02.24 18: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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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일반인의 언어로 “정신병자”로 불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회 내에서 “통제”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 고민은 1968년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하 대신정)와 대한의학협회가 일본의 정신위생법을 모방하여 정부에 상정했던 “정신위생법안”부터 시작됐다.

ICD 코드에 따르면 F20-F29에 걸친 질환을 진단받는 조현병 계열(영어로는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라고 읽는다) 환자들에 대해 일반인들은 “위험하다”, “지능이 낮다”, “불결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편견은 일반인 중 정신질환 환자를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더 강하게 발견된다. 1995년에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대중들이 당시 정신분열증이라는 질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public stigma)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선입견이 바로 법 탄생의 자양분이었기에, 법 적용 대상이 되는 중증정신질환 환자들이 양질의 정신보건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신보건법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입원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수월하게 시킬 것인지가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했던 정신보건법이 1995년에 법률화됐고, 이후 전부개정을 했던 2017년 5월 30일 실행된 현행법 역시 입원치료가 주인공이란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2019년 초반에 정신보건계를 또 다시 달구고 있는 민주당 윤일규 의원 발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역시 입원방식에 초점을 두고있다.

왜 1990년 초반에 그 형태가 갖추어진 정신보건법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함께 고민해보자. 자의입원이든 사법입원이든 가장 핵심은 중증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초발정신병을 겪고 입원치료가 필요해질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증상이 완화되고 나면 학생이었던 환자는 학교로 돌아가야하고, 직장인이었던 환자는 예전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공간에서 노동, 연예, 출산, 노화, 사망과 같은 인생이 주는 선물을 누리는 과정을 정신보건서비스는 지원해야한다. 21세기 초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살고 있는 F코드를 진단받은 일부 중증정신질환 환자들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것들을 누려야 하는 이 삶의 과정이 왜 이다지도 극단적으로 힘든지, 과거 역사를 잠시 생각해보자.

 

1. 1960년대 전 농경 사회

조현병 증상을 가졌던 사람들이 동네에서 함께 더불어 살았다. 2019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이 시기는 조현병 증상을 보였던 사람들의 삶의 질이 좋았을 것이다. 당시에 “무당”이란 직업의 상당수가 조현병 증상 중 양적증상(예컨대 환각)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곧, 양적증상을 가졌다는 것이 사회적 부와 지위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부적증상(예컨대 감정의 무감각)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도, 당시 사람들이 “서비스업”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다들 인간관계를 맺을 기회도 별로 없었기에, 농사지으면서 서로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수도를 틀면 물이 콸콸 흘러나와서 매일 샤워를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매일 씻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2019년 현재를 살고 있는 일부 조현병 환자들에게 들러붙는 “위생개념이 없다”는 부적증상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전혀 영향이 없었다. 당시엔 그렇게 살아갔다. 유전적 요인이 강하다는 조현병의 유병률이 약 1%인데 이것이 현대사회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유전자 생존의 진화과정에서 분명히 조현병을 야기하는 유전자들이 중요한 강점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제시될 수 있다.

 

2. 1980년대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개최

도시화가 진행되던 1960~80년대 사이에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본격적인 어려움을 경험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경사회와 달리 좁은 공간에서 혈연 및 친족관계가 아닌 사람들과 살아가기 시작한다.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일하는 서비스 업종과 일정한 단순직무가 반복되는 제조업 종사자들이 확대된다.

이런 환경의 변화는 환각, 환청과 같은 양적증상 및 사회적 관계를 하는 역량을 일부 손실하는 부적증상의 삶에 미치는 어려움을 높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의료서비스 체계는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체계를 아직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조현병 증상이 만드는 어려움들을 가족들이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됐다.

누군가 조현병 증상을 가진 가족을 돌보면 얼마든지 그런 돌봄서비스를 구매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때 전국적으로 각종 “사설 돌봄기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많은 설립자들은 정말로 조현병 증상을 가진 이들의 삶이 안타까워서 이런 돌봄기관들을 만들었지만, 일부 악덕 운영자들은 그 시설에서 각종 학대를 했다. ‘추적 60분’ 방송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런 악덕 기도원 시설을 습격한 전설도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가족이 더 이상 돌보지 못하여 행려자가 된 조현병 환자들이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안 게임 및 올림픽 개최는 중앙정부/지방정부 공무원들에게 조현병 환자들을 체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목표를 부여했다. “어떻게 법제도를 만들어서 조현병 환자들이 행려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공무원들의 목표가 된 것이다.

 

3. 김기춘 당시 법무장관과 1995년 정신보건법 재정

1991년 10월 ‘김용제’라는 21살 청년이 여의도 광장을 질주하여 23명이 사망 또는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80년대 아시안 게임 및 올림픽 개최과정에서 정신질환 증상을 가진 행려자들을 거리에서 강제수용하는 과정에서 국가적 관리체계의 필요성을 인식한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은 “정신질환을 앓지도 않았던 김용제”가 벌인 사건을 근거로 “10만 명의 정신질환자들이 통제되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위협한다”와 같은 주장을 하면서 정신보건법 제정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많은 정신과의사들이, 특히 대신정보다는 대한기독교협회 소속 정신과의사들이 정신보건법 제정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당시 공청회를 했던 영상이 있다(아래 영상 클릭). 이 공청회는 지난 2월 8일 윤일규 의원을 필두로 하여 민주당 태스크포스팀과 대신정이 만든 윤일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이정하 대표와 파도손이 했던 반대보다 더 격렬했다. 1992년 정신보건법 공청회 당시 발표자였던 김병후 박사는 당시 정신보건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환자의 이익에 대한 것은 별로 돼 있는 것이 없습니다. 환자의 인권조항도 없을뿐더러 또 환자에 대한 조항이 우리나라 정신보건법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습니다. 전문 39개 조항에서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31개 조항이 ‘입원’에 대한 것입니다. 입원이라는 건 정신과치료의 극히 한 부분입니다. 조그만 부분이요. 그런데 입원만 강조합니다. 우리나라 정신보건법은 입원 이외에 아무런 다른 것이 없어요. (김병후 박사, 199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보건법이 제정됐다. 1995년 개정된 이후로 정신병원 및 정신요양원의 수용인원은 약 3만 명에서 2015년에 이르러 8만 명으로 증가하게 된다. 동시에 이들을 케어하는데 상당부분 지출되는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의 F코드 및 G40(뇌전증) 환자치료비가 2000년도 후반 약 1조 중반에서 2017년이 되면 4조5천억원으로 증가해버린다.

입원 이외에 어떠한 정신보건서비스 체계도 기획하지 않았던 정신보건법의 영향으로 2015년에 OECD 국가들의 조현병 환자들은 1년동안 평균 약 49일을 입원하는 반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조현병 환자들만 1년 365일 동안 약 221일(1년의 60.5%)을 병원에 입원하는 데 보낸다. 이렇게 장기입원하는 환자들의 상당수는 의료급여를 받는 환자로서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이런 시스템에 끊임없이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4. 2016년 지역사회 정신보건 서비스 체계는 혁신하지 않은 채 강제입원 요건만 강화했던 정신건강복지법과 고 임세원 교수 사망 이후

이렇게 했더니 <날, 보러와요>(2016) 같은 영화가 나올 정도로 비자의입원이 심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비자의 입원 비율이 90%를 넘는 상당하지도 못할 정도의 국가폭력이 현실이 됐다. 이런 고통들이 필자가 2010년부터 몸담고 있는 한국정신장애연대(카미)의 설립을 이끌었던 것이다. 카미 사무총장 권오용 변호사는 제24조가 헌법정신을 위배한다고 2014년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2016년에 이르러 정신보건법이 헌법위헌판정을 받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가 개정안을 열심히 만들었다. 그게 바로 2017년 5월 30일부터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이다.

이번에 개정하려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제43조는 과거 정신보건법의 제24조 강제입원을 남용해 정신질환자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려는 안전장치로 만들어 놓았다. 대표적으로 국공립 정신의료기관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정신의료기관 소속의 정신과의사 2명의 독립적 진단이 필요하다는 조항이 있다. 구 정신보건법은 치료의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 중 하나만 만족해도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었으나 현행법은 앤드(and), 다시 말해 두 가지 요소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 현실에서 마주치는 일부 환자들은 치료가 필요한데 비자의입원이 잘 안 되니 치료해줄 수가 없다고 정신과의사들은 걱정한다. 최근 정신의학신문이 보도한 “병식 없는 조현병,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정신의학신문, 2019.2.21(기사읽기, 클릭))와 메디칼타임즈가 보도한 “누가 정신질환자이고 누구를 입원시켜야 하나”(메디칼타임즈, 2019.2.20(기사읽기, 클릭)) 등 두 가지 보도는 정신과 의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히 조현병 양적 증상이 목격되는데 환자는 “난 미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하니 입원도 시킬 수 없고, 그러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 결과 윤일규 의원을 필두로 하여 민주당 TF와 대신정이 만든 윤일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등장했다. 그 개정법은 앤드(and)를 오아(or)로 바꿔버리고 2항에는 병식(病識)이 없고 입원치료를 안 하면 정신질환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될 때를 분리해서 넣었다.

1.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건강이나 안전 또는 다른 사람의 안전에 직접적인 또는 중대한 또는 상습적인 해를 끼칠 구체적 위험이 있어 입원이 필요한 경우

2. 정신질환자에게 입원의 필요 여부를 판단하거나 결정할 동의능력이 없거나 현저히 박약하고, 입원치료를 하지 아니하면 정신질환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으로 입원이 필요한 경우

 

5. 2019년, 우린 어디로 가야하나?

1995년부터 시작된 시스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은 상기의 정신과의사들이 주장하듯이 병식이 없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는 큰 어려움을 만들고 있다.

과연 윤일규 개정안이 통과되면 병식 없는 환자들이 더 잘 치료될까?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정신과의사들이 주장하는 “증상을 보이는 초발정신병 환자를 강제로라도 약물을 먹여서 치료해야한다”는 것은 과연 근거(evidence)에 기반해서 주장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우선 대신정의 해외 정신의학전문의들과 정신의학자들이 제시한 영향력이 없는 초발정신병 환자 치료 가이드라인을 보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2005년에 「브리티시 정신의학 저널」(British Journal of Psychiatry)이라는 최고로 권위 있는 정신의학계통 학술지에 “초기 정신병 환자들을 위한 국제임상치료 가이드라인(International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for early psychosis)”이 국제초발정신병협회 소속 위원회(International Early Psychosis Association Writing Group)에 의해 발표됐다. 그렇게 긴 글이 아니니 일독을 권한다.

이 내용에는 아직 급성기 증상이 발생하지 않고 초발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청년의 경우와 관련해 국제초발정신병협회는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켜서 약물치료를 하라”고 하지 않는다. 초발정신병이 의심되는 이런 환자들의 경우에는 낙인효과가 적은 환경인 집, 혹은 1차 진료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위기의 의원에서 치료하라고 한다.

환자들과 가족들을 치료과정에 적극적으로 동반하라는 것도 강조점 중 하나다. 급성기 에피소드 이전에는 초발정신병이 의심되더라도, DSM의 진단기준에 완전히 맞지 않는다면, 항정신병 약은 쉽게 쓰는 게 아니라고도 역설한다.

급성기 증상이 발생하여 초발정신병 확정 진단이 이뤄지더라도 약물 사용은 극도로 주의하라고 강조한다. 절대 정형약물은 쓰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정형약물을 쓰게 되면 근육이 부자연적으로 움직이는 Extrapyramidal 계열의 부작용이 나기 때문에, 나중에 환자가 약을 안 먹을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형약물을 쓰더라도 적은 용량부터 쓰고 초반 6주간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니, 만약 6주가 넘어도 효과가 없으면 쓰지 말라고 강조한다. [※참고: International Early Psychosis Association Writing Group. (2005). International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for early psychosis. The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 187(S48), s120-s124]

필자는 약물 관련 전문가는 아니지만 국제초발정신병협회는 신뢰한다. 대한민국 의료계 역시 이런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정말 치료를 잘하고 싶다면 근거에 기반한 초발정신병 환자들을 위한 국제임상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법제도 환경을 요구해야 한다. 과연 민주당 TF와 대신정이 만든 윤일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필자가 지금까지 언급한 치료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철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오현성 교수님은...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정책 및 연구 자문위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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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가득 2019-02-25 20:42:22
정신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마인드포스트의 글을 처음 읽게 되었고, 이런 언론이 존재함에 무척이나 기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걱정스러운 지점은, 정신의학에 이해가 깊은 정신과 의사는 단 한 사람도 편집위원 및 자문위원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필자들 대부분이 정신의학에 대한 이해가 몹시 부족하다는 것이다. 위의 글도 마찬가지. 사회복지 영역의 뛰어난 교수님이시지만 정신의학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정신병원이 자신의 삶터이고, 수십년을 환자와 부대끼며 살아온 전문의들의 의견을 모두 묵살하는 베짱은 어디서 나오며, 오로지 자신들만 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대들만 환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부디 정신의학계의 의견에 귀기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