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 경계선성격장애..."너랑 헤어지면 나 어떻게 될지 몰라"
버림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 경계선성격장애..."너랑 헤어지면 나 어떻게 될지 몰라"
  • 배주희 기자
  • 승인 2019.10.21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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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알아차리기 힘든 침묵의 장애 '경계선 성격장애'
잔인한 살인범 '고유정'도 경계선 성격장애로 추정돼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성격장애' 질환
"네가 미워! 하지만 날 떠나진 말아줘...나만 바라봐줘"
'매력적인 그 사람'이 이상해지기 시작할 때...경계선 성격장애 의심해봐야
주목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현대병

 

수많은 정신장애인이 존재하지만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등 다른 질환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경계선 성격장애(c)verywellmind.com
이 질환을 겪는 정신장애인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지만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등 다른 질환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경계선 성격장애.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경계선 성격장애 당사자들. (c)verywellmind.com

#. 서울에 사는 20대 중반 여성 A씨는 항상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많은 시간을 남자 친구와 보내고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한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세상에 둘도 없는 '운명의 남자'인 것처럼 대하다가도 작은 오해로도 크게 다투고 헤어지곤 '최악의 남자'라고 묘사한다. 그리고는 이내 비슷한 성향의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나서 빠져들고 또 다시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다가 자해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헤어지자는 남자친구에게 새벽에 연락해서 "나 손목 그었어. 빨리와"라는 문자를 남겨서 경찰이 출동하기도 하였다. A씨는 친구가 많았으나 관계는 항상 불안정했다. 처음엔 다정하다가도 작은 일에도 실망하는 등 과민 반응을 보이는 일이 반복되어 대인관계는 쉽게 단절됐다.

위의 사례는 전형적인 경계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이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 이별이나 거절을 피하고자 극단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사람과 강렬하면서도 불안정한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아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도 급격하게 바뀐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한순간 극찬하고 우상화하다시피 하다가 갑자기 그가 자신에게 충분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잔인하게 군다'고 하며 분노해 버린다. 사람에 대해 이상화(idealization)와 평가절하(devaluation)라는 양 극단을 오가는 셈이다.

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양극단 감정을 가지는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 이런 특징으로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으로 오인(誤認) 받기도 한다.(c)healthyplace.com
한 사람에 대해서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양극단 감정을 가지는 경계선 성격장애 당사자. 이런 특징으로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으로 오인(誤認) 받기도 한다. (c)healthyplace.com

자아상에 대한 인식도 갑자기 급격하게 변해 삶의 목표나 가치를 달성하기도 어렵다. 충동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하기가 쉬워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성공을 스스로 망치기도 한다.

충동적인 성향으로 인해 쇼핑중독, 술이나 마약 중독이 되기도 쉬우며 자해하거나 심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실패해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켜 오랫동안 고독감을 느끼기가 쉽다.

미국에도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이 매우 많다.(c)www.nimh.nih.gov
미국에도 경계선 성격장애 당사자들이 매우 많다. (c)nimh

최근 미국의 국립정신건강기관(NIMH) 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의 인구 중 1.6%가 경계선 성격장애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만 400만 명 이상이 이 질환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현병 당사자들보다 많은 숫자라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고유정 사건도 경계선 성격장애와 연관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고유정이 사이코패스보다는 경계선 인격장애와 더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며 "고유정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을 못하게 되면 그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고유정 같은 경우 거기에 더해서 굉장히 정서가 불안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일례로 면접교섭권 재판에도 출두를 해서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이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사이코패스의 냉혈한 특징하고는 약간 거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봐서는 정서의 불안정성이 특징인 경계선 성격장애일 개연성이 훨씬더 높아 보인다"는 추정이 나온다. 

경계선 성격장애의 치료에 대해 살펴보자면, 가장 일반적인 치료법은 개인 심리치료다. 하지만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불안정한 대인관계이기 때문에 치료자와의 라포(신뢰관계) 형성이라든지 안정적인 치료관계 형성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들은 치료자의 반응을 자주 오해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자살 위협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경우 치료자가 모호한 답변보다는 명료한 답변을 하고, 일관되며 안정적인 지지의 태도를 보이면서 치료관계 형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치료 초기에 자주 퇴행을 보이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 시기를 극복하고 나면 대개 호전 추세를 보이기도 한다. 성격은 긴 시간 형성되고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치료 역시 대부분 장기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분명히 완화될 수 있다.

치료가 어려운 경계선 성격장애 당사자에게도 희망은 반드시 존재한다.(c)narkbrain.com
치료가 어려운 경계선 성격장애 당사자에게도 희망은 반드시 존재한다. (c)narkbrain.com

길고 긴 치유의 여정이 되겠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한걸음씩 나아가면 진정으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살 수 있는 삶을 영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이 질환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이 자신을 '버림받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보다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내 편'이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따뜻한 온기를 나눠줘야 한다.

치유란 자신이 부정하던 모습을 대면하여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거부하고 망각하고 부인하던 부분을

보듬어 감싸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치유되고 성숙한다.

 

책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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