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과적 증상에 집착 말고 자기 삶을 가치있게 살아갈 지에 집중해야"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과적 증상에 집착 말고 자기 삶을 가치있게 살아갈 지에 집중해야"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2.12 19: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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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마인드' 스틸컷.
영화 '뷰티풀마인드' 스틸컷.

1년 전쯤 어느 종합편성채널 뉴스 프로그램의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제 책 '바울의 가시'를 통해 연락처를 알고 전화를 해 온 것입니다.

조현병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요즘 시기에, 병을 잘 이겨내고 책까지 쓴 작가로서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취지에 공감하여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방송팀이 제 사무실에 방문했습니다. 그때 방송 작가의 한마디가 기억에 납니다.

“전혀 조현병 환자 같지가 않으세요”

아마도 제가 말하는 내용이나 모습이 자신감 있고 일목요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신을 당사자이자 독자라고 소개한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책을 낼 정도로 글을 잘 쓰시고 인지력과 기억력도 좋으신데 와해된 언어와 사고에 해당하는 조현병이 맞나요?”

아마도 제가 책에서 쓴 글들이 조현병을 겪는 사람의 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서 한 말일 겁니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저는 기분이 어떨까요? 다른 환자들과 달리 건강하고 책도 냈으니 신이 날까요? "나는 이제 조현병 티가 안 나는구나”하고 기뻐했을까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역으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조현병 환자는 어떤 모습인가요?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조현병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요?”

실제로 문자를 보낸 독자분께 이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조현병은 어떠해야 하죠? 조현병 환자들은 인지력과 기억력이 나빠야 하나요?"

그러자 그 당사자이자 독자분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와해된 언어같이 상황 인지력이 부족하고 횡설수설하지 않나요? 머리도 뒤죽박죽인데.. 정신이 분열된 거잖아요? 약을 먹어서 줄어든 거라면 약의 도움으로 정상화된 거죠.”

전 그 문자를 보며 기분이 상하면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사자가 스스로의 병에 대해 그렇게 정의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비당사자와 사회는 조현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언젠가 뉴스에서 조현병을 갖고 있는 의사들이 버젓이 면허를 유지하고 의료활동을 하고 있어서 문제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조현병을 가진 의사가 칼을 들고 다른 환자를 수술할 수 있겠냐고 말이죠.

지금은 삭제된 듯 하지만, 심지어 마인드포스트 기사에도 비슷한 댓글이 달렸었습니다.

“우울증을 가진 기장이 어떻게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죠? 수백 명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말이죠”

다시 한 번 되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을 보면 어떤 모습을 떠올리시나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뉴스 보도로 시청률과 클릭수를 늘리는 언론사의 일부 기사들 내용처럼, 길에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고 연로한 부모를 폭행하고 알아듣지 못할 말로 횡성수설하는 모습을 떠오르시나요?

혹시 당사자로서 책을 쓰고, 당사자로서 비행기를 조종하고, 당사자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이 더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그리고 책을 쓰기까지, 기장이 되기까지, 의사가 되기까지, 비록 병이 있는 당사자지만 그 뒤에 감추어진 노력과 수고는 보이지 않으시나요? 날마다 찾아오는 증상의 고통을 참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흘렸던 치열한 땀과 눈물은 보이지 않으시나요? 오직 약을 잘 먹어서, 치료를 잘 받아서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게 문자를 보냈던 당사자 독자분께, 그리고 세상의 편견에 앞서 본인 스스로부터 편견을 갖고 있는 당사자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조현병 환자는 아무것도 못하는 불쌍하고 불행한 존재'라는 사회와 언론의 최면에 빠져 스스로의 인생을 깎아내리고 좌절에 빠진 채 포기하지 마십시요.

병명이 당신의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니라, 피땀 흘려 노력하지 않는 삶이 인생을 망치는 겁니다.

‘정신질환을 잘 고치는 의사, 좋은 약물과 기발한 치료 기법’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는 수동적인 생각으로 살아가지 마십시오.

증상과 치료에 집착하고 연구하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욱 가치있고 발전적으로 살아갈 지에 대해 집중하십시요.

제 책 바울의 가시의 부제목이기도 한 “나는 조현병 환자다”라는 문구가 세상에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낙인이 될지, 세상의 편견와 시선에 맞서 당당한 외침이 될지, 당신 스스로에게 달려 있음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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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태 2020-02-13 13:30:35
편견. 당사자 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