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신장애인 부모 둔 자녀들에게 연령대별 교육 프로그램 지원해야"
[기고] "정신장애인 부모 둔 자녀들에게 연령대별 교육 프로그램 지원해야"
  • 이상훈 객원기자
  • 승인 2020.07.22 18: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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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은 가족 전체의 삶에 영향...가족 역시 당사자
부모 증상 교육은 자녀들에게 상황 객관화하는 데 도움
인종·문화적 차이 고려해 한국적 프로그램 개발돼야
환자 자녀에 대한 연령대별 프로그램과 교육 자료 만들어져야
호주·캐나다, 자녀의 부모 이해를 위한 적극적 교육 진행
질병으로부터의 회복은 삶과 가족 회복 포함...가족에 관심가져야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부모를 가진 자녀들을 만나볼 기회가 많이 있었다. 아직 어린 학생부터 이제는 장성해 가정을 이룬 경우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너무도 잘 성장해서 좋은 학위를 취득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부모의 증상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모를 돕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부모의 증상에 얽매여 같이 힘들어하거나 아니면 부모에게 매우 사무적이고 냉소적인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입원 환자의 보호자로 만났던 키가 크고 잘 생긴 30대 남성이 있었다. 조현병으로 입원한 어머니의 증상과 약물 복용력, 그리고 약물 반응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어서 증세가 상당히 심했음에도 치료에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와해된 행동을 보일 정도로 심했던 홀어머니를 모시고 자란 외아들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힘든 상황을 해쳐나가면서 애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탄복한 적이 있었다.

또 한번은 20년 만에 만난 조현병을 앓고 있는 친어머니를 데리고 와서는 장애등록하고 주거 시설에 입소시키면서 혜택만 지독히 따지고 어머니와 어머니의 병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질문도 안 하는, 시댁의 휴가 일정보다도 못 하게 여기던 젊은 딸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사무적이고 차갑다는 말로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조현병 환자에게 자녀 양육 기술 교육 필요해

조현병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약물치료가 1970년대부터 시작되면서 조현병 환자의 결혼율은 일반인보다 낮지만 결혼한 조현병 환자의 출산율은 일반인과 비슷해졌다. 그리고 환자의 자녀들이 이제 30~40대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를 고려하게 했는데, 조현병 환자들에게 자녀를 양육하는 기술이 필요해졌다는 것과 부모가 조현병을 가진 아이들이 잘 성장하도록 돕는 문제가 그것이다.

조현병 환자가 아이를 낳으면 책임감이 강해져서 치료도 더 열심히 받게 되고 회복의 의지가 강해지고 실제로 더 회복이 되기도 한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증상이 재발돼 입원 치료를 받게 될 때 자녀는 어떻게 돌볼 지에 대해서도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외국에서는 더 이상 적절한 양육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 아동보호국에서 환자와 자녀를 분리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편 조현병 환자의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절반의 경우 부모와 같은 병을 앓게 될까 하는 심리적 고통과 혼란을 경험한다. 그래서 일반 인구에 비해 스트레스가 두 배 정도 많으며 우울감, 낮은 자존감, 고립, 사회적 위축, 공격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중 8%는 실제로 조현병이 발병하는데 이는 일반인에 비해 약 8배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유전적 소인이 있다 하더라도 발병에 있어서 환경의 영향 역시 중요하다. 불안정한 가정에 입양된 조현병 환자의 쌍둥이 자녀들에게서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발병률이 더 높은 것을 볼 때, 가정과 성장 환경의 영향 역시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 동안의 연구는 이들 자녀의 취약성에 대해 주로 이루어졌다. 반면 이에 대한 비판으로 이들에 대해 회복탄력성을 통해 타고난 잠재력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고, 발병을 예방하는 것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는 외국이나 국내나 아직 초기 단계이다.

조현병은 질병에 걸린 개인의 인생에 큰 고통과 짐이기도 하지만, 가족 전체의 삶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는 가족 역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호주의 경우, COPMI (Children of Parents with mental illness)라는 정신질환 환자의 자녀들을 지원하는 단체가 1999년 정부 지원 하에 설립됐다. 이 기관은 많은 교육과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고, 2007년부터는 호주 정부의 ‘부모 자녀 조기 개입 서비스’에 포함될 정도로 환자의 자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다.

캐나다 정신장애인 가족협회(Familly Association for Mental Health Everywhere, FAME Canada)도 아동 지원 프로그램(FAMEKids)을 운영하고 있는데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학용품들과 함께 부모의 병을 이해할 수 있게 동화책처럼 쓴 교육 자료를 넣은 책가방을 선물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 자녀 절반이 유전될까 염려...호주는 자녀 교육에 적극적 개입

한국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환자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나 캠핑, 멘토링 같은 프로그램이 자발적으로 진행됐다. 이는 매우 눈여겨볼 만한데, 한국의 경우 센터 근무자들은 환자의 자녀 문제에 대해 많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적인 저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심지어 명절에 찾아올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는 환자의 자녀를 자신의 집에 불러 같이 명절을 보내던 정신건강복지센터 근무자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중증정신질환 사업 외의 업무가 늘어나면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자녀들에 대한 프로그램은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현재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단된 상황이다.

환자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병과 증상에 대한 교육은 자녀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경험에 대한 혼란감과 자책감을 줄여주고, 상황을 객관화하는 등 일차 예방(primary prevention) 효과가 있어, 가족-중심의 개입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다만 환자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 효과에 있어 인종이나 문화적으로 양상이 다르다는 보고도 있어 한국 문화와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 자녀 대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자녀들에 대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대개 정서적으로 위축되어 자기표현을 잘 안하고 사회적인 상식이 매우 부족하며, 학업이 부진하고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부모에 대해 수치심과 저항감을 보이거나 반대로 부모를 측은히 여기면서 보호자로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변해가기도 한다. 아이들은 인지가 발달되지 않은 시기에는 모든 것을 자기 탓을 하는 경향이 있어 부모의 병이나 입원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죄책감을 느끼고 위축되게 된다.

또 사춘기가 되어가면서는 롤모델이나 학업·진로 상담 등이 필요하는 등 연령대 별로 겪는 상황과 필요가 다르므로, 한국 문화에 맞는 연령대별 프로그램이나 교육 자료가 있다면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문화에 맞는 자녀 연령대별 프로그램 만들어야

질병으로부터의 회복은 삶과 가족의 회복을 포함한다. 질병이 삶과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이 삶과 가족 역시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 생물심리사회학적 관점이란 쉽게 말해 사람의 몸과 마음과 환경을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러한 의미에서 정신질환으로 인해 환자 본인이 겪는 경험뿐만이 아니라 가족이 겪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겠다.

이러한 환자의 가족에 대한 관심은 가족이 환자가 속한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환경이며, 치료와 회복의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겠다.

외래 진료 중에 자녀가 잘 성장해서 공학 박사 취득해서 좋은 직장 다니고 결혼도 해서 잘 살고 있다며 흐뭇하게 자식 이야기를 하시던 환자 분이 있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가정을 잘 지켜주셔서 아이들이 잘 되신 것 같다고 내가 대답했을 때, 마치 인생 전체를 보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피어나던 아주머니의 그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이상훈 객원기자가 번역한 책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
이상훈 객원기자가 번역한 책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

이상훈 객원기자는 현재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교육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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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7-23 09:28:42
이상훈 과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