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함께 살아간다, 그렇게 더불어 살아간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함께 살아간다, 그렇게 더불어 살아간다
  • 설운영
  • 승인 2021.12.17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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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저자 설운영 기고
P시에 정신재활작업장 만들었지만 시가 예산없다며 폐쇄
공립정신병원 조리보조원 정신장애 여성, 가혹한 업무지시에 사직
취업되고 꿈에 부푼 날을 부순 건 적대적 사회의 시선들 때문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queroviajarmais.com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queroviajarmais.com

지난 겨울 P시에 갔다. 차창 너머 보이는 희끗하게 뿌리는 진눈깨비 사이로 도시는 정적 속에 뿌옇게 젖어 있었다. 겨울 산들이 겹겹이 펼쳐있고 먹구름장 아래 건물들이 성냥갑처럼 엎드려 있다.

2년 전 P시에 갔을 때는 개나리꽃이라도 와락 피어날 것 같은 따스한 날씨였다. 야트막한 산 아래 공중 누각처럼 떠있는 테크노타운 건물 4층에 정신장애 재활작업장이 들어선다고 해서 찾아갔다.

따스한 햇살이 통유리창 위에 투명하게 부서지는 아늑한 작업장 시설에 칸막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답답한 고립의 껍질을 벗고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정신장애인들의 지순한 손길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른거렸다.

어느 복지법인이 만든 정신장애인 작업장이다. 쇼핑백이나 간단한 일회용품을 제작하여 납품하는 일이라고 한다.

하늘로 치솟던 포물선 같은 꿈이 질병으로 인해 좌절되고 삶이 고드름 조각처럼 부서져 내렸지만, 음울했던 고통의 청색지대를 벗어나 새롭게 자립하는 곳이다.

‘얼마나 일을 하고 싶었을까’,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서슬 퍼런 낙인의 그늘 속에서 숨죽이고 살았던 그들이었다.

온갖 비인도적인 억압에 대항하지 못하고 소외된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작업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심하는 복지법인 관계자들에게 한없이 고마움을 느꼈다. 그해 겨울은 어느 때보다 따사롭고 훈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재활작업장은 채 2년이 못 돼 폐쇄 위기에 처해졌다. 재정 지원을 해주던 P시에서 느닷없이 지원을 끊겠다고 했다. 예산상 이유라고 하지만 P시 시장은 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100만 원씩을 주겠다고 했다. 재활작업장 운영비는 재난지원금 규모에 비하면 10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인도에 채 녹지 않은 물큰한 눈이 질척거리며 구두 밑창에 엉겨 붙던 그날, P시의 의회 건물에서 시 의장을 만났다.

재활작업장을 폐쇄시키지 말아 달라고, 정신장애인이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 달라고, 약자에 대한 포용과 배려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우리 삶의 참모습일 것이라고, 그것이 삶의 진실이며,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이 보다 밝아지고 성숙해질 것이라고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꿈이 날아가 흩어지고 고립의 터널로 다시 들어가야 할 그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어른거려서였다. 그들의 절망과 탄식이 내게로 건너오면서 목이 떨려 더 이상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돌아오는 길, 팔당 호수 표면 위에 겨울 철새들이 잠시 쉬어갈 듯 강물 위로 내려앉았다. 차에서 내려 강가 벤치에 앉아 갈대숲 속에 바스락거리는 새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이후 우리 가족대표단은 경기도청을 찾아가 P시의 재활작업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작업장은 결국 재개발 구역 철거하듯이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눈물, 고립, 단절, 쫓겨난 자들의 슬픔, 탄식 같은 한없는 막막함과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내 안에 전이되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oimenu.com.br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oimenu.com.br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부스러지기 쉬운 갈대에 불과하지만 흔들리기 쉬운 그 연약함으로 인해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영혼의 존재가 더 숭고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신의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빛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p198 인용

일전에 모 공립정신병원 조리보조원으로 일하던 정신장애 여성이 몇 달만에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취업 전 ‘낮병원’ 프로그램에서 행복을 만드는 요리 강사로 일했었다. 나는 번듯하게 회복돼 재기발랄하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던 그녀를 보면서 요리로써 눈부신 꿈을 이루기를 기도했다.

풍문처럼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그녀에게는 정신장애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업무가 너무 벅찼고, 그녀가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억압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차갑고 적대적인 시선과 가혹한 업무지시일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녀는 이제 집에서 칩거하며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 외부에 알려지기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전했다고 한다.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뜨거움과 거역할 수 없는 오열 같은 것이 치밀어 올라왔다. 왜 이렇게 가슴 아픈 일들만 일어나는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 아프다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이 사회가 참으로 차갑다고, 말하지 못해 더 가슴이 타고 병이 깊어지는 사람들,

그들의 소리 없는 울음소리가 자욱하다. 그들에게는 천지에 외로움과 공허만이 가득하고 온 세상은 추수가 끝나 텅 비어있는 들판처럼 황량하고 외롭다.

이 어둡고 쓸쓸하고 아픈 삶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이들의 아픔을 말해줄까.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함께 살아간다. 들과 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들풀과 나무들이 산다. 쭉 뻗은 보기 좋은 나무만이 살지 않는다. 구부러진 나무, 넝쿨과 잡초들, 취나물, 버섯류도 함께 살아간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니, 더불어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p184 인용

&lt;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gt; 저자 설운영.
<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저자 설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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