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들…이토록 많은 정신장애 정치조직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낮은 목소리들…이토록 많은 정신장애 정치조직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1.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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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연대, 더불어민주당 포용복지국가위와 정책 간담회 개최
정신장애 의제를 대선 후보 정당에 요구하는 건 전례 없는 정치 투쟁
탈원화·보호의무자제도 폐지·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 등 요구
사회복지 기관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위탁할 수 있게 규정 개정해야

오는 3월, 20대 대선을 앞두고 정신장애인 시민·정치 조직들이 정당의 대선 정책에 정신보건과 정신건강 복지 의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족 운동사에서 없던 정치 투쟁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 11일 정신장애연대 소속 9개 단체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포용복지국가위원회 위원들과 정책 간담회를 진행했다.

포용복지국가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이 포용적 돌봄 국가로의 대전환을 목표로 대통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지난해 12월 공식 출범했다. 남인순 위원장을 비롯해 정춘숙·김성주 의원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주요 의제로 공공병원 확충을 통한 의료 불평등 해소, 주치의 제도 도입 건강돌봄 강화, 돌봄 국가책임제 실현, 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돌봄종사자 단일 임금 및 안전 확보 등을 제시하고 각 직능 단체들과 소통을 통한 대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날 정신장애 분야 정책 제안을 위한 정신장애연대·포용복지국가위원회 간담회에는 정춘숙 부위원장을 포함해 8명의 위원이 참석했다. 정신장애연대 측은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한국가족지원활동가협회, 한국조현병회복협회(심지회),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각각 참여했다.

탈원화·보호의무자제도 폐지·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 등 의제 제시

정신장애연대는 간담회에서 ▲인권 중심의 탈원화 로드맵 구축 ▲정신건강복지법 상의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정신건강복지법 제38조 가족지원 시행 ▲일자리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 ▲정신건강복지센터 기능 개편 ▲동의입원 제도와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개선 등 7개 의제를 제시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인권 중심의 탈원화 로드맵 구축과 관련해 “2017년 정신요양시설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이상의 장기 입소자는 전체 9천518명 중 8천612명으로 90.4%를 차지한다”며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에도 정신요양시설과 정신요양기관의 기능·역할을 고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연합회는 ▲단계별 정신요양시설·정신의료기관의 기능 전환 및 탈원화 적극 시행 ▲정신과적 특성을 반영한 활동지원 인정조사표 개발·도입 ▲지원주택 및 자립생활주택 3만 호 공급 등을 요구했다.

연합회 신석철 준비위원장은 “타 장애 영역은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한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당사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도 당사자와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며 “반면 정신장애 영역만 소외돼 자립생활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준비위원장은 “서울시에서 시범적으로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외 2개소를 지원하고 있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지원하지 않고 있다”며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센터를 권역별로 설치하고 동료지원가 국가자격증 도입 및 동료지원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정신건강복지법 상의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의 보호의무자 제도는 정신질환자의 가족에게 비합리적인 권한을 주고 돌봄의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특히 ‘구금’ 기능을 하는 강제입원을 공적 판단이 아닌 가족이 결정하도록 해 가족 내부의 갈등을 야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신건강복지법 보호의무자 제도 반드시 폐지해야”

이 협회 김영희 정책위원은 “저출산·고령화로 사회 구조가 변하면서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인 부모는 대부분 연로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를 적절하게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로 인해 장기입원이 조장되고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에 역행하는 효과를 낳는 보호의무자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정신장애인가족지원활동가협회는 정신건강복지법 제38조에 규정된 ‘가족에 대한 정보 제공과 교육 제공’을 시행할 것을 요청했다.

이 법 관련 조항은 가족의 정보·교육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적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발달장애인은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에 따라 지역마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두고 있고 서울의 경우 각 구마다 1개의 가족지원센터가 있다. 반면 정신장애인 가족 지원은 전무하다.

이 협회 이진순 회장은 “가족은 당사자가 집 가까운 곳에서 직업재활과 주간재활을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재활을 할 만한 시설은 소수이고 복지관은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는 집에만 있을 경우 사회적 기능이 쇠퇴하고 재발 위험도 높다”며 “가족이 당사자를 부담해야 하고 가족 구성원이 경제 활동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정서적 어려움에 더해 경제적 문제가 생긴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국가는 정보 제공과 교육을 비롯한 단체 지원, 상담 지원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과 예산을 마련해 달라”며 “가족이 가족을 지원하는 가족지원 활동과 가족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게 예산과 인력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조현병회복협회(심지회)는 정신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일자리 조성을 요청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은 15.7%에 그친다. 15개 장애 영역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고용 형태도 상용 근로자는 5.6%에 불과하고 90% 이상은 임시직이나 일용직이다.

배점태 심지회 회장은 ▲다양한 장애인 간접 고용지원 제도 확충 ▲미등록 정신장애인 일자리 기회 보장 ▲생계급여 수급자 근로소득 공제 시 정신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 포함 등 확대 등을 정책 의제로 제시했다.

이어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는 현행 정신장애 관련 의료 서비스와 복지 서비스에서 통합적 서비스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가족에게 정서적 '쉼'을 줘야…정신장애인 가족지원센터 설립 필요

이 협회 박미옥 회장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규정하는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 권리에 대해 정신건강복지법이 그 복지 서비스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법률화했다”면서도 “정신건강복지법 이외 하위법령 어디에도 구체적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의료적 관점의 사례관리 측면이 강하고 정신재활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실도 지적했다.

그는 “지역사회 내 정신장애인에 대한 의료 서비스와 복지 서비스의 균형적 지원을 위해 정신건강복지서비스 전달체계 내 기능과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방 이양사업인 정신재활시설의 확충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시설의 설치·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획기적 예산 지원 및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를 통해 “정신장애인은 약물 복용 및 치료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보건 영역과 복지 영역의 서비스가 중첩된다”며 “장애인복지법만으로는 정신장애인이 서비스를 제공받기에 한계가 있어 복지 서비스를 구체화하는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은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단계적 기능 개편을 요청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센터는 광역 16개소, 기초 241개소로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 유일한 정신건강 전문 기관이다. 센터장은 대부분 의사가 비상근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상근 직원은 10여 명 정도에 불과해 사례관리만 1인당 35명을 맡아야 할 정도로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탁의 경우 광역센터는 모두 병원이, 기초는 150개 이상이 정신병원에 위탁돼 있다. 사회복지기관에 위탁된 곳은 1~2곳에 불과하다. 정신병원이 센터를 위탁할 경우 부작용으로 ‘회전문’ 현상이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지역사회에 나온 퇴원한 정신장애인이 지원 인프라 없이 홀로 지내다가 병이 악화되면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지역사회 삶을 우선하는 커뮤니티케어가 들어설 입지가 없다는 지적이다.

황운성 재단 이사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의료계를 중심으로 위탁돼 운영되다 보니 커뮤니티케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지역사회 네트워크 형성이 어려워진다”며 “퇴원 환자들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통한 문제 해결보다 재입원을 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황 이사장은 “정신장애복지지원법을 제정해 현재 보건 분야로 분류돼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복지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중심 업무를 정신장애인 탈원화 지원 및 커뮤니티케어 활동으로 정리하고 자살예방 등 업무는 타 기관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장애복지지원법 제정하고 건강복지센터는 복지 분야로 특화해야

그는 더불어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과 예산의 전폭적 증가, 위탁 규정을 개정해 센터장을 반드시 상근하게 만들고 사회복지 기관들도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위탁받을 수 있는 규정 개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동의입원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의제도 올라왔다. 동의입원은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들어온 입원 유형으로 자의입원 형식을 띄지만 퇴원을 하려고 할 경우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의사는 72시간까지 퇴원을 막을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많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은 “입원 형식만 비자의입원에서 동의입원을 포함한 자의입원으로 바뀐 것은 제도의 효과성을 입증하기 힘들다”며 “정신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보호입원을 절차가 간편한 동의입원으로 전환할 유인이 크기 때문에 악용·남용의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입원적합성심사제도의 폐지와 정비 또한 요청했다. 입원적합성심사제도는 강제입원의 적합성 여부를 입원 사후에 묻는 제도로 국공립정신병원 5곳에 심사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2017년부터 시행됐지만 입원의 부적합, 즉 퇴원을 인정하는 건수는 1.4%에 불과하다.

김 센터장은 “입원적합성심사제도를 폐지하고 보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제도를 통한 강제입원 심사를 도모해야 한다”며 “이 제도를 유지한다면 사전심사·대면심사 원칙, 심사위원의 풀 정비, 절차보조인 필수 참여 등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장애연대는 향후 각 정당에 정신장애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대선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정치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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