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심리지원센터가 그토록 미웠나?...경기도의회가 예산 전액 삭감하고 폐쇄시켜
경기도심리지원센터가 그토록 미웠나?...경기도의회가 예산 전액 삭감하고 폐쇄시켜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7.12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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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이 비용 부담 없이 상담 받도록 정신과 문턱 낮추려 했지만 좌절
도의회 국민의힘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유사한 기능, 중복되는 프로그램 문제 있어”
무자격 심리사들 판치는데 검증된 심리센터 하나 가지는 게 그토록 어려운가
새경정도 서울시정신건강통합센터도 한마음의집도 무지한 정책입안자들이 문닫게 해
경기도심리지원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경기도심리지원센터]
경기도심리지원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었던 경기도심리지원센터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보조금 예산지원이 2023년 6월 30일자로 중지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11월에 개소한 경기도심리지원센터의 김은주 센터장이 지난달 30일 홈페이지에 올린 마지막 인사말이다. 센터는 3년간의 시범운영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20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김 센터장은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폭발적인 상담 신청에서 공공 상담서비스에 대한 높은 욕구를 다시금 인식하게 됐다”며 “일상생활의 스트레스와 상처를 회복하고 싶은 평범한 도민들이 경기도심리지원센터 서비스의 주 대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경기도심리지원센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20년 7월 경기도의회는 ‘경기도심리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킨다. 이어 2021년 11월 29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센터가 개소된다. 신분당선 성복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이 센터는 공공심리지원 서비스 체계를 구축해 경기도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목적에 따라 3년간의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센터 개소 당시 경기도의회 의원이었던 김 센터장은 “비의료 기관인 심리센터를 설치해 도민들이 큰 부담 없이 이용하면서 정신·심리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게 조례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조례를 대표발의했다.

센터의 존립 목적에는 약물치료로 진행되는 의로 개입 전에 비의료 영역인 상담과 활동을 통해 문제를 호전시키는 것이 포함됐다. 이는 높은 상담 비용이 들어가는 민간 심리상담소를 찾지 않아도 지역사회에서 소외계층이 없는 전문적 상담소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들어간다.

문제는 정권이 바뀐 후 7개월이 지난 2022년 11월에 터져나온다. 경기도의회 이혜원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김 센터장에 대해 “조례를 제정한 전직 도의원 지역구가 용인이고 경기도심리지원센터가 위치가 용인에 있다 보니 이용자가 용인·수원·성남 지역이 57%, 그 외 지역은 0~5%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10대 도의회에 입성했던 김 센터장은 2022년 6월, 제8회 전국 지방선거에서 용인시를 지역구로 해 11대 도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그해 11월, 그는 경기도심리지원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혜원 의원은 “경기도 정신건강복지센터가 31개 시·군에 다 있다. 거기서도 유사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재난 관련 심리회복지원센터도 있다”며 “중복성 있는 부분을 다시 만들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경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수원시 4곳, 고양시·성남시·부천시에 각각 2곳 등 모두 37개가 기초 지자체에 있다. 경기 광역센터까지 더하면 38곳이 분포돼 있다. 이 의원의 비판은 왜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차별성 없이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후 경기도의회는 경기도심리지원센터에 대한 대대적인 예산 삭감에 들어갔다. 개소 첫 해인 2021년 2억4400만 원이었던 도 지원 예산은 2022년 3억6600만 원으로 올랐지만 2023년 6월까지 1억7900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도가 2023년 예산을 전년 수준으로 해서 도의회에 제출했지만 도의회 예산결산특위에서 전액 삭감됐다.

김은주 경기도의회 의원. 2019년 6월 토론회 장면.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경기도의회 홈페이지 갈무리]
김은주 경기도의회 의원. 2019년 6월 토론회 장면.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경기도의회 홈페이지 갈무리]

도는 올해 상반기까지만 운영 가능한 1억7900만 원에 편성되도록 예결위와 협의하고 합의했다. 이후 도 자체적으로 추가경정편성예산에서 센터 예산을 확보하려 했지만 좌절됐다. 센터 운영이 멈추게 된 일련의 과정이다.

정치적 논쟁도 터져나왔다. 이혜원 의원은 김 센터장이 조례를 제정한 장본인인데 현재 센터장이 된 것이 적격하지 않다는 입장을 냈다.

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측은 반발했다. 관련 문제는 센터장이 취임 전에 문제를 제기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국민의힘이 아무런 말이 없다가 센터장 문제를 제기하고 예산을 삭감해 센터 자체를 폐쇄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이 논쟁의 한가운데 어떤 정치적 함수가 숨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이 아닌 경증의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대면해 심리상담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더 폭넓어져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이다.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22.2%로 캐나다 46.5%, 미국 43.1%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정신질환을 부정적으로 보는 대중의 시선과 민간 상담기관이 요구하는 ‘비싼’ 상담비를 고려할 때 경기도심리지원센터와 같은 기관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게 나온다. 특히 자격 없는 단체가 일주일만에 속성으로 심리사 자격증을 남발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전문 상담기관의 요구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심리지원센터는 올해 6월, 2021년 11월부터 2022년 11월 기간 동안 심리지원 서비스를 신청했던 도민 711명을 대상으로 인구학적 특성, 상담 신청 현황, 심리검사 결과의 조사 내용이 담긴 ‘경기도심리지원센터 심리지원서비스 신청자 현황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중증의 심각한 정신과적 질환을 이유로 상담을 신청한 경우는 4%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대신 정서적 문제로 도움을 받고 싶다는 신청자가 전체 응답자의 79.8%를 차지했고 성격 문제 59.2%, 가족관계 43.6%, 대인관계 42.7%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벼운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도민들이 이 센터를 더 적극적으로 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령별·성별로는 20~30대 여성이 70.4%로 가장 많았으며 이들은 정신과적 진단이 필요한 수준의 중증 증상보다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 우울감, 불안감 등을 완화하려는 기대를 갖고 대면상담을 신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정신과적 증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집중적인 심리 개입보다는 일반 도민들이 일상생활의 만족감을 증진시킬 수 있는 자기 이해와 자기 돌봄을 증진할 수 있는 심리 교육, 집단 상담, 자조집단의 활성화,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힐링 문화 지원에 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한 개의 경기도심리지원센터에서 경기도 전체 심리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며 “개별 심리상담에 대한 도민들의 욕구가 높기 때문에 센터의 전문가 인력 확대 및 예산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어떤 이유로 갑작스레 공적 상담기구를 해체하고 싶었는지, 그 중심에는 누가 있는지, 당장의 가시적 성과만을 중시하는 집단의 이기주의인지, 오래 기다릴 줄 모르는 관용 없는 정책 수립 때문인지, 정치적 대립 때문인지, 아니면 센터 프로그램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차별성이 없어 불필요하다는 의견 때문인지 당장은 알 수 없다. 도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이 센터의 폐쇄를 요구했다고 해서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겪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존재들이 건강과 일상을 회복하고 주거와 일자리를 확보해 정신적 어려움으로부터의 치유되어 가는 과정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서울시정신건강통합센터.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의 무리한 요구로 올해 12월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서울시정신건강통합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시정신건강통합센터. 서울시의회 강석주 보건복지위원장의 무리한 요구로 올해 12월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서울시정신건강통합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이는 경기도심리지원센터와 비슷한 목적을 갖고 2021년 12월 개소했던 서울시정신건강통합센터가 ‘무용지물’이고 서울시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중복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며 폐쇄로 몰아가는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근시안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

게다가 인권 철학에 기반한 병원을 구축해보겠다며 2020년 6월 개소한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이 경기도의원들의 무지와 편견, 부당한 감사 등으로 2022년 3월에 문을 닫은 것, 정신장애인들의 거주 공간 마련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서대문구 한마음의집 원장을 정신건강복지법상의 불법 시설 운영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서대문보건소의 행태는 그들이 얼마나 정신장애인의 삶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천박한 사유의 바로미터다.

다시 김 센터장의 마지막 인사말이다.

“센터를 정리하면서 가장 마음이 걸리는 것은 상담을 통해 삶이 변화했다고 말하며 활짝 웃던 내담자들의 얼굴입니다.”

그는 “센터는 중지되지만 위탁법인인 공감연대와 공공상담에 관심 있는 상담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부족하나마 상담 및 심리지원 서비스를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며 “무료 또는 저렴한 심리상담 서비스를 연계·제공하면서 공공상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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