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반대는 국제인권 기준에 대한 무지...빼앗길 수 없는 위기쉼터와 동료지원제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반대는 국제인권 기준에 대한 무지...빼앗길 수 없는 위기쉼터와 동료지원제도"
  •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
  • 승인 2023.07.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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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 기고
위기쉼터, 절차조력, 동료지원은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개혁
국회 법사위가 개정안 좌초시켜...이대로라면 폐기 수순 가능성 높아 우려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의견은 전문의와 병원 중심의 철저한 의료적 사고
정신건강 복지 주체들을 묶는 대원칙은 국제 인권 기준과 당사자들의 요구여야
국회. [사진=연합뉴스]
26일 국회 법사위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들의 통과를 막았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다양한 논의 과정을 통해 제안됐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은 위기지원쉼터 설치·운영, 절차조력인제도 도입, 성년후견제 지원, 동료지원인 양성이라는 네 가지 조항만 담긴 채 상정됐다.

하지만 7월 26일 열린 국회 법사위는 당사자와 가족의 절실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단 네 가지만 포함된 대안법률조차도 통과시키지 않고 2소위로 넘겼다. 이대로라면 임기 말 폐기 수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법사위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대한의사협회가 제기한 강한 반대의견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언론에 널리 보도된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의견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위기지원쉼터는 의료행위인 상담치료를 제공하므로 의료법 위반이며, 정신과적 응급상황이라면 위기지원쉼터가 아닌 정신의료기관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둘째, 위기지원쉼터는 적절한 입원 치료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한다.

셋째, 절차조력인 역할은 이미 의료인과 진료보조인력이 수행하고 있으므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넷째, 절차조력인의 지위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없음에도 그들에게 의료 과정에 개입할 권한을 부여한다. 뿐만 아니라 절차조력인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에 근거해 이루어지는 입·퇴원 결정을 절차조력인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더불어 법사위에서는 동료지원인이 정신질환자 등에 대한 상담 등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는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의견은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의 국제인권 기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정신장애인으로 인정되며, 정신의료기관 입·퇴원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 의사결정지원, 절차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절차 지원은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료인과 진료보조 인력이 아니라 독립적이 절차조력인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권고이다.

둘째, 대한의사협회는 정신질환자들이 경험하는 위기지원쉼터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위기 상황을 오로지 ‘정신과적 응급’으로 규정하고, 위기지원쉼터에서 제공하는 상담을 ‘상담치료’로 간주하여 위기지원쉼터를 의료법 위반이라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 주장이 의도적이라면 의료전문직의 특권을 옹호하기 위한 편협한 선동이고, 착오라면 정신질환자 위기지원에 대한 국제적인 동향과 선례들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정신질환자는 위기상황에서 가족과 친구, 동료 정신질환자, 정신건강복지전문요원, 기타 다양한 사회서비스 제공자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좀 더 전문화하고, 특화된 전달체계를 만들자는 법안에 반대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하위법령을 통해 위기지원쉼터의 구체적 기능, 운영 주체, 인력 등이 정의되어야 할 것이지만 위기지원쉼터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 위기지원쉼터에서 제공하는 상담 또한 정신의료기관에서 의료수가가 적용되는 정신치료와 다르다.

지난 6월 21일, 정신장애인들이 정신건강복지법 연내 개정을 촉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지난 6월 21일, 정신장애인들이 정신건강복지법 연내 개정을 촉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만약 대한의사협회의 논리대로라면, 현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실시하는 사례관리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담도 ‘상담치료’로 간주하여 의료법 위반이라 할 것인가? 심지어 정부는 2021년 발표한 온국민마음건강종합대책에서 다양한 심리지원 정책을 제시했고 현재 실행 중이다. 지역사회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상담을 상담치료라 주장하여 금지할 수는 없다.

셋째, 대한의사협회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장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도입하려는 위기지원쉼터 및 절차조력인 제도에 대해 ‘의료를 침해’한다거나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린다’고 과민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위기지원쉼터는 정신의료기관을 대신해 정신응급 상황을 책임지려는 것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잘 알 것이다.

다만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위기상황도 얼마든지 있고, 그에 대해 상담, 심리지원, 사회적 지지, 일시 보호를 제공하는 것을 의료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절차조력인이 입원이나 퇴원 과정에서 정신질환자의 동의 하에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전달하거나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당사자 스스로 원활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권리옹호 절차들을 지원하는 것은 결코 의료에 대한 침해가 아니다. 심지어 절차조력은 강제입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에서 공식적으로 제안된 제도이다.

그럼에도 대한의사협회가 위기지원쉼터나 절차조력인 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 국가인권위원회, 국제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심각하게 문제 제기할 사안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국제장애인 인권 기준 위에 군림하려는 단체인가, 아니면 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하려는 단체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법사위원회 결정을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에 대한 일이라면 ‘모든 것이 의료’이며, ‘의료라면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와 정신의료기관’의 관할구역이라는 의료적 사고에 철저하게 치우친 것은 아닌지 대한의사협회에 각성을 촉구한다.

국민의 정신건강복지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과 실천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책의 실행 방식과 그 과정에 대해서는 각 주체들 간에 다양한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를 극복하는 대원칙은 국제적인 인권 기준과 당사자들의 요구여야 한다.

그 많은 법 개정안들 중 겨우 남은 위기쉼터, 절차조력, 동료지원은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개혁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법 개정의 불씨가 이대로 꺼지지 않도록 적어도 정신건강복지의 주체들은 지지의 목소리를 다시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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