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연구(Tōjisha-kenkyū)에 대하여..."자기의 발견은 곧 회복의 과정"
당사자연구(Tōjisha-kenkyū)에 대하여..."자기의 발견은 곧 회복의 과정"
  • 송승연 기자
  • 승인 2023.07.3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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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급진적인 운동은 정신건강에 다양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연구하고(또한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Illustration by Ivyy Chen

정신의학에서는 정신과 의사만이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그들은 현재 5판으로 업그레이드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 명시돼 있는 전문적 지침을 따라, 세부 기준 리스트를 참조해 진단을 내린다.

임상의들은 이 매뉴얼을 참고해 발모광(trichotillomania, 털뽑기 질환), 조현병(schizophrenia), 반사회적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기면증(narcolepsy), 아동기-발생 유창성 장애(childhood-onset fluency disorder, 이전에는 말더듬기라고 불렸음),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 반추장애(rumination disorder) 등을 포함하여 이 외의 DSM-5에 담겨 있는 수많은 질환들을 (어떤 사람이) 겪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을 받는 것은 때때로 한 사람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진단을 받음으로 자신이 경험하는 괴로움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보다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전문적인 지원과 약물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단을 받음으로 인한 부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정신과 진단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다. 정신과 진단은 현상을 설명하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규범적인 측면이 있다. 바로 정신질환에서 나아지는 것, 개선되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규범적인 서사가 한 사람의 자아감을 좌우하기 시작하면서, 진단은 그 사람의 정체성에 깊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존재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 있다.

일본에서는 도지샤 켄큐(tōjisha-kenkyū)라고 불리는 급진적인 접근법이 등장하여, 주류 정신의학을 지배하고 있는 규범적 서사에 도전하고 있다.

도지샤 켄큐는 대략적으로 ‘자신에 대한 연구’, ‘자기지원 연구’(국내에서는 ‘당사자연구’로 알려져 있음-역주)로 번역되며, 장애 및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당사자연구는 수십 년 전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조현병 등과 같은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만든 풀뿌리 운동에서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며 정신의학 영역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접근법으로 성장했다. 당사자연구는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는 일본 사회 계층 전반에 걸쳐 받아들여지고 있는 접근법이다.

'도지샤'라는 단어를 영어로 명확하게 번역하기는 쉽지 않다. 도지샤라는 용어는 원래 법률과 정치에서 소송에 관련된 ‘당사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도지샤(당사자)라는 용어는 차별을 경험하는 집단(가부장제 사회에 맞선 여성들,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장애인들, 엄격한 젠더 규범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 등)이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용어의 정의가 확장됐다.

이 집단의 사람들은 ‘당사자’라는 단어 안에 갈등과 저항의 의미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 용어를 가져왔다. 즉, ‘당사자’라는 언어는 (권력이 부재되어 있지만)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위해 기꺼이 조직하고 투쟁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용어이다. ‘당사자’는 일본에서 차별에 맞서 싸우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방법이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당사자라는 용어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았던 소수자, 가령 조현병 및 다양한 정신과적 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마이너리티 집단의 구성원들은 도지샤(당사자)로 자신들을 정체화함으로써 의료모델의 지배를 넘어서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진단의 폐해, 그리고 회복의 경로를 미리 규정해놓았던 규범적 서사의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를 추진했던 다양한 당사자 집단들과는 달리,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그들에게 ‘비가시적인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사회에서 소외되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역주: 정신장애인의 장애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수동적인 '환자'가 아닌, 자신의 어려움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자'가 될 수 있다

당사자연구의 장이 마련된 것은 장애인들에 의해 촉발된 두 가지 사회운동이었다. 1950년대 일본에서 새로운 장애운동이 부상하였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뇌성마비와 같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당사자로서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장애는 가시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왜 차별을 받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의 운동은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장애인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인 1970년대부터 중독(특히 알코올중독)과 조현병과 같은 정신건강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두 번째 운동이 시작됐다.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장애가 항상 가시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두 번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장애(disabilit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알고 있지는 못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들의 어려움을 인식한 후에도, 자신들의 장애 특성에 대해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신체적 장애, (눈에 보이는) 가시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는 달리, 이 두 번째 당사자 집단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을 어떻게 옹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이를 확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유형의 자기지식(self-knowledge)이 필요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도지샤 켄큐는 2000년대 초 일본 홋카이도 남부의 어촌 마을 우라카와에서 등장했다. 1980년대 정신과 진단을 가지고 있는 지역 사람들이 낡은 교회에서 동료지원 단체를 만들면서 시작됐고, 이 교회는 ‘베델의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베델의집 설립에는 선구적인 정신과의사 가와무라 토시아키와 혁신적인 사회복지사 무카이야치 이쿠요시의 지원이 있었다.

베델은 처음부터 일본 내 ‘반정신의학’ 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실험 정신(DSM과 전문가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정신의학이 다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탐색)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베델의집 초창기, 종사자와 회원들 모두 종종 반복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곤 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기존의 정신과치료를 넘어서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문제였다. 당사자연구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2000년대 초,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베델의 멤버 중 한 명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 고군분투는 그가 홧김에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이후 더욱 긴급한 이슈가 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그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하던 무카이야치는 그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고,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스스로 겐큐(공부하다 혹은 연구하다)를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언뜻 들었을 때, ‘겐큐(연구)’라는 용어는 확 다가오는 매력이 있었고, 베델의 다른 사람들도 이 용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심각한 정신건강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도록(그리고 사과하도록) 강요받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연구’라는 용어가 더 와 닿았다. 이로 인해 이들은 다르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느꼈던 수동적인 ‘환자’가 아니라, 이제 자신의 어려움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자’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당사자연구를 통해 이들은 ‘희생자’, ‘환자’, ‘소수자’ 등의 꼬리표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행위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사자연구는 단순한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고민거리를 나누어왔으며, 다른 사람들의 공감과 지혜를 통해 문제 해결 방안을 얻어왔다. 그러나 정신질환에 대한 경험들은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집단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신건강 어려움은 감춰야하고, 말해선 안 되며,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수치스러운 비밀처럼 취급된다.

이러한 상황은 혼란스럽고 외로운 사람들을 만들어내며, 이들은 오직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의 상의하달식 지식(top-down knowledge)에 의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게 된다. 당사자연구는 심플하다. 당사자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연구’하고, 동료 당사자들의 글과 경험들 속에서 패턴과 해결책을 탐색해보라고 독려한다.

자기 성찰(Self-reflection)은 이 실천의 핵심이다. 당사자연구는 사회기술훈련(SST)이나 인지행동치료(CBT)와 같은 기존의 임상적 실천 방법에서 개발된 다양한 형태의 성찰을 참고했지만, 당사자연구에서의 성찰은 개인에게서 시작하여 개인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연구에서의 자기성찰은 항상 공유되며, 함께 성찰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의 한 형태가 된다.

베델의집 회원들은 정신병원 병동에서 자신들을 진단하고 연구했던 의사와 과학자들처럼, 스스로를 새로운 형태의 지식 ‘생산자’로 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다. 베델 회원들의 경험적 지식은 이제 정신건강에 관한 공개적이고 공유적인 집단적 지식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이 집단적 지식은 책, 신문기사, 다큐멘터리,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가고 있다.

환청망상대회의 청중들은 누가 가장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했는지 투표한다

당사자연구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것이며, 둘째,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자기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사회에서 배제되었다고 느꼈던 사람들은 함께 모여 스스로를 옹호하기 시작할 수 있다.

이처럼 당사자연구는 명확하게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주변화를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사자연구는 심지어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비당사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시민 과학(citizen science)’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 더더욱 폐쇄적이었던 정신건강 케어 영역에서, 당사자연구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다름’에 대해 걱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공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기찬 공간을 만들어냈다.

당사자연구는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베델의 집은 전통적 정신의학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순례지로 자리잡았다. 어느새 베델의집에는 카페가 오픈됐고, 공개 강의와 행사가 개최됐으며, 당사자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회원들의 환각을 그려 넣은 티셔츠 등과 같은 굿즈들도 판매됐다.

‘환각과 망상 그랑프리’(현재 한국의 경우 매년 정기적으로 환청망상대회가 개최되고 있음-역주)가 일본 국영방송에 방영되면서 베델은 더욱 유명해졌다. 환각과 망상에 대한 베델 회원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웃을 수 있도록 우라카와 시민들은 이 행사에 초대된다. 청중들은 행사가 끝날 때쯤 누가 가장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해 투표한다.

한 우승자의 경우, 미확인비행물체(UFO)를 타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려다 실패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베델 회원들이 그에게 UFO를 타기 위해선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고, 그는 면허가 없었기 때문에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또 다른 우승자의 경우, 환청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4일 동안 기차역 공중 화장실에서 생활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사자연구는 미국 인류학자 카렌 나카무라가 베델의집에서의 삶에 대한 상세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인 '영혼의 장애: 현대 일본의 조현병과 정신질환의 문화기술지'(2013)를 저술하면서 일본 안팎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오늘날 당사자연구는 베델이나 우라카와를 훨씬 넘어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전에는 조현병을 포함하여 다양한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었던 독특하고 급진적인 접근법으로 간주되었던 당사자연구는, 이제 자기 자신과 사회를 연구하길 원한다면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접근법이 되었다.

2015년, 당사자연구는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RCAST)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소아과의사인 쿠마가야 신이치로 부교수, 그리고 자폐스펙트럼 경험에 대해 다양한 글을 저술해온 아야야 사츠키 연구교수(이 에세이의 공동저자), 이 두 명이 도쿄대학교 RCAST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장애와 정신건강에 대한 자신들의 심도 깊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연구자, 당사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광범위하게 일반 시민들과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당사자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구마가야가 도쿄대병원에서 임상 수련을 시작했을 때, 그는 곧 겉보기에 간단해 보이는 채혈 작업도 자신에게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손이 부분적으로 마비됐기 때문에, 피하 주사바늘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동료들은 자신들의 팔을 (연습용으로) 제공해주었고, 구마가야는 이 과정에서 안정적으로 혈액을 채취할 수 있을 때까지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걱정하는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들에게도 채혈을 시도하게 될 때는 신경이 예민해져서 도움이 꼭 필요했다. 나중에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으로 발령을 받았고, 구마가야는 자신이 별 도움이 안 될 것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슈퍼바이저는 일부러 그에게 채혈 업무를 맡겼다. ‘올바른’ 절차에 집착하기보다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어떤 것이든 효과가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혈액을 채취하는데 집중하라는 병원 직원들의 권유를 받았다.

심지어 구마가야의 슈퍼바이저는 ‘나 또한 채혈 과정에서 실수를 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고, 이로 인해 남아있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다른 직원들도 구마가야의 ‘다름’에 빠르게 적응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았다.

구마가야는 바삐 돌아가는 이 병원에서 지내면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의 종사자들은 서로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있었고,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들을 끊임없이 찾고 있었다. (신체의) 부분 마비는 팀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취약점(또는 특이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구마가야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와 법률에 따라 일정 비율의 신체적•정신적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당사자연구 방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당사자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서, 그 경험에 대한 과학적 가설을 공동으로 생성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아야야는 RCAST에서 당사자연구 탄생에 관여한 주요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당사자연구의 역사를 탐구해 왔다. 또한 자신의 자폐스펙트럼 경험을 활용하여 당사자연구를 연구방법론으로 발전시켰다.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은 증상과 ‘이해하기 쉽지 않은’ 행동으로 인해 긴장된 상황과 소통의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때로는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깊은 외로움에 시달릴 수 있다.

일부 당사자들은 자신의 정확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 있으며, 또한 자기지식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야야는 종종 어떤 장소에 속하지 못한다는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로 구성된) 설명을 들으며 (자신이 느끼고 있는) 자아감과 몸의 감각을 빼앗기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사자연구를 실천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감각 과부화로 인해 지속적인 피로감을 느꼈고, 자신의 피로를 감지하는 능력이 극도로 떨어져서 과거에 급작스러운 붕괴를 경험했던 이유에 대한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각자의 ‘연구’는 모두 다르지만, 아야야의 경우 자기관찰뿐만 아니라, 실험심리학, 인지과학 및 철학 분야에서 발표된 연구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붕괴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기저에 위치한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용어들을 찾았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가설을 당사자단체에 제시하고, 이 가설이 얼마나 일반화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당사자들은 자기이해를 발전시키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는 법을 배우고, 동시에 특정 개인의 경험을 넘어 그 경험에 대한 과학적 가설을 공동으로 생성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도쿄대에서 아야야와 구마가야는 이 가설을 발전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법을 만들었다. 이는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 중인 연구들이 포함된다. (당사자연구 실천 / 당사자연구를 통해 도출된 가설의 검증 / 당사자연구 효과성 연구) 연구팀은 자폐스펙트럼 당사자, 중독 관련 당사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거나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 등과 같은 공동체와 협력하는 작업도 수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또한 과도하게 경쟁적이고 능력주의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소외감을 탐구하기 위해 올림픽 선수, 전직 우주비행사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또한 아야야와 쿠마가야는 특정 개인의 경험 속에서 비롯된 가설들을 검증하기 위해, 과학자 및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력해 그 가설들이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일반화될 수 있는지 여부를 테스트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현재 당사자연구는 기업, 대학, 병원 등으로 확장되는 초기 단계에 있으며, 직장 내 존재하는 어떤 문제를 파악하고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1년 일본 정부는 UN CRPD(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장애인정책위원회’를 설립해 정책 권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위원회에는 사회복지사, 학자, 장애인 등이 포함돼 있으며, 당사자연구 전문가인 구마가야도 포함돼 있다. 당사자연구는 특정 개인이 자신의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사회로 하여금 이러한 문제들을 인정하게 하고, 직면할 수 있게 촉진하는 접근법이기도 하다.

당사자연구 접근법이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구마가야가 이탈리아의 (정신과의사이자 연구자이자, 당사자연구 지지자인) 로베르토 메찌나로부터 배운 원리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주도적 연구를 통한) 자기발견은 회복의 과정”이라는 원리이다. 당사자연구는 자칫 혼란스러운 경험일 수도 있는 것으로부터 ‘의미와 기제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회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당사자연구는 전통적인 과학 연구의 영역 밖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의 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실험실과 대학에서만 이루어졌던 연구를 밖으로 꺼내서, 정신과의사나 보건전문가가 아닌 당사자들의 손에 맡겨진 것을 의미한다.

당사자연구가 다른 형태의 시민과학과 구별되는 한 가지는 '연구'에 대한 독특한 정의이다. 과거, 공중보건영역에서 진행된 시민과학 프로젝트의 경우 어떤 치료법을 찾기 위해 (기존) 과학의 용어와 기술을 배운 환자들이 의료전문가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들과 에이즈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 형성된 협력 네트워크가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정신건강 케어 분야에서도 시민과학이 발전하여 이용자 통제 연구(user-controlled research)가 보건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시민과학의 대표적 사례의 경우 지식의 소유권, 그리고 과학에 대한 개념 등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했지만, 복잡한 과학적 방법론과 전문 지식이 있어야만 관여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시민’들은 더 깊이 참여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반면에 당사자연구는 마치 게릴라와 같은 접근방식을 취한다. 즉, 당사자연구는 개인의 경험과 더불어 과학에서 유용하다고 밝혀진 것들을 조각처럼 연결한 것이다. 기존 학술 연구에서 이루어진 문헌 고찰은 특정 분야의 지식, 논쟁들을 비교하였다면, 당사자연구에서는 이것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비교하는 행위’로 대체된다. 이는 일종의 피어리뷰 프로세스와 같은 피드백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역동적 방식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경험한 장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 어떤 환경에서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등에 대해 당사자들이 집단으로 함께 모여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인들에서 어떤 패턴을 발견함으로써, 당사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계획을 더 수월하게 세울 수 있다.

동료지원가는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으며, 환자, 동료, 종사자 등 다양한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당사자연구 접근 방식은 우울증 혹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 속에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여전히 많은 곳들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마초이즘(machismo)을 넘어서,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공유해도 괜찮은 새로운 직장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키타 코토코는 구마가야와 아야야가 운영하고 있는 도쿄대 연구소에 고용된 당사자 연구원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진단을 가지고 있다. 키타에게 있어 당사자연구는 직장 안에서 자신의 장애가 작용하는 본질을 탐색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당사자연구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왜 30번 이상이나 직장을 옮겼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종신 고용에 대한 관념이 여전히 만연한 일본에서 이러한 상황은 이례적이다.) 키타는 당사자연구를 통해, 어떤 회사에서 일하기 어려운지에 대해(마초이즘과 완벽주의 문화를 가진 회사들), 그리고 장애 친화적인 회사들의 특성(서로의 약함을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문제를 가진 회사들)을 비교했다. 당사자연구를 통해 키타, 구마가야, 아야야는 미래의 직장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도쿄대 신경정신과 교수인 카사이 키요토는 정신질환의 낙인을 감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대학병원에 동료지원가(peer-support workers) 제도를 도입했다. 키요토는 정신과환자였던 4명의 당사자를 동료지원가로 채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정신과 전문가들은 보통 전문지식과 확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동료지원가들은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 동료, 종사자 등 다양한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촉진자(facilitators)’로 활동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동료지원가들은 당사자의 이야기를 더 수월하게 경청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으며, 의사-환자 관계에 내재된 긴장과 권력 불균형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료 세팅에서 동료지원가의 역할은 최전방에 위치한 ‘평화 활동가’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동료지원가는 의료 전문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분위기에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도쿄대병원에서 활동하는 동료지원가들의 정확한 역할과 강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 중에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내부로부터 정신의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한 걸음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다수 인구가 80대 이상의 기대 수명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급속한 고령화 사회에서 장애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치매는 고령화되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추정되며, 2025년까지 약 700만명이 치매에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는 ‘치매의 세계를 걷는 법’이라는 제목의 치매 ‘가이드북’이었다.(이 책은 ‘세상을 걷는 법’으로 불리는 론리 플래닛 시리즈의 일본어 버전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 이 안내서는 마치 오래된 인류학 교과서처럼, 치매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국적인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그 나라의 ‘현지인(치매 당사자를 의미-역주)’들의 서사를 공유하며, 그들이 왜 잊어버리는지, 왜 돈을 계산하지 못하고 열차카드를 충전하지 못하는지, 때로는 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지 등 그들이 하는 ‘낯선’ 행동에 대해 설명하고 묘사한다. ‘치매’는 일본에서 당사자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글의 공동저자인 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는 치매 환자를 위한 기억 클리닉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치매 당사자’는 환자와 의사 간 상호작용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동시에 ‘동료지원가’로도 초대됐다. 당사자와 환자들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서로의 얼굴은 밝아졌다.

기타나카는 루이소체치매(Lewy body dementia)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연구하면서, 당사자와 환자들이 서로 유사한 무서웠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예를 들어, 뱀으로 뒤덮인 커튼 레일을 보거나, 어두운 방에서 유령 같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은 환각). 이러한 경험들은 끔찍했을지 모르지만, 이어지는 대화들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이는 베델의 ‘환청망상대회’에서 형성되는 것과 같은 연대감과 유사했다.

당사자연구는 신체적, 정신적 다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미래에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준다

당사자연구를 통해 치매가 없는 사람들도, 치매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며, 치매 당사자 마음속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당사자연구는 현재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통상적으로 구분되는 질병 범주를 뛰어 넘어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오늘날 치매, 우울증, 조현병, 고차뇌기능장애,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경험들을 공유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감정의 과잉을 조절하지 못했던 경험, 몸과 마음이 불일치한다고 느꼈던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당사자들은 이러한 인지적 변화를 은유적인 용어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가령 한 번에 하나의 애플리케이션만 실행시킬 수 있기에 하나의 창만 열 수 있는 낡고 잘 작동하지 않는 컴퓨터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많은 당사자들은 감각적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상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경험, 색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느낌,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 등을 말하고 있다. 여러 당사자들은 작동 기억이 저하되면, 뇌로 들어오는 과도한 정보를 제한하고 싶다고 언급하며,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공황에 빠져 몸을 웅크리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어떤 당사자들은 정신질환의 증후를 새롭게 정립하고 싶은 것에 관심이 있는 의사들과 협력함으로써, 정신의학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당사자들은 정신증의 현상학,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한 공통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언어로 구축된 데이터베이스가 현재 전자공학, 도시계획 및 커뮤니티 활성화 전문가들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문가들은 당사자와 같이 신경생물학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세계에 부응하는 새롭고 공감적인 유니버셜 디자인을 만드는데 당사자연구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당사자연구는 베델의 집에서 출발해서 지금은 다소 먼 거리까지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우라카와에서 시작된 당사자연구 본연의 의도(앞서 언급한, 자신의 집에 불은 지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던 당사자가 사용한 방법)와 별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형태의 당사자연구는 본질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어떤 어려움에 대한 공동체적이고 개방적인 이해, 그리고 사회가 더욱 포용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사자연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적인 비전을 보여준다. 그것은 신체적, 정신적 다름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미래에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비전이다.

만약 전문가가 단순히 환자를 정의하고 진단하고 있는 일을 중단한다면, 그 대신 당사자들에게 스스로 연구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라.

***

기사원문(클릭)

번역 송승연(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

저자

아야야 사츠키: 일본 도쿄대학교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연구교수
기타나카 준코: 일본 게이오대학교 인문사회학과 의료인류학 교수. '일본의 우울증'(2011) 저자

※ '일본의 우울증'은 국내에서 2023년 6월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제소희 외 역, 사월의 책)라는 제목으로 출판됨.

기타나카 준코,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제소희, 이주현, 문우종 옮김, 이현정 감수, 사월의 책, 2023.
기타나카 준코,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제소희, 이주현, 문우종 옮김, 이현정 감수, 사월의 책,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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