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단체 해볼까?] “고유번호증에 우리 단체 이름과 고유번호 열 자리가…우리도 정식 단체가 됐다”
[우리, 단체 해볼까?] “고유번호증에 우리 단체 이름과 고유번호 열 자리가…우리도 정식 단체가 됐다”
  • 리얼리즘
  • 승인 2024.01.30 1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기획 칼럼 4화
사무실 임대계약만 체결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복잡한 단체 등록
사무실이 자가 소유가 아니면 임대차계약서도 제출해야…공유 오피스 찾은 이유
사무실 주소 묻더니, 관할 세무서 아니라고…‘좌충우돌’
단체 카드 개설, 신용정보에 고유번호 등록, 정기후원 CMS도 개통
세바다 비영리단체 개소…법적 대표됐지만 당면 과제 위기 의식 느껴

당사자단체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단체 구상, 사무실 마련, 단체 설립신고, 총회, 회계, 행정, 회비와 후원금, 기회, 활동, 연대 등이 그 과정에 끌려나온다. 비영리단체 운영은 흔하지 않고 조언을 구할 곳도 없다. 누군가 몇 마디 말이라도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사자운동의 ‘당’자도 모르던 리얼리즘이 신경다양성지지 모임 세바다와 회복의공간 난다, 권익옹호기관 등의 설립과 운영에서 깨달은 경험들을 독자와 나눈다. 총 10꼭지 기획으로 진행되는 기사에서 리얼리즘은 '맨땅에 헤딩'하듯 당사자단체를 만들어본 경험을 운동 초보의 관점에서 풀어나갈 예정이다.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뜻이 맞는 사람을 모아 의기투합해 여러 활동을 진행했지만, 고유번호증이 없는 단체의 한계는 명확했다. 고유번호증이 없으니 단체 통장을 만들 수 없고, 단체 통장이 없으니 압류 위험과 함께 회계 처리가 투명하지 않았으며, 고유번호가 없으니 언론에 자료를 송고해도 기사를 올려주지 않았다.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서 비영리임의단체를 등록하기로 했다. 인터넷에 ‘비영리임의단체’를 검색하면 행정사 광고가 잔뜩 떴지만, 비용을 알아보고 나서 셀프(self)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류 제작

정관(회칙)과 총회록은 충청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발간한 ‘설립신공’이라는 문헌을 베이스로 해 세바다 모임방의 공지를 적절히 합쳤고, 총회록에는 나와 다른 임원의 도장 이미지를 박아 넣었다.

가장 최초의 총회는 아주 간단하게 약식으로 했다. 회원 명부는 단체 등록에 사용한다고 받아놓은 회원가입 정보를 활용했다. 사무실 임대차계약서? 가정집에다가 설치해도 된다는데 필요 없지 않나? 승인신청서와 대표자 선임신고서? 세무서에 비치되어 있다는데 나중에 쓰지 뭐.

A세무서를 방문하다

서류를 출력해 나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A세무서로 갔다. 가는 길에 도장집에 들러 도장을 두 개 팠다. 하나는 내 도장(총회록에 찍은 도장을 잃어버렸다), 하나는 단체 직인. 세무서에 도착하자마자 신청서를 찾았는데 법인이 아닌 단체(개인 단체)의 고유번호 신청서만 있었다.

결국 번호표를 뽑고 법인으로 보는 단체의 승인신청서와 대표자 선임신고서를 복사해달라고 했다. 선임신고서는 필요 없단다. 승인신청서를 작성하고 서류를 직원에게 제출했다. 직원은 서류를 하나하나 스캔해서 담당자에게 보냈다. 내 이름이 들어간 접수증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A세무서에서 서류 보완 요청을 받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있는데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다. 용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관과 총회록이 각각 1페이지만 들어갔다는 소식이었고, 하나는 국세기본법 제13조 2항에 의해 정관에 조항 하나를 추가하라는 것이었다.

그 조항은 단체의 수익을 구성원에게 분배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법인으로 보는 단체에서는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 이건 오케이. 근데 서류가 한 페이지만 들어갔다고? 스캔하는 걸 눈으로 봤는데? 결국 동네 카페에 들러 해당 조항과 몇 가지를 더 추가해 넣고 서류를 메일로 다시 보냈다.

[팁] 단체의 수익을 구성원에게 분배하지 않는다는 뜻은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수익을 이사나 회원 등에게 ‘배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무실 계약하기

세무서에서 전화가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오고야 말았다. 사무실 주소를 내 집으로 했는데, 자가가 아니면 임대차계약서나 무상사용승낙서를 제출해야 된다는 말씀이었다. 인터넷상의 정보만 믿고 서류를 준비해 간 내가 잘못이었다.

사무실 임대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만 계약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사무실 주소가 대표자의 소유로 등기되지 않았으면 무조건 임대차계약서나 무상사용승낙서를 받아서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으로 보는 단체 신청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남들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우리 어머니가 집주인에게 서류를 받아다 줄 리 만무했다. 공유오피스를 알아보고 자유석으로 계약했다. 자세한 내용은 3회를 참고하시라.

월요일이 되자 A세무서에 전화를 해서 사무실을 새로 구했다고 말씀드렸다. 주소가 어디냐고 묻길래 답했더니 그곳은 A 지역에 속하지만 B세무서 관할이란다. 결국 신청을 취소해달라고 했다.

공유오피스에서 전대차계약 관련 서류를 받아들고 B세무서로 갔다. 직원에게 스캔 잘 됐는지 확인해달라고 읍소했다. 세무서에서 전화가 오지 않기를 기다리며 집으로 갔다.

드디어 B세무서에서 고유번호증을 수령하다

서류를 제출하고 3일째 되던 날 아침에 사업자등록증을 수령하라는 문자가 왔다. 바로 준비하고 B세무서로 갔다. 접수증과 신분증을 내고 고유번호증, 법인으로 보는 단체의 국세에 관한 의무이행자 지정통지서, 법인으로 보는 단체의 승인여부통지서를 받아왔다. 고유번호증에는 우리 단체의 이름과 함께 어엿한 고유번호 열 자리가 적혀 있었고, 승인여부통지서에는 승인이 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우리 단체도 정식 단체가 된 것이다!

사업자등록증을 찾아가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 사실은 고유번호증인데도 이렇게 온다. (c)리얼리즘 제공.
사업자등록증을 찾아가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 사실은 고유번호증인데도 이렇게 온다. (c)리얼리즘 제공.

단체 명의의 통장을 개설하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은행에 들러 고유번호증과 함께 제반 서류를 제출했다. 그런데 담당 행원은 비영리단체 업무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 행원은 업무에 관한 질문을 옆 행원에게 계속해서 물어보았고 업무 시간은 길어졌다. 게다가 비영리단체는 본점의 승인이 필요하단다.

장장 한 시간이 걸리고 나서야 통장과 OTP(비용은 현금으로 준비해야 한다)를 들고 은행을 나설 수 있었다. 통장에는 내 이름이 아니라 단체 이름만 적혀 있었다. 온전한 단체 명의의 통장이 생겼다. 행원은 내가 그 은행의 고객이 아니어서 한도제한계좌만 된다고 하였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한도제한은 후에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풀게 됐다).

후속 업무 처리

사무실에 가서 매니저에게 고유번호증을 복사해 제출했다. 그리고 공동인증서를 발급받았다. 비영리단체는 기업뱅킹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며, 공동인증서 발급 수수료는 면제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임시 통장의 잔액을 단체 통장으로 송금하고, 홈택스에 공동인증서도 등록했다. 우리 단체의 블로그 도메인 명의도 변경했다. 도메인 잠금만 잠깐 풀어두면 관리계정은 그대로 내 계정으로 두고 명의만 손쉽게 변경할 수 있었다. 우리 단체 소개 글에 고유번호와 후원계좌를 적어두었다.

단체 카드를 개설하다

인터넷에서 카드를 신청하려고 고유번호를 입력했더니 개인사업자만 온라인에서 카드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다시 은행으로 갔다. 은행에 가서 서류를 다시 적고 냈다. 현금카드는 인출만, 체크카드는 결제만 할 수 있다고 하여 둘 다 만들기로 하고, 체크카드는 내 것과 총무 것까지 두 장을 신청했다. 체크카드 발급은 시간이 좀 걸린다 하여 현금카드만 받아서 돌아왔다.

몇 주가 지난 후 카드사에 전화했는데, 놀랍게도 지점에 도착한 카드가 폐기되었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이글이글 차올랐다. 마음을 겨우 가다듬고 지점에 전화했더니 카드를 폐기하지 않았으니 찾아가라고 했다. 서류를 들고 지점에 가서 카드를 수령했다. 그런데 카드 회원 등록을 하려고 했더니 EDD(본인확인)을 하라고 한다. 지점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겨우 해결했다.

한국신용정보에 고유번호를 등록하다

업무전화를 만들기 위해 KT에 가입하려고 했더니 사업자번호 조회가 안 되는 것이었다. 검색했더니 한국신용정보에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단다. 한국신용정보 사이트에 정보를 입력한 뒤 고유번호증을 복사하여 여백에 연락처를 적고 팩스를 보냈다.

비록 토요일에 보냈지만 월요일에 확인하겠지? 일단 집에서 쉬기로 했다. 다음 주에 확인해보았더니 등록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업무 전화는 일단 나중에 만들기로 했다. 법인번호가 없는 단체 명의를 개통시켜준다는 통신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바다 블로그 갈무리.
세바다 블로그 갈무리.

정기후원 CMS를 개통하다

두 업체 중에 고민하다가 국내에서 유명한 C업체를 선정했다. 이 업체는 카드, 휴대전화 결제 등 다양한 결제 방법을 지원하고 있었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을 필요 없이 인터넷에서 인증 후 정기후원 등록을 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 결제는 정산이 너무 오래 걸린다 하여 자동이체에 카드 결제만 추가하기로 했다.

견적서를 받은 메일주소로 서류를 보냈더니, 스캔본의 크기가 너무 커서 구글드라이브로 첨부했더니 열리지가 않는다고 다시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메일함에는 파일 액세스를 요청하는 메시지만 잔뜩 와 있었다.

게다가 담당자에 총무 이름을 적었더니 총무의 자필 서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총무를 사무실로 불렀다. 도장이 잘 찍히지 않아 종이 몇 장을 파쇄기로 날린 후에 도장을 먼저 찍고 서류를 기입했다. 두 번째 서류와 함께 신분증 사본을 다시 보낼 때는 개인 네이버 메일로 보내고 참조에 단체 이메일을 적었다.

서류를 보내고 다음 주가 되니 서비스가 개통된다는 연락이 왔다. 서비스를 신청할 때 대표자의 신용 조회를 한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별 안내가 없었던 걸 보니 무사히 통과한 듯하다. 총무와 같이 출근해서 원격으로 서비스 사용법을 배웠다. 다행히 잘 작동되었다. 테스트를 완료한 후 단체 블로그에 후원 주소를 적어넣었다.

이렇게 ‘세바다’도 어엿한 비영리단체가 되었다. 가장 쉬운 단계의 신고과정만 거쳤을 뿐인데도 정신장애인과 신경다양인이 통과하기 어려운 난관의 연속이었다. 사실 그 과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는 이제 비영리 비즈니스(business)를 책임져야 하는 법적 대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 사실은 와닿지 않았고, 오히려 당면한 과제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 꼭지부터는 비영리단체 활동의 실제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