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인아메리카] 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베를린 선언
[매드인아메리카] 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베를린 선언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4.01.22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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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베를린 선언 [photo=Mad in America]
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베를린 선언 [photo=Mad in America]

'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베를린 선언'은 정신적 고통을 겪었거나 정신과 치료 경험이 있는 개인과 그 가족, 정신의학 및 지역사회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결합한 결과물이다. 2019년 8, 9월 베를린에서 열린 회의에서 광범위한 조직과 개인의 연합(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베를린 선언의 임상실천그룹)은 독일의 전체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지속 불능의 상태를 가능한 한 빨리 바꾸기 위해 요구사항 목록을 작성했다.

임상실천그룹은 10월 10일 베를린 포츠담 광장에서 베를린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모든 심리사회적 지원 및 정신건강 관리 체계의 기초가 돼야 할 다섯 가지 일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보다 수용적이고 접근하기 쉽게 만들었다. 정신적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회복하고 그에 따라 환경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또한 가족과 친구들이 회복의 여정을 함께하거나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한다. 독일의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정신 위기에 처한 사람들과 장기적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돕고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든 도움과 지원의 원동력이 인도주의, 그리고 인권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베를린 선언은 이러한 공론화에 불을 지피고자 한다. 

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베를린 선언문

오늘날 독일의 정신과 상황을 살펴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갈수록 많아지는 향정신성 약물 복용, 더 많은 전기충격요법 사용, 강제치료, 병상의 확장, 그리고 종종 접근하기 어렵고 부적절한 외래 환자 서비스 등이다. 또한 정신과 치료의 모든 영역에서 관료적, 경제적 요구사항도 지나치게 많아졌다. 이러한 결함들은 심리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존엄하게 대하며 보살피는 조치를 방해하는 몇몇 요인이다.

그 결과는 심각하고 치명적이다.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장기 회복률은 지난 20년 동안 개선되지 않았다. 정신과 진단을 받고 기존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여전히 매우 높다. 향정신성 약물이 너무 자주,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양으로 처방되고 있다. 이는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과 그 가족, 정신과 서비스 종사자 등 모든 관련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정신건강 돌봄 및 지원 서비스의 개혁은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정신적 괴로움을 겪는 개인을 위한 모든 형태의 지원을 위한 법적 틀을 제공하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CRPD)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이 협약은 2009년 독일에 의해 비준됐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 선언문은 정신적 괴로움을 겪어본 적이 있는 개인, 가족, 정신건강 전문가 등이 작성했다. 우리는 독일의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 시스템 전반의 개혁을 위한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도출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은 정신건강 전문가, 가족, 정신과 서비스 이용자/소비자/생존자의 책임은 물론 우리 모두의 의제이자 사회 전체의 과제다.

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기본원칙

행복과 안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우리 행동의 척도다. UN-CRPD와 같은 국제협약에 명시된 인권 원칙은 모든 정신건강 돌봄 및 지원 구조에 적용돼야 한다. 정신건강 돌봄 및 심리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광범위한 공개 토론이 시급하다. 

우리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1. 자율성과 자기결정권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른 인도주의 정신의학은 이용자/소비자/생존자가 어떤 유형의 정신과 및 심리사회적 지원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위기상황에서 당사자가 고유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 집중적인 개별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 의사결정 지원은 강압적인 조치를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서비스 이용을 보다 적절히 조정하기 위해 제공되는 모든 지원은 "자조를 위한 도움"으로 유지돼야 한다.

2. 경제적 안정

돌봄은 개인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되며, 사용자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 각자의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소득 보장과 적절한 주거는 치료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장애로 인해 근로능력이 제한적이거나 감액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종종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는 항상 당사자의 필요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

3. 개인의 소셜 네트워크 고려

장기적인 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적 또는 정서적 위기는 항상 사회적 제도 내에서 발생하고 존재하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돌봄과 지원의 전 과정에서 개인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포함시키는 게 필요하고 또 보장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턱이 낮고 접근성이 높으며 정신병원 밖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위기지원 서비스(예컨대 위기상담실, 위기연금)의 개선과 확대, 그리고 다양성이 필요하다. 외래 및 지역사회 치료가 입원 치료보다 먼저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급성 정신과 서비스, 특히 과밀하고 혼잡한 대규모 정신건강 병동의 병상을 줄여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모든 정신건강 돌봄 및 지원 구조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하다. 

4. 정신건강 지원 시스템의 투명성

사용자/소비자/생존자는 자신의 권리와 이용 가능한 지원 서비스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이는 특히 지역에서 다양한 정신건강 돌봄 및 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 더욱 중요하다. 돌봄과 지원의 제공 방법과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선호를 존중하는 동시에 삶의 현실을 고려하는 개인의 인권에 부합하는 일이다. 회복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서비스의 투명성과 다양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정신과 및 심리사회적 지원 시스템은 재정적으로 투명해야 하며 그 조직도 명확해야 한다. 정신건강 돌봄 및 지원 시스템 전반에서 인권 원칙의 준수 여부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고, 위반 시에는 효과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

5. 참여

모든 차원에서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치료 모델에서 지원 모델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신건강 전문가는 회복 과정에 동행하고 장려할 수 있을 뿐 회복을 주도할 수 없다. 개인이 스스로를 돕는다는 원칙에 따라 이용자/소비자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전문가는 인식을 제고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참여는 그 이상이다.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라는 (마인드포스트)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정신과 및 심리사회적 지원 시스템은 생생한 경험을 간직한 당사자 없이는 기획될 수 없다.

이러한 요구 사항 중 상당수는 수년 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돼 왔다. 이러한 요구사항은 성공적인 모델의 일부이며 독일 연방 보건부 전문가 위원회의 권고사항에 포함돼 있다. 이러한 요구사항이 아직도 정신건강 돌봄 및 지원 시스템의 토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 서비스뿐만 아니라 사회 및 보건 정책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 독일 전문가 위원회의 정신의학 현황 보고서인 「정신의학 보고서」는 1975년 이후 정신과 치료의 상당한 개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정신건강 서비스의 관료화와 시장화 때문에 이러한 개혁 프로세스는 여러 방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지면서 궁극적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다.

독일에서 보다 인간적인 정신의학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베를린 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정신의학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 존엄성의 불가침성을 요구할 수 있다. 

***

인도주의 정신의학을 위한 베를린 선언문 서명: www.change.org/berliner-manifest

자세한 정보는 www.berliner-manifest.d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메일: info@berliner-manifest.de 

2019년 8월과 9월에 베를린 선언문을 함께 작성했거나 2019년 10월에 영어로 번역한 구성원들: 슈테판 안트잭, 감마 박, 부르크하르트 브뢰게, 우베 브뢸-주베르트, 줄리아 에더, 디틀린데 고글, 사빈 할러, 야콥 헬벡, 잉그리드 E. 존슨, 우테 크래머, 토마스 퀴네케, 안자 레만, 피터 레만, 티나 린데만, 올레 마게프라우, 이본 말링, 피터 마스트, 카트린 노르드하우젠, 얀 E. 쉴름, 우베 베게너, 스테판 와인만, 구드런 바이센본, 클라우디아 비도우, 제니 지겐하겐.

 

*외부 필진의 기고(번역)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진

Jann Schlimme
Jann Schlimme

얀 E. 슐름메(Jann E. Schlimme, MD, PhD, MA)는 독일 베를린에서 정신병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로 개인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하노버 의과대학과 베를린 국제정신분석대학에서 해당 분야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가장 최근 저서로는 『정신병의 약물치료와 회복』(2018, 텔케 숄츠, 레나테 세로카 공저)이 있다.

 

번역

김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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