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보호의무자 제도 없애고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로 가야 해요"
김영희 "보호의무자 제도 없애고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로 가야 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1.18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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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인터뷰
국가 공적 이송 시스템 부재..있어도 ‘무늬’만 있고 작동 안 돼
응급상황에서 112, 119 모두 소관 아니라며 소극적..입원 어려워져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 높아...불편하지만 진실 받아들여야
조현병의 생물학적 부분을 과소평가하는 주장에 동의 안해
사회복지사나 전문가들과 퇴원 계획 세워서 사회적 입원 막아야
자기결정권은 소중하지만 인권 위해 제한할 수 있어야
비자의입원은 인신 구속...사법부 판단 따라야
정신장애인 범죄 피해자는 ‘가족’이 될 경우가 많아
국가책임제는 사법입원제와 커뮤니티케어가 핵심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그는 중증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 겪는 고통과 불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1980년대 후반, 중학교 2학년이던 그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친형의 조현병이 발현하는 걸 목격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우선은 ‘굿’이었다.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부모는 형을 발병 반년 뒤에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는 가족의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 그것도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가족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몸소 깨달았다. 형의 아픔 때문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의대를 들어가서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생들 대부분은 ‘금수저’들이었다. 서울의 가장 싼 동네에서 살고 있던 그에게 그들의 사회적 신분은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예과와 본과 6년 과정을 다 마친 후 그는 의사가 되는 꿈을 포기했다. 의사 국가시험은 치뤘지만 거기까지였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게 되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그런 상황에서 형이 사고를 치면 그가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까지도 위해를 당할 수 있었다. 그가 의사를 포기한 이유다.

형은 조현병 환자로 30년 이상을 살았다. 1990년대 초반, 그 형은 약물 치료를 중단하고 거리를 헤맸다. 가출이었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집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형은 살인미수로 징역 2년을 복역해야 했다. 중학생 이후부터 그의 삶은 형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는 “내 인생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했다”고 말했다.

큰누나가 있었지만 교대를 나와 지방의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8년 전 암으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았고 어머니는 한 쪽 눈이 실명한 시각장애인이었다. 부모만의 힘으로 형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늘 형을 향해 있었다. 부모님은 연로했고 장애인이었다. 형을 돌볼 수 있는 실질적 인력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는 ‘가끔은’ 그렇게 불공평한 돌봄의 굴레에 반항하고 싶었다. 왜 나만 고통받아야 하는가. 그렇지만 그는 형을 위해 자신의 열린 미래를 버렸다.

가끔씩 그는 기자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정신장애인이 사건사고를 일으킨 뉴스를 링크해 보내는 식이었다. 기자는 “이 사람은 정신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보내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2년 전 어느 날,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술을 한잔 사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부천의 어느 허름한 호프집에서 우리는 만나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를 잊고 있었다. 가끔, 기사를 링크해 보내기는 했지만 우리는 자기만의 삶에 익숙한 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불현듯 기자는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언젠가 인터넷 정신질환 관련 카페에서 알게 된 30대의 여성이 그렇게 기자에게 글을 보내온 적이 있다.

“아빠와 엄마는 암에 걸려 있고 남동생은 정신장애인이에요. 저는 엄마와 아빠가 약을 먹을 시간이면 약을 챙겨야 하고 남동생이 재발하면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구급차를 불러야 했고 동생이 정신병원에서 얻어맞아 얼굴에 멍이 들어있는 걸 확인하고도 무서워서 병원 측에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아빠가 항암 치료로 아파서 잠을 못 자면 저 역시 밤을 꼬박 새워야 해요. 왜 나만 이렇게 고통당해야 하는 걸까요. 그래서 엄마가 잠시 정신이 돌아오면 떼쓰듯이 말해요. 우리도 좀 공정하게 일을 나누자고. 왜 나 혼자만 이 모든 것들을 짊어져야 하냐고. 그렇지만 알아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게 아파요.”

그러면서 그가 생각났다. 그 역시 가족 전체가 암과 조현병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고통을 왜 나 혼자만 져야 하냐고 그는 분명 하늘에다, 혹은 운명에다 물었을 것이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조현병 가족을 둔 집안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같이 사는 가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가족이 겪는 고통이 상상하기 어렵다”는 그 이야기도 쓸쓸하게 듣고 싶었다.

김영희(47) 씨를 만난 건 지난 14일 <마인드포스트> 사무실에서다. 그는 현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형은 병식(病識)이 있습니까.

“어느 정도 있습니다. 약이나 병원 외래를 거부하지는 않아요. 증상 조절이 완벽하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옛날보다는 좋아졌어요. 약물이나 꾸준히 치료받는 걸 거부 안 하기까지 10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안인득 사건이 떠올랐어요. 당시 친형은 동생 안인득을 입원시키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보호의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행정·응급입원이 모두 거부당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인간적으로 너무 안타깝고요. 안인득 씨가 가해자인 건 맞아요. 그런데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국가가 충분한 서비스를 못 해줬기 때문에 그래요. 안인득 씨 보호의무자가 노모(老母) 한 분인데 요양병원에 계셨어요. 민법상 보호의무자는 같이 사는 사촌 이내예요. 형제는 2촌인데 안인득 형님이 안인득과 같이 살지 않아서 보호의무자가 될 수가 없었죠. 어머니는 같이 살든 따로 살든 보호의무자가 됩니다. 그렇지만 요양병원에 있었어요. 저의 집만 해도 부모님이 고령이어서 보호의무자의 의무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안인득 사건은 지난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거주민인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편집자 주)

-선생님은 안인득 사건을 분석하면서 보호의무자가 있는 경우 경찰이 소송과 민원을 우려해 응급·입원을 꺼리게 만드는 제도가 촉발시킨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시면요.

“현 제도에서 핵심적 부분이었어요. 경찰 신고가 수차례 있었고 따로 사는 (안인득의) 형이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시스템이 안 움직였어요. 시스템이 무늬만 있지 작동이 안 돼요. 경찰은 보호의무자가 있을 때 함부로 안 움직입니다.

무연고자이거나 신고 현장에서 흉기를 들었다거나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때에는 그나마 개입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개입을 안 해요. 잘못했다가 가족이 따지고 들기도 하고 기능이 남아 있는 당사자가 항의를 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어요. 잘못하다가는 혼나고 징계받을 수도 있거든요. 경찰이 사명감도 있겠지만 사명감만으로 하기에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겁니다.”

-자·타해 위험이 없어도 재발 경고 징후가 나타나면 준정신과적 응급으로 판단해 환자 동의 없이도 전문가 판단으로 비자의입원을 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경우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한 부모와 유치원생 아이가 있는데 부모는 숨지고 아이만 살았다고 합시다. 그 아이를 검사해 보니까 교통사고의 영향은 아니지만 소아백혈병이 발견됐다고 쳐봐요. 그럼 아이에게 치료를 받아야 살 수 있으니 치료를 받자고 말해요. 그런데 아이가 주사 맞는 게 무서우니까 싫다면서 거부합니다.

그 경우 강제적이고 비자의적으로 치료를 하는 게 인권입니까. 아니면 아이 말을 따라서 치료를 안 하는 게 인권입니까.”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아이는 미성년이니까 입원시켜 치료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권 침해 아닐까요.”

-글쎄요.

“그 경우 자·타해의 위험도 없잖아요. 질병이니까. 인권 침해 아닐까요.”

-애매하네요.

“비자의로라도 치료를 해야 된다? 아이가 중고등학생 정도면 저도 답변하기 곤란해요. 하지만 네다섯 살 아이가 치료를 거부해도 치료가 잘 될 가능성이 있으면 비자의적 치료가 아이를 위한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서 의식이 없어요. 주변에 마땅한 보호자도 없고. 응급상황이어서 빨리 결정을 해야 돼요. 이 분은 미성년자도 아닌 성인이에요. 치료를 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80%라 쳐요. 의학이 신(神)이 아니니까 20%의 확률로 잘못될 수도 있어요. 이런 경우 위험성이 있는데도 치료에 들어가야 합니까?”

-치료 들어가야겠죠.

“인권 침해 아닌가요. 본인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혼수상태인데요.”

-그때는 예외적으로 입원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조현병으로 대표되는 중증정신질환자들 중에는 병식이 생겨서 잘 관리하는 분들도 많아요. 조현병은 스펙트럼이 다양해요. 약을 끊으면 재발 위험이 높아져요. 설령 끊지 않아도 재발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병식이 사라져서 직접적 자·타해까지는 안 갔지만 그 상태로 두면 분명 더 위험한 상태로 가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본인이 거부해요. 설득을 해봐도 안 되고. 그럼 당신은 성인이고 자격 조건이 있으니 그렇게 놔둡시다라고 하는 게 과연 인권인가는 생각을 해 봐야죠.”

-정신질환자의 경우 응급상황에서도 ‘국가의 공적 이송 시스템’이 부재하다고 했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아예 없는 건 아니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의 작동이 안 됩니다. 제 경험이 있어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되던 해인 2017년 11월 정도였어요. 형이랑 공원에 갔는데 형이 지나가던 행인이 자기네들끼리 얘기하는 걸 자기를 욕한다는 환청을 듣고 주먹을 날리려는 걸 간신히 제가 막고 집으로 데려와 설득을 했죠. 그런데 완강히 입원을 거부해요. 명백한 정신과적 응급상황이거든요.

그때 처음부터 사설구급단에 연락을 한 게 아니에요. 112로 연락하니까 119로 연락을 하라고 해요. 그런가 해서 119로 전화하니까 자기들은 그런 업무를 안 한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112로 신고하래요. 제가 여기저기 다 거부당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까 그쪽에서 한숨을 쉬는 거예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정말 가고 싶지 않은 출동이라는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그럼 112와 저희가 같이 출동하겠습니다라고 해요.

왔는데 상황을 설명하고 형이 있는 방에 가서 대화를 시도하려 했는데 형이 심리적으로 위축돼서 말도 안 하고 표정이 굳어 있어요. 어머니는 속상해서 우시고. 경찰이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서나 진단서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소견서건 진단서건 일단 병원에 가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없다. 형 정신장애 등록증도 보여주고 과거에 이런 전력들이 있다고 설명했어요. 역시나 안인득 사건 때처럼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경찰은 현장에서 흉기를 들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언을 하면서 대들지 않는 이상 안 움직여요. 그래서 철수하려고 하는데 그냥 가면 저와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어요. 최후 수단으로 사설이송단에 연락을 했는데 이들은 119처럼 10~20분 안에 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 40~50분 걸렸어요.

제가 경찰에게 일단 불렀으니 사설이송단 올 때까지만이라도 있어 달라고 했어요. 안 그러면 가족들이 큰 화를 당할 수 있다고 사정을 했어요. 그러니까 경찰이 다른 출동도 나가야 하는데 하면서 그냥 있어주더라고요. 이송단 오자말자 자기들은 바로 철수해요.”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조현병을 다른 정신질환과 분리해서 특별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신질환자와 범죄율은 말이 많지 않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나 당사자들은 정신질환자들의 범죄율이 비정신질환자보다 15분의 1 정도 낮다고 말을 해요. 거짓말은 아니죠. 그런데 그 정신질환자 범죄율은 모든 정신질환자를 다 분모로 한 겁니다.

정신질환이 조현병만 있는 게 아니고 조울증, 우울증,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 수십 가지가 돼요. 그걸 다 포함하는 거예요. 보건복지부 정신질환자 통계를 보면 흡연자도 니코틴 사용중독으로 들어가요. 분모를 엄청나게 키우는 거죠. 담배 피우는 흡연자까지 정신질환자로 넣는다는 걸 일반인이 몇 퍼센트나 알까요.

그렇게 분모를 최대한으로 키워놓은 다음에 범죄 건수라는 분자를 넣고 계산하니 낮죠. 제가 경찰청 과학수사대 논문이나 해외 사례를 조사해봤는데 강력사건의 경우 정신질환자 중에서 조현병을 가진 분들이 절대 다수에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조사해 보니 그래요.”

-조현병 환자로만 조사하면 강력사건이 많다?

“단순폭력이 아니라 살인 살인미수 방화 이런 강력사건으로 따지면 조현병 환자들의 강력범죄율이 상당히 높은 건 부인할 수가 없었어요. 조현병 당사자가 강력사건을 일으키는 건 예외 없이 적절한 치료를 못 받았거나 임의로 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한 경우들이었어요."

-선생님은 정신장애를 생물학적 모델로만 접근하는 겁니까.

“그렇지 않아요. 다만 이런 건 있어요. 신체질환은 팔이 부러지면 엑스레이 찍으면 딱 보이니까 골절이라는 걸 그냥 받아들이잖아요. 그런데 정신질환은 생물학적 검사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떤 경우 정신질환은 실체가 없고 의사들이 만들어낸 거라고 하잖아요. 조현병 진단에서 증상이 있으면 (의사는) 임프레션(impression·인상)은 올 수 있어요. 하지만 진단은 함부로 안 해요.

조현병은 최소 진단 필요 기간이 6개월이에요. 신체질환에 비해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조현병을 신경전달체계의 문제로 보는 생물학적 모델도 있는데 엑스레이처럼 눈에 딱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의사가 엿장수 마음대로 진단을 내리는 거 아니냐는 공격을 받아요.

저는 조현병을 생물학적인 모델로만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부 집단에서처럼 발병에 있어 생물학적 부분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향후 뇌과학이 발전하면 생물학적 취약성이 드러나겠죠. (다른 신체질환처럼) 정신질환을 생물학적 검사로 판단하는 게 중장기적으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도 조현병을 생물학적 뇌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습니까.

“진단 기준에 생물학적 요소가 들어간다고요? 현재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DSM(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생물학적 검사는 참고 사항이지 진단 기준에는 생물학적 검사 기준이 들어가지 않아요. 환청, 망상 등 현상학적인 부분이 들어가죠.”

-정신장애인이 사건을 일으키면 그 기사를 링크해서 자주 기자에게 보내주셨어요. 정신장애인이 이토록 위험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였습니까.

“그런 게 전혀 없는 건 아닌데요. 다만 <마인드포스트>나 당사자 단체들이 대검찰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 자료를 인용하잖아요. 저는 그게 거짓은 아니지만 조현병이라는 카테고리만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르다고 봐요. 불편한 진실이죠. 불편한 진실도 진실이거든요. 정신질환에 흡연자까지 포함하는 그런 통계를 인용하는 게 거짓말은 아니지만 통계는 마술이에요. 얼마든지 마사지하듯이 인식을 왜곡할 수 있어요.

그럼 조현병과 관련한 사건이 났는데 정신질환자 범죄율이 비정신장애인 범죄율보다 훨씬 낮다는 것만 강조해서 효과가 있겠는가 생각해 봐야죠. 불편한 진실도 알릴 건 알려야죠. 1950년대까지 조현병 치료제는 없었습니다. 치료 방법이 없었어요. 그나마 치료제가 나온 게 1960년대에요. 혁명이었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정형·비정형 약물이라고 해서 2세대 약물까지 나왔죠. 부작용도 적어지고 효과가 좋아졌어요.

그러니 사건사고를 줄이자고 무조건 비자의적으로 장기입원을 시키자는 게 아니에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예방되고 그들도 지역사회 일원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조현병의 힘든 부분이 초발이나 재발 때 병식이 없다는 거예요. 어렵기도 하고 딜레마이기도 해요. 저는 인권도 지키면서 적절한 커뮤니티케어를 받으면서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안이 뭘까를 생각해요.

치료라는 게 입원만을 말하는 게 아니죠. 외래도 있고 장기지속형 주사제도 있고 다양해요. 그게 당사자들의 인권도 지키고 사회안전망도 지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거겠죠.”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강제입원을 어렵게 해서 정작 필요한 환자가 입원을 못 하게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상당 부분 맞다고 봅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들어요. 저희 형님 같은 경우는 그때는 비자의입원이 상당히 필요한 상황이었거든요. 제가 형님하고 같이 살기 때문에 보호의무자가 돼요. 부모님은 두 분 다 고령이신데다 아버지는 암 환자고 어머니는 청각장애에 한쪽 눈이 실명이에요. 저 빼놓고 세 분 다 장애인이에요. 누나는 8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비교적 젊은 사람이 보호의무자가 돼서 같이 사는데도 (비자의입원이) 잘 안 되잖아요. 공적 이송 시스템도 안 되고 그나마 병원 입원도 24시간 상주하는 시스템이 있어서 간신히 되는 거고요.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그래서 입원이 필요한 분들은 입원 치료를 적절하게 받고 대신 불필요하게 사회적 입원으로 빠지지 않도록 하고 퇴원 이후를 준비하게 해야죠.

사회복지사나 정신건강전문요원, 의사가 한 팀을 이뤄서 병원의 당사자와 함께 퇴원 계획을 함께 세워야죠. 거기에 복지팀이 합류해서 커뮤니티케어를 해야죠. 현재는 입원이 필요한 분들도 입원이 힘들어요. 제가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들어온 게 지난해 봄이었는데 보면 부모를 때려서 다치게 하는 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입원이 너무 힘듭니다.”

-정부가 보호의무자 제도를 고집하는 건 환자의 병원비를 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해 그거라고 봅니다.”

-응급입원·행정입원 비용을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는 곳도 몇 군데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게 얼마 안 돼요. 안인득 사건 이후에 몇몇 지자체에서 했고 지금은 응급입원 법안 발의됐고 행정입원도 국회 발의가 논의 중인 걸로 압니다.”

-보호의무자가 있어야 병원 치료비를 내준다는 그런 치밀한 국가의 계획인가요?

“재정적 부담이 가장 큰 원인이죠. 우리나라 문화는 가정 내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공권력이 개입하는 걸 극도로 꺼립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을 엄청 심하게 해도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면서 관여를 안 해요.

얼마 전에 국민적 공분을 샀던 정인이 사건 있죠. 그때도 경찰이 잘 안 나선 이유가 나섰다가 괜히 당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래요. 시스템도 부실하고요. 더 깊숙한 이유는 가족 내 일에 왜 공권력이 들어가야 하느냐는 뿌리 깊은 문화 때문이에요.”

-정신건강복지법은 명목상으로는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기결정권은 소중합니다. 그런데 아까 말한 소아백혈병에 걸린 유아를 치료하는 것은 좁게 말해서 자기결정권을 무시한 거잖아요. 그 아이는 설득을 해도 싫다고 반대했잖아요. 자기결정권은 소중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절대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오히려 더 근본적인 인권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다고 봐요.

헌법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도 전쟁이나 긴급사태에서 일부 제한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자기결정권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할 불가침의 성역은 아니죠.”

-정신건강복지법을 반대하는 인권 단체들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복지는 선언적으로만 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바꿔야죠. 그런데 디테일을 봐야죠.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의 비자의입원 요건이 세계적으로 가장 타이트(엄격)한 거 같아요. 정신건강복지법 상 비자의입원 요건은 치료의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요. 그러니까 두 가지에 and를 붙이는 거죠.

그런데 유엔은 and가 아니라 and/or이에요. and로 두 가지 위험 요소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법에 명시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그 부분을 개정해야 해요. 또 정신건강복지법에는 복지가 들어가지만 들여다보면 정말 선언적 의미만 있어요.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시행령, 시행규칙 보면 더 휑해요. 예산 들어가는 사업도 거의 없어요. 장애인복지법 보세요. 정신건강복지법의 복지하고 천지차이에요. 두 가지를 바꿔야 합니다. 응급 상황이나 준응급 상황에 대한 요건을 다른 나라들처럼 and/or로 완화해야 돼요. 그 다음에 복지를 강화하고 커뮤니티케어를 거기에 채워넣어야 해요. 또 자조활동도 지원하고 보호의무자 제도도 폐지해야죠.”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응급입원·행정입원은 사건 현장에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현저한 정신병적 징후를 갖고 있는 것에 더해 자타해 위험이 명백하게 있을 경우,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다. 외국에서는 정신병적 징후 혹은 자·타해 위험 중 하나만 충족해도 입원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편집자 주)

-보호의무자를 폐지하면 어떤 게 대안으로 들어와야 합니까.

“별도로 뭘 안 만들어도 큰 상관은 없고요. 아니면 법적 대리인 제도 같은 게 있잖아요. 치매 어르신이라든가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성년후견인제도가 만들어진 게 몇 년 넘었죠. 그럼 정신장애인에 대한 후견인 제도를 활성화시키자는 거죠. 보호의무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공공후견인들이 뭔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겁니다.”

-사법입원제를 주장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권 때문입니다. 비자의입원은 사실상 인신구속의 효과를 가지고 있어요. 어떤 공간에 강제적으로 가서 매여 있게 되잖아요. 인신구속이죠. 헌법도 강제적 인신구속에는 법률에 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잖아요. 구속영장 청구하고 실질심사 받고 그 다음에 판사가 혐의자에 대해 구속 필요 여부를 결정하잖아요. 문명 국가에서는 당연한 거죠.

인신구속은 최종적으로 법에 의해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돼요. 의사들이 치료의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을 종합적으로 따진다고 하더라도 한 번 더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해요.”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탈원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된다면 선생님은 이에 대해 반대할 겁니까.

“탈원화에 예산과 인력을 얼마나 투입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지금 보면 예산 투입과 인력 투입이 거의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경기 화성시에서 정신질환자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규모가 너무 작아요. 저는 커뮤니티케어할 때 대량으로 탈원화하는 거 찬성합니다. 그런데 그만큼 국가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라는 겁니다.

커뮤니티케어가 중요한 게 주거잖아요. 텐트에서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주거라는 게 한두 달만에 바로 만들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최근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에도 가족협회에서 취지는 공감하지만 보류해 달라고 했던 건 준비 없이 하면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죠.”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정신병원의 병상 수와 거리 등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코로나19로 정신병원에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다수가 사망하면서 정부가 입원실을 기존 10병상에서 6병상으로 줄일 것과 침대 간 이격 거리도 1.5m로 넓히도록 했다. 그러나 정신의료 단체에서는 ‘대규모 탈원화’가 준비 없이 진행될 수 있다면 이의 시행을 유예하거나 재고해 달라는 의견을 정부에 냈다. 정신장애 인권단체는 이 시행규칙의 즉각적 실행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편집자 주)

-정신장애 운동 단체에서는 그동안 의료계는 뭐했냐라는 하는 질문을 합니다.

“의료계에서 커뮤니티케어 탈원화를 분명하게 반대한 적은 없지 않나요. 여쭤보고 싶네요.”

-시행규칙에 의료계가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보류해 달라고 했어요.”

-정신보건법 시행되고 지난 20년 동안 의료계 당신들은 커뮤니티케어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들을 하나도 만들지 않다가 이제 와서 탈원화가 우려된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죠.

“결정권은 의료계가 아닌 정부가 가지고 있어요. 정신과 전문의가 농장을 운영하면서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지만 개개인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뚜렷해요. 그들이 법, 제도, 예산, 인력을 만들어낼 수가 없잖아요. 그럴 때 의사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반대한 적은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고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입니다. 부모님을 대신해 혼자 친형을 돌보는 듯합니다.

“아버지는 2년 전에 청력이 떨어졌고 악성림프종 암이 있어요. 부모님도 같이 사니까 조금씩 도우시죠. 그래도 아무래도 노인들보다 제가 주보호자라고 볼 수 있죠.”

-부모는 정신장애인 자식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는 많은 경우 버립니다.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농경사회에서 도시 핵가족화로 변해가고 있잖아요. 일인 가구가 30%를 넘어요. 내팽개치거나 버린다기보다는 본인들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래요.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형제자매가 정신장애인을 방치하고 버리고 악해졌다고 보기보다는 사회 구조가 바뀌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 친형의 돌봄을 나 혼자서 져야 하는가에 대해 노여움과 원망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있었죠. 지금도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양가감정이죠. 어떤 사람이 미우면서도 애정이 있고 하잖아요. 부부 사이도 서로 싸울 때 밉다가도 나중에 화해하면 좋듯이요. 저희 형은 큰누님이 고3 때일 때 발병했어요. 고3 되면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기잖아요. 집에서 텔레비전도 맘대로 못 보고.

그렇게 형님이 발병하고 나니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요. 충격도 엄청나고요. 제가 고3 때(1992년)는 형님이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켰어요. 살인미수를.”

-정신장애인의 돌봄을 가족이 모두 떠안아야 하는 현 정신보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국가에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요.

“국가책임제입니다. 국가책임제는 환자의 인권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눠야 해요. 첫 번째는 사법입원제. 비자의입원에서 법원이 인권의 최종 보루이기 때문에 법원이 판단해야 해요.

두 번째는 커뮤니티케어입니다. 가족한테만 맡기지 마라. 가족이 국가책임제로 가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 분들은 그러면 가족들은 전혀 신경 안 쓰고 방치하는 거냐고 오해해요. 다 국가에게만 미뤄둔다고 생각하는 거죠.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할 때도 그렇게 항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고 국가에게만 모든 것을 미루겠다는 건 아니고요. 다만 도움이 가족한테도 절실히 필요하다. 가족에게만 미루는 건 너무 말이 안 된다. 적극적으로 국가가 도와달라는 겁니다.”

-선생님의 형은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 상태 이대로 현상 유지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완전히 회복되면 좋죠(웃음).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의대를 나왔고 정신병리도 배웠거든요. 완치라는 게 발병 이전 수준으로 가는 걸 말하는데 저희 형도 그렇고 현대 의학 수준으로는 치료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있느냐는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의학은 느리지만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약물도 그렇고요.

요즘은 예방이나 조기발견 등에 국제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성과도 나오고 있어요. 그렇다면 완치라기보다는 회복 가능한 쪽으로 갈 수 있게 저도 노력하고 형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회복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요.

“일상생활을 할 때 어려움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거죠. 어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예전에는 100이라는 도움이 필요했다면 점점 나아져서 50, 30, 20 정도의 도움만 있어도 생활을 할 수 있는 거겠죠.”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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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형이 사고를 칠까 봐 방문을 잠그고 잔다고 했습니다. 기자 역시 병증이 심할 때 ‘내가 가족을 해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몸을 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렇게 잠그고 지내십니까.

“제 방을 잠그고 잘 때가 많습니다. 특히 형님이 상태가 조금 안 좋아지는 것 같다 할 때는 더 많이 잠그는 편이고요. 안 잠그고 잘 때도 있지만 형님 상태가 조금 안 좋아진다 싶으면 잠급니다.”

-보호입원을 시키려면 3개월 이내의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언제 재발할지 몰라서 매 3개월마다 새로 발급해 둔다고 했습니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발급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입원이나 치료 쪽 관련해서는 보호의무자 제도가 정말 문제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요.”

-문제의 핵심은 보호의무자 제도다?

“네. 일본은 그 보호의무자 제도가 몇 년 전에 폐지가 됐어요. 웬만한 나라들 중에서 정신장애인의 비자의 치료에서 보호의무자 제도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힘들 때 형을 정신요양시설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당연히 생각해 본 적 있죠. 그런데 1980년대나 90년대에 정신요양원의 절대 다수가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습니다. 저도 너무 힘들고 그럴 때 당연히 생각해 봤지만 열악한 곳에 형을 보내는 게 꺼려졌어요. 현실적으로는 거기도 공짜가 아니니까 돈이 듭니다.

그 전에도 어려웠지만 형님이 사고를 쳤을 때는 합의금하고 변호사 선임비용 대느라고 거액의 돈이 나갔어요. 빚도 지고요. 매달 정신요양원에 보낼 돈, 그거 너무 힘들어서 그것도 한가지 이유이기도 합니다.”

-형은 몇 번 정도 입원했습니까.

“다섯 번은 넘는 거 같아요. 지금 33년 정도 됐는데 그걸 고려하면 엄청 자주 보냈다고 말하기는 그렇죠.”

-선생님은 형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겁니까.

“아무 일도 못한다기보다도 집에서 재택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고 있어요. 직장을 다니면 형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제가 회사 눈치 안 보고 달려와서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고 있어요. 지금 저는 전업 투자자입니다. 주식을 포함해서 금융 관련 투자를 하고 있어요.”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 (c)마인드포스트.

-가톨릭대 의대를 나왔습니다. 왜 의사 되기를 포기했습니까.

“전부는 아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형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인턴, 레지던트를 한다고 합시다. 그럼 인턴, 레지던트를 하면 거의 집에 못 가요. 형님 상태는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았거든요. 양성 증상이 엄청 심했어요. 가족한테 폭력 성향을 꾸준히 보였고요. 입원을 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산정특례도 안 됐고 돈 때문에 부모님이 입원을 포기했던 부분도 왕왕 있었고요.

그러다보니까 제가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 부모님조차 변을 당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꼭 양심을 팔지 않더라도 의사가 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잖아요.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나는 살지 몰라도 부모님이 변을 당할 수도 있는 거예요. 또 결혼을 하면 제가 아내에게 부모님이나 형을 내 집에서 같이 케어하자 그러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힘들겠죠. 그런 이유였어요.”

-의사 국가고시(국시)는 치룬 겁니까.

“본과 4년 때 의사의 길로 가는 걸 접었어요. 그냥 올림픽 정신이라고 하죠. 국시에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둔다고 생각했어요. 응시조차 안 하면 부모님이 졸도하실까봐.”

-아쉽네요. 제가 봤을 때.

“뭐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국시 치고 인턴하고 레지던트하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국가책임제가 그 당시부터 됐었다면 제가 그렇게 포기를 안 했겠죠. 의대 다닐 때가 기억나요. 해부학 실습을 하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는 교통 정체도 많아서 집에 들어오면 밤 10시, 11시 이럴 때도 꽤 있었거든요. 제가 현관문을 열어요. 그럼 제가 계단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었는지 모르겠지만 여는 순간 형님이 발로 날라차기해요. 환청 망상 때문에.

유독 저한테 더 심했습니다. 제가 손아래 막내라서 그런지 몰라도. 형님이 발병했을 때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제 삶이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했던 적은 형이 발병했던 그 시절, 중학교 2학년 때까지였어요. 늘 마음에 무거움이 있었어요. 여러 가지 피해도 봤고요. 언어적이고 감성적인 폭력도 지속적으로 당해왔어요.

의대에는 '금수저'들이 많아요. 저는 서울에서 제일 싼 동네에서 살았는데 중고등학교 때도 아이들 부모님은 자영업이나 육체노동, 공장, 하위 공무원 정도였어요. 화이트칼러 직업군의 부모를 둔 자녀들과는 엮일 일이 없었죠. 그런데 의대에 들어가 보니까 부모님이나 친척이 의료계 약사인 쪽이 50% 되더라고요. 집권당 최고위원의 조카, 강남 부촌(富村)에 사는 의사, 변호사 이런 식이에요. 대부분이 그래요.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 중에는 남학생의 경우 가끔 '흙수저'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학생들은 대부분 상류층 애들이에요. 심리적으로 조금 위축되기도 했어요.”

-국시 응시하고 계속 의사의 길을 갈 걸 하는 후회는 남지 않습니까.

“후회해서 뭐합니까. 자꾸 미련 가지고 후회하는 게 제 정신건강에도 별로 좋은 거 같지는 않아요(웃음).”

-힘겹고 외로울 때, 아플 때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마음이 아프다는 거겠죠. 제 취미 중 하나가 영화감상입니다. 그 다음은 여행이고요. 물론 형님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제가 집을 비우면 위험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상태에서는 저 혼자 며칠간 여행을 다녀올 때가 있어요. 저는 비행기를 30대 중반에 처음 타봤어요. 어려서부터 여행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지금은 해외도 여건이 되면 가요. 평소 생활하던 거주지 인근에서 벗어나서 바람 쐬고 온다고 그럴까요. 영화를 좋아하는 건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관조할 수 있어서 그래요. 여행에 비해서는 영화가 돈도 덜 들어서 영화관을 많이 가는 편이죠.”

-하실 말씀이 더.

“정신질환 당사자의 인권과 사회안전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상호 같이 갈 수 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고요.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법과 제도를 합리적으로 바꿔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리고 편견을 없애고 사회안전도 같이 잡을 수 있는 게 불가능한 꿈이 아니죠. 이미 다른 곳에서는 현실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죠. 이게 제 꿈입니다.”

지나가듯 “형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가 단호하게 “예”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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