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인지능력보다 인지 태도가 중요…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문제 해결 능력 키워야”
[당사자 칼럼] 노희정 “인지능력보다 인지 태도가 중요…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문제 해결 능력 키워야”
  • 노희정
  • 승인 2021.11.2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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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ocarlos.usp.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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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1일 SBS ‘희망 모금’ 특별 생방송에서 시각·청각 복합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젊은 청년의 사례가 소개됐다.

의사소통이 안 되고, 소리를 지르면서 감정을 표현하고, 나이에 비해 작은 몸짓으로 방바닥을 뛰어다니다가 다시 기어다니곤 하는 행동은 마치 다른 장애를 더해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모두 현재의 모습과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헬렌 켈러처럼 어머니와 선생님이 손바닥에 써주는 말과 점자를 배워서 글을 익혔고 남들처럼 정규 교육 과정 공부를 해냈고 한때는 유학까지 꿈꿨던 그가 실의와 절망에 빠져 하루하루를, 더 멀리는 인생 자체를 버려버린 듯한 모습으로 변해버렸고 퇴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번도 정밀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던 그가 소아재활과에서 받은 검사에서 희망적인 결과를 듣게 된다.

그가 다른 발달에 비해 인지 능력은 잃지 않고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치매나 정신질환뿐 아니라 다른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도 재활에 있어서 인지 능력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장애로 인해 인지 능력이 발달되지 못하거나 인지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인지 능력’이란 교육심리학에서 연구된 것으로 인간이 지식을 가지는 능력, 그리고 그 지식을 사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여기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이해하고 사고하고 비판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창의력까지 인지 능력의 범위는 확장된다. 치매 환자, 정신질환, 약물과 알코올중독 모두가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일찍이 인간이 자신을 판단하는 범위에 대해 주목했다.

인간에게는 자신도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와 달리 부정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메타 인지 능력’은 심리학자 존 프라벨이 1970년대에 창안한 이론으로 자기의 생각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하며 기억력과 판단력 같은 개인의 정신 상태가 상식적으로 정상 범주에 속해있는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도 사용된다.

이러한 메타 인지 능력에 관한 꾸준한 연구로 인해 1990년대에 처음으로 조현병 환자에게 클로자핀을 처방함으로써 메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발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필자는 정신질환이라는 것에 대해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당시엔 정신질환에 대한 정확한 인식조차 없었고 지금처럼 정신질환이나 심리학에 관련된 책도 거의 없었다. 일반 독자들에게 치료했던 환자들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거나 스트레스 관리, 건강한 인생관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룬 몇몇 정신과 의사의 책이 전부였다.

그러던 차에 자신이 자폐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철저히 사회와 격리돼 나름의 규칙과 질서에 순응하면서 은둔하는 환자의 모습을 담은 영화 ‘레인맨’.

어느 날 갑자기 발작 증세를 나타낸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자신이 정신과 의사임에도 정신병원을 전전하는 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자전 소설 ‘천국엔 새가 없다’.

정신질환과 심리학에 관한 다양한 분류와 유형, 증상과 치료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담은 디어도어 루빈 박사의 ‘절망이 아닌 선택’이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쏟아졌다.

공감과 더불어 내가 지닌 병, 나에 대한 이해를 충격과 함께 발견할 수 있었고 그 후 대형 서점의 정신의학 전문 서적 부스에서 정신의학 전문 출판사 ‘하나 의학사’에서 출판된 책들과 전공 서적들을 뒤적였다.

‘싸이빌’ ‘처음 만나는 자유’ 같은 정신병원, 정신과 환자가 등장하는 영화 비디오 테이프만 찾아서 봤고 나중에는 심리학 분야의 책만 읽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정신의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어도 병은 절대 좋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힘들고,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던 입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얻게 된 결론은 모두 내가 가진 질환의 부정적인 측면만이 부각돼 드러났을 뿐이라는 점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하주원 교수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결코 자존감은 높아지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론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고 실행하는 행동에서 자신감을 얻게 되고 이것이 자신의 가치, 자존감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지 능력이란 맞물려진 톱니바퀴와 같아 지식뿐만 아니라 사고, 문제 해결 능력 등이 골고루 조화돼야 비로소 형성되고 인지 치료와 인지 재활이 가능해지며 회복의 요소가 되는 것이었다.

인지 능력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인지의 태도이다.

스스로를 귀히 여기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없이는 근원적인 치료가 되기 만무하며 행복 지수는 영원히 바닥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현재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인지는 자긍심과 긍정이 동반되어야 하고 이러한 인지 능력은 당사자들의 인권 의식과 정체성을 견고하게 하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인지 능력이 갖춰져 있다 해도 그것이 부정과 회의의 색깔로 표현된다면 인지 능력은 자칫 ‘식자우환’. 오히려 치료와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지에 대한 태도’

디어도어 루빈이 말한 ‘절망이 아닌 선택’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망이 아닌 해방’이 될 때 당사자들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지 능력은 비로소 값지고 빛나는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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