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바람,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캐릭터 창작하는 마음
눈물바람,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캐릭터 창작하는 마음
  • 손성연 기획자
  • 승인 2021.12.20 2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캐릭터 창작 워크숍, 당사자의 생상한 경험에 대한 가치의 회복
예술적 가치보다 삶이 중요, 지칠 때 거리두기 하며 서로를 위로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된 ‘광기’ 개념은 정신의학으로 환원될 수 없어
사진=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제공. ⓒ옥상훈.
사진=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제공. ⓒ옥상훈.

우리들은 캐릭터를 창작했다. 2021년 4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참 많이 울었고 참 많이 웃었다. 우리 몸과 마음에 그 기록들이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남았다.

왈왈의 캐릭터 ‘해인’ <엄마, 나랑 그네 탈래?>

연우의 캐릭터 ‘로운’ <그곳에 서서>

산희의 캐릭터 ‘우주’ <서른두 걸음>

성연의 캐릭터 ‘소한’ <미친 여행 : 헤어지자>

정신장애인 당사자 창작자와 비정신장애인 창작자는 ‘캐릭터’란 매개를 통해서 관계를 구성했다.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을 관람할 때 사람들은 캐릭터를 가장 먼저 얘기한다. 사실상 캐릭터와 캐릭터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캐릭터는 창작자의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정신장애인을 공개 모집하기 전, 캐릭터 창작 과정을 구성하는 것을 준비했다. 캐릭터를 창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서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력서> <라이프 스토리>, <캐릭터 카드>, <캐릭터의 독백> 4월부터 6월까지 두 달간 창작해나갔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창작자를 공개 모집했다. 공개 모집을 하기 위해, 고유한 선과 함께 포스터를 완성했다. 그 포스터를 보고 선택해 준 분들과 대화를 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을 참고했다. 대화를 한 후 연우, 왈왈, 산희 총 세 분을 만났다. 서로를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동료가 되어갔다.

캐릭터의 이력서는 현재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정리하는 과정이다. 연우는 최초의 기억으로부터 현재까지 아주 정확하고 세심하게 기억하셨다. 그래서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미지들이 펼쳐졌다.

연우는 ‘이로운’이라는 캐릭터를 창작했다. 이로운은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회사를 옮겨 다녔다. 식물원에 취직했을 때 치마 정장을 한 복장을 요구해 불응했다. 상담원으로 일했을 때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똑같이 화를 내서 갚아줬다.

잡지회사에서 기자로 일했을 때도 선배의 갑질에 폭발해 정당하게 분노를 했다. 이것 외에도 다양했으나 이 부분을 모아서 보여주는 이유는 이로운의 캐릭터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로운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분노한다. 이런 식으로 함께 성격을 발견해 나갔다. 사회적인 차별과 억압에서 꿋꿋하게 싸우고 있었다.

로운, 아슬아슬하게 겨우 내렸다.

술 냄새 풀풀 나는 아저씨, 로운을 치고 지나간다.

아프다, 로운, 분해서 아저씨 앞을 가로 막는다.

로운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무례하고 뻔뻔해요. 뭐! 미 친 년? 그 많은 욕 중에 왜, 왜! 하필 나한테 그런 욕을 하냐고! 사과해, 당장 사과 해.

이런 식으로 성격이 반영되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로운의 매력은 펭수처럼 강자한테 강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왈왈은 조현정동장애에 관해서 강의를 해주셨다. 함께 참여하는 창작자들이 서로의 장애를 당사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왈왈은 계속해서 자신의 정신장애를 설명해준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정신장애인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정보를 생산해낸다.

왈왈은 이에 대응하고 있다. 왈왈이 창작한 캐릭터의 슬로건은 ‘쓰러져도 언제나 일어난다!’ ‘반항하는 장애인!’이다. 그래서 이름이 ‘해인’이다. 바닷사람으로 파도처럼 쓰러졌다가 일어나길 반복한다. 해인이 엄마에게 그네를 타자고 제안하는 것은 이런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인 엄마 있잖아 나 조현정동장애래. 정동(情動)은 한자야. 마음의 작용, 흔들린다. 마음 이 막 움직이는 거야. 한자 뜻 되게 예쁘지? 조증이 오면 일을 벌려 무리하게 약속 을 잡거나, 후원을 여기저기다가 막 해. 내가 최고라서 머릿속에 계산이 확확 돌아, 뭘 해도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해. 뭐랄까? 약간 연인 같아.

해인의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된 정신장애는 ‘광기’라는 개념을 정신의학이 감히 뇌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 라이프 스토리를 작성하면서 많은 눈물과 웃음이 있었다. 라이프 스토리는 캐릭터의 과거를 살펴보는 행위다. 현재의 상태를 적은 뒤 과거에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 원인 찾기는 과거를 새롭게 보게 한다. 과거를 새롭게 본다는 것은 아프고 두려운 일이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들이 과거를 기억하면서 많이 울었다. 이미 정리되거나 무뎌졌던 과거의 사건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해진다.

과거의 경험에는 실수와 실패로 가득하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들이 힘들어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었다.

예술적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결국 삶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지쳤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산희가 만든 우주란 캐릭터에 대해서 쓴 것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사회에서 평범해지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재단하면서, 갑자기 섭식장애와 공황장애가 찾아온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다가 달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유로워진다.

우주 우주야, 이러지 마. 이상해, 그쪽으로 가지 마. 그런데 벌써 정장을 입고 냅다 그 사 람들을 쫓아 뛰고 있더라고요. 와 대박! 뛰는데……. 숨이 편하게 쉬어지더라고요, 뛰 는데……. 저기 보이는 피니쉬 라인……. 열 걸음만 가면 된다. 열 걸음…….

우주, 다시 뛰는 자세를 잡고 달린다.

우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우주, 마지막 한 걸음만 내딛으면 피니쉬 라인을 넘을 수 있다.

우주, 눈을 뜬다.

사람들 스타트 라인을 넘어서 천천히 달린다.

우주, 복식호흡을 하며 뛴다.

우주, 서른둘, 천천히 달릴 때 숨쉬기가 편하다. 

<로운 해인 우주의 캐릭터 독백 일부를 발췌해 내용에 넣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