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자 중심에서 당사자 중심의 회복 개념으로...정신건강 정책에 담대한 변화 필요
공급자 중심에서 당사자 중심의 회복 개념으로...정신건강 정책에 담대한 변화 필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10.17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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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완 가톨릭관동대 교수 “법 바꾸고 분절화된 지역사회 서비스 통합해야”
선진국은 지역사회 삶·자기결정권 존중...회복 개념의 치료재활 모형 추구
회복은 질환을 딛고 삶의 의미 추구..회복 개념에 맞는 서비스 구성돼야
기선완 교수.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기선완 교수.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정신건강 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지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우리나라도 당사자들의 인권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당사자와 가족을 지원·옹호하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의료 공급자 중심에서 당사자 중심의 회복 개념으로 변화하는 만큼 이에 맞는 서비스가 개별적으로 맞춤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은 최근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연구소가 발간하는 CURE vol.11에서 이 같은 의견을 밝히며 “정신건강 정책에 담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 교수는 “우리가 선진국에 들어선 현재, 물적 자본 축적에 사회간접자본이 필요했던 것처럼,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자본이란 그 사회의 신뢰, 협력 정도, 투명성, 공정과 정의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신건강은 사회적 자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국민의 정신건강이 좋으면 사회적 자본인 신뢰, 협력 등이 강화될 것이며 사회적 자본이 든든하면 국민의 정신건강도 따라서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나라가 아직 정신건강 분야에 투자가 적고 만성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 교수는 “선진국들은 이미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동시에 인권을 중시하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회복 개념의 치료재활 모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개선됐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대형 주립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었지만 수용화증후군의 문제, 신 약물의 개발, 환자들의 인권 요구로 탈원화 운동이 진행됐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탈원화는 지역사회의 준비 없이 빠르게 진행돼 탈원화가 아닌 ‘횡수용화’되면서 환자들이 병원 밖을 나오지 못하고 회전문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 당시에도 거셌다.

기 교수는 그러나 “결국 이런 탈원화의 큰 방향이 국가적인 공감대를 얻고 더욱 발전해 정착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영국과 유럽 국가들은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하는 체계에세 탈피해 지역사회에서 당사자들과 더불어 살면서 치료, 재활, 회복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이탈리아의 경우 1978년 바살리아법에 의거해 정신병원에 새로운 입원을 금지하고 적극적인 탈원화와 지역사회 관리를 채택했다.

이탈리아 전국 정신병원을 폐쇄한 바살리아. [사진=위키피디아]
이탈리아 전국 정신병원을 폐쇄한 바살리아. [사진=위키피디아]

이 같은 정책으로 이탈리아는 현재 정신병원이 없으며 급성기 환자들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단기간 입원 치료 후 퇴원해 정신재활치료에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건강 정책을 지속해오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 중 대만과 홍콩은 지역 거점 공공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와 재활치료 서비스, 낮병원,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지역사회 시설과 연계해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고 기 교수는 언급했다.

응급입원 환자들은 원칙적으로 공공 시설에 입원하기 때문에 입원 과정에서 인권과 관련한 갈등도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국립 정신병원은 IMH(정신건강연구소)가 유일하며 이 기관은 정신건강 전 영역을 담당하고 정신건강 교육과 정책에도 관여한다. 특히 싱가포르는 복건부와 복지부의 기능을 하위 수준에서 통합해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과 치매 환자들에게 보건과 복지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2년 국가정신보건계획에서 AIC(통합돌봄청)를 설립했다.

기 교수는 “역사적으로 보아 정신장애 서비스는 국가가 책임지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당사자와 가족 옹호를 확립하는 경향”이라며 “공급자 중심의 재활에서 당사자 중심의 회복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회복은 정신질환의 큰 재앙을 딛고 성장하면서 자신의 삶의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발달시켜 가는 개인적이고 독특한 과정”이라며 “병에 의해 생긴 장애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고, 희망적이며, 기여하는 삶을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복 과정에 당사자와 가족의 참여가 필요하고 회복 개념에 의해 전반적인 서비스가 치료팀에 의해 조율돼야 한다”며 “개별적으로 맞춤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당사자·인권 중심의 회복 개념을 2021년 발표했다”며 “우리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법과 제도를 바꾸며 분절화된 지역사회 서비스를 통합하는 개혁의 노력을 기울일 시점”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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