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의 치료 서비스와 약을 샀을 뿐 치료와 약의 강제성을 함께 사지는 않았다”
“나는 병원의 치료 서비스와 약을 샀을 뿐 치료와 약의 강제성을 함께 사지는 않았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6.21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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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 연내 개정 집중 결의대회, 국회와 3당 당사 앞에서 진행
위기지원 쉼터 있었다면 사회와 단절되지 않았을 것...반드시 법에 들어가야
국회 전문위원과 복지부 인프라 핑계로 개정 조항에 난색...당사자 생존권 위협
치료 기능 작동하지 않는 정신요양시설 폐쇄하고 복지서비스지관으로 통합돼야
3당에 보낸 질의서 “강제적 입원 조치의 개정 필요성에 동의하는가?”
2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연내 통과 집중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2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연내 통과 집중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21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 비가 간간이 내리고 있었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가족, 변호사 등 80여 명이 플래카드를 펼쳤다.

적힌 문구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방기 국회 규탄 및 연내 개정 촉구 집중 결의대회’. 그리고 ‘정신장애인 가두고 죽이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촉구.’

지난 4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정신건강복지법과 관련된 기간의 총 8개의 발의안을 통합해 위원회 대안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은 것이다.

대안은 정신장애인 단체와 학계, 법조계에서 요청해온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지원과 인권 보호라는 진보적 대의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인재근 의원의 발의안에 대해서는 진보적 정신장애 의제가 포함된 만큼 향후 더 심사를 통해 반영한다는 뜻에서 다른 발의안과 달리 폐기하지 않고 계류시키기로 했다.

정신장애계는 일단은 환영했다. 하지만 복지위 소위를 넘은 후 더 이상의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법사위로 가면 법안이 ‘함흥차사’가 된다는 정치권의 우스갯소리처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도 정치적 논의의 장에서 사라져버렸다.

정신장애 단체인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국회를 향해 직접 투쟁을 선언했다. 단체는 올해 안에 정신건강복지법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기자회견은 이 같은 상황에서 나왔다.

한정연은 특히 남 의원 발의안의 ▲정신응급 및 위기지원체계 구축 ▲정신요양시설 폐지 ▲가족 지원, 위기 지원 등 복지서비스의 확충, 그리고 인 의원의 ▲보호입원 및 보호의무자 제도의 폐지 ▲절차조력인 ▲동료지원센터 설치와 같은 진보적 의제가 반드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에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서하영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서하영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국회의사당 앞 당사자들의 목소리에는 정신장애인 운동의 철학적 원리인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소망이 들어 있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위은솔 활동가는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 병원 문턱을 넘는 순간,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감시의 대상이 되고 더 많은 양의 약을 강제로 털어넣어야 한다”며 “들어오는 것은 내 결정이었을지 모르지만 나가는 것은 나의 결정 사항이 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병원 문턱을 내 발로 자유롭게 넘어온 경험이 없으며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경우가 더 많아 그런 강제 상황에서 몇몇 동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는 걸 기억한다”며 “나는 병원의 치료 서비스와 약을 샀을 뿐 치료의 강제성과 약의 강제성을 함께 사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정신위기 상황에서 병원 강제입원 이외의 대안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위기쉼터와 동료지원가,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동료지원센터의 설립이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한원비 간사는 “동료지원센터는 약물 부작용이 있더라도 정신질환 증상이 다시 올라와 곤란할 때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며 “이러한 환경은 회복의 의지와 책임감 있는 생활 태도 및 근로 의지를 더욱 키워준다”고 전했다.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성혜 활동가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제69조는 동료지원센터의 설립을 요구한다”며 “동료지원가의 모체로서 동료지원센터 역할은 중심적인 단체 이상이며 모든 동료지원가와 이용자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배준현 활동가 역시 “동료지원을 해 주는 활동가와 동료지원을 받는 내담자는 서로 상담을 통해 정서적 교류를 하게 돼 정신 치유에 도움이 되고 동료지원을 해 주는 지원가는 보수도 받는다”며 “동료지원가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해주면 정신장애인들의 경제적 독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동료지원가 활동이 병원비 절감뿐만 아니라 정신장애인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여의도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여의도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황태령 활동가는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것 말고, 나에게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다른 위기 지원 체계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며 “위기의 시간에 잠시 쉴 수 있는 지원쉼터를 알았다면 나는 사회와 단절되지 않을 채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밝혔다,

같은 센터의 권혜경 활동가는 “(동료지원쉼터는) 한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굳이 폐쇄병동까지 끌려가지 않아도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공간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라며 “이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급성기의 당사자라 할지라도 존중받을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요양시설의 폐쇄에 관한 발언도 나왔다.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임광순 활동가는 “강제입원 제도가 치료보다 격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비판의 중심에 정신요양시설이 있다”라며 “이 시설을 폐지해 장기입소, 강제 입소, 집단 수용 등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결의대회에는 당사자 발언 이후에 가족 지원에 관한 의제도 나왔다. 이진순 한국정신장애인가족지원협회장의 발언이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 속에 있는 당사자에게 동료지원가가 희망의 증거가 되는 것처럼, 자녀가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할 때 함께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에게는 가족지원가가 위로와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한국조현병회복협회(심지회) 오종진 이사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치료 과정에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으며 치료 이후 다시 사회로 돌아와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받아야 한다”며 “남 의원이 발의한 정신건강복지법 제34조의 고용 및 직업재활지원이 개정안에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신석철 한정연 상임대표는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정신건강복지법의 연내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신 상임대표는 “2023년 연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힘써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했고 이 법 개정에 관한 각 당의 입장을 밝힐 것을 얘기했다”고 밝혔다. 회견에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와 지지 의사를 전했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오른쪽)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관한 정당 입장문을 묻는 공개요구서를 더불어민주당 실무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한정연은 이후 국민의힘과 정의당에도 입장문을 전달했다. (c)마인드포스트.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오른쪽)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관한 정당 입장문을 묻는 공개요구서를 더불어민주당 실무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한정연은 이후 국민의힘과 정의당에도 입장문을 전달했다. (c)마인드포스트.

신 상임대표는 보호입원과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장애인은 지자체장 권한에 따라 비자의적인 행정입원을 하거나 본인 의사에 따라 자의입원하게 된다”며 “대만의 경우 강제입원이 행정입원으로 일원화돼 강제입원율 역시 현격히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또 “(동의입원 제도는) 동의라는 명목하에 당사자의 선택을 반영하는 듯하나 실상은 퇴원을 요청해도 사흘간 퇴원이 보류되고 이후 강제입원으로 전환된다”며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제도의 재검토를 권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위기지원 체계 구축과 지역사회 서비스 지원의 확충도 요구했다. 정신요양시설은 유예기간을 두고 폐지해 정신건강 복지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의사당 결의대회 이후 참여자들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촉구와 이 법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묻는 요구안을 전달했다. 각 정당의 실무자들이 나와 신 상임대표가 전달하는 공개요구안을 접수했다.

결의대회 참여자들이 도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결의대회 참여자들이 도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한정연은 ▲헌법의 자유권 이념을 실현하는 강제적 입원 조치에 관한 개정 필요성에 동의하는가 ▲정신요양시설 폐지에 관한 개정 필요성에 동의하는가 ▲동료지원센터 설치 필요성에 동의하는가 ▲정신요양시설을 폐지하고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전환하는 데 동의하는가 ▲정신장애 당사자의 권익 보장에 관한 계획은 무엇인가 등 다섯 가지 질의서를 각 당에 전달하고 추후 한정연과 공개 면담 역시 촉구했다.

특히 신 상임대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과 복지부 등 관계부처는 해당 개정안에 대해 사회적 인프라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대부분의 조항에 대해 거부하고 있다”며 “법의 부작위, 혹은 작위로 인해 당사자의 생존권이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인프라를 핑계로 30년간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지역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음을 (정치권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자들은 3당의 중앙당사 앞으로 행진을 끝내고 구호를 외쳤다. 오후 4시 40분. 집회는 끝났다. 비는 그쳐있었다.

결의대회는 한정연, 정신장애인탈원화추진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인권법재단공감이 공동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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