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의입원 당사자의 목소리를 10분 이상 경청할 수 있는 제도라면 사법입원이든 입적심이든 상관없어"
“비자의입원 당사자의 목소리를 10분 이상 경청할 수 있는 제도라면 사법입원이든 입적심이든 상관없어"
  • 오현성 교수
  • 승인 2023.08.1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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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겸 본지 논설위원
정신보건법은 민주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만든 제도
민주주의 발전했지만 정신질환자 입원 체계는 권위주의 방식
한국 정신보건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 40년 뒤처진 지각생
중앙정부가 비자의입원 제도 변화 강요하면서 운영 재원 부담은 거부
정신건강복지법 통과했지만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 예산은 삭감돼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신청자의 비자의입원 심사 5분도 채 안 돼
입적심에 배정된 예산 20억 원에 불과...예산 문제로 대면 증언도 어려워
미 애리조나주 정신병원에는 정신법원 설치...당사자가 충분히 의견 표명
애리조나 주정부, 최대한 입원치료를 막는 정신위기시스템 작동
정신건강정책실 예산을 얼마나 증액시킬지에 집중해야 할 때
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지난 2016년 5월 29일에 국회를 통과한 정신건강복지법은 당사자, 가족, 정신의학전문의 및 정신보건 전문가, 그리고 국민까지 '지역사회 정신보건시스템'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법이 통과되기 전에 구(舊) 정신보건법의 내용을 알고 있던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됐을까? 

당시에는 가족이 당사자를 입원시키려고 마음만 먹으면 전직 유도선수들을 고용한 사설이송단이 자택으로 들어와 정신 위기를 겪고 있는 환자를 강제로 끌고가 최소 90일 동안 비자의 입원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일부 언론들은 주목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은 사라져갔다. 거기에 영화 '날보러 와요'는 정신의료기관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각인시킨 것밖에는 없었다. 

특히 경찰과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은 가족에 의한 사적 관계로 해결되는 정신위기 문제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 

2016년 5월 29일 이전의 정신보건법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만든 제도였다. 민주적 헌법을 갖고 있고,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발전이 왠만한 서구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대한민국이 러시아나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침해 사례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승리했던 미국인들이 자국에서 일어나는 인종 차별의 사례들을 발견하고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던 사례와 비교될 수 있다. 

케이팝(K-Pop)의 부흥, 반도체 강국, 세계에서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의 국격은 정신질환자가 정신적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평균 290일 동안 입원을 하고 있는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은 정신보건 분야에서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약 40년 정도 뒤쳐진 지각생이었다. 미국의 경우  Lessard v Schmid of 1972와 O’Conner v Donaldson of 1975 등과 같은 1970년대 연방대법원과 지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50개 주정부들의 제도 변화는 더 이상 미국에서 정신질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치료의 필요성(Neccessity of Treatment)이 있는 환자라도 반대하면 비자의입원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변화를 보고 한국과 소득 수준이 비슷하거나 더 낮은 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 역시 비자의입원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변화시켰다(Shen & Snowden, 2014). 이제 더 이상 2017년 7월 이전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비자의입원을 진행하는 선진국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Saya et al, 2019). 그만큼 2016년 당시 한국은 정신장애인들의 인권 보호에 있어서는 상당한 지각생이었다. 

필자는 2016년 5월 29일 통과된 법이 당사자와 가족, 정신보건 전문가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이 법의 비정상적 작동으로 지난 7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았다. '자·타해 위험 요건'을 비자의 입원의 조건으로 도입한 것이 그 고통의 원인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나라 중앙정부가 당시 비자의입원 제도의 변화를 이해관계자들에게 강요하면서 그들이 지불해야 했을 제도 운영에 필요한 재원 부담을 거부했다는 데 있다. 

고려대 윤석준 교수 팀의 분석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법이 통과된 2016년과 비교 시 2017년의 지역사회 정신보건 서비스 지출의 대부분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감독 예산이 심지어 7.1%나 감소됐다(Go et al , 2022). 

당시에는 정신건강복지법이 통과된다면 자·타해 위험성을 보이지는 않지만 망상, 환각 등의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당사자들이 비자의입원을 거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정신건강복지법의 통과가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보건서비스 수요를 더 높일 것이라는 예측도 상당했다. 하지만 같은 시점에 정신건강복지법 법안을 작성하고 법 통과를 주도했던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정책국 내 공무원들, 또는 예산안 편성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2017년에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 예산을 삭감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권을 침해하는 무분별한 비자의입원을 막기 위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입적심)가 만들어졌고 2018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5~7인의 정신보건 전문가들과 가족, 당사자 역시 인권 보호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단체들은 2022년 9월 29일 국회 앞에서 비장의입원 도중 사망한 정신장애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철저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출처 : e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or.kr)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단체들은 2022년 9월 29일 국회 앞에서 비장의입원 도중 사망한 정신장애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철저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출처 : e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or.kr)

입적심의 철학적 바탕은 위험성이 없는 비자의입원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이를 법률이 명시했다. 그리고 두 명의 정신의학 전문의에게 진단을 요구해 자·타해 위험성이 없는 환자가 비자의입원을 경험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비자의입원을 당한 당사자는 엄청난 삶의 변화를 마주한다. 삶의 터전과 일상이 송두리째 뽑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장기입원이 뻔히 보이는 비자의입원을 당하지 않기 위해 당사자들은 몸부림친다. 비자의입원을 당하게 되면 이후 다니던 학교와 회사에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90일 동안 겪게 되면 미래를 약속했던 애인이나 친구와의 관계도 단절되는 것이 부지기수다. 입적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지난 2020년 10월까지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면 입적심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선구 외 보고서(2020)는 입적심이 정당하고 평등한 심사를 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자의입원 신청이 많은 국립정신건강센터 내 소위원회들이 5분 이상 심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자의심사 신청은 16%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평균 최소 5분 투자 심사 건수는 51.3%에 불과했다.

4시간 정도 열리는 소위원회의 입적심에서 평균적으로 53.8명의 환자들의 삶이 결정됐고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경우 81.0명의 입원적합성을 그 짧은 시간동안 평가했다. 이런 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청자 중 1.4%만이 비자의 입원이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 입원이 시작된 이후 평균 20.8일 이후에 열리는 입적심까지 약 22.3%의 환자는 이미 병원을 퇴원해 버리거나 자의입원으로 변경하는 ‘각하’된 신청으로 결론지어진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중 98.1%의 당사자들은 최대 90일 동안 비자의입원 상태로 병원에 머물러야 했다. 당사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요구하게 된 두 명의 정신의학전문의 진단은 불일치율은 0.14%에 불과했다(두 전문의의 진단이 불일치하면 병원은 환자를 퇴원시켜야 한다).

인건비가 비싼 정신의학 전문의, 법조인, 교수 등을 입적심 위원으로 초청하고 있지만 약 3만 명의 비자의입원을 심사하는 입적심에 배정된 예산은 2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적은 예산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입원을 청구한 가족, 그리고 행정입원을 청구한 경찰관과 주민복지센터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대면 증언은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평등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껍데기만 있고 허울뿐인 제도가 유엔이나 세계보건기구(WHO)에 출장간 대한민국 공무원들에 의해 인권보호 정책의 예로 홍보됐을 것이다. 따라서 현실은 2017년 전후 큰 변화가 없다. 

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분석한 국회미래연구원의 허종호 연구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입·퇴원하는 패턴이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이후에도 거의 변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Heo et al , 2021). 2017년 이후 보호입원을 했던 정신장애인들의 자·타해 위험성은 같은 기간 입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정신장애인들과 같았다는 데이터 역시 보고됐다(Oh et al., 2022). 

미국 애리조나 주의 마리코나 카운티에 위치한 급성기 정신병원 내에는 정신법원이 설치돼 있다. 필자가 몇 년 전 방문한 사법입원 재판에서는 비자의입원 심사를 받던 가출 청소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판사, 검사, 국선변호인, 담당 정신의학전문의, 그리고 행정입원을 위한 구금 및 이송을 했던 경찰 두 명이 정신병적 증상을 겪던 이 가출 청소년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있었다.

그때 필자는 가출 청소년 쉼터에서 살면서 동료의 안전을 위협했던 아이의 상황을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정신의학전문의, 판사, 검사, 변호사, 경찰이 차분히 들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그건 사법입원이든 입적심이든 상관없다. 권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신위기를 겪고 비자의입원을 마주하고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에 적어도 10분 이상 관심을 가지고 경청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돈과 예산 없이는 운영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1년에 약 3만 명이 비자의입원과 마주한다. 이 인원 모두를 대상으로 사법입원 심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리조나 주정부는 빨리 치료해서 최대한 많은 수가 입원치료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정신위기시스템(Crisis System)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을 운영한 결과 최소한의 인원만이 사법입원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500만 명이 거주하는 마리코파 카운티에서 1일 정신위기를 겪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수가 1만7000여 명이나 된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정신위기 전문 전화(Crisis Line), 이동식 모바일 팀(Crisis Mobile Team), 정신위기 응급센터 (23-hours stabilization Center)의 집중치료를 받으면서 1일 약 30명 만이 입원치료가 필요하게 된다. 그 중 일부가 사법입원에 참여하게 된다. 나머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 날을 준비한다. 그리고 흔히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좀 거친 날이었어.”

우리는 2016년 5월 29일에 응당 썼어야 했던 돈을 쓰지 않았다. 이제는 비자의입원 방식을 고민하면서 정신건강정책실이 얼마나 예산을 증액시킬지에 더 집중해야 할 때다. 

[참고문헌]

이선구, 허종호, 황종남. 윤난희, 황서은. (2020).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른 비자의입원제도와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제도 시행의 영향 평가 연구. 국립정신건강센터

Go, D.-S., Kim, Y.-E., Paik, J.-W., Roh, S., & Yoon, S.-J. (2022). A comparison of disease burden and the government budget for mental health in Korea. Journal of Mental Health, 31(4), 471-478. 

Heo, J., Yoon, N.-H., Shin, S., Yu, S.-Y., & Lee, M. (2021). Effects of the Mental Health and Welfare Law revision on schizophrenia patients in Korea: an interrupted time series analysis. International Journal of Mental Health Systems, 15(1), 1-8. 

Oh, H., Bae, J., Cho, Y., Kim, K., & Lee, Y. (2022). Threat to self or others among involuntarily hospitalized patients in South Korea, 2022 Annual Program Meeting of Council on Social Work Education, Anaheim, CA.   

Saya, A., Brugnoli, C., Piazzi, G., Liberato, D., Di Ciaccia, G., Niolu, C., & Siracusano, A. (2019). Criteria, procedures, and future prospects of involuntary treatment in psychiatry around the world: a narrative review. Frontiers in Psychiatry, 10, 271. doi: 10.3389/fpsyt.2019.00271
Shen, G. C., & Snowden, L. R. (2014). Institutionalization of deinstitutionalization: a cross-national analysis of mental health system reform. International Journal of Mental Health Systems, 8(1),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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