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는 증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삶이 있기에 치료도 있는 것”
[기고] “우리는 증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삶이 있기에 치료도 있는 것”
  •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활동가 일동
  • 승인 2023.08.1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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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활동가 일동 기고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정신질환 원인으로 언론 앞다퉈 보도
인권 토양 없는 사법입원 도입은 비인권적 치료와 강제입원으로 발전될 가능성 커
인권적 치료환경과 삶의 연속성 끊어지지 않는 입원 제도 필요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프레임으로 몰고 가면 감금의 역사 되풀이될 것
인권적 치료환경 위해 예산과 사람 필요...정부, 당사자 삶에 집중해야
지난 5월 17일 서울시청 앞서 진행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기자회견.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지난 5월 17일 서울시청 앞서 진행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기자회견.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이번 서현역에서 일어난 ‘범행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 사건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이 불안에 편승해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정신질환에 의한 문제라고 경쟁하듯이 보도하고 있다. <‘정신질환 인권 찾다간’ 4년 전 이미 경고…범죄만 늘었다>(8월 7일자 머니투데이) 등 마치 정신질환자들이 잠재적 범죄자인 것을 암시하며 정신질환자들에게 왜곡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정부도 이런 사회적인 여론에 휩쓸려서 갑자기 사법입원제도를 고려한다고 발표하면서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격리, 감금해야한다는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에게는 아픈 역사가 있다. 중세 시대 때는 마녀사냥으로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으며, 가족과 공동체에서 격리돼 ‘바보의 섬’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감옥보다 못한 곳에서 발에 족쇄를 차고 지내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방위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보건복지부 2021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에도 비자의 입원 비율이 34.8%이다. 치료라는 이름하에 자행되어지는 무분별한 강압과 비인권적인 치료 환경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22년 9월과 2023년 2월, 경기도 용인시에서는 정신병원으로 가는 사설 구급단의 이송 차량 안에서 강압이 자행돼 정신질환 당사자가 사망한 사건이 2건이나 있었다. 2023년 대한민국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렇듯 비인권적인 방법으로 사회의 애도도 받지 못한 채 스러져가는 청년들이 있었다.

현재 불안한 시민들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사법입원’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물론 고(故) 임세원 교수 사고와 안인득 사건에서도 거론이 된 바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여론이 악화된 분위기에서의 사법입원 도입은 비인권적인 치료와 또 다른 강제입원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선진국 미국의 일부 주나 독일의 사례처럼 절차조력인 등 당사자의 인권 보호 장치를 갖춘 상태에서 공감과 경험이 많은 판사의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 현재와 같이 당사자의 삶보다는 의료권력 하에 사법입원의 판단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형태만 다를 뿐 또 다른 감금의 역사가 되풀이될 위험성이 크다. 우리는 범죄자를 옹호하겠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 가는 정부의 방향 역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정신질환자에 대한 무분별한 낙인과 공포를 멈추고 정신질환자의 삶을 우리가 함께 들여다보아야 한다.

전 국민이 평생 정신질환에 걸릴 가능성은 27.8%(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2021)나 된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정신질환자가 될 수 있는데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맘 놓고 치료의 길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정신질환에 걸렸어도 인권적이고 존중받는 치료 환경이어야 하고, 삶의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치료는 너무 의료중심이어서 증상의 제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증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삶이 있기에 치료도 있는 것이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프레임으로 사회적인 여론을 몰고 간다면 정신질환자의 감금의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희생양 찾기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것인가. 정신질환 당사자가 독한 약을 먹으며 일상생활도 할 수가 없고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절반 이상이 기초생활 수급권자로 생활하면서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약물과 의료만 강조한 정책의 결과이다.

지난 6월 2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연내 통과 집중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지난 6월 2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연내 통과 집중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따라서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살기 위해 지역사회에서의 삶과 회복의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정신과 병동 평균 입원일수는 200일로, 이는 이탈리아 13일, 영국 52일에 비해 수배나 높다. 병원에서 3개월 이상의 입원치료를 받고 나오면 대부분의 대인관계, 취업, 학업 등이 중단된다. 하지만 가까운 지역사회 ‘동료지원 쉼터’에서 정서적인 고통의 고비를 넘기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 또한, 먼저 고통과 회복의 삶을 살았고, 경험의 전문가로서 당사자의 회복 의지를 돕는 ‘동료지원가’를 많이 만난다면 치료와 삶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동료지원가는 아파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공감의 영역을 넓히고 인권적인 지역사회 정보와 함께 회복의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국제적인 인권 기준으로서 정신질환자들에게 동료지원 쉼터와 동료지원가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선진국의 대열로 들어선 만큼 우리나라의 제도와 정책도 국제 기준을 더이상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비자의 입원 절차에서도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도록 절차조력인 등의 인권 보호 장치가 입원 과정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입원의 일수를 짧게 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런 제도적 토양 없이 사법입원이 강행된다면, 사법입원이 형사사법 관점으로 볼 위험이 크다.

정신질환이 있어도 인권적이고 존중받는 치료 경험을 갖고 가족과 사회에서 다시 각자의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삶을 향유하는 건강한 시민으로 함께 뿌리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예산과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인력과 예산이 인권을 반영한다. 정부는 더이상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지 말고 당사자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더이상 감금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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