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친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리뷰] “'미친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 익명의 당사자
  • 승인 2023.08.1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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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2023. 송승연․유기훈 역, 오월의 봄) 리뷰
모하메드 아부일레일 라셰드,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송승연 유기훈 옮김, 오월의 봄, 2023.
모하메드 아부일레일 라셰드,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송승연 유기훈 옮김, 오월의 봄, 2023.

나는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은지 7년 정도 됐고, 이 책을 읽기 전 '미친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포기한 상태였다. 내가 나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령, 내가 치료를 받기 전에 거리에 드러눕거나 아무 곳에서나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른 것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해받지 못할 행동이었고, 이유를 설명하려 노력해도 내 이야기를 따라가 볼 생각 없이 조현병 환자의 부적절한 행동으로만 치부할테니까 포기했다.

최근의 내 모습에 대해서 말하자면, 과거의 나를 '병에 걸린 상태'로 뭉뚱그려 치부하면서 현재의 '병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는 그 전과 질적으로 달라진, 회복되고 더욱 똑똑해진 어떤 최신 상태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회복은 이런 '병식'을 가지고 정상인과 나를 점점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그렇게 여기면 머리가 복잡하지도 않았고, 주변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있고, '조현병 환자' 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만의 과거와 가치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 중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부분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은 매우 피상적인 것밖에 없어서, 나는 나를 진정으로 드러낼 수 없었고 당사자가 아닌 이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내 정신병의 전말이나 긍정적인 요소를 생각해보며 병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하였지만, 주변인들이 이런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곧 포기하고 내 일부를 소외시키는 일상을 지속하였다.

책 내용은 감정에의 호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의 미쳤다는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나의 소외된 일상을 그래도 덜 외롭게 만드는 요소라는 생각에 책을 펼친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일반적으로 미친 사람이 자신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완벽히 소외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장을 읽자마자, 새롭고도 놀라운 생각에, 그리고 이런 관점을 견지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점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미쳤다는 것이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미친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금 과거의 내 소망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결함이 있는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미친 것은 나의 자부심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나의 온전함에 대해서 더이상 남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더 이상 '조현병 환자' 가 아닌, 나 자신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에게도 해방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매드 서사를 통해서 가능함을 잘 알게 되었다. 사회와 광기와의 대화, 화해를 통해서 우리는 광기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나의 일부를 더 이상 소외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쳤다는 말의 무게는 누군가에게 아주 가벼울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프고 쓰라린 것이고, 미쳤다는 말은 현재는 내 신체적 자유와 안전과 희망을 다 덮어버릴 만큼 강하고 무겁다. 그래서 나는 결국 미친 내가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을 피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책을 감명 깊게 읽었고,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에 대해서 잘 알았지만, '미친 나'를 이해할 존재들이 세상에 더 많아지기를 기원하며 아직은 숨어버리는 비겁한 길을 택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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