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적절한 치료를 하면 정신질환은 관리된다'는 신화와 '약물 치료'만 강조하는 정치적 하이에나들
[칼럼] '적절한 치료를 하면 정신질환은 관리된다'는 신화와 '약물 치료'만 강조하는 정치적 하이에나들
  • 가비노 김
  • 승인 2023.08.20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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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치인의 정신건강 종합대책과 그 주위로 모여드는 세력들

한여름의 흉기난동이 2023년 8월을 끔찍하게 장식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연이어 발생하는 잔혹한 사건들이 '묻지마 범죄'와 '칼부림' 그리고 '정신질환자'라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단순 언급되면서 대중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응시하지 않고 '낙인'이라는 손쉬운 해법으로 상황을 타개하려는 하이에나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기자는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서 이런 멘트가 나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희는 시청자(독자)의 알 권리를 존중합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취재를 이어가고 있지만, 책임있는 언론으로 유사 모방 범죄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섣불리 자세한 보도를 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볼모로 저희의 수익과 맞바꾸지 않겠습니다. 이 사건의 취재 결과는 유사 범죄의 위험이 사라지는 시점에 심층 보도로 전하겠습니다."

하지만 주류 언론은 피의자 신상털이에 여념이 없었다. JTBC는 정신장애인 낙인과 관련해 공히 자랑스러운 선구자였다. "아직 경찰이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저희 뉴스룸은 국민의 알 권리, 또 범죄 예방 효과를 고려해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8월 4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JTBC는 사건 현장인 서현역 앞에서 뉴스를 진행하며 피의자 최아무개 씨의 신상을 경찰보다 먼저 공개했다. 한민용 앵커는  “아직 경찰이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저희 뉴스룸은 국민의 알 권리, 또 범죄 예방 효과를 고려해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4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JTBC는 사건 현장인 서현역 앞에서 뉴스를 진행하며 피의자 최아무개 씨의 신상을 경찰보다 먼저 공개했다. 한민용 앵커는 “아직 경찰이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저희 뉴스룸은 국민의 알 권리, 또 범죄 예방 효과를 고려해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젖어 분당구 서현역 칼부림 사건과 대전 모 고교 교사에 대한 흉기 피습 사건 모두 피의자가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공공연히 알려졌다. 줄줄이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정신질환'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얼마나 움찔거리고 위축됐을지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같은 일련의 '낙인 찍기'와 결이 다른 언론 보도도 나왔다. 대부분의 언론이 "정신과 약 복용을 중단해 이 같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전제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질환자=범죄자' 공식의 보도를 넘어 '정신건강 시스템 재정비'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이는 과거의 언론 보도 유형과 다른 태도다. 

그런데 정신건강 시스템을 바꾸자는 시도는 일견 정신장애인의 치유와 인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얼마든지 기존 전제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않고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시스템을 재정비하자는 주장 이면에 약물 공급처를 늘리자는 판을 깔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약물을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는 한 잠재적 범죄자라는 공식이 언론과 여론의 무의식이다. 흉악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정신질환자의 약물 복용 여부를 국가가 전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다시 말해 '감시'해야 한다는 정치적 발언들이 하이에나처럼 슬금슬금 나올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토양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일신문>은 지난 8일 정신질환을 사회적 차원에서 관리하자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에 공감을 표한다는 사설을 냈다. 이는 1964년 일본에서 발생한 정신질환자 사건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내놓은 정책인 '관리론'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주일 미 대사 라이샤워가 정신질환 치료 전력이 있는 19세 청년에게 흉기 피습을 받으면서 일본 사회 내에서 정신질환과 관련된 차별적인 담론이 만들어졌다. 결과는 다수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정신장애인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움직였다.

안 의원의 사회적 관리 발언은 이같은 일본이 '관리론'과 '방치론'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나 <매일신문> 사설이 이 정치인의 발언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강조하는 듯하는 보도 태도는 언론이 해 온 '정치적 부역'으로 진단할 수 있다. 비판적 접근이 아닌 사회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일련의 광기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대목이다. 

14명의 사상자를 낸 서현역 사건 피의자가 '조현성 인격장애'를 진단받았으나 치료를 중단했다는 사실, 또 대전 교사 피습 사건 피의자 역시 조현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보도는 '정신질환'에 대해 국가가 사전에 잠재적 위험요인을 적극적으로 검사해 구분, 선별해 공격적으로 관리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한다.

매일신문 2023년 8월 8일 사설 갈무리

의도는 좋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이 처한 사회적 현실과 정신적 어려움에 의해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섣불리 정책을 포장해 내놓는다면 정신질환자에 대해 2차 가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사설은 안 의원의 발언을 옹호하며 은근슬쩍 선을 넘는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정기 검진을 의무화하고 건강보험 등으로 의료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 치료가 필요함에도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가위원회의 심의 판정 제도'를 도입해, 치료 및 입원을 강제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많은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 "적극적이고 적절한 치료를 하면 정신질환은 관리가 된다"고 입을 모은다."

어쩌면 대중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검진을 의무화하고, 전문가가 판정하고, 강제입원시킨다"는 문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적 검진을 의무화하고 문제가 있는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의 효율적인 진행을 강조할 경우, 정신장애인의 정치적 자유와 자기결정권, 인권의 옹호가 모두 말살되고 오직 입원으로만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4명 중 1명은 일생에 한 번 이상의 정신질환을 경험한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사설이 요구하는 그 정책을 따른다면 우리 국민은 언제든지 강제입원당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굳이 사법입원제 논의까지 갈 필요도 없다.

좋은 취지가 선한 결실을 맺으려면 극단적인 반대급부를 고려하며 충분한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매일신문> 사설은 마지막 문장에서 본색을 드러난다. "많은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 "적극적이고 적절한 치료를 하면 정신질환은 관리가 된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서 말하는 '적극적이고 적절한 치료'는 무엇일까? 약물치료다. 현재까지 처방되는 정신과 약물들은 효과와 부작용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처방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 '적극적이고 적절한 치료'라는 범주에 약물치료를 제외한 다른 치료가 우리 한국 사회에 존재하긴 하는가?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옹호하는 치료 체계인 오픈다이얼로그(open dialogue)와 급성기 쉼터, 혹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광기'를 연구하며 '함께 걷는' 토양을 일구려는 일말의 노력 없이 그럴듯하게 '적극적이고 적절한 치료'를 강조하는 건 제때 약물을 복용하라는 명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리사회적 위기를 겪는 당사자들이 회복을 위해 작동해야 할 대안들을 외면한 채 모조리 약물치료나 격리 및 수용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한다면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정신장애인들은 그 정책에 만족할까?

정부가 정신건강 시스템을 손질하고 여기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야 함은 지당하다. 예산 없이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예산은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과 함께 걷고, 그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데 투입돼야 한다. 국민 중 누구라도 정신장애인이 될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정신적 취약함에 대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 놓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토양은 '모든 이'가 저마다 이바지할 때 일궈나갈 수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목소리보다 더 클 때, '목소리 없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들리지 않을 때, 그 어둠 속에서 하이에나들은 눈을 반짝인다. 사회적 위기 한가운데에서 먹잇감을 물색하는 하이에나들은 무리를 늘려가며 적절한 때를 기다리다 어느 순간 공격해 들어올 것이다. 그때는 이미 탈출구를 모두 통제한 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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