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법입원제,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고] 사법입원제,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 최하나
  • 승인 2023.09.11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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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나 부산 대남병원 정신건강사회복지사 기고
정신질환은 누구나 겪는 질환...그들이 아닌 바로 ‘우리’의 문제
정신적 어려움 있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 능력 다 갖고 있어
부산시 정신재활시설 없는 5개 자치구...지역사회 인프라 불충분 의미
미국, 사법입원 실행 전 전문가·당사자 청문 거쳐...인권 침해 최소화
정신질환 이해 없는 법적 입원 적절한지...‘예비범죄자’ 시선 우려돼
서현역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경찰이 치안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현역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경찰이 치안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신질환을 이유로 삶의 결정권 빼앗겨서는 안 돼

최근 병동에서 ‘행복증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프로그램을 열며 한 주간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환자 한 분이 ‘묻지마, 칼부림(이상동기 범죄)’ 사건의 뉴스를 접한 후 잠이 들기 힘들었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가해자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며 집단에 참여한 환자분들 대부분이 공감하며 사회의 편견에 더욱 고립될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불안감을 표현했다.

“선생님 우리 이제 더 퇴원하기 힘들어지는 거 아닙니까?”

“우리 그런 사람 아니에요.”

“사회의 편견이 더 심해질 것 같습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서 안타깝습니다. 그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앞으로 병동에서 집으로 외출 외박 나가는 것도 제한되는 거 아닙니까?”

최근 ‘묻지마 흉악범죄’라는 제목으로 뉴스들이 한참 나오기 시작하더니 8월 23일 법무부에서 범죄 예방 대책으로 ‘사법입원제’를 내놓았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격리 제도가 적법절차에 따라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법입원제’는 판사가 자·타해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치료 목적으로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과거 오랜 시간 답습돼왔기에 최근 정신건강 복지서비스가 많이 개선되었다 할지라도 언제나 본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기에 여타의 상황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 역시 프로그램을 하는 도중 무력감이 몰려왔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오랜 시간 이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그들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써왔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문제다. 정신질환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질환이다. 심리사회적으로 취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질환자라는 낙인과 편견의 대상이 되고 삶의 결정권을 잃어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행복한 삶이란 일상을 사는 것

프로그램 시간에 나누었던 환자분들이 말하는 행복한 삶이란 ‘사람답게 사는 것’, ‘하루를 최선을 다해 나답게 살아가는 것’, ‘사회의 한 일원으로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모두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퇴원 후 가족의 붕괴 또는 지역사회 서비스 및 시설의 부재로 다시금 정신의료기관에 재입원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 정신질환은 회복과 재활로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증상이 어느 정도 좋아져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 사회기술 및 인지 기능이 취약한 부분이 나타나기도 한다. 퇴원 이후 증상관리는 물론이거니와 일상 기술, 직업 재활 등을 적극적으로 훈련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의료기관,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정신재활시설, 동료지원센터의 확대가 필요하다.

2023년 6월 말 기준으로 부산시의 정신의료기관(병상 유·무 포함)은 16개 구·군 전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반면 지역사회에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재활을 담당하고 있는 정신재활시설은 5개 구에 미설치돼 있는 상황이다. 지역사회 재활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지금도 충분히 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으로 비자의 입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다만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입원적합성심사제도는 비자의 입원을 한 모든 대상자들의 입원 과정을 심사하는 것으로 비자의 입원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했으나 이 또한 실효성을 발휘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 보아야 한다.

법정 모습. 사법입원제에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간들. [사진=연합뉴스]
법정 모습. 사법입원제에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간들. [사진=연합뉴스]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들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치료를 중단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건강 서비스 지원체계의 확대 및 구축이 우선시 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지역사회 삶,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

해외에서는 ‘사법입원제’가 함부로 환자를 구금할 수 없도록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만든 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9년 11월 켄드라법(Kendra’s Law)이 뉴욕에서 발효돼 외래치료지원제도(AOT)를 명시했다. 심각한 정신질환자들이 정기적으로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외래입원지원제도·사법입원제도 실행 전 가족, 전문가, 환자의 청문 과정을 거쳐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영국의 경우 경찰, 공중보건, 사회복지 등 관련 기관 연계를 통해 정신질환자 치료 과정을 관리·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사법입원제도가 언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나라의 외래치료명령제도가 왜 작동을 하고 있지 않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법적 관점에서의 입원이 적절한지, 그리고 사법입원제도 도입이 ‘정신질환자=예비범죄자(?)’로 낙인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8월 23일 행안부 차관 주재 ‘이상동기범죄 대응 회의’에서 합동대응센터의 전국적 확대 필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협업을 강화하는 합동 대응 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2022년 10월부터는 전(全) 시·도 경찰청에 자·타해 고위험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의뢰 업무를 전담하는 ‘현장지원팀(96명)’을 신설해 운영 중이다. 현재 부산청은 6명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 등 3개 시·도청에서는 경찰 ’현장지원팀‘과 지자체 위기개입팀(정신건강전문요원)’이 합동 근무하며 함께 출동한다.

부산시도 ‘지역정신응급 대응 협의체’에서 부산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논의 중에 있다. 정신건강전문요원 현장 조력으로 병원 응급입원 거부율을 낮추고 적절할 때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만성으로 진행되는 경우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변화를 보고도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은 퇴원 이후의 재활과 지역에서의 정신질환자들의 삶에 대한 대책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병동에서 마음을 담아 치료한 환자들이 재발해 재입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일상을 보내면서 외래진료를 통해 만나고 싶다. 과거 가족에게만 책임지어 왔던 치료와 보호에 대한 부담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면 지자체가 나서서 위기쉼터 역할을 하는 지역사회 전환시설을 신설하는 등 정신질환자를 지원하는 촘촘한 관리체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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