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가로막힌 보험 가입, ‘특단’의 대책 필요…정신질환 이유로 가입 거부는 ‘차별’
또다시 가로막힌 보험 가입, ‘특단’의 대책 필요…정신질환 이유로 가입 거부는 ‘차별’
  • 조유진 기자
  • 승인 2023.10.1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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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공감·한정연, 인권위에 ‘차별’ 진정 기자회견 진행
진정인 성모 씨, 정신과 진료 이력 있다며 우체국보험 가입 거절당해
“인권위가 우정사업본부와 금융감독원에 개선안 마련 강력 권고해야”
18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단체들이 중구 인권위 앞에서 우체국의 정신질환자 보험 가입 거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18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단체들이 중구 인권위 앞에서 우체국의 정신질환자 보험 가입 거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우체국 보험 가입이 좌절된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18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적 보험 가입 거부 관행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진정 당사자인 성모 씨는 지난 9월 20일 우체국을 방문해 실손 의료보험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정신과 진단 이력을 이유로 청약 가입을 거절당했다. 당시 우체국 측은 성씨의 질병의 경중, 현재 상태, 향후 진행성 여부 등에 대한 확인 없이 획일적으로 가입을 가로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소 측은 “정신과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건강 관리를 하려 함에도 오히려 보험 가입 자체에 제약을 받았다”며 “이러한 관행은 질환의 유형과 정도를 불문하고 계속해서 치료를 기피하게 되는 모순적 결과를 낳게 된다”고 비판했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누구든지 장애나 과거의 장애 경력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인권위법 또한 병력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는 평등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으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도 건강권에 대한 국가 의무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 이력 때문에 보험 가입이 거절되는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인권위는 지난해 3월, 지적장애를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사건에 대해 당시 금융감독원장에게 피보험자의 의사 능력을 이유로 가입을 불허하는 보험회사의 관행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또 같은 해 8월에는 우울증 약물 복용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08년 금융감독위원회는 장애를 이유로 한 보험 가입 거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권고했지만 차별행위는 지속돼 왔다.

정성용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인권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정성용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인권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정치권도 차별 시정에 나섰다. 지난 2022년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신질환 병력자 보험 차별 금지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정명령과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신건강복지법 제69조 제4항에 대한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내년 4월 21대 국회가 끝나면 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기자회견에서 조미연 공감 변호사는 “피진정인이 정신과 이용 이력, 약물 복용 등을 이유로 한 실비보험 가입 거절 행위는 명백한 평등권 침해”라며 “우체국은 피해자에 대해 실비보험 청약 절차를 진행하고 유사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해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조 변호사는 “사건 피해자는 2022년 인권위 권고 결정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발의 소식을 접한 뒤 용기를 내 보험 가입에 도전했지만 거절당했다”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인권위의 권고 결정을 통해 함께 현실을 바꿔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성용 활동가는 “보험사들은 정신장애인에게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태도로 보험 가입을 허락하지 않는 부도덕한 행위를 중단하라”며 “사람은 모두 똑같다. 누구는 대우받고 누구는 무시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이승주 투쟁조직위원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 가입을 거부한다면 당사자는 정글과 같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서 아무런 보호막 없이 놓여지게 된다”며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9년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단이 발표한 정신건강 동향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이 일반 건강검진을 받는 수검율은 46.1%에 그쳤다. 이는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전체 장애유형 중에서도 최하위권 수치다. 사회적 편견으로 치료를 회피하게 되고 막상 치료 이력이 있으면 보험가입이 거부되면서 정신장애인의 건강권이 의료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및 단체들이 인권위에 보험 가입 차별 구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및 단체들이 인권위에 보험 가입 차별 구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이설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서울지부 사무국장은 “금융감독원장은 심리사회적장애 당사자들에 대한 차별행위 실태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가나 보험사는 보험이 필요한 질환자들에게 맞는 맞춤형 보험을 설계해 사회적 위험에 대비할 수 있게 도우라”고 말했다.

김치훈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국장은 “정부 산하 기관인 우체국 보험은 공적 성격과 함께 소비자의 권리 보호에 관한 우체국 예금보험법상의 여러 규정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진단 및 치료 이력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차별적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을 상대로 한 보험 가입 차별은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연구소 등 단체들은 ▲정신과 진단 및 치료 이력을 이유로 가입을 거절했던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즉각 청약 절차 진행 인수 ▲우체국 보험 사업을 관할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우정사업본부장의 사과와 구체적 차별 근절 대책의 수립 및 시행 ▲인권위의 우정사업본부 및 금융감독원 등에 관리 감독 책무를 강화하고 개선 계획 마련을 강력 권고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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