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존감에 칭찬과 인정으로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대하여
낮은 자존감에 칭찬과 인정으로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대하여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4.02.23 11: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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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자기애성 성격장애) 톱아보기

약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병

성격 장애, 혹은 인격 장애라고도 부르는 정신장애의 범주는 조현병이나 조울증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조현병이 환각이나 망상, 조울증이 감정적 변화에 따라 진단을 내리는 것과 달리, 성격 장애는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하는 관점, 그리고 대인관계에 따라 진단명을 정의 내릴 수 있다.

성격 장애는 조현병이나 조울증에 비해 치료나 호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환각과 망상의 증상은 약을 복용하면 어느 정도 가라앉지만,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약물로 쉽게 치료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기자는 주변에서 성격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약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병”, “정신과 의사들조차 피하고 싶은 병”, 심지어 “정신과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은 주변인들”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다보면 우연치 않게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다. 내 가족이나 직장 상사나 동료처럼 오랜 시간 함께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특성을 알아야만 피하든 도와주든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심심 출판사의 도서 '가까운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장애일 때'를 바탕으로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해 살펴본다.

우도 라우흐플라이슈, '가까운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 장애일 때', 장혜경 옮김, 심심, 2021.
우도 라우흐플라이슈, '가까운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 장애일 때', 장혜경 옮김, 심심, 2021.

 자기애성 성격장애(나르시시즘)의 유래

성격 장애도 그 특성에 따라 10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유형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란 단어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Narcissus)’의 이야기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나르키소스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고, 그 모습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물에 빠져 죽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단어 나르시시즘은 지나친 자기애와 자아도취에 빠져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타인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또한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자기 과시적이며 인간관계를 이용하고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

DSM-5에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재능과 성공을 과장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인정받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작은 업적이나 성취물을 과장되고 반복하여 병적으로 타인에게 노출시킨다. 너무 반복적인 나머지, 타인들로 하여금 피로감을 느끼게 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만큼 칭찬과 인정에 목마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들이 칭찬과 인정을 해줘도 같은 행동은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의 낮은 자존감으로 만들어진 내면은 칭찬과 인정으로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기 때문이다.

2. 성공과 권력, 천재성과 이상적인 사랑과 같은 공상에 몰두한다.

어릴 적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경우가 많다. 그 받지 못한 사랑을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 속에서 보상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현실도피는 중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상상의 세계가 깨지는 것은 큰 좌절과 상처를 가져온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발언을 들었을 때, 더욱 불같은 화를 내며 공격적인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자신의 현재 상황과 처지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낮은 자존감이 더욱 무너져 심한 경우 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

3. 자신은 특별하기에, 마찬가지로 특별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사귀려 한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유명인, 연예인들을 그냥 스쳐가지 않는다. 가까이 하려 노력하고 소셜미디어에서 친구관계를 맺는다거나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사람들에게 과시한다. 그렇게 해야만 스스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람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들은 사람관계를 끊는 과정에 있어서 매우 차갑고 냉혹하다.

4. 타인들이 자신을 칭송하고 숭배하기를 원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권력을 추구한다. 자신보다 나약해 보이는 사람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만, 사회적 위치와 명망이 높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추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자신은 높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통해 타인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얻으려는 과시에 불과하다.

5.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하고 존귀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실제로도 어떤 모임이나 장소에서도 이들은 분위기를 주도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을 이끌어낸다. 또한 유머와 웃음이 넘치고 좌중을 압도한다. 또한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 마음을 여는 것도 능숙하다. 어떤 자리에서도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타인에 의해 말을 제재당하거나 대화의 주도권을 잃는 것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에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또 다시 관계를 끊기도 한다.

6.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주변사람이나 타인을 공감과 배려의 대상이 아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곤 한다. 여기에는 가족이나 친구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도 포함된다. 이들에게 인맥을 있을지언정, 정작 믿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는 거의 없는 편이다. 오히려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나약하다고 멸시하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을 향해 권력을 휘두르고 과시함으로서 자신 내면의 자괴감과 무기력감을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낮은 자존감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기에, 이 후로도 지속적으로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한다.

7. 타인의 감정이나 느낌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에게는 타인의 감정이나 느낌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타인의 약한 아킬레스건이 어디인지 상처를 받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감정 다툼이나 싸움에 있어서 지지 않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매우 능하다. 이 역시도 타인이 받을 감정이나 느낌에 전혀 죄책감이나 미안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8. 타인들이 자신을 부러워하고 질투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타인들과의 갈등과 다툼이 자주 생겨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잘못과 반성은 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 갈등의 책임을 전가한다. 또한 자연스럽게 타인으로부터 미움 받고 멀어지는 현상을 현실적으로 직시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은 특별하고 뛰어나며,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타인들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착각한다.

9. 오만하고 건방진 태도와 행동을 보인다.

타인과의 갈등상황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잘못의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에는 원인이 있다. 자존감이 낮은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갈등 관계에 있는 타인을 무시하거나 공격적으로 대하고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연락처나 문자 통화를 차단한다거나,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우를 끊는 방식도 반복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스스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동기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건강한 나르시시스트와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스스트로 나뉠 수 있다.

자신을 높이기 위해 타인을 낮추는 것은 타인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믿을 수 있는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자신의 정직함과 성실함과 같은 내면이 아닌 외적인 성과와 외모에 초점을 맞춘다면 타인과 깊은 정서적 공감과 유대감을 쌓을 수 없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신중하고 배려 깊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깊고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이고 계산된 사귐은 언제든 쉽게 맺고 쉽게 끊을 수 있는 인맥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애적 성격의 성향이 있다. 다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타인에게서도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나르시스트들이 건강한 자기애적 성격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 받았으면 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주요증상 체크리스트

  1. 내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2. 성공, 권력, 칭송, 외모에 관해 심한 망상에 사로잡힌다.
  3. 나는 특별하고 비범해서 특별한 사람이나 유명인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4. 사람들에게 과도한 숭배를 요구한다.
  5. 과하게 특별한 대우를 바란다.
  6. 주변 사람들이 나의 기대에 자동으로 응하리라 생각한다.
  7.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8.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9.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거나 공감할 의지가 없다.
  10. 타인을 질투하고, 타인도 나를 질투한다고 믿는다.
  11. 거만하고 도도한 태도를 보인다.

 

해당 글은 심심 출판사의 도서 '가까운 사람이 자기애서 성격장애일 때'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책 살펴보기(클릭하면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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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1 2024-02-24 08:16:42
혐오와 낙인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를 오히려 악마화하고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가해자화하는 정신병리의 논리를 당사자들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느린 2024-02-24 04:46:47
성격이란 객관화 할 수 없음에도 자꾸 병리화하려고 하는 추세가 안타깝습니다. 위와 같은 오만하고 악마 같은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DSM-5 (정신진단분류체계) 조차 그 상업성 속에서 비판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진단명을 가지고 동료당사자를 낙인찍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경멸하고 혐오를 생산하는 일은 더더욱. 어쩌면 그가 처한 상황이 깊은 상처와 연동되면서 만들어낸 것이 증상일 수 있습니다. 혹은 그에게 주어지는 보상, 즉 칭찬과 인정에 진정성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상황과 맥락을 보아야 합니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하나의 낙인으로 수렴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라 당사자의 좋은 친구이기 위해서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