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인식주간 특집] (3) 여성의 카스트와 섭식장애
[섭식장애 인식주간 특집] (3) 여성의 카스트와 섭식장애
  • 박지니 작가
  • 승인 2024.02.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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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독립해 지낸 지난 20여 년 동안, 어쩌면 당연히도, 나는 - 대학 시절 머물던 반지하방이나 훨씬 나중에 살았던 원룸촌을 제외하면 - 주택가에 집을 얻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내가 사는 곳 주변은 밤이 되면 취객들의 무대가 되고 내게는 낯선, 그들만의 세계가 몇 남짓 남은 주점들의 불빛과 소음으로 거리에 비져나온다. 틀림없이 그들 세계엔 내가 모르는 역학관계와 매너리즘, 질투와 알력이 있고, 내 상상이 가닿지 못하는 돈의 흐름이 있을 것이다. 늦은 밤 쓰레기를 내놓을 겸 집을 나서 가까운 모퉁이의 편의점으로 먹을 거리를 사러 가는 존재일 뿐인 나는, 아직 불 밝힌 주점 밖 주차된 차와 오토바이 곁에 동그랗게 모여 있거나 쪼그리고 앉은 젊은 남자들이 심란한 어투로 헐뜯고 있는 이가 대체 누굴까, 그들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 어떻게 공생하는 관계일까 혼자 궁금해 한다.

어떤 문화와 생태계는 물리적으로 아무리 근접해 있어도 나를 휘말려들이지 않는다. 내가 사는 건물 아래층에는 조선족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이 있고 - 평일 낮에는 근처 직장인들에게 ‘오늘의 메뉴'를 팔고 저녁엔 술을 마시러 온 장노년층 단체손님을 받는다 - 지하에는 촌스런 이름의 유흥주점이 있지만, 여기에 나는 마치 40년을 같은 집에 혼자 살며 병원 문지기로 일했던 미국 화가 헨리 다거처럼 익명이고 이질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세입자로 살 수 있다. 그들의 눈에도 나는 고객이 아니고, 다만 나는 가난해서 더 현명하고 영악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에 접근할 기회가 없었던 계층답게 비싼 월세를 순순히 감당하는 세입자로서만 여기서 의미있을 뿐이다.

△ 지리학자 도린 매시는 여성의 경우 신체적 폭력, 추파, 이질감 유발 등 수많은 형태로 이동성이 제한되며 실질적으로 '감금'된다고 분석했다.
△ 지리학자 도린 매시는 여성의 경우 신체적 폭력, 추파, 이질감 유발 등 수많은 형태로 이동성이 제한되며 실질적으로 '감금'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집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를테면 전철역에만 이르러도, 나는 공공장소의 이용자로 군중 속에 참여하게 되고, 내 신체적 존재는 내 의도와는 별개로 초 단위로 사람들의 오독을 일으킨다. 전철 안에서 특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모욕과 분노다. 단지 사람들의 ‘비매너’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는 사십대 중반이지만 얼핏 보기에 내 체격과 차림새는 ‘젊은 여성'이고 이는 내가 언제든 ‘봉사하고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나는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은, 언제든 도움 청할 수 있는, 여차하면 내 공간을 침범하고 모른 척할 수 있는 존재로 축소된다.

‘젊은 여성'은 좌석에서나 서서 갈 때나 그 옆자리가 비교적 숨통트이며 쾌적한 존재이고, 노인 남성에게는 빤히 쳐다봐도 좋은 존재이고 - 과연 그가 성인 남성을 그렇게 쳐다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만원전철에서는 대놓고 마주보고 서거나 완력으로 찌그러뜨려도 되는 존재이며, 이들이 같은 카스트라는 것을 느낌으로 아는 노인 여성은 이들의 몸을 아무렇게나 만지고 부여잡는다. (어쩌면 이들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남을 위해 스스로를 물건으로 만드는 경험에 익숙해져 있던 탓이리라.) 나는 내 공간을 재확보하려 한 걸음 옆으로 움직이면, 내 옆에 붙어 섰던 남성은 자리를 피해준 줄 믿고 다시 그만큼 내 옆에 붙는다. 그들은 내 머리 위로 손잡이를 잡고, 내게 체중을 마음껏 싣고 기대거나 나를 밀친다. 만약 내 뒤에 건장한 남성이 서 있어 나와 그 사이를 비집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은, 열에 아홉 애먼 나를 밀치고 공간을 낸다.

그럴 때 나는 내 분노를 마주하며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공동체 의식이 없을까.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지낼 심성을 못 갖춘 걸까. 만약 재난이 닥쳐 우리가 한꺼번에 고립된다면, 이 사람들은 서로 붙고 겹쳐진 몸으로도 개의치 않을 텐데 타인에 적대적이었던 나만 눈에 나서 배제되지 않을까. 그럼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울까.

그러나 내밀히 들여다보면, 그건 훨씬 복잡한 문제다. 내가 구역질을 일으키듯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것은 양보와 봉사, 애정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자신이 소외된 상태에서 공공의 서비스 제공자로 내가 인식되는 것이고 내 구역질은 그에 대한 완강한 반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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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또 다른 어느 자취방에서 - 이번엔 시장과 가까운 건물, 미용실 바로 위층이었다 - 나는 병원 응급실 상황을 다루는 TV 다큐물을 보던 중 죽음을 앞둔 심각한 거식증 환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방송에서는 그 환자의 죽음을 알릴 때까지 한 번도 ‘거식증'이란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이라처럼 피골이 상접해 나이를 추정할 수 없는 여성이 그의 가난하고 늙은 남편과 어린 아들과 함께 응급실에 도착한다. 그는 오래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 채로 집에 방치됐고, 빈사 상태가 돼서야 의료체계의 눈에 띈 것이다. 어린 아들은 어머니의 몰골이 전혀 끔찍하지도 무섭지도 않은지 누워 꼼짝않는 어머니의 몸에 엉기듯 붙어 있으려 하고, 아이의 조부 정도로 보이는 남편은 아무 말 없이 황망히 서 있을 뿐이다.

진단명을 비껴간 빈곤한 여성의 거식증. 그는 자기가 처한 현실의 무엇을 - ‘전부 다!’라고 내 편파적인 마음은 외친다 - 도망치고 싶었을까, 나는 20년째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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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쯤 아버지의 학교 동창 친구들과 가족동반으로 근교의 개울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지의 친구들이 내가 튜브를 타고 헤엄치는 것을 돕겠다고 나섰다. 뭍으로 돌아와 아내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텐트 근처에 모여 앉았을 때, 아버지의 친구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무언가에 대해 농담하듯 이야기했고, 아내들은 눈치를 주었고, 나는 그게 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칭찬 같았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수치스런 칭찬이었다. 나는 죄책감으로 몸이 굳었다.

훨씬 후에, 대학상담센터에서 이전 상담자의 추천으로 만난 여성 상담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주산학원 건물 공중화장실에서 겪었던 일을 용기내 이야기했다. 상담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는 ‘우리 때는 그런 일들은 부지기수로, 매일 같이 일어났고, 그런 정도의 일은 안 겪어 본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즉, 그런 일을 ‘트라우마’로 삼아 현재의 어려움을 정당화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거기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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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스퀘어 지하철역에 붙은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Ro의 체중감량 프로그램 광고. 본래 남성 성건강과 탈모 치료 회사로 시작했던 Ro는 오젬픽, 위고비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사용과 병행하는 체중감량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RO/The Wall Street Journal]
뉴욕 타임스 스퀘어 지하철역에 붙은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Ro의 체중감량 프로그램 광고. 본래 남성 성건강과 탈모 치료 회사로 시작했던 Ro는 오젬픽, 위고비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사용과 병행하는 체중감량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RO/The Wall Street Journal]

20년 전 당시 섭식장애는 비만과 종종 함께 논의되었고, 섭식장애 클리닉을 운영하는 의사들이 비만 클리닉을 병행 운영하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기사는 2007년 모 일간지*에서 비만과 섭식 문제 의료전문가 삼인방을 초대해 진행한 인터뷰다. 초대된 이들은 간헐적 단식 주창자로 유명한 비만 전문가 가정의학전문의, 한의사, 그리고 섭식장애 전문 정신과의사였다. 그 중에서 압권은 한의사의 발언이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줘야 한다. 여성이 아이 낳고 뚱뚱해지는 이유는 남편에게 더는 여자로 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서다. 여성은 평생 섹시해야 한다고 세뇌할 필요가 있다. 좋은 옷도 사고 사치도 적당히 부려야 한다. 멋진 자기 모습을 보고 다이어트를 할 동기를 부여받는게 좋다.”

당시 나는 지방공기업 홍보 담당 직원이었고, 이 기사가 실린 신문 역시 새벽에 엘리베이터 문 밖에 흩어져있는 걸 내가 직접 주워 가져 온 중에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6년 전 내가 입원했었던 섭식장애 전문 입원병동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그때 열다섯 살이었던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주인공 채영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역시 얼마 전 사라진, 명동 소재 종합병원의 정신과 폐쇄병동에 거식증으로 입원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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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봄. 입원병동에서 억지를 부려 퇴원하고 이틀쯤 늦게 새학기 복학을 이룬 나는, 입원병동에서 다른 환자들과의 대화 중 깨친 직관적 지식 덕분에 입원 전보다 덜 먹게 되었고 두어 달 사이 급격히 체중이 줄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나는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어느날, 학교 셔틀버스 맨뒷자리 가운데 좌석에 앉은 나는 버스가 방향을 틀 때 내 엉덩이가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좌석 한쪽에 휑뎅그레할 만큼의 공간을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내 양옆에 앉은 거구의 남학생들은 좌석 하나씩을 꽉 채우고 거의 걸터앉아 체중으로 구심력을 버티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마땅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자랑스러우면서 부끄러웠고, 놀랍고 겁도 났으며, 거추장스러운 여성적 존재를 없앴다는 게 가뿐하면서도 눈감아주기 어려울 반칙을 저지른 것처럼 심장이 팔딱댔다.

저 남학생들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나는 더 이상 거기 속해있지 않다. 그건 어쩌면 전보다 더 두려운 인식이기도 했다. 신입생 주제에 멋모르고 ‘예술과 철학'이라는 제목의 교양강의를 신청한 나는 그 강의가 실은 하이데거를 읽는 미학 강의라는 게 밝혀지자마자 첫날 출석했던 학생의 90퍼센트가 빠져나간 후에도 - “드랍한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던 탓도 있지만 - 수업에 계속 나갔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여남은 이들은 복학생들 뿐이었고, 기말 시험지를 내고 강의실을 나설 때 백발의 강사가 “자네도 수고했네"라고 인삿말을 건넸을 때도 나는 혼자 이질적 수강생이었다는 쭈뼛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름학기에 들었던 한국문학 수업에서도, 책걸상을 둥글게 배치한 강의실에서 강사의 양 옆자리는 문학에 열의 넘치는 남학생들 차지였다. 내 책 <삼키기 연습>에서도 썼지만, 강사가 멀찍이 앉은 나를 향해 “학생은 글을 쓸 건가?”라고 물었을 때 그 왕위계승자 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내 쪽을 쳐다보았던 것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언젠가 한 남학생이 “여류 작가들이 설거지하다 끼적이는 글들을 안 좋아한다"고 발언했던 것도.

당시 내가 다녔던 대학은 아직 ‘남학교'나 다름없었고 - 나는 98학번이며, 당시만 해도 강의동에 여자화장실은 매 층이 아니라 두 층에 한 곳 꼴로 있었다 - 학생회관에 이발소와 미용실이 따로 있었지만 그 ‘미용실'이라는 게 남학생들의 머리를 좀 다른 스타일로 깎아주는 곳이었다는 걸 신입생인 나는 짐작도 못했다. 그래서 남자 손님들밖에 없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머리를 자르고, 더벅머리가 돼서도 뭐라고 항의하지도 못하고 울먹이며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간 적도 있다.

그렇다면 내 물리적 존재를 최소화한 나는,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경쟁에서 아예 기권하는 쪽을 택했던 걸까? 쪼그라든 채 셔틀버스 뒷좌석에 앉은 내가 느낀 공포와 수치는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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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했던 남매 듀오 ‘카펜터스’의 보컬 카렌 카펜터가 거식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인 1982년 12월 찍은 사진
미국의 유명했던 남매 듀오 ‘카펜터스’의 보컬 카렌 카펜터가 거식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인 1982년 12월 찍은 사진

1993년 발간된 대한내과학회지*에는 스무 살 때부터 11년 동안 이뇨제를 남용하다 응급실에 실려온 한 젊은 주부에 대한 사례연구가 실려있다. 어린 딸 하나를 둔 이 30세 여성은 “불면증과 히스테리성 정신병증”으로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이뇨제 중독에 대해선 어떤 개입도 받지 못한다. “본 환자는 입원전 수차례의 병원 방문에도 불구하고 저칼륨혈증의 원인이 밝혀지지 못하였고 입원 후 여러 차례의 문진에도 이뇨제 복용을 강력히 부인하여 처음 진단은 Bartter씨 증후군이었다. 그러나 입원 기간중과 퇴원 후 총 5회에 걸쳐 각각 채취한 소변 검체 모두에서 furosemide가 검출되었고 이후 환자가 furosemide를 약 11년간에 걸쳐 복용하고 있었음을 시인하여 이 환자에서의 저칼륨혈증의 원인이 은밀한 이뇨제 복용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힌 논문은 “습관적으로 이뇨제를 은밀히 복용하는 환자가 스스로 이뇨제 복용을 중단하는 예는 드물며, 이 환자들은 본 환자의 경우와 같이 대부분 정신질환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약물 복용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이뇨제 복용의 부작용에 대한 인식과 함께 지지정신요법과 같은 정신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짓는다.

유전성 희귀질환인 바터증후군을 닮은 이런 ‘가성(假性)’ 바터증후군에 관한 사례 보고는 1990년대 초반 여러 학회지에 발표되었다. 이들 논문에서 내과의사나 방사선의가 ‘외모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 환자의 가성 바터증후군을 논하며 언급하는 ‘라식스'라는 이뇨제는 푸로세미드 성분의 가장 인기있던 상품명으로, 2003년 한 일간지***는 “약국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찾는 주요 품목 중에 ‘라식스’가 있다"며 의약분업 전까지 일반의약품으로 팔리던 이 약은 “살 빼는 약[으로] 둔갑[한] 이뇨제"였다고 쓴다.

달라진 것은 없다. 김보람 감독의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서 주인공 채영의 외할머니이자 상옥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근 40년 이상을 “토하면서 사셨"던 것으로 밝혀진다. 연달아 딸만 낳은 며느리로 구박을 받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단지 자기 몸을 벌하는 것밖에 없었으리라고. 그는 때론 부엌에서 쓰는 튀김용 나무젓가락으로, 더 괴로울 때는 길에서 꺾어 온 거친 나뭇가지로 목구멍을 가차없이 쑤셔 위장의 것을 토해냈다.

음식과 몸의 정치성, 그리고 여성이 역사적으로 거기 있다. 달라지는 것은 팬 홈의 형태, 너비와 경사일 뿐이다. 여성의 마른 몸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 더 정확히는, 마치 ‘원죄’ 같은 여성의 수치심을 덜어낼 수 있는 기적 같은 극기처럼 추앙되고 - 인생에서 기쁨과 위안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과장된 식도락뿐이게 된 현재의 문화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훨씬 다양한 연령대에서 섭식과 신체상 문제를 겪게 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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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저출산 공익광고 [사진=공익광고협의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최근의 저출산 공익광고 [사진=공익광고협의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많은 젊은 여성들이 섭식장애로 십여 년에서 수십 년을 비참하게 고투하고, 수많은 가족이 이로 인해 붕괴된다. 그러나 주로 ‘여성들의 문제’ - 철없는 딸과 실패한 엄마의 문제 - 로 치부되는 섭식장애는 이제껏 단 한 번도 국가적 수준에서 진지한 사안으로 다뤄진 적 없다. 왜일까? 무엇이 두려워서이며, 무엇을 시인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것은 이런 광고들 같은 눈속임이다. 자사 매장은 절대 ‘노키즈 존'이 아님을 축제 분위기로 광고했던 모 패스트푸드 브랜드 - 하지만 엄마들에게 필요했던 건 또 하나의 키즈카페가 아니라 성인여성으로서 자기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공간이었다. 어린아이는 장난꾸러기지만 그 순수함 탓에 아이 키우는 노고를 잊는다는 메시지의 공익광고 - 하지만 부부는 단순히 사랑스러운 ‘영원한 어린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다. 흡연자 가족을 “구조”라는 명목으로 금연지원센터에 전화로 신고하는 어린 자녀와 조부모를 묘사하는 금연광고. 특히 최근의 이 금연광고는 흡연을 단도직입적으로 “질병"이라 규정하며, 이를 치유해 줄 상담사로 수화기 너머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등장시킨다.

지워야 하는 것은 그 모든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사실들이다. 특히 여성이 처하는 것. 육아와 가사노동에 관한 모든 것. 그리고 사적이며 공적인 ‘돌봄'에 관한 - 평가절하되고 고달픈 돌봄 노동에 관한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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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전문가는 정부를 움직이려면 노동력 손실을 포함한 사회경제적 질병부담을 넘어 ‘출산률'에 대한 영향까지 언급하는 게 유리할 거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특히 거식증 같은 섭식장애로 여성이 무월경 상태가 되고 임신출산에서 누락되고 있으므로, 국가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이에 대해 우리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의 반응은? 그렇게 치부되느니 차라리 거식증으로 굶어 죽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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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고작 두어 주 앞두고, 나는 이제는 제법 유명해진 온라인 북클럽 ‘들불'을 혼자 운영하는 노혜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총선을 앞두고 있기도 하니, 우리도 공약을 제안하거나 당사자 세션에 앞서 성수동에서 행진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여는 건 어떨까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나 곧 우리는, 우리들이 사건을 조직해 대중의 이목을 붙든다면, 그 즉시 우리 몸에 대해 퍼부어질 모욕과 혐오 - “거식증이라며? 지금은 잘 먹나 보지?”- 에 대해 묵묵히 상상하다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지금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창의적인 방안이 있지 않는 한, 그건 우리에게 전혀 좋은 전략이 아닐 거라고.

 

[미주]

* 비만은 병... 전문가 3인의 식욕토크, 동아일보, 2007-07-25 (클릭하면 연결됩니다)

** 조윤숙 외(1993). 장기간 Furosemide의 복용으로 발생한 신수질 석회화가 동반된 가성 Bartter씨 증후군, 대한내과학회지: 제45권 제2호, 255-260.

*** 살빼는 약 둔갑 이노제, 세계일보, 2003-01-07 (클릭하면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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