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입원, 여전히 ‘뜨거운 감자’… 재논의 필요한가?
강제입원, 여전히 ‘뜨거운 감자’… 재논의 필요한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2.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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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 시행 후 강제입원 하락 추세
막상 강제입원 필요해도 절차적 요건 강해 실패
일부 가족, 필요한 강제입원은 지속돼야
인권측, 병원 치료적 환경 먼저 바꿔야
"사냥감 노획하듯…" 정신병원 강제입원 (c) JTBC 뉴스 갈무리
정신병원 강제입원 (c) JTBC 뉴스 갈무리

A(30대)씨는 아버지가 조현병 환자이자 알코올중독자다. 간경화 말기로 시한부 판정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술을 계속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

조현병 증세나 알코올에 의한 장애가 발생하면 집안은 난장판이 된다. A씨와 가족이 선택하는 건 강제입원을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강제입원 자체가 어려워졌다. 경찰을 불러도 경찰은 ‘자타해의 위험’이 없기 때문에 강제입원을 시킬 수 없다고 손을 놓았다. A씨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환자의 인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가족의 인권과 가족의 ‘슬픔’을 배려하지 않는 불안정한 법이라는 생각뿐이다.

B(40대·여)씨는 동생이 조현병 환자다. 수년 전부터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해 왔지만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으로 장기입원 경향이 줄어들면서 동생은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고 있다. 가족들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동생의 투약을 챙겨줄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동생은 약물 복용을 중단했고 증상이 심해졌다. 그러나 가족도 분간하지 못하는 동생의 상태를 보고서도 강제입원을 시킬 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가족 모두 동생의 강제입원에 동의했지만 환자가 거부할 경우 입원시킬 수 없다는 경찰의 말에 사실상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그렇게 집에서 혼자 지내다가 어느 날 건물에서 뛰어내려 허리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B씨는 당시 강제입원만 됐어도 동생이 투신해 수술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범죄를 저지르는 조현병 환자들이 이처럼 강제입원 절차를 어렵게 만들어 놓아 정작 제때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이 두 사연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c)청와대 국민청원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국민청원홈페이지 갈무리

증상 있어도 강제입원 못 시켜… 복지법에 의문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다. 구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 조항을 개정해 강제입원 절차를 엄격하게 했다. 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법철학이 녹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여전히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른 입원 유형은 현재 5가지다. 자의입원, 동의입원, 강제입원(비자의입원),경찰에 의한 응급입원, 시군구청장에 의한 행정입원으로 분류된다. 자의입원과 동의입원은 환자의 자율적 의사에 따른 입원 유형이다.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의사에 따라 입원하는 것으로 자기결정권이 보장된다. 문제는 강제입원이다.

현행 법 43조 2항에 따르면 강제입원의 요건은 현저하게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자신과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등 두 가지 요소 모두를 충족해야만 가능하다. 정신적 질환으로 상태가 심각하지만 자타해의 위험이 없다면 강제입원을 시킬 수 없다. 환자의 가족이 경찰을 불러도 경찰은 당사자인 환자가 자타해의 위험에 해당되는 행위를 할 경우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간다.

자타해 위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자타해 위험 범주가 여전히 추상적이고 협소해서 정신과 의사는 자타해 위험성이 모호한 경우 환자의 동의가 없으면 치료를 시작할 수 없다. 자칫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엄격한 자타해 기준을 완화해 지침을 만들었지만 이것 또한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지침은 증상의 악화 또는 중독성 약물의 갈망·금단으로 인한 악화를 비롯해 위생불량, 자기관리능력 저하까지 자타해 위험성으로 간주했다.

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위험이 있거나 1년 내에 자해시도 경험이 있는 경우 등 포괄적인 규정도 포함됐다. 일각에서는 복지부가 인권보호를 위해 강제입원 기준을 엄격히 강화한다더니 그 기준을 완화시킨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자타해 위험성으로 입원을 시도할 경우도 문제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4조와 45조는 경찰이 자타해 위험성이 큰 정신질환자에 대해 행정입원과 응급입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지정병원과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강제입원은 효율성과 도덕성이 끝없이 마찰을 빚어왔다 (c)mbc
강제입원은 효율성과 도덕성이 끝없이 마찰을 빚어왔다. (c) mbc

예를 들어 응급입원을 해야 할 상황이라 경찰이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돌아서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의 생활이 힘들지만 자타해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이 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추상적이고 방대한 자타해 위험성 기준

이 경우 경찰은 정신질환자를 순찰차에 태워 병원을 전전하다 귀가조치를 시킨다.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특별한 조치 없이 가정으로 복귀하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에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7월 성명을 통해 “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것이 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며 “재발을 반복하는 정신질환자의 치료 유지를 위해 촘촘한 치료유지 및 지역사회 관리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학회는 또 “지역사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의 자타해 위험성이 분명하지 않다고 대책없이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처럼 지역사회 기반의 외래치료권고제와 같은 다양한 유형의 개입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리의 부담은 온전히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자타해 위험성이 발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보호자에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 인권단체들의 입장은 어떨까.

구 정신보건법에서 강제입원은 여러 가지 인권 문제를 낳았다. 가족 간 재산 문제나 불화로 보호의무자가 ‘악의’를 갖고 당사자를 입원시키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구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그 절차를 강화했다.

기존에는 보호의무자 1인의 입원동의가 있어야 했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은 2인으로 기준을 강화했다. 또 최초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2주 내 다른 국공립병원의 전문의가 추가로 진단해 진단명이 일치할 경우 3개월간 입원시킬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응급입원의 경우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자타해 위험성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만 해당돼도 강제입원이 가능했다. 그러나 정신건강복지법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법의 강제입원 요건은 강화됐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충족기준 때문에 환자의 치료에 조기개입이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지만 인권단체들은 입원의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법 규정을 완화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c)영화 '날, 보러와요' 갈무리
영화 '날, 보러와요' 갈무리

강제입원은 결코 문제해결의 답 아니다

이정하 정신장애 인권과파도손 대표는 “(강제입원 기준 완화 요구는) 가족들 입장이다. 당사자가 병원을 싫어하는 게 더 문제”라며 “강제입원은 문제해결의 답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법이 까다로워져서 가족이 함부로 입원을 못 시킨다. 지금 우리가 (입원 기준을 완화하는) 문을 열어버리면 (과거와) 똑같은 상황이 된다”며 “어려워도 강제입원은 지양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강제입원 거부는) 기본권의 문제이며 가족이 (강제입원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 버거워하기 때문에 그런 목소리들이 발생하지만 오히려 정신장애인의 독립적 삶을 살 수 있게 지역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힘겹게 싸워서 얻은 정신건강복지법의 인권적 부분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1년, 정신병원 강제입원은 37%로 떨어졌다. 퇴원을 하게 된 이들도 2천여 명에 이른다. 구 정신보건법 하에서 강제입원 비율은 90%를 넘었던 걸 감안한다면 ‘괄목상대’한 수준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강제입원’을 둘러싼 효율성 논의보다 치료적 환경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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