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가 되다
시민기자가 되다
  • 전민 기자
  • 승인 2019.01.01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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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포스트의 사람들을 만나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마인드포스트라는 신문사를 알게 되고 창작공작소에 글을 올리기도 하면서 언젠가는 나는 이 곳에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단순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글을 누군가 읽고서 반응해주는 것을 기대했기도 했고 정신장애인을 대변하는 신문사가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생겼다는 반가움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글을 통해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가능성 때문이었다.

2018년의 마지막 금요일. 시민기자를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메일을 보낸 바 있다. 그리고 편집회의에 참여해달라는 답신을 받았다. 일주일 전 약속을 독감에 걸렸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그 사이에 나 자신에게도 이런저런 신변의 변화가 조금 있었다. 열심히 활동하던 센터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직원과 언쟁을 벌인 일이 있었고 모든 센터활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오랜 약점이자 단점이라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그 순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들어 엎어버리는, 결국은 나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고 있었다.

결국은 감정의 문제였다.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사회에서 내 몫을 하고 싶다는 소망은 늘 있었다. 사회에서 알바로, 계약직으로 전전하면서 나름대로 직장에서 인정을 받은 적도 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계약직이라는 신분은 늘 그렇듯, 주인이 결코 되지 못한다.

나는 어느 곳에 가서든지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그 곳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그 결과가 좋게 나타났더라면 좋았겠지만, 때때로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조직의 화합을 방해하는 인물로, 불만투성이의 아웃사이더로 인식되었던 것이 그동안의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보곤 했다.

직장생활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 같았다. 대다수의 정신 장애인들이 그렇겠지만, 인간관계의 갈등을 풀기가 참 어렵다. 나도 그런 문제를 잘 해결 못해서 내가 먼저 그만 둬버리는 경우가 흔했다. 나로서는 프리랜서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출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도에서 시민기자에 지원했다.

작은 시작이 될지도 모르고 그냥 한 번의 시도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센터를 안 나가기로 작정한 이상 뭔가 다른 활동을 해 보고 싶었다. 시민기자라는 이름표가 나에게 어떤 길을 보여줄 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한번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오가던 사이에 기존에 만들어놓은 인간관계와 센터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나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지극히 이기적인 의도를 가지고 12월의 마지막 금요일 오후 마인드포스트를 방문했다.

수많은 회사사무실이 밀집해있는, 조금은 낡은 건물 안에 마인드포스트 사무실이 있었다. 노크를 하자 잠시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나의 이 방문이 예정에 없던 일이라는 점을 생각했다. 미리 연락하지 않고 언제고 찾아가겠다고만 했지 그 날이 오늘이라고는 미리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누구냐고 묻는 문 너머의 질문에 더듬거리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두 번이나 대답을 하고 나서 문이 열렸다. 박종언 편집국장이었다. 첫눈에 그라는 확신이 들었다. 박 국장은 키가 크고 덩치가 있었다. 나는 샤프하고 지적인 용모의 젊은 박종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예상은 늘 빗나간다.

테이블에 앉아 통성명을 하고 잠시 대화를 했다. 굳은 표정의 그다. 그런 그의 표정이 기자로서의 직업병인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 때문인지 금방 알아차릴 순 없었으나 곧 그가 무뚝뚝한 표정 너머로 온화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 우리의 대화는 좀 딱딱했고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나는 그를 잘 아는 것처럼 시크하게 굴었던 것 같다.

잠시 후에 김근영 편집부장이 나타났다. 그는 파마머리가 잘 어울리는 남자다. 나중에 저녁을 먹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김 부장에게 파마머리를 잘 소화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아까 저녁도 잘 소화하시는 것 같았다며 뭐든지 잘 소화해내는 걸로 봐서 소화제를 상시복용하고 있는 게 아니겠냐며 근거 없는 유머를 날렸다. 당황해하는 김 부장의 표정을 순간 보았다. 아, 이 몹쓸 개그감이란!

김 부장은 비당사자로서 나의 이런저런 쓸데없는 소리를 잘 들어주었다. 잠시 시간을 내서 마인드포스트의 홈페이지와 글 올리는 방법을 소개해주었다.

곧 우리는 편집회의를 시작했다. 편집회의에서는 간략한 보고와 확인, 계획 등을 나누는 정도였다. 아직은 시작한 지 육 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육 개월 밖에 안 된 신생언론사로서 마인드포스트의 입지는 생각보다 빠르게 번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인드포스트 편집국 회의 모습 (c)마인드포스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 회의 모습 (c)마인드포스트

센터에서 활동하면서 나는 곧잘 회원들에게 마인드포스트라는 정신장애인을 대변하는 신문사가 있다고 알려주곤 했다. 이관형 작가의 ‘바울의 가시’라는 책도 마인드포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고 ‘박종언의 만남-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통해 곳곳에서 활약하며 각자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는 다양한 정신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인터뷰기사가 나에게 적잖은 힘을 준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불합리한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전에는 전혀 몰랐다.

회의를 마치고 나는 3개월의 수습기간을 잡고 기자로서 수련을 받기로 했다. 나는 단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 하나 생긴다는 생각으로 지원했었으나 사실 그게 다는 아니었을 것이다.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걸 통해서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꿈꾸던 대로 사회가 더 나아지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잠깐씩 했다. 아직 내가 이 신문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는 적절치 않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이고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 신문사는 조금씩 전진해왔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박종언 국장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퇴근길의 직장인들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퇴근길의 인파였다. 날씨도 때마침 영하의 강추위였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치며 집으로 향했다.

이제 나에게는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이 길을 어떻게 갈 지는 순전히 내 몫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인드포스트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나처럼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창작물을 내놓는 등 우리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큰 기대와 계획을 내가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희망에 들떠서 당장이라도 뭔가 해보려고 덤벼드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꾸준함이다. 순간의 뜨거운 열정보다 미근하지만 결코 식지 않는 차분함이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당장에 세상을 바꾸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나 역시 그렇게 너무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눈앞의 변화는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작은 힘들이 모이고 모인 결과다. 나에게 과연 그 결실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있는지 나 자신을 시험해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기사는 발로 쓴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아는 만큼 쓰자. 모르는 것은 쓰지 말자. 모르는 것을 써야 할 경우가 생기면 먼저 공부하고 나서 쓰자. 이것만큼은 지키면서 시민기자활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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