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영국 정의당 의원을 기억하는 오후
여영국 정의당 의원을 기억하는 오후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4.05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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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국회 본회의장.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법률안 법안의 찬반 유무를 묻는 표결 시간. 본회의에 재석한 207명이 이 법률안에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버턴을 눌렀다. 국회 본회장 앞 대형 전광판에 찬성을 누른 의원들 199명 이름 옆에 초록색 점이 커졌다. 그리고 기권 6표.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2명이었다. 이들 이름이 적힌 전광판에는 빨간색 점이 켜졌다. 단 2명이었다. 정신건강복지법의 강제외료치료지원과 정신적 장애가 심각할 경우 본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보건소에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개악’에 대해 단 2명의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인권 침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두 명은 모두 정의당 소속으로 윤소하 원내대표와 이틀 전 경남 창원 성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여영국 신임 국회의원이다. 기자에게 여영국 의원은 낯선 존재다. 원래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런지 특별한 이슈를 남긴 의원이 아니면 기자는 정치인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 당선 이틀 후 첫 번째 표결에서 반대를 눌렀다. 모든 이들이 천동설을 주장할 때 그는 지동설을 외친 것처럼 그의 정치적 태도는 분명 놀라웠다. 법안은 가결됐지만 기자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었다.

여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행 의료법은 개인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 개정안에서처럼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만 달리 적용하는 것은 차별의 소지가 있다”며 “정신질환자 본인 또는 보호의무자가 동의하지 않음에도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사실 지난해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정신건강의학화 교수가 내담을 온 환자의 흉기에 피습된 이후 정치권과 의료계는 정신장애인의 존재를 ‘위험성’으로 도배하는 법안들을 앞다퉈 내놨다.

응급실에 보안요원을 배치하고 비상벨을 설치하고 위험할 경우 비상통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신변보호적이고 치안적인 법안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퇴원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퇴원 사실을 정신건강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인 동의 없이 직권으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해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리고 이 법안들은 5일 모두 통과됐다.

분명히 정신장애인에게 이 같은 강제적 법의 적용은 폭력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존재론적 존엄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정신장애인이 이 무섭도록 두터운 편견의 세계에 외치는 것은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박탈하지 말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으로 표상되는 그 무엇이다. 그 두려움이 이 같은 인권침해적 법률을 서둘러 만들 수 있게 하는 추동력이었다.

그런데 여영국 의원이, 그 정치 신인이 용감하게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어쩌면 우리 정신장애인이 겪는 내적 고통과 외적 차별과 배제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은 실존적인 것이어서 누구에게 이입시킬 수 있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우리의 고통에 ‘공감’을 했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그 공감의 외연이 확장될 때 우리 정신장애인들도 존엄에 기반한 삶을 개척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그의 정치적 신념들이 하나씩 구성되고 건축되기를 바란다. 정치권력에 취해 자신의 존재성을 잃어버린 여타의 ‘정치꾼’이 되지 말고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약자의 편에 선다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영국. 그의 이름을 오늘 기자가 기억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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