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신장애]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의료진은 항정신병 약물을 권했다"
[세계 정신장애]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의료진은 항정신병 약물을 권했다"
  • 송승연 기자
  • 승인 2022.11.15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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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의료진은 항정신병 약물을 권했다. 하지만 캐롤라인은 ‘목소리’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운동은 주류적 사고방식이 정신과 약물치료에만 한정돼 있던 것에서 벗어나 더 큰 관대함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향한다.

※ 2022년 5월 뉴욕타임즈 메거진에 실린 이 기사는 댓글이 약 1,400개가 달릴 정도로 치열한 논쟁이 유발되었습니다. 그만큼 갑론을박이 존재할 수 있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제시되고,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논의가 제시되기를 바랍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Daniel Bergner. Doctors Gave Her Antipsychotics. She Decided to Live With Her Voices. The New York Times. 2022. 05. 17.

https://www.nytimes.com/2022/05/17/magazine/antipsychotic-medications-mental-health.html [링크주소 클릭]

글쓴이: 다니엘 바그너(Daniel Bergner) / 번역: 송승연(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

Daniel Bergner. Doctors Gave Her Antipsychotics. She Decided to Live With Her Voices. The New York Times. 2022. 05. 17. © 2022 The New York Times Company
Daniel Bergner. Doctors Gave Her Antipsychotics. She Decided to Live With Her Voices. The New York Times. 2022. 05. 17. © 2022 The New York Times Company

캐롤라인은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 아침 식사에는 오트밀과 함께 알록달록한 정신과약물들이 제공됐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그 목소리들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밖에서 말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캐롤라인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목소리는 인디애나폴리스 북부에 위치한 자이언즈빌에 살고 있던 가족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목소리는 걸프전 당시 텔레비전 영상에 나타난 이미지들(전투기, 하늘의 섬광, 지상의 폭발, 야밤의 불빛 등과 관련된 모든 것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또한 캐롤라인이 학교에 있을 때, 어떤 여성 목소리는 ‘너의 옷에서 냄새가 난다’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으며, 선생님이 던진 질문에 대해 답을 알고 있음에도 ‘손을 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또 다른 어떤 목소리는 캐롤라인이 움직일 때마다 들려왔고, 그 목소리는 약간 비웃는 듯한 톤으로 “캐롤라인은 지금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오, 그녀는 지금 복도를 걷고 있네요”라고 말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캐롤라인이 복용하는 항정신성 약물들은 점점 많아졌다. 항정신병약물, 기분안정제, 항우울제, 불안감을 낮추기 위한 벤조디아제핀, 주의력결핍과 관련된 자극제 등으로 확장되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과 약물 복용량이 많아지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목소리 들림 등의 다양한 환각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 오직 하나의 정신과약물만 복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신과적 증상을 억제하려는 시도로 여러 가지 정신과 약물이 처방되며, 종종 유사한 항정신병 약물들이 동시에 처방되기도 한다.

캐롤라인에게 항정신병 약물들은 기껏해야 목소리가 벽을 통과해서 들리는 것처럼 약간 감소시키는 것에만 효과가 있었고, 이는 오히려 목소리를 명확하게 듣는 것보다 더 공격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또한 항정신병 약물들은 비만을 유발했고(캐롤라인은 약물 복용 후 몸무게가 22.5kg 증가했다), 팔뚝과 목을 자유롭게 가누는 것이 어려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떨리기도 했고, 이는 마치 허공으로 펄럭이며 날아가길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캐롤라인은 독특한 정신 상태로 인해 고립됐지만, 정신과 약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은 그 고립을 강화시켰다. 불안과 자기혐오, 어떤 한 인격체가 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커졌고, 이로 인해 캐롤라인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비틀어 세게 잡아당기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머리카락이 빠지고, 두피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은 캐롤라인에게 왜 몸을 떠는 대머리가 되느냐고 물으면서, “뚱보”, “마약 중독자”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고등학생 때 캐롤라인은 탈출구를 찾기 위해 대마초, 바륨, 헤로인과 같은 길거리 마약을 접하기 시작했다.

비록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SAT 언어 영역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 시기에 그녀는 문학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방을 느꼈다. 『햄릿』과 『이던 프롬』과 같은 작품에 나와 있는 자살 시도의 ‘광란의 하강’에 대한 부분들을 몇 번이고 혼자 소리 내어 읽었다. 캐롤라인은 또한 두 여동생에게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었고, 여동생들은 등장인물들이 바뀌거나 내레이션이 등장할 때 캐롤라인이 목소리를 바꾸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이러한 재주는 캐롤라인이 다양한 목소리를 들은 경험들에서 비롯됐다. 캐롤라인은 다양한 언어의 뉘앙스를 지닌 목소리들을 매우 밀접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책 속의 다양한 등장인물들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또한 여동생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든,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든 간에 관계없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목소리들)을 조금이나마 조용하게 만들었다.

캐롤라인은 훌륭한 성적으로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신경과학 세미나에 등록하며 “내가 왜 미쳤는지 알아내겠다”고 결심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캐롤라인은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대학 시절 마약을 구하기 위해 캐롤라인은 섹스를 마약과 교환했다. 성매매라고 단정하기엔 어렵지만, 결코 부드러운 성적 관계는 아니었다. 중독과 분노의 상태에 있는 남성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분노와 잔인함을 흡수하기도 했으며, 샤워하면서 어떤 남성들은 그녀를 때리기도 했으며, 많은 멍자국을 입고 깨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낙태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후 캐롤라인에게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내겠다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경찰에 의해 체포되기도 했고, 경찰과 다투다가 격분해 독방 벽을 머리로 치기도 하였다. 캐롤라인이 세 번째로 체포된 이유는 마약을 구하기 위해 전자제품을 훔친 죄였다. 부모가 가진 재산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형사처벌을 면하게 됐다.

휴스턴 외곽에 있는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됐다. 시간이 지난 후 애팔래치아 산맥 기슭에 있는 치유 농장(psychiatric farm)으로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의무적으로 복용한다면 간호사가 보고 있는 곳에서 정신과 약물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특권을 얻은 후, 캐롤라인은 모든 정신과 약물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그 선택은 충동적이었지만, 비합리적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농장에서 양 떼가 있는 우리를 삽으로 치우고, 왜소한 당나귀의 갈라진 발굽을 돌보며 더 평온해짐을 느꼈다. 더 이상 정신과 약물의 무익함과 해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캐롤라인은 테이퍼링(tapering·약물 감소 기법)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아침, 저녁으로 변기에 정신과 약물을 흘려보냈고, 누군가가 자신의 정신과 약물 케이스를 확인할 때 적당한 수의 알약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조심했다.

살이 빠지고,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캐롤라인의 목소리들은 잠시 후퇴해 있는 것 같았지만, 항복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 있는 그룹홈으로 가게 됐고, 그곳에 머무르면서 우연히 평평한 트랙에서 이루어지는 롤러스케이트 경기를 보게 되었다. 캐롤라인은 마치 공이 없이 진행되는 것 같은 럭비와 비슷한 격렬한 스포츠에서 경쟁하는 여성들을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그녀는 다음날 스케이트를 샀다. 혼자서 연습했고, 지역의 팀과 함께 훈련하기도 했으며, 곧 도시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작은 체구의 검은 눈이 살짝 보일 정도로 낮은 헬멧을 쓰고, 팀의 주요 득점자 중에 한 명이 됐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하던 혼란을 수습하고, 그것을 결의로 전환하기 시작했다고 느꼈으며,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 재배치할 수 있는데 영향을 준 롤러 경기에 고마움을 느꼈다.

2000년대 후반, 캐롤라인이 2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 정신건강 영역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다. 그것은 동료지원가로 정신건강 종사자들과 함께 일하는 ‘살아있는 경험(lived experience)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라고 알려져 있다.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이 당사자들의 신뢰를 더 잘 얻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동료지원가’는 비롯됐다.

캐롤라인은 저임금을 받으며 다양한 일을 하다가 2012년, (한때 25개 이상의 제지 공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가장 열악한 지역 중 하나인) 메사추세츠 홀리요크에 정착하게 됐고, 당시 신규 당사자 단체였던 ‘야생화 연대’(Wildflower Alliance)에서 일하게 됐다. 그 단체는 황량한 도심에 위치해 있었고, 방이 모두 3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주요 목표는 ‘극심한 정신적 고난에 대해 현재 우리 사회가 대하는 방법, 이해하고 있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캐롤라인은 당사자 단체에서 근무하면서, 환청과 환각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해 AA(알코올중독자 자조모임)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운영되는, 목소리 듣기 네트워크(Hearing Voices Network) 모임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 모임은 (정신과 의사와 같은 전문가 없이) 당사자 단체가 내어준 소박한 공간에 마련된 오래된 의자와 소파에 당사자들끼리 모여서 진행됐다. 정신의학이 정신증(psychosis)으로 지칭하는 것을, 목소리듣기운동은 ‘합의되지 않은 현실’이라고 지칭했다. 이 운동의 기본 신념은 자신들이 듣고 보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방을 가득 채우는 것이 그들에게 더 생생한 삶을 불어넣을 수 있고, 그들에게 더 ‘견고한 힘’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들이 듣거나,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감춰야만 했던 압박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사회의 주류에서) 일탈돼 있다는 느낌을 감소시킴으로써, 환영(들리는 목소리, 보이는 것)의 영향력을 느슨하게 만들고, 결정적으로 고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캐롤라인은 또한 정신병원 폐쇄병동의 대안으로 당사자 단체가 운영하는 위기쉼터인 아피야 하우스(Afiya house)에서 때때로 근무했다. 아피야 하우스에 머무르는 당사자들은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거지가 없어 노숙을 해야 하는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거나 자살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아피야 하우스에는 의료진이 없으며, 보안요원도 없다.

오직 이러한 절박함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만이 있는 곳이었다. 거실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써진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진리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 자신만의 정밀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당사자단체가 운영하는 위기쉼터 아피야 아우스 [사진=뉴욕타임즈 누리집 갈무리]
당사자단체가 운영하는 위기쉼터 아피야 아우스 [Danna Singer for the New York Times]

홀리요크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캐롤라인과 ‘야생화 연대’는 중증정신질환 관련한 정신건강 시스템 접근 방식을 개혁하려는 운동의 선두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관점이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기존 방식은 특히 정신증의 경우 '위험 관리'를 강조한다. 주류 의료계는 항정신병 약물들이 단점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신질환, 자살, (발생할 확률이 적지만) 폭력적 분출 등이 일어날 확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약물들이 결과를 개선시킨다는 증거는 불분명하다. 또한 비록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약물치료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결과를 악화시키고, 심지어 뇌 위축을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들의 결과에 의해 반박되기도 하였다.

생의료적 관점을 취하는 정신의학이 지닌 중요한 부분과 관련해 강력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기도 하다. 즉, 심각한 질환을 치료하거나 심지어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해하는 것과 관련해 큰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의 2019년 주요 의견서는 “현재의 학문적, 임상적 정신의학은 무언가 잘못됐다”라고 밝혔다. 또한 “우리는 생물학적 치료의 극명한 한계에 직면해 있으며, 정신질환의 원인이나 치료법에 대한 체계적인 생물학적 이해는 없다”고 언급했다.

작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서비스 이용자의 인권에 관한 300페이지 분량의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거대한 관료주의가 있음에도) 중증정신질환에 관한 혁명적인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침들은 생물학적 정신의학의 권위, ‘정신건강’에 관한 기존의 전문 지식 및 이해에 도전한다.

그리고 지침은 다양한 정신적 상태(정신증, 양극성장애, 우울증, 기타 여러 진단들)를 경험하는 사람에 대해 모든 비자의적이거나 강제적인 치료의 종식, 그리고 현재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가장 우선시되고 있는 약물치료 접근법의 지배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WHO는 정신의학의 문제가 있는 약물들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이 주류적 접근법으로 유지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토마스 인셀(Thomas R. Insel)의 말을 강조한다. 그는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받은 전미정신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NIMH에서 13년 동안 정신질환의 신경과학과 유전학을 연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저는 멋진 과학자들이 꽤 큰 비용(제 생각에는 약 200억 달러 정도일 것입니다)으로 많은 훌륭한 연구들을 발표했다고 생각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의 연구가) 자살률을 감소하고, 입원을 줄이고, 정신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의 회복을 개선하는데 있어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정신건강과 관련해 ‘전문성‘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다른 관점을 포함해, 현재 시행 중인 많은 가정들, 규범 및 관행에 대한 재평가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될지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보건기구를 이끌고 있는 전직 임상의이자 연구원이면서, 정신건강 정책, 법률, 인권 관련 보고서들의 주요 저자인 미셸 풍크(Michelle Funk)는 현재 ’지배적인 임상적 가정‘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신건강전문가들은 그들이 도움을 제공하려는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전문지식보다,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우선시하면 안 됩니다.”

현재의 방법들은 단지 향정신성 약물의 부작용에 의해서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폐쇄병동과 법원 명령에 따른 외래환자 치료(외래치료 명령제)에 존재하는 권력 불균형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권력 불균형은 외견상으로는 양호해 보이는 의사-환자 관계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증상을 감소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두는 전문가의 태도는 당사자로 하여금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 진단 기준의 체크리스트로 취급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미쉘 풍크는 “정신건강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뇌의 결함이나 뇌질환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의료계의 광범위한 믿음은, (당사자들에게) 너무나 쉽게 압도적인 무력감, 정체성의 상실, 희망의 상실, 자기낙인, 고립 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정신건강 영역에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반세기에 가까운 정신의학 역사의 종결을 요청하고 있다. 1960년대 초 케네디 대통령은 암살되기 몇 주 전, 정신건강법안에 서명하고, “과학적 성취의 현재 조건 하에서, 우리처럼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정신의 먼 곳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의 과학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질환을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자신감은 그 당시 정신의학계가 처음으로 항정신병 약물인 클로르프로마진(미국에서는 소라진Thorazine이라는 이름으로 판매)이 발견된 것에서 비롯됐다. 소라진은 다양한 부작용(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안면 경직, 지속적인 경련, 둔감성 등)을 가져왔지만, 힘든 행동들을 억제시키고 감소시킬 거라는 그릇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타임지는 이 약물을 '인도주의적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고, 소라진을 박테리아 감염을 퇴치하기 위해 1930년대와 40년대에 개발된 획기적인 약물인 ‘살균 술파제’에 비유했다. 그러나 정작 환자들은 약물이 가져오는 이점이 해로움보다 더 크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왜냐면 그들은 종종 약 복용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소라진 다음에 더 강력해진 할돌(Haldol)이 나타났지만, 부작용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들은 대형 정신병원들로부터 당사자들을 해방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이러한 약물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정밀하지 않은 개념이 존재했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과민성 시스템이 정신증의 주범으로 인식됐고, 항정신병 약물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억제한다고만 믿었다. 하지만 문제 또한 나타났다. 이 약물들은 ‘운동장애 및 무기력’을 유발하는 것을 포함해, 뇌 전체의 도파민 네트워크를 손상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에 들어서 생물학적 관점을 중시하는 정신과의사들은 보다 정교하게 조정된 항정신병 약물을 만들어 이 결함을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정신과학 및 신경과학 교수였던 조셉 코일(Joseph Coyle)은 198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볼티모어 선 시리즈에 실렸다. 이 시리즈는 새로운 뇌 연구를 예고했으며, 항정신병 약물과 다른 향정신성 약물들을 능숙하게 겨냥했다.

“우리는 불과 10년 만에 지식의 황무지에서 거의 지식의 과잉으로 나아갔습니다.” 지금은 뉴욕대학교 그로스먼(Grossman) 의과대학의 정신의학 교수이자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저명한 정신증 연구자 중 한 사람이었던 도널드 고프(Donald Goff)는 1980년대 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은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는 매일 출근하던 보스턴 클리닉에 다가갈 때마다 길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에게서 할돌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상한 움직임, 구부러진 몸, 떨림을 가지고 있었어요. 질환은 약해졌지만, 동시에 그 약물들은 환자들을 신체적으로 너무 비참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그는 동시에 “무한한 진보의 가능성을 감지하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리스페달, 세로켈 및 자이프렉사 등 "2세대 항정신병 약물“이라고 명명된 것들은 주로 1990년대에 나타났다. 2세대 약물들은 도파민 외 다른 신경전달물질들에는 조금 더 약하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부작용은 그만큼 적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고프는 기억했다. “우리는 낙관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있다고 확신했어요.” 그러나 빠르게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자이프렉사와 리스페달의 제조사인 일라이 릴리(Eli Lilly)와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은 불법 마케팅과 약물이 사용자의 신진대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송에서 패소해 수십억 달러를 보상하게 됐다(하지만 이 비용은 자이프렉사와 리스페달로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자이프렉사는 당뇨병과 심각한 체중 증가의 위험을 크게 증가시켰다(참고로 일라이 릴리는 자이프렉사를 복용한 환자의 16%가 복용 이후 66파운드<약 30kg> 이상 몸무게가 증가했다는 내부 데이터를 숨기고 있었다).

리스페달을 복용한 일부 남성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유방 이상 비대 영향으로 가슴이 늘어지기도 했다. 2005년 NIMH는 1천460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2세대 항정신병 약물이 실제로 1세대 약물 중 하나보다 효능이나 안전성 면에서 더 나은가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답은 '아니오'였다. “엄청난 실망이었죠”라고 고프는 말했지만, 동시에 그는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정신과적 파괴로부터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장기적으로 혹은 평생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프의 스승인 코일(Coyle)은 내게 말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치료법을 본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메커니즘 관점에서 볼 때 (가령 약물 투입으로 도파민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것) 현재의 치료법은 거의 70년 전 클로르프로마진을 발견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 꽤 무서운 일입니다.”

세계보건기구의 가이드라인은 노르웨이에서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22가지 사례를 제시하며, 궁극적으로 주류 정신의학적 사고가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캐롤라인이 속한 당사자단체(야생화 연대)가 운영하는 (동료주도의 위기쉼터) 아피야 하우스(Afiya house)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목소리듣기그룹(Hearing Voices groups)도 포함돼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하는 22가지 사례가 공통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소외와 맞서 싸우는 것’, 즉 ‘항정신성 약물에 중심을 두는 생의료적 모델’ 너머로 이동하는 것이며, ‘진단의 언어’를 벗어나 ‘사람의 다양성’을 강력하게 수용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세계보건기구와 캐롤라인이 하는 활동은 자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신경다양성 운동과 유사하다. 캐롤라인은 당사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두기 보다 ‘치유를 위한 선택권’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그녀는 자신이 희망하는 것은 단순히 자폐의 주류화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젠더 정체성을 받아들였던 초창기 상황’과 유사하다고 본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필요가 있어요. (다양한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중의 확장을 위해서요.”

야생화연대에서 근무한지 2년째 되던 2014년 무렵, 캐롤라인은 절망에 휩싸였다. 그런 절망이 찾아온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녀가 애쉬빌을 떠나 홀리요크로 오기 전,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더 강렬해졌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번엔 연대가 동료지원 협정을 맺은 오래된 주립병원의 사법정신과병동에서 어려움이 발생했다. 캐롤라인과 비슷한 또래의 금발 곱슬머리 남성이 강제로 격리실 침상에 강박돼 있었다. 캐롤라인은 병동 직원과 상의하지 않고 격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환자의 차트를 먼저 검토하라고 병동 직원들은 제안했지만 캐롤라인은 항상 이를 거절했다. 캐롤라인은 차트로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낮은 천정의 복도를 서성이고 있을 때 직접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아가기를 원했다. 캐롤라인은 침상에 강박된 남성 아래 바닥에 앉았다. “그는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그 남성은 ‘난 이제 다시는 여기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어요.”

캐롤라인은 항정신병 약물들의 강제적인 투여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생각에 그는 주사를 맞은 것 같았어요. 이럴 때(격리·강박) 보통 주사를 놓거든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당사자는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 않았지만, 직원 중 한 명이 와서 저를 격리실에서 끌어냈어요. 제가 위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요. 정신병원 직원들은 저를 아마 열쇠를 가지고 있는 미친놈으로 봤을 거예요.”

이런 일은 드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캐롤라인의 ‘목소리’는 강해졌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캐롤라인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목소리는 “그들이 우리를 죽일 거야”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화장대로 침실 문을 막으라고 명령했고, 캐롤라인을 이를 따랐다. “우리가 그들을 죽여야 돼”라고 그 목소리는 명령했다.

캐롤라인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그녀가 야생화연대에 출근한다면 동료들이 무슨 일이 있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그렇다고, 사무실로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녀는 활동가가 아니라 힘겨운 위기에 놓인 당사자로서 아피야(위기쉼터)에 머물 수 있는지 단체의 상사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캐롤라인은 아피야 하우스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피야는 제가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어요.”

홀리요크에서 두 마을 정도 떨어진 이 집은 회색 판자로 된 침실 네 개짜리 소형 주택으로, 작은 마당의 한쪽엔 체인링크 울타리가 있고, 길 건너편에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임대주택들이 있었다. 캐롤라인은 20대 초반 휴스턴의 정신병동에 있을 때나, 애팔래치아 농장이나 애슈빌 그룹홈에 있을 때에도 목소리가 들림에도 이를 숨겼고, 그 목소리들의 강력한 영향력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다.

그러나 아피에서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어떤 그룹 세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식적인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판단하지 않는 분위기’가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솔직한 대화로 끌어들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커다란 수조의 푸른빛과 금빛이 맴도는 지하실에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완전히 개방하기를 얼마나 갈망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타자들의 본보기로 살아가는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그리고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쉼터에서 캐롤라인이 머무르던 때, 밝은 거실 창문 사이 기타와 탬버린을 들고 있는 한 직원이 ‘어떤 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캐롤라인은 이 단순하고 솔직한 질문에 눈물이 났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전까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인에게) 맡겨져 있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지각력이 크게 취약하다고 추정되기 때문에, 캐롤라인처럼 ‘자신만의 현실’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무엇을 물어보는 것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제 목소리들 중 일부는 그들만의 취향이 있어요.” 캐롤라인은 말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저와 가장 오랫동안 지낸 ‘목소리’는 그 밴드를 좋아해요.” (이 목소리는 그녀에게 바리케이드를 치도록 충동질한 그 목소리이다.)

캐롤라인은 쉼터 직원에게 '프리 버드(Free Bird)'를 연주해 달라고 말했다. “그 쉼터 활동가는 전문 기타리스트로 유럽 투어를 한 경험도 있었어요. 그의 기타가 강렬한 솔로에 도달하기도 전에, 저는 목소리들 사이로 평화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어요.”

캐롤라인은 쉼터에서 공식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최대 기간(7일)을 머물렀다. 7일은 아피야 위기쉼터에 대한 수요를 감안할 때 최대한 머물 수 있는 기간이다. 이용자들은 정신건강기관을 통한 연계, 혹은 입소문을 통해 쉼터로 들어왔다. 7일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 있지만, 위기쉼터는 전형적인 정신과병동에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오히려 병원보다 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아피야 위기쉼터와 유사한 ‘당사자가 주도하는 위기쉼터’가 미국 전역에 30여 개 정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아피야 위기쉼터 기관장 에브라임 [Danna Singer for the New York Times]
아피야 위기쉼터 기관장 에브라임 [Danna Singer for the New York Times]

2019년에 캐롤라인을 처음 만났고, 지난 3월 필자를 아피야 위기쉼터로 데려가서 기관장인 에브라임을 소개해주었다. 에브라임은 날씬한 체격 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메탈 밴드의 이름인 '스피릿박스(Spiritbox)'가 새겨진 검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는 손님들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설명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었다.

“저는 매일 죽고 싶은 기분이 들어요.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에요. 그건 저에게 일반적인 거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패턴을 소위 정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죠. 여기 위기쉼터에 머물고 있는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해치고 싶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일반적인 생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고 믿도록 훈련 받았죠. 다양한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그것이 여기서의 치유이며, 바로 위기쉼터가 가지고 있는 마법입니다. 우리가 그 공간을 허용하지 않을 때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곳(위기쉼터)에 머무르는 것이 아주 작은 시작일 뿐일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느낌, 진정으로 들어준다는 느낌, 외롭지 않다는 느낌들은 힘을 줍니다.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은 혁명적이기도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캐롤라인은 ‘컴퓨터 위 선반에 롤러 더비 기념품이 있는 비좁은 야생화연대 사무실에서부터 시작해서, 메인 주 오거스타, 캘리포니아 유레카까지 전국에 걸쳐 목소리 듣기(Hearing Voices) 모임을 이끌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교육을 하기도 하였다.

목소리듣기운동은 80년대 중반, 네덜란드 정신과의사인 마리우스 롬메(Marius Romme)가 환각과 자살사고를 가지고 있던 클라이언트인 패치 하허(Patsy Hage)와 함께 일하면서 시작됐다. 하허는 롬메에게 목소리가 하는 말들을 무의미하다고 무시하기보다는, 목소리에 담긴 내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롬메는 하허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연구했으며, 1989년 학술지 Schizophrenia Bulletin에 논문을 게재하여, “환자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에 대한 경험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생물학적 정신의학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범위 밖에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다루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의사는 환자로 하여금 유사한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당시 롬메가 출판한 이 논문은 대다수에게 무시당했지만,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 조금씩 목소리듣기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 목소리듣기운동 첫 시작의 일부는 캐롤라인에 의해 2008년 야생화연대에서 비롯됐다.

캐롤라인에게 있어, 목소리듣기운동의 가장 필수적인 원칙 중 하나는 ‘그 누구도 당사자만의 현실을 수정하라고 설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 대다수의 정신과병동이나 진료실과는 대조적으로, 목소리듣기 모임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신념들’은 수정되지 않으며,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주시하지도 않는다. 캐롤라인의 좌우명은 ‘내가 누군가에게 통제 당하고 있다면, 진정으로 연결될 수 없다’이다. 그녀에게 있어 ‘관계의 연결’은 전부이며, 희망을 의미한다.

이상적으로 목소리듣기 모임은 오프라인에서 진행돼야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활동이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지난 3월 필자는 캐롤라인이 주도하는 온라인 목소리듣기 모임에 참석했다. 그 모임에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싱턴 주에 이르기까지 7명이 참석했다.

이 특별한 모임은 목소리와 보이는 것(의료적 용어로 환청과 환시를 의미)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테마인 영성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처음에 캐롤라인은 다음과 같이 상기시킴으로 마음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특별한 직접 경험이 없었다면 갈 수 없었던 곳입니다. 여기는 각자의 경험을 병리화하지 않으면서, 영성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정신과적 꼬리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한 남성은 그가 자랄 때 '거꾸로 된 천사'에게 공포로 흔들리기도 했고, 동시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캐롤라인은 목소리듣기 모임의 원칙을 따라갔다. 그 남성에게 그의 경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물어봄으로써 그 현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원칙이다. 이후 한 여성은 코로나 기간 동안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를 방문했으며, “할머니의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빛나는 분홍색 공”과 모든 것이 “반짝이고 빛나고 시대를 초월한 것”으로 보였던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맥박과 어떤 흐름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이후 그 여성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스크를 벗었지만 간호사와 싸움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정신과의사는 그녀에게 정신증적(psychotic)이라는 라벨을 붙였다. “저는 의사에게 제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어요. 의사는 제가 아프다고 말했지만, 저는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주류적 관점에 따르면, 이처럼 자신이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만든다. 질병불각증(anosognosia)이라고 불리는 진단을 부정하는 것은 정신증적 질환의 명백한 증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이어서 말했다. “제가 이 모임에 처음 왔을 때, 그날 할머니와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을 했어요. 저는 (ZOOM) 화면을 보았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어요. 맙소사. 사람들이 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모임에 참여한) 어떤 사람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느끼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오 마이 갓,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이 모임에서 저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어요. 홀로 된다는 것은 제 가슴을 짓누르는 것과 같아요.” 그녀는 아주 작게 울기 시작했다. “이 모임은 연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장소에요. 일상생활에서, 저는 안전감을 느끼지 못해요. 늘 갑옷을 입고 있어야 해요.”

캐롤라인의 책상 옆 벽에는 미국 전국 지도가 색색의 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파란색 핀은 그녀와 야생화연대 동료들이 ‘목소리듣기운동 촉진자 양성과정’을 이끌거나 주선한 장소를 나타낸다.

“때때로 혁명에서 앞장서는 장군처럼 느끼기도 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열정을 통해 목소리듣기 모임은 아주 소수에서 현재 전국 120개로 증가했지만, 코로나 이후 100개 정도로 감소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모임은 확실히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서 느끼는 확신과 공명에는 필적할 수 없다.

지도에 찍혀 있는 빨간색 핀은 또 다른 사업, 즉 자살예방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워크숍을 실시한 도시와 마을들을 의미한다. 이 워크숍은 자살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지향하는 단체의 예비 설립자를 위한 것이며, 동시에 자살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원하는 실천가와 가족들을 위한 것이다. (이 워크숍은 목소리듣기 모임과 유사하게 정신과의사를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캐롤라인이 고안한 교육 프로토콜 내의 슬라이드는 그 임무가 “그들이 자살하려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캐롤라인은 한 교육 참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언가 고치려고 하는 자세, 구해주려고 하는 자세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세요. 망토를 걸치고 있으면 우리는 들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소망을 포함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임 안에서, 기본적인 규칙은 당사자가 어떤 행위를 하려는 의도를 표현하더라도, 그 누구라도 어떤 핫라인, 경찰, 관련 종사자들에게 신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주류적인 관행과 얼마나 반대되는 것인지 이해하려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요청되고, 연방자금 지원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자살 핫라인의 정책을 살펴보면 된다. 핫라인은 비밀 보장을 광고하지만, 비밀리에 위험을 평가하고, 매년 당사자의 허락 없이 경찰차와 구급차를 수천 명의 집 앞으로 보낸다. 핫라인부터 정신병원에 이르기까지, 그 초점은 위험 관리에 맞춰져 있다. 이는 당사자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야생화연대 프로그램의 핵심 아이디어는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러한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해주고 있다고 느끼는 한, 스스로 삶을 마감할 경향이 훨씬 적어진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접근법을 평가하거나 비교한 연구는 거의 없다. 2020년 학술지 Suicide and Life-Threatening Behavior에 실린 한 연구(Jordan & McNiel, 2020 참고)는 정신병원 입원 중 경험하는 지각된 강요(Perceived Coercion)가 퇴원 후 자살 시도 위험이 증가하는 것과 연결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야생화연대가 선호하는 접근법을 직접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

이러한 대안적 모임들을 팬데믹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보스턴에서 덴버까지 3개에서 현재 거의 30개로 성장했다. 적어도 중요한 것은, 수많은 미국의 실천가들이 절망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새로운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정신건강기관인 CENAT은 캐롤라인을 초대했고, 그녀는 상파울루, 비토리아, 사우바도르 등을 돌아다니며, 임상의, 성직자, 법집행기관, 당사자들에게 자살에 관해 이야기했다. 호주의 지역사회서비스 비영리단체인 MercyCare는 시드니, 멜버른, 퍼스 등에서의 교육을 위해 캐롤라인을 초청한 바 있다.

지난 2년 동안, 캐롤라인은 자살과 목소리듣기운동에 관해 미국 전역에서 개최된 수십 건의 강연과 컨퍼런스에 참여해, 수백 명의 청중, 사회복지 대학원생, 정신병원 종사자들을 만났다. 지난 5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캐롤라인을 초정하기도 했고, 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양한 모임을 이끌고 교육을 조직하는 것 외에도 캐롤라인은 저녁 늦게까지 일대일 세션으로 하루를 보낸다. 가령 손자가 듣고 있는 목소리가 그의 인생을 파괴할까봐 두려워하는 할머니를 만나기도 한다. 혹은 자신의 집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결국 자신의 수치심의 근원을 털어놓는 청년을 만날 때도 있다.

어머니인 한 여성은 캐롤라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스스로 손을 자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아이를 해칠 거라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말이다. 마젤 칼튼은 그 이야기를 자세히 경청했고, 그 여성에게 그 목소리가 이 무서운 말들 아래서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캐롤라인은 그 목소리가 전달하려고 하는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했고, 이 과정을 통해 그 목소리는 어머니성(어머니에 대해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대한 압박과 갈등에 대해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도출했다. 특히 코로나 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는 것을 통해 때로 스스로에 대해 너무 많은 포기하라는 명령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댔다.

“사람이라는 존재로서 우리는 의미에 끌립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권능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무섭다는 감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캐롤라인에게 ‘영성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때로 캐롤라인은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동시에 스스로 가지고 있는 목소리에 의해 압도당할 때도 있다. 목소리들은 때로 굉장히 커지기도 하며, 캐롤라인에게 반복해서 질문을 요청하기도 한다. 캐롤라인은 그럴 때 수면에 도움을 주는 약물을 복용한다. 불면증을 위해 낮은 용량으로 트라조돈(trazodone)을 처방받아서 복용하지만,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동시에 캐롤라인은 야생화연대가 추구하는 방법이 항상 성공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1년 전,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자살했는데, 그 친구는 아피야에 머물면서 당사자단체 모임에 참여했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 공동체에서 그녀를 위해 더 많은 것들을 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캐롤라인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가 신경다양성을 계속해서 주변화시키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친구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는 일종의 임시 거주지이면서, 혁신적인 접근법인 소테리아 하우스 또한 모범사례로 꼽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소테리아 하우스는 소수에 불과하다. 페사흐 리히텐베르크(Pesach Lichtenberg)는 이 중 2개소를 이스라엘에 구축했다. 정신과 의사인 리히텐베르크는 커리어를 시작한 초창기 시절 정신약리학 관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980년대 중반 그는 정신과 트레이닝을 위해 뉴욕에서 이스라엘로 갔고, 어느 날 선배 의사와 회진을 하면서, 한 환자와 ‘악마와 메시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 그 이야기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회진을 떠나면서 선배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저 이야기는 저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야. 그의 도파민이 말하는 거야.’ 그 때에는 그것이 놀라운 통찰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리히텐베르크는 다소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은 그때 제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죠.”

25년 동안 리히텐베르크는 예루살렘 병원에서 정신과병동 운영을 주도했다. 그는 환자들이 정신과 약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고 언급했다. “(과도한) 복용량의 절반은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병원 직원들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었죠.”

완전히 환멸을 느낀 그는 2016년 예루살렘에 첫 소테리아 하우스를 개소했다. 그는 NIMH의 조현병 연구 책임자였던 로렌 모셔(Loren Mosher)가 저술한 소테리아 기원에 관한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 모셔는 정신의학이 항정신병 약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했던 사람이었으며, 이를 위해 1970년대 약물치료를 최소화하면서 ‘함께 존재하기(being with)’라는 용어를 주요 치료 철학으로 삼은 두 개의 소테리아 하우스를 베이 에리어(Bay Area)에 구축했었다.

하지만 모셔의 소테리아는 결국 예산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 20년이 지난 후 리히텐베르크는 모셔가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작업을 이스라엘에서 다시 시작했다. 리히텐베르크가 구축한 2개의 소테리아 하우스는 최대 10명이 머물 수 있으며, 평균 체류기간은 5주이다(현재 추가로 2개의 소테리아 구축이 진행 중에 있다). 임상의들은 존재하지만 부수적으로 활용되며, 전문적 지식의 우월함은 이 공간에서 사라진다.

정신과 약물은 (1차적이 아닌) 2차적인 선택지로 인지되며, 이전에 약물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면 가급적 약물치료를 피해야 한다. ‘함께 존재하기’는 멜라빔(melavim), 즉 동료들과 함께 이루어진다. 여기서 ‘동료’란 ‘그저 함께하면서, 공감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거주자로 하여금 덜 소외되고, 덜 외로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을 미션으로 가지고 있는 유급 인턴을 의미한다.

2019년 리히텐베르크의 소테리아 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내부 안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 명의 거주자(당사자)와 두 명의 멜라빔(동료)과 함께 앉아 있었다.

한 거주자는 데카르트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했는데, 어느 날 밤 직장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그는 데카르트의 격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포함된 웹 사이트를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그 격언은 본드처럼 머리에 박혀 있어요“라고 그 거주자는 괴로워하며 말했다. 그 밤 이후 강박사고에 시달렸고, 외부의 모든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됐다. 멜라빔, 다른 거주자들, 안뜰의 벽과 벤치, 그 어느 것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게 됐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멜라빔은 그의 경험에 대해 물었고, 더도 덜도 말고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리히텐베르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정신증과 연결되어 있는 주요한 두려움 중 하나인 폭력의 분출에 대해 물었다. 그가 말한 것은 아피야하우스에서 들었던 것과 유사했다. 10년 동안 오직 단 한 건의 사고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한 직원이 두 눈에 멍이 들었고, 가위로 위협 받았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리히텐베르크는 의자가 부서지고 접시가 깨졌지만, 다른 거주민, 멜라빔 또는 직원들에 대한 위협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1명의 멜라빔이 헤드락에 걸렸지만 부상 없이 풀려났으며, 한 직원이 다친 것 말고는 거의 찰과상 정도로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위협적이 된다면, 저는 제 손을 등 뒤로 하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만약 당신이 나를 공격하고 싶다면, 그것은 아주 쉽게 할 수 있을거에요’라고 말할 겁니다”라고 리히텐베르크가 이야기했다.

때때로 이스라엘 소테리아는 거주자가 너무 호전적이 되면 약물치료를 권유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용되는 약물은 거의 항불안제이며, 복용하더라도 이후 복용량은 점점 줄어들고 때로는 아예 복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소테리아 하우스들은 때로 폭력 전과를 가지고 있는 신청자의 극히 일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때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입주하기 전에 부모나 정부 보안관을 폭행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의 입주를 받아들일 때도 있다.

리히텐베르크의 첫 번째 소테리아 하우스의 대표였던 아브라함 프리들랜더(Avraham Friedlander)는 입주한 첫날 거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룹 미팅을 방해했던 한 당사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 당사자는 중동의 북인 다부카(darbuka)를 부수고 공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에 프리들랜더는 그와 함께 무리지어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모두가 발로 북을 치며 쿵쾅쿵쾅 뛰었고, 우리는 격렬한 춤으로 싸웠어요.” 이어서 계속 프리들랜더가 말했다. “그는 나를 붙잡고 바닥에 눕혔지만 다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나중에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는 자신의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고 있었어요. 그는 울었고, 그날 밤 저는 그의 곁에서 잠을 잤어요. 그가 악몽에 시달리며 깨어났을 때, 저는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따뜻한 차를 주었어요.”

소테리아의 접근법이 다소 낭만적이고 나이브해 보일지 모르지만, 리히텐베르크는 이스라엘 보건부의 지원을 끌어냈다. 현재 이스라엘의 4개 공공보험사 중 2곳과 국방부의 보험시스템은 입원의 대안으로 소테리아에 머무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리히텐베르크가 2016년 첫 삽을 뜬 이후 이스라엘 전역에 소테리아와 유사한 실천을 지향하는 17개소의 하우스가 추가로 개소했다. 올해 리히텐베르크는 예루살렘의 주요 정신병원 중 하나인 크파르 샤울(Kfar Shaul) 정신병원의 의뢰를 받아, 폐쇄병동을 소테리아 철학을 지향하는 병동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주류 정신건강시설들은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서서히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뉴욕시 보건정신위생국의 애쉰 바산(Ashwin Vasan) 신임 국장에게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에서 정신질환자 및 무주택자와 관련된 폭력 및 사건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하여 이메일로 문의를 했다. (참고로 바산의 최근 연구는 정신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바산은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약물 복용뿐만 아니라 ‘극도의 고립을 타파하는 것’에도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는 또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생각과도 싸워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한 연구 결과는 바산이 지향하는 바를 뒷받침해준다. 그 연구는 환각과 망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균등하지는 않더라도 폭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지만, 빈곤, 노숙, 약물 남용 등의 요인들이 통제될 때 그 패턴이 확연하게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남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 연구는 정신증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이 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인도에서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해서 살아가고 있는 차쿠 마타이 씨는 뉴욕 주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대규모 프로그램 OnTrackNY의 프로젝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OnTrackNY는 정신과약물 치료를 하나의 접근법으로 포함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케어에 대한 당사자의 관점을 결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마타이는 또한 목소리듣기 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가 많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타이는 하나의 우화를 들려주었다. 외국을 돌아다니던 한 여행자가 이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공작새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그런 괴상한 생명체는 이상한 깃털을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깃털을 잘라버렸다는 우화이다.

목소리듣기 모임을 지원하고 있는 차쿠 마타이 [Danna Singer for The New York Times]
목소리듣기 모임을 지원하고 있는 차쿠 마타이 [Danna Singer for The New York Times]

마타이는 어떤 목소리를 듣기도 했고, 자신만 보이는 무언가를 보기도 했으며, 십대 때 자살 시도 후 입원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쩌면 앞의 우화에서 나오는 공작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차이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제공된 약물을 거부했다는 점만 빼만 말이다.) 마타이는 마음에 휴식을 주기 위해 요가 수행에 몰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의심할 때도 있으며,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들이 들리기도 한다.

마타이는 때때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만약 완벽하게 치료해주는 항정신병 약물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복용할지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의 경험은 매우 풍부해요. 저는 그것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에요.” 또한 마타이는 다른 사람들의 독특성과 고독함에 대해 깊게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보편적으로 결합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 매사추세스에서 목소리듣기그룹을 주도했던 베스 [Danna Singer for The New York Times]
서부 매사추세스에서 목소리듣기그룹을 주도했던 베스 [Danna Singer for The New York Times]

베스는 목소리듣기운동이 기존의 전통적 정신의학과 맞서기는 하지만, 반정신의학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전직 음악교사이자 첼리스트였던 베스는 정신과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끔찍한 떨림, 그리고 정좌 불능(akathisia)이라고 불리는 고통스러운 육체적 불안감을 경험하게 됐다. 이는 정신적 어려움으로 인해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교사 경력 단절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융통성 없는 정신과 의사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지나간 후, 베스는 상호 이해와 절충의 방안을 기꺼이 추구하려는 새로운 사람들을 발견했다. 여전히 베스는 계속해서 불안감을 주는 보이는 것(환시)을 경험했다. 하지만 수정된 약물 치료와 함께 이루어진 종교적 실천은 신체적 떨림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20년 만에 다시 첼로를 연주하게 됐다.

캘리포니아 포스터시티에 거주 중인 드미트리 구트코비치 씨는 줌(ZOOM)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들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목소리들은) 꿈의 생태계 같아요.” 가령 구트코비치의 어떤 목소리들은 그의 가족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어떤 목소리들은 엔트로피에 대해 철학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는 아주 소량의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데, 이는 거의 플라시보에 가까운 양이다.

구트코비치는 목소리듣기 모임에 참석함으로 인해, 목소리들과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목소리들과 그들의 의도를 이해해서, 목소리들과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향해요. 즉 목소리듣기운동은 관계의 관리에 관한 것이에요.” 구트코비치는 10년 전, 20대 초반 시절에는 “완전하게 활동했던 시기는 아니었어요”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 당시)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두웠고, 불행한 미래가 예측됐어요.” 지금 그는 결혼을 했고,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ZOOM 화면에서 그는 이를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구트코비치는 현재 한 잡지의 마케팅 이사로 일하면서 8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있다.

캐롤라인과 상담을 진행한 어떤 (당사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묻곤 한다. “언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언제가 좋을까요?” 자녀들이 경험하는 ‘또 다른 현실’을 알게 되는 부모들은 불안이 사라진다.

3월 어느 늦은 오후, 머리 위의 전등이 꺼지고 외딴 창문의 불빛이 어둑어둑해지는 사무실에서, 캐롤라인은 줌으로 다른 어머니에게 상담을 제공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큰아들이 신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말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아들은 병원에 입원한 경력도 있으며,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고, 노숙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제 아들은 스스로를 일종의 구원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알고 싶어요. 저는 잘못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그냥 같이 있고 싶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캐롤라인은 조용히 그 어머니의 이야기에 반응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제가 그 아이의 편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아이는 정신건강 시스템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가 자기를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말해요. 저는 그건 내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가 한 것이라고 했어요. 저는 아들이 할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제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그리고 아들은 노숙인이 되면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기 때문에 편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만약에 다시 노숙인이 된다면, 절대 그러면 안 되지만 그는 죽을 수도 있어요.”

캐롤라인은 말했다. “저는 어머니에게 이 일을 떠넘기지는 않을 것이에요. 하지만 아마 아드님은 입원과 관련하여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기존의 ‘정신건강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M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캐롤라인은 약물치료(medication)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저는 (약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요.”

“그게 현명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어머니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정신과 약물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요. 아드님은 그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드님은 언제든지 어머니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약 이야기를 꺼낼 때면, ‘너의 그런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라고 들릴 수도 있어요. 마치 ‘너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라고 들릴 수 있어요.”

“눈앞이 캄캄해요.”

“성인이 된 이후 부모님이 나를 신뢰한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은 느낌과 비슷할 것이에요.”

“아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 그의 면전에 대고 화를 내지 않아요. 정말로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어머니께서 그렇게 애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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