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정신장애인자립센터 확충·센터 사무국장 조건 완화”...삭발식 진행된 서울시청 앞 '절규'
“서울시 정신장애인자립센터 확충·센터 사무국장 조건 완화”...삭발식 진행된 서울시청 앞 '절규'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5.1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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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신질환자 자립생활 지원 생존권 투쟁 기자회견, 시 청사 앞서 진행
정신질환자 조례의 시행규칙 미비로 선언적 의미로 전락...지원 제도 없어
시 호봉 테이블에서 정신센터 종사자 인건비는 80%...타 장애센터는 100% 인정
정신건강토탈케어서비스 확대를 통해 동료지원활동가의 일자리 창출돼야
정신센터 사무국장 자격은 전문가 중심주의...당사자도 국장 지원할 수 있어야
기자회견 중 삭발식 진행...시가 약속 안 지키면 노숙투쟁도 불사
서울시청 앞서 진행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기자회견. (c)마인드포스트.
서울시청 앞서 진행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기자회견. (c)마인드포스트.

17일 오후 두 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정문 앞. 60여 명의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준비해 온 환의를 입고 플래카드를 펼쳤다.

플래카드에는 ‘서울시 정신질환자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생존권 투쟁 기자회견’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같은 시각, 100여 미터 떨어진 세종대로에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노조 탄압 중지와 윤석열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의 엠프 소리는 기자회견이 열리는 시청 정문까지 울렸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한정연)가 주최한 이번 기자회견은 서울시가 정신장애인단체의 지역사회 자립생활 지원 요구를 계속 회피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전격 진행됐다.

한정연은 6대 정책 요구안을 제시했다. 지난 2020년 서울시는 ‘정신질환자 자립생활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독립생활과 복지서비스의 보편적 이용, 탈원화 이후의 자립생활을 담고 있지만 시행규칙의 미비로 선언적 공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한정연 측은 “서울시는 조례와 계획만 발표했을 뿐 시행규칙의 제정 및 예산의 증액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정신장애인이 독립적 존재로 인정받는 환경을 만들지 않고 실효성 없는 계획만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7년에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조례 시행규칙을 제정했다. 또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담은 5개년 계획과 예산 수립 등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지원을 강화해오고 있지만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는 외면해 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자회견에서 부민주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팀장은 “조례를 통해 세워놨으니 끝이다? 이는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며 “시행규칙이나 구체적 지원 제도가 제정되지 않아 정신질환자자립생활센터는 생존을 위해 개인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정연은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센터 종사자의 인건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서울시의 현행 호봉 인정 기준은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정신재활시설 등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는 경력을 100% 인정한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경력의 80%만을 인정하는 구조다. 이를 100%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승주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활동가는 “어떤 사회복지사는 우리와 같은 시간 같은 노동을 하는데 급여 차이가 난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것”이라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법칙에 따라 같은 임금을 받게 해 달라고 시에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서울시 호봉 인정 조건에서 종사자 인건비를 대조해 보면 팀장급은 사회복지시설에서는 총 2164만 원을 받지만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센터에 근무하는 경우 같은 직급이지만 1970만 원을 받게 된다. 194만 원의 차액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센터장은 당사자센터 2148만 원, 복지시설 2423만 원으로 275만 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위은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활동가들의 임금을 적절히 지급하지 않는 것은 활동가들의 사기를 저하하는 것뿐 아니라 양질의 서비스 제공과 시설 운영을 어렵게 만든다”며 “그 모든 결과는 정신장애 당사자에게 오롯이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c)마인드포스트.
기자회견. (c)마인드포스트.

한정연은 현실적인 인건비 비율을 반영해 당사자의 맞춤형 일자리 창출 등 당사자의 사회 참여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건강토탈케어서비스의 확대를 통한 동료지원활동가의 일자리 창출도 요구안에 넣었다.

지난 2009년 정신건강토탈케어서비스 사업이 시작돼 정신장애인의 상담, 위기관리, 일상생활지원, 취업 지원 등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0곳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전체 자치구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이 사업은 자격 기준이 정신건강전문요원, 임상심리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로만 제한돼 있어 ‘경험 전문가’인 동료지원활동가의 사회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정연 측은 “자격 기준 완화를 통해 수행기관에서 동료지원활동가를 의무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시 정신질환자 자립생활 지원 조례 제5조는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지원협의회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의회는 정신질환자의 자립을 지원하고 그 이행을 자문하는 기구다.

이 같은 협의회의 부재로 서울시 시민건강국과 산하 보건의료정책과 등 담당 부서는 ‘워치독’이 없는 상황에서 정신장애인의 자립적 삶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정연 측은 “협의회 내에 당사자 위원이 다수 포진돼 서울시가 향후 정신질환자 자립생활 지원계획을 적절히 수립해야 한다”며 “대안 없는 입·퇴원 반복의 회전문 현상을 끊는 환경 조성에 일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연은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지원센터의 확충도 요구했다. 현재 서울시에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마포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등 3개소가 운영 중이다. 이를 시 4개 권역에 각각 1개소씩 확대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사무국장 자격 조건의 완화도 제기됐다. 현재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사무국장 조건은 정신건강증진시설,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질환자자립생활센터,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 경력이 3년 이상인 정신건강전문요원, 간호사, 사회복지사 1급으로 정하고 있다.

이 규정으로는 3년 차 이상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센터를 지원한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또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역시 센터의 저임금으로 인해 이직할 의향이 없다는 판단이다.

이승주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이승주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이에 따라 당사자 단체에 뜻을 갖고 있는 장애인복지, 사회복지 종사자, 시민단체에 종사했던 활동가들이 센터 사무국장에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2020년 5월부터 서울시 보조금을 받기 시작했지만 서울시 지침에 근거한 사무국장 조건으로 인해 그간 사무국장이 6명이나 바뀌게 된다.

기자회견에서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유석 팀장은 “정신건강전문요원, 사회복지사 등의 자격을 가진 전문가들만이 사무국장이 되는 조건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는 사무국장이 될 수 없도록 만드는 걸림돌”이라며 “이는 당사자들을 불신하는 신념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는) 전문가를 모셔오라고 하면서 임금 가이드라인은 너무나 낮다”며 “남들보다 더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인건비를 현실적으로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는 사무국장 조건은 규정에 없는데 유독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센터에만 사무국장 조건을 요구하는 건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다. 또 당사자가 사무국장이 되는 길을 막은 것은 당사자 역량을 믿지 않는 권력의 시선이라는 지적이다.

한정연은 당사자 활동가도 사무국장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사무국장 조건 완화 방안으로 ▲현재 조건에서 사회복지사를 급수로 나누지 말 것 ▲현재 조건에서 근무한 기관의 범위를 장애인 복지, 사회복지시설로 확대할 것 ▲현재 조건에는 맞지 않으나 사무국장으로 적합하다고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자로 할 것 등 3가지 안을 제시했다.

서울시 보조금을 받는 센터의 운영이 시 지침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당사자 단체로서의 당사자주의가 철저히 무시돼 왔다는 지적이다.

정유석 팀장은 “당사자의 자기결정과 지역사회 삶을 지원하는 데 있어 당사자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답변은 당사자주의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전문가주의와 관료주의에 만연돼 있다”고 비판했다.

위은솔 활동가는 “우리가 문제화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같은 수준의 인프라가 우리에게는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오늘의 투쟁이 서울시의 시선에서 문제로 규정된다면 우리는 문제를 계속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넘치는 요구를 하고자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며 “적어도 현실적인 수준은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주 활동가는 “서울시는 항상 사업평가 후에 상황을 지켜보고 지원을 하겠다고 말한다”며 “그러나 작년에 사업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는 내년 사업평가 후에 다시 지원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같은 말만 반복한다”고 비판했다.

삭발식 진행 모습. (왼쪽부터) 김종운 부소장, 신석철 상임대표, 김범준 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삭발식 진행 모습. (왼쪽부터) 김종운 부소장, 신석철 상임대표, 김범준 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기자회견 중반에는 삭발식이 진행됐다. 신석철 한정연 상임대표, 김종운 서울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소장, 김범준 양천사람사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제시한 6개 정책 과제의 조속한 실현을 촉구하며 삭발에 들어갔다.

이후 신 상임대표 등 집행부는 서울시 청사로 들어가 시 집행부와 협상을 진행했다.

3시 15분께, 신 상임대표가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여섯 가지 요구안을 전달했고 서울시는 일단 협상하는 테이블을 마련하겠다고 했다”며 “면담 테이블은 다음 주에 우리 집행부에 공식적으로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보름 동안 서울시 집행부와 우리 집행부가 계속 소통하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며 “서울시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시 우리는 노숙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회견장이 박수소리로 가득찼다.

3시 30분, 기자회견장이 정리됐다. 100미터 거리의 건설노조 집회에서 울리는 엠프소리가 여전히 웅웅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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