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기고] 여러분에게도 반려동물 ‘둑이’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언제나 내 편인 그 존재가...
[당사자 기고] 여러분에게도 반려동물 ‘둑이’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언제나 내 편인 그 존재가...
  • 이상석
  • 승인 2023.07.25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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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이상석 씨 기고문.

저는 조현병 당사자입니다. 정신질환을 경험하며 느낀 감정과 생활 속 이야기를 나눕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뿐 아니라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도 기록하려 합니다. 같은 정신질환 당사자분들은 공감, 비당사자분들은 오해가 아닌 이해의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첫 만남

어릴 적 단과학원에 다녀오는 길,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엄마와 함께 시장을 지났다.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던 길, 우연히 한 강아지를 만났다. 사람에게 애정을 보이며 꼬리를 흔들고, 나를 향해 점프하는 작은 녀석을 보고 어머니와 나는 집에 강아지를 들이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견종은 치와와였고, 어머니는 “배에 털도 나지 않은 걸 보니 새끼인 것 같다, 얼른 집에 가자”라며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추운 날씨에 몸을 떨던 강아지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우리 집으로 왔고, 어머니는 알록달록한 털 색깔에 착안해 바둑이, 편의상 ‘둑이’로 이름을 붙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치와와는 뇌를 많이 쓸수록 주름이 많아진다는데 둑이도 그랬다. 쭈글쭈글, 귀여운 피부와 작은 체구의 둑이 덕에 우리 집엔 즐거움이 커졌다.

사라진 둑이

내가 살던 곳은 대구 남구 월성동, 아버지는 종종 둑이를 데리고 학산공원에 다녀오셨다. 어떤 날은,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옆에 둑이가 보이지 않아 집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온 가족이 아파트 단지를 뒤지며 둑이를 찾았고, 산책길을 한참 뒤진 끝에 한 연립주택 골목에서 둑이를 찾아냈다.

둑이를 잃어버린 이후, 나는 안전을 위해 목줄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가족들은 한 식구가 된 둑이에게, 목줄을 채우는 게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끝끝내 나는 가족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둑이를 잃어버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 둑이가 할머니가 된 이후 우리는 자연스레 이별을 겪어야 했다.

안녕, 나의 작은 천사

강아지의 수명은 길어야 15년 내외라고 한다. 둑이는 2003년경,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사람의 말로 대화할 수 없어, 얼마나 큰 아픔을 느끼는지 알 수 없지만 둑이는 조금씩 음식을 찾지 않고, 힘이 없어져 갔다.

둑이가 떠난 후, 우리는 학산공원 한편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십수 년의 시간 동안, 우리에게 주었던 기쁨만큼. 언젠가 사람의 형상으로 태어나면 더 큰 행복을 누리기를 바랐다.

이후, 우리 집은 더 이상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게 됐다. 최근 들어서는 층간소음 등의 문제가 많이 대두되어서도 그렇고, 둑이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서다.

둑처럼 큰, 너의 빈자리

학교 운동장을 지나칠 때면 종종 둑이가 떠오른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겼는데. 산책 삼아 따라 나온 둑이가 큰소리로 짖으며 축구공을 따라다니곤 했다. 함께 땀 흘리고 웃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듯해 운동장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우리 집에 새로운 반려동물이 생겨도 둑이를 대체할 수는 없을 거다. 같은 경험도 시간이 다르고 추억이 스미지 않았기에. 나와 가족들의 맘속에 둑이의 작은 집을 지어둔 채,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떠올릴 뿐이다.

지금, 여기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웃게 해주는 둑이에게. 참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둑이’는 하루아침에 정신질환을 갖게 된 저에게 소중한 가족이자 지지자였습니다. 교통사고로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언제나처럼 옆을 지켜주던 둑이가 있었기에 우울감과 분노 속에서도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둑이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사람이 아니어도 좋으니 ‘내 편’을 꼭 만들어 함께 살아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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