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단체 해 볼까?” 했는데…단체를 만들며 나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우리, 단체 해 볼까?” 했는데…단체를 만들며 나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 리얼리즘
  • 승인 2023.12.1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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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기획 칼럼 1화
당사자단체 구성에 가장 큰 어려움은 당사자 마음 움직이는 것
순수한 마음으로 운동 시작했지만 돌아보면 무모했던 시절들
자폐장애 다수인 신경다양인 모임…정신장애인은 혼자였던 공간
당사자주의 단체 준비위 꾸려…“어떻게든 운영해보기로 마음먹어”

당사자단체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단체 구상, 사무실 마련, 단체 설립신고, 총회, 회계, 행정, 회비와 후원금, 기회, 활동, 연대 등이 그 과정에 끌려나온다. 비영리단체 운영은 흔하지 않고 조언을 구할 곳도 없다. 누군가 몇 마디 말이라도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사자운동의 ‘당’자도 모르던 리얼리즘이 신경다양성지지 모임 세바다와 회복의공간 난다, 권익옹호기관 등의 설립과 운영에서 깨달은 경험들을 독자와 나눈다. 총 10꼭지 기획으로 진행되는 기사에서 리얼리즘은 '맨땅에 헤딩'하듯 당사자단체를 만들어본 경험을 운동 초보의 관점에서 풀어나갈 예정이다.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세바다 대표 리얼리즘.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정신장애인이라고 해서 꿈 없이 희망 없이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당사자에게는 각자의 로망이 있다. 어떤 당사자는 회복을, 어떤 당사자는 취업을, 어떤 당사자는 연애를 꿈꾼다. 그러나 몸에 빨간 투쟁의 피가 흐르는 당사자에게는 어떤 로망이 있을까? 아마 자신이 원하는 단체를 만들어 당사자운동을 조직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나 단체를 만들고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 회계, 모금, 디자인, 연대 등 실무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아니, 실무의 어려움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어려움은 다른 당사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오랫동안 고립되어 온 정신장애인이 다른 정신장애인의 마음을 움직여 회복으로, 당사자운동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얼마나 고된 일인가?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 사람의 복잡다단한 일생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무거운 일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당사자단체(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를 설립하기에 앞서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신경다양성 운동을 시작하게 만든 이 무모함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계산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던 그때를 회상해본다. 그리고 나의 경험이 당사자단체를 운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신경다양성 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신경다양성이 하나의 이념이라는 것도 몰랐다. 어느 날,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신경다양성이 자폐와 관련되어 있고, 자폐인과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을 신경다양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정한 단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그 말을 말버릇처럼 사용하곤 한다. 나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경다양인이라는 단어를 종종 넣어서 글을 썼다. 나 자신이 신경다양인이라는 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지만, 당사자의 경험을 담아서 썼던 것 같다.

그 글을 본 사람 중 한 명이 공감을 표시하면서 나에게 신경다양성 모임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시 자폐 진단을 받지 않았기에 나도 신경다양인으로 부를 수 있는지 물었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면 굳이 올 마음은 없었다.

상대방 역시 헷갈렸는지 모임장에게 물어보고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왔다. 모임장이 상대방을 통해 나도 신경다양인일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딱히 신경다양성을 지지하는 건 아니라고 못박으면서도, 호기심에 모임에 들어갔다.

그 모임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었다. 당시 모임의 대부분은 자폐 당사자였다. 정신장애인이라고 소개하면서 진단명(조현형 성격장애)을 말하니 호기심 어린 말들을 했다. 나는 그 모임의 유일한 정신장애인이었다. 받고 싶어도 받지 못했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모임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구성원들은 나처럼 진지한 토론을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자폐인의 인권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정신장애인으로서 비슷한 차별 경험을 겪었던 나에게도 관심이 가는 이야기였다. 나는 매일 접속해 일장연설을 이어갔다. 그게 썩 마음에 들었는지 한 달 만에 부방장 마크를 수여받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어느 날 한 당사자가 신경다양성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신경다양성 단체가 아직 없다, 다른 자폐인 단체는 조금 부족하지 않느냐, 우리도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신경다양성 단체가 무엇인지 감은 없었으나, 일전에 <마인드포스트>를 일독하여 그것이 당사자단체의 일종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좋은 일이겠거니 싶어서 조언도 하고 돕기 위해 ‘단체준비위원회’에 들어갔다.

당사자 세 명이 모였다. 단체 설립을 제안했던 당사자에게 자기 주장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대표를 하라고 떠밀었다. 모임의 급진적이고 열띤 토론과는 달리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회칙은 어떻게 만들지, 본부도 아직 없는데 전국지부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 당사자단체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회의가 이어졌다.

세바다는 지난 2월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의 시작: 우리가 과연 연대할 수 있을까'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세바다는 지난 2월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의 시작: 우리가 과연 연대할 수 있을까'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당사자의 느린 속도를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벌써부터 혐오 이슈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조선일보>에서 문재인 정부를 ‘정신분열’과 ‘자해’에 비유했다. 신경다양성이 무엇인지, 당사자단체가 무엇인지, 신경다양성 당사자단체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근본적인 논의를 할 시간이 없었다.

비판 성명서를 써야 한다는 의견에는 다들 동의했다. 그러나 성명서를 써본 적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구글에서 ‘성명서 쓰는 법’을 검색했다. 그 글이 알려주는 대로 초안을 썼다. 두 사람이 감수하여 SNS에 성명서가 올라갔다. 그것이 첫 활동이었다. 활동의 선봉장에는 어느새 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신장애인 인권단체에서 할 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권단체를 만들었다는 감각이 없었다. 인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차치하고 당사자주의에 대해서도 조금밖에 모르는 내가 인권단체를 무작정 시작하다니 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세바다 단체준비위원회’의 시작을 알린 이상 창피하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자신 없다 해도 뻔뻔하게 활동하지 않으면 역시 신경다양인들은 안 된다는 비아냥을 들을 것이 분명했다. 당사자 셋이서, 그리고 후에 합류한 심리학도까지 넷이서 어떻게든 단체를 운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당사자단체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리얼리즘은... 현재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 대표로 일하고 있다. <더인디고> 집필위원,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회복의공간 ‘난다’ 전 팀장, 후견신탁연구센터 정신장애인 전국권익옹호기관 팀장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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