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시린 흰빛이 되어 오늘이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시오”
“눈 시린 흰빛이 되어 오늘이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시오”
  • 박목우 작가
  • 승인 2023.12.12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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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박목우 작가 에세이
슬픔의 완성, 삶은 그렇게 완성되는 것
이제 울지 않을 것…이웃의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울 것
나 자신을 열지 않고 어떤 구원도 없다는 걸 알아
상처 입겠지만 세상 속에서 신뢰와 믿음 길어 올릴 것
픽사베이.
픽사베이.

나의 사실 속에 어느새 들어와 있는 당신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봅니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고독한 입자가 아니라 겹쳐져 있는 물방울이어서 당신과 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 세계와 하나입니다.

그토록 멀리서도 내게 말을 거는 당신의 음성이 한 빛줄기처럼 내려앉습니다. 어둠 속에 빛이 새겨집니다. 빛은 빛을 가져와 투명하게 빚은 물의 반죽처럼 하늘로 눈부시게 펼쳐집니다. 아침이 왔다는 것이겠지요. 어둠에 익숙한 눈빛을 바꿔야 하는 시간. 이 대낮의 시간에는 다만 단조로운 노동을 힘겹게 수행해야만 합니다. 하루의 피로는 깊이와 상관없이 쌓이고 다시 밤이 되어서야 나는 눈을 뜹니다.

영혼의 눈을 뜬 채 자정을 향해 가는 시간. 당신이라는 빛은 아름다워 나는 평온합니다. 빛은 적고 그것은 어쩌면 깊은 낮의 노래들. 살아남은 노래들이 한밤 내 울리고 있습니다. 가장 고요하게요. 삶이 노래인 것을 알려준 것도 당신이지요. 아주 조용한 화음이 겹치고 아득히 의식 너머로 멀어지며 하루해를 마무리하게 합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이 꿈속으로 길을 냅니다. 먼 곳까지 닿는 꿈을, 어쩌면 죽음 너머에 있는 생명으로 초대하듯이, 울먹이던 목소리가 허밍이 되어, 노래를 덧입히듯이

픽사베이.
픽사베이.

주님, 마음을 새벽 같이 지켜가고자 합니다. 희망의 푸른 빛이 아련히 배어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이의 안녕을. 시리도록 아름다운 희망이 불편해도 멈추지 않기를, 자신의 자리에서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라고 말입니다. 길 하나를 내면서요.

우리의 불행은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불행은 비극조차 아닙니다. 우리와 닮은 누군가가 걸었던 흔적입니다. 잊히기 쉬운 희망이 검불처럼 타오르던 날들에도 걸었던 긍정하는 몸짓입니다. 저의 불행은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과 겹쳐 있다는 것이 저를 일깨웁니다. 제게 슬픔을 완성하라고 다그칩니다. 삶은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라 합니다. 희망의 푸른 불꽃은 그래서 언제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고 다른 이들과 연루되게 하는가 봅니다. 거듭 사랑하게 하는가 봅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주님, 새벽녘에 비가 왔는데, 이제 비는 그치고, 차갑게 식은 공기가 창문 틈새로 전해집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온몸으로 세상에 맞서며 하루라는 시간을 익혀 갈 것입니다. 못생긴 모과나무 열매처럼 평범하게 못난 우리들. 그 안에서 번지는 향기가 은은히 고맙습니다. 모과가 떨어져 내려야 우리 안에서 향기를 느끼게 하듯이 생을 걸고 이루어야 할 만남이 있습니다.

내 안에 굳게 닫힌 문을 여는 향기. 그 향기를 따라 부드럽고 다정하게 나는 문을 열고 나섭니다. 세상에서 흐느껴 울고 웃으며 살기로 다짐합니다. 나의 삶은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동료들과 죽는 날까지 함께일 것입니다. 그들 안에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기쁨도 맛보겠지요. 저를 비웃는 사람들도 만나겠지요. 하지만 저는 세상 속일 것입니다.

진주 조개를 찾듯 아주 적게 맺히는 고귀한 것들을 기리며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할 것입니다. 추억과 따듯한 인간의 온기 속에서 나의 마지막은 완성될 것입니다. 주여, 가는 길을 도와 주십시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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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빛나는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충만한 보름달은 주님이 주신 어느 행복한 한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덧붙일 것 없는 은총. 저는 이제 울지 않겠습니다. 대신 이웃의 손을 잡고 힘껏 저를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부끄러움과 수치 속에서도 영그는 희망은 이제 미래를 꿈꾸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 자신을 열지 않고서는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없이 상처 입겠지만 저는 세상의 풍파 속에서 신뢰와 믿음을 길어 올릴 것입니다.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의 진심을 볼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의 양식은 언제나 풍부해 저는 한밤에도 가까이 웃어볼 것입니다. 주님, 새로 얻은 이 희망에 기쁨이 차오르게 하소서. 주님을 믿고 사람을 믿고 밝은 희망을 믿고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은 어떤 어려움이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권리를 사람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흐립니다. 어쩌면 눈의 소식이었을까요. 슬퍼하는 이에게 다시 꿈을 주는 희고 순수한 눈송이들이 땅 위로 내려앉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품어주며 모여 있는 눈송이들. 이 땅의 낮은 온도가 그리 아름다운 것들을 불러 지금 제 마음 속에는 슬픔뿐입니다.

세상을 서글프게 물들이며 젖어들게 하는 깊은 마음은 눈이어서, 내일 아침이면 떠오를 햇빛에 따듯이 등이 녹기도 할 아름다움이 있겠지요. 겨울이 깊어갈수록 눈은 기별과도 같이 제 마음의 주소지를 일러줄 것입니다.

주님, 눈처럼 드문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때를 알아 내리는 눈처럼 사람의 마음에 아련히 번지는 추위를 너르게 하십시오. 설산의 사계절이 그러하듯. 눈 시린 흰빛이 되어 오늘이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시오. 메마른 이들에게 오래 머무는 젖은 눈가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는 눈물로부터 성숙해가니 찬 뺨을 녹이며 흐르는 눈물에, 맺혀있던 응혈들이 풀어지고 다만 온화한 온도가 사람의 온도가 되게 하십시오. 사람과 사람이 반길 수 있도록 뚝뚝 떨어지는 저 눈송이처럼 크게 울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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