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신건강 문제 국정 아젠더화하겠다”는 국가의 마음건강 약속 지켜지길
[기고] “정신건강 문제 국정 아젠더화하겠다”는 국가의 마음건강 약속 지켜지길
  • 황정우
  • 승인 2023.12.11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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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우 경기도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 기고
개인과 사회의 트라우마 치유가 지속가능성의 과제
정신건강복지법, 지역사회 통합 천명했지만 변화 더뎌
강제입원 외에 대안적 대책 소홀…병원 중심 정신건강 정책 지속돼
물질 중심 넘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성숙한 사회 소망
지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정신건강 정책 비전 선포대회'가 진행됐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지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정신건강 정책 비전 선포대회'가 진행됐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최근 100년 사이 사라진 것은 제국주의, 사회주의 혁명, 냉전이라고 어느 유명작가가 그의 책에서 밝혔다. 또한 사라진 것을 대신하여 국민국가, 세계화, 과학화, 시장경제,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새로 생겨났고 지금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보편적 가치와 체제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급변환의 물결이 결국에는 기후 위기, 인구 감소, 경제 불황, 핵전쟁의 벼랑으로 우리 스스로를 내몰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협심하여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인데, 실상은 그와 달리 집단과 국가 간의 실리에만 연연하고 충돌하는 모습들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이대로는 정말 앞으로 100년 후를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벼랑을 내려다보는 심정은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그런 우려 속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100년간 이어진 시민 중심 민주주의 발전이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국민들이 분노하고 그 시대를 다시 상기해 볼 수 있었고, 그간에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소중함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권력자의 폭력으로 남겨진 트라우마를 제대로 인지하고, 미뤄왔던 치유와 회복을 도모하는 기회가 앞으로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힘든 상처를 겪고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진단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처럼, 사회 전체에도 그러한 트라우마의 잔해가 남는 것 같다. 그래서 사회는 개인보다 오래도록 광범위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개개인은 물론이고 사회도 마음과 의식에 남겨진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것이 그 존재의 지속 가능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2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 참석하여 “우리나라는 높은 경제 수준에 비해 자살률은 1위고 행복지수는 꼴찌고 삶의 만족도는 대단히 낮다”라고 밝혔다. 이런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일제 강점기, 6.25 전쟁, 군부독재,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결과로 우리 사회에 남겨진 후유증을 꼬집는 것이리라.

그리고 대통령은 우리사회가 여전히 “개인적으로 치료를 기피하는 데다가 국가 차원의 본격적 투자도 거의 없었다”며 후유증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데 지금까지 부족함이 많았음도 인정하였다. 실제로 2017년에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시행되면서 국민을 위한 정신건강증진과 정신질환자 지역사회통합을 주요 정책 방향으로 천명하였음에도 여전히 그 변화는 더디기만 하였고, 묻지마 살인으로 호도되는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사실상 최하 상태에 이르고 있다.

권력자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나아가는 민주주의의 발전은 그나마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부여잡을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보이는 물질 중심의 사회 너머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성숙한 사회에 대한 소망이다.

최근, 필자는 정신병원 입원적합성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예전과 다르게 10대 아이들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이 부쩍 늘어나고 있음에 놀라곤 하였다. 이에 대한 대책은, 아이들이 왜 이른 나이에 정신질환을 앓아야 하는지 따져보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예방하고, 치료와 더불어 이후에 사회에서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지를 촘촘히 준비하는 것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정신병동보다 퇴원해 자기 집에서 아침을 맞기를 바라"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사회는 이들을 강제로 입원시키는 것 말고는 실질적인 대책에 너무 소홀하다.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은 더 심각하다. 정신적 위기로 시급히 입원할 정신병상이 부족하고, 그나마 병상이 있다면 장기입원환자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을 빠른 의료적 조치 이후에 지역사회로 통합시킬 것을 법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러한 인권적 권고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병원 중심의 정신건강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제목은 퇴원하고 싶어도 지역사회 인프라의 부족으로 오래도록 병원에 갇혀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희망고문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갇힌 정신병동에서 아침을 맞는 것보다 퇴원한 자기 집에서 아침을 맞는 것일 터인데 말이다.

오랫동안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줄 지역사회 중심 정책의 봄을 불러오는 일이 시급하다. 지역사회 중심 정책은 입원제도의 정비, 통합 사례관리, 쉼터, 지역사회전환시설, 동료지원가, 절차조력인 등의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 인프라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실현될 것이다.

대통령이 이번에 밝힌 바와 같이 “예방, 치료, 회복에 걸친 전 과정의 지원체계를 재설계해 정신건강 정책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국가 아젠더로 삼고 적극 해결책을 강구한다”는 국가의 약속이 부디 실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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