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교회가 조현병 환자를 대하는 방법
[이관형 기자의 변론] 교회가 조현병 환자를 대하는 방법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4.03.0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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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조현병 환자를 대하는 방법
교회가 조현병 환자를 대하는 방법

들어가는 글

저는 조현병을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입니다. 스무 살 때부터 조현병을 겪었고, 동시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밤마다 정신과 약을 먹고 기도를 하며 잠에 듭니다. 의학과 신앙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료계에서도 조현병의 정확한 원인을 명백하게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부모 중 조현병이 있는 경우, 자녀에게서도 조현병이 나타날 확률이 높지만 유전병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부모의 잘못된 양육과 태도로 인해 자녀에게서 조현병이 나타난다는 주장도 무리가 있죠. 

과거에는 정신질환을 어떤 잘못이나 불신으로 인한 신의 저주, 혹은 귀신들림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특히 종교의 영향이 강하던 유럽 중세시대에는 정신질환처럼 명백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사안들을 종교적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가진 수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취급당하며 화형으로 희생당했습니다. 하지만 의학이 발전한 지금,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은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 물질의 이상에서 발생하는 뇌의 질환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정신질환에 있어서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 심지어 영적 부분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신체는 물론 영적인 부분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저마다 스트레스에 대한 정신적인 취약성이 다릅니다. 똑같은 고통과 아픔을 겪어도 잘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또한 사람들은 살면서 각자 다른 모양과 강도의 고통과 아픔을 경험합니다. 선천으로 정신적 건강이 비슷하더라고 살면서 극단적인 고통을 경험한 사람과 비교적 평온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정신질환의 발병에도 차이를 나타내죠. 덧붙여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받고, 교회에서도 지지해주고 기도해주는 사람들을 통해 스트레스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없거나 교회와 같은 지지기반이 없는 사람들은 홀로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기에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은 굉장히 복잡하고 다면적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요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 판단하며 귀신들림인지 아닌지, 이분법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목회자나 부흥사에 의한 몇 번의 대적기도나 축사기도로 한방에 해결 할 수 있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죠.

제 경우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과 학교 왕따, 과도한 입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생긴 우울증과 불면증을 제때에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분위기에 따라 어떻게든 대학에 가고,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중요했으니까요.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복수와 증오심, 성공에 대한 야망을 갖고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이미 치료 시기는 놓치고 말았죠. 뒤늦게 검사를 받으러 간 대학병원에서 정신분열(現 조현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병이 발병되기까지 누구도 제 아픔과 상처에 관심을 갖거나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쌓았던 탑이 밑바닥까지 무너지고 나니 삶이 허망했습니다. 과거 아버지와 학교 아이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에 빠져 살았습니다.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간절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하였습니다. 어느 날 망상으로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찬양과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의 원수를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말씀을 통해 아버지와 절 괴롭혔던 아이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제 몸 안에서 스스로를 태우고 있던 분노와 증오심의 불길이 꺼지고, 이제야 평안과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와 같은 정신장애인들을 위해 출판과 강연, 기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장애학을 전공하며 성경 속 장애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은 굉장히 복잡하고 다면적입니다.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은 굉장히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Ⅰ. 교회가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방법

성경의 복음서에도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과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디매오와 같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 일어나서 걸을 수 없는 지체장애인. 그리고 질환으로 인한 혈루증 여인과 한센병 환자, 중풍병자도 자주 등장합니다. 물론, 정신장애인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죠. 성경에 나오는 정신장애인들은 ‘귀신들려 말 못하는 자(마태복음 9:32~34)’, ‘회당에 귀신 들린 사람(마가복음 1:21~28, 누가복음 4:31~37)’, ‘수로보니게의 귀신들린 딸(마가복음 7:24~30, 마태복음 15:21~28)‘등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심지어 ‘더러운 영’처럼 부정적 어감의 단어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까지도 교회에서는 정신장애인에 대해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성경 속 일부 표현대로 ‘귀신들린 자’로 보기도 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뭔가 지은 죄가 있으니 벌을 받은 사람’, ‘혹은 믿음이 부족하여 아직도 정신질환을 고치지 못한 불신자’등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면증도 목회자나 교인들에게 쉽게 털어 놓을 수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기도와 말씀으로 우울증 등의 병을 고치지 않고 정신과 병원에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 때문이라 여기는 목회자나 성도들도 있었죠. 

강두현(1997)의 논문에 따르면, 교회 교역자 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정신질환의 치료방법 세 항목만 표시해 주십시오”라는 질문에 90.0퍼센트가 ‘신앙생활’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두 번째로 ‘심리요법’(46.7%), 세 번째로 ‘약물요법’(33.3%) 순 이었습니다. 또한, 마귀(귀신) 들림과 일반 질환은 ‘구별이 가능하다’라고 대답한 목회자는 85.0%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신형균 외(1991)의 논문에서는 72.6%의 목회자들이 정신질환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다고 조사되었습니다. 그나마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획득 방법으로 성경(53%)이 가장 많았으며 신학교 강의(23.9%), 대중매체(21.4%), 전문서적(19.7%), 정신과 강의(19.7%)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응답자들은 귀신들림이 현재에도 실제하고(96.9%), 점차 증가한다(63.3%)는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증가의 원인으로는 “종말이 가까워짐에 따라 마귀의 발악이 거세어짐, 사회 발전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 증가, 성적 타락”이라고 보며, 귀신들림이 줄어들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증가, 사람들의 지적수준 향상, 미신 감소, 정신의학 발달”등을 원인으로 보았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마귀와 스트레스, 성적 타락으로 귀신들림이 증가한다고 믿는 상황에서 증상이 눈에 보일 정도의 중증 정신질환이나 만성적인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목회자나 교인들의 권유에 의해, 혹은 가족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치유집회에 참석하거나 기도원에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집회나 기도원에서는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온 정신장애인들에게 비인권적이고 전혀 의료적이지 않은 치료법으로 정신 뿐 아니라 신체까지 더 병들게 만들었죠. 귀신을 쫓아내는 축귀사역의 일환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마귀는 물러갈 지어다!”를 외치며 대적기도에만 매달리는 것은 물론, 육체에 깃든 귀신을 내쫓기 위해 매질을 하고, 두 엄지손가락으로 양 눈을 힘껏 눌러 실명의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비교적 최근인 2021년 2월, 군 생활 중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현역 군인이, 휴가를 나와 교회 목사에게 “몸 속의 악령을 내쫓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타 등의 안수기도를 받다가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면증도 목회자나 교인들에게 쉽게 털어 놓을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면증도 목회자나 교인들에게 쉽게 털어 놓을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

  Ⅱ. 교회가 조현병 환자를 대하는 잘못된 방법

저도 조현병을 갖고 나서 많은 목회자분들과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저를 걱정하고 격려해주었으며,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덕분에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로 다양한 사역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이 없이 저를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존재로 바라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의 행동에 대해, 저의 말에 대해 “그건 사단이 주는 더러운 생각이야”라며 끊임없이 판단하고 정죄하는 분도 계셨죠. 그리고 “더러운 사탄 마귀는 물러가라”라며 주문을 외우듯 대적기도를 하라고 나무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격한 말이나 언어폭력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 될 수는 없습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감정만 상할 뿐입니다. 저도 하나님을 믿는 자녀인데, 자꾸 제 안에 있는 사탄을 쫓아내라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를 귀신 보듯 나무랐던 사람들의 눈빛이 더 무섭고 불쾌했습니다. 제가 우울증세에 시달릴 때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모자라 보였는지, 날마다 3가지씩 감사의 내용을 노트에 쓰라고 시키는 분도 계셨습니다. 당시 제게 필요한 건, 마귀를 물리치는 주문식 기도가 아니라, 억지로 감사거리를 찾아 노트에 적는 것이 아니라, 제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선배의 권유에 따라 치유 은사집회에도 가고 기도원에도 가보았습니다. 집회에서 치유의 은사(능력)가 탁월하다는 외국인 목회자는 제 머리위에 손을 얹고 7초 동안 기도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서 처음 만난 나이 많은 목사님께도 치유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정신질환은 퇴마의식과 같은 단순한 주문으로 완치될 수 있는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귀를 물리치는 기도로, 치유 은사집회의 놀라운 기적으로, 또는 기도원을 다녀오고 나서 정신질환이 완치되었다고 간증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유튜브 등의 영상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병을 낫게 되었는지 설명하곤 합니다. 그들은 단 며칠간의 특별한 집회에서, 병 고치는 능력이 탁월한 목회자나 선교사의 기도를 통해 한 번에 병이 낫는 기적을 보여주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영상을 올린 교회나 목회자를 보면 대다수가 정통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 불건전한 신학을 가진 이단 아류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왜곡된 성령론이나 마귀론을 주장하는 이단성이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역사하신다”며 신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를 비이성적이고 신비한 현상으로 증명하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표적과 기사에만 매달리는 것이 믿음이라면, 의사도, 병원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도 치유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암이나 어떠한 불치병도 표적과 기사를 통해 나을 수 있으며, 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은 불신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보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병이 낫지 못한 정신장애인들은 이단에 속한 교회 뿐 아니라, 일부 정통 기독교 교회에서도 소외받고 곱지 않은 시선에 시달립니다. 정신질환을 마귀에 의한 병이라고 인식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쉽게 정신과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오직 믿음으로 완치되지 못하면 신앙에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교회도 사람이 모인 공동체다보니, 언론에서 보도되는 조현병 범죄와 같은 낙인으로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중의 차별과 배제를 경험합니다. 이로 인해 공동체에서 배려와 사랑을 받아야 할 조현병 당사자들이 상처와 소외감 속에서 오히려 병이 악화되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이는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에 대한 일부 교회의 잘못된 신념과 언론 보도에 대한 무분별한 수용에서 오는 문제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을 마귀에 의한 병이라고 인식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쉽게 정신과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오직 믿음으로 완치되지 못하면 신앙에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여겨진다
정신질환을 마귀에 의한 병이라고 인식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쉽게 정신과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오직 믿음으로 완치되지 못하면 신앙에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여겨진다

Ⅲ. 교회가 정신장애를 대하는 올바른 방법

우리가 다치거나 뼈가 부러졌을 때, 병원을 찾아가 전문의로부터 치료나 수술을 받습니다. 그리고 같은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목회자와 성도들은 잘 치료되어 회복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줍니다. 교회의 성도들도 전문의의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하는 동시에,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과 치유가 다친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울증이나 불면증,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의 전문성과 능력을 믿고 치료에 응하고, 처방해주는 약을 꾸준히 복용할 때 회복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성도들이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 줄 때, 회복과 치료가 더 빨리 이루어 질 것입니다.

정신질환은 의학적, 생물학적 원인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원인들까지. 매우 복잡한 요인들로 인해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병입니다. 따라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치료와 회복을 돕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야 마땅한 것이죠. 정신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목회자나 성도들이 단순히 귀신에 의한 것이라 속단하고, 의학적 영역을 종교적 영역으로 대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교회 예배당에서 성직자 옷을 입고 약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이상하듯이, 목사가 병원 진료실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기도로 정신질환을 고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속 일부 말씀처럼 지금도 귀신들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교회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귀신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인생가운데 겪었던 아픔과 상처입니다. 현대 사회는 날이 갈수록 정신적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귀신의 숫자가 늘어나거나, 마귀의 세력이 강성해져서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각박하고 삭막한 이 땅에서 병들고 버림받은 약자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교회가 따르지 못해서는 아닐까요.

예수님은 세상에 병들고 버림받은 약자와 환자들, 장애인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는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이 등장합니다.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거라사’라는 지역은 가난하고 영적으로 부정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추방되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가난하고 더럽게 여겨지는 지역에 직접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 들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져 옷도 입지 못한 채 노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지역 사람들은 이 정신질환자를 위험하게 여겨 쇠사슬을 채웠을 것입니다. 반면, 사람들은 그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은 물론, 입을 옷도 쉽게 내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하여 병들어가는 동안, 사회는 그에게 아무런 사랑도, 배려도 베풀지 않았던 것이죠.

거라사 지역의 사람들은 “저 광인이 귀신이 들려 너무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쇠사슬과 고랑을 채웠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아마, 형제복지원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몽둥이로 매질 할 때, 장항수심원에서 정신질환을 가진 수용자들에게 수갑을 채워 독방에 넣었을 때, 수용소 원장과 직원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을 것입니다.

정신장애인 중에 매우 위험한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정신장애인들을 위험하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정신장애인들이 귀신 들린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거라사의 광인을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한명의 개인으로 대했습니다. 다수의 위험한 광인들 중 한명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들으셨고, 귀신이 들린 자라는 확신을 가졌으며, 그에 맞는 방법으로 병을 치유하신 겁니다. 모든 정신장애인들이 귀신이 들려, 귀신 쫓는 동일한 방법으로 모두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사례로 오늘날 모든 정신장애인들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한 명의 개인으로 대하기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한 명의 개인으로 대하기

Ⅳ. 성경이 장애를 대하는 방법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조현병과 같은 정신장애의 원인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귀신들림인지? 정신병인지?” 혹은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생물학적 원인인지?”, 아니면 “숨겨 놓은 죄 때문인지? 성장과정에서 겪은 상처 때문인지?”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신장애인의 발병 원인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정신장애인이 귀신이 들렸든, 의학적 병으로 인한 것이든,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신장애인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입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인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김진은 『정신병인가 귀신들림인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경은 정신이상에 대해 전문적으로 얘기하는 책이 결코 아닙니다. 정신이상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거라사 걸인에 대한 기사는 예수님께서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존재, 즉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주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성경 속 예수님의 제자들도, 지나가는 장애인을 보고 그 원인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무슨 죄 때문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질문을 한 제자들에게는 이미 장애인에 대한 판단과 정죄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한복음 9장 1~2절)

제자들에게 장애는 불편하고 나쁜 것이며, 죄로 인한 결과라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이 왜 왔을까? 왜 내가 당하는가?”, “귀신이 노해서일까? 조상에게 잘못하여 저주가 임한 것일까?”하고 말이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장애인 자신이 지은 죄 값을 치르거나, 악한 영에 사로잡혀 고통을 받는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그 반대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한복음 9장 3절)

이 말씀에 대해 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한 때, 왜 조현병 같은 질병을 갖게 되었는지 원망스럽고 분노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장 장애를 고쳐달라고 애원했는데, 장애를 통해 일하신다니요? 조현병과 같은 정신장애로 인해 매일 밤 겪어야 할 고통과 사회의 차별을 예수님은 알기나 하냐고?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 병을 고쳐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이죠. 

성경은 정신장애인의 발병 원인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
성경은 정신장애인의 발병 원인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Ⅴ. 당사자가 조현병을 대하는 방법

그런데, 이 병을 통해 능력 많고 교만했던 제가 무너졌습니다. 나의 명예와 성공을 위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았던 바벨탑이 조현병이라는 태풍에 받침돌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무너져 내린 겁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단단한 기반의 반석을 쌓을 수 있었고, 그 탑의 기둥에 제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치유사역은 단순히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고치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저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입니다. 어떠한 병 고침의 기적보다도 신비로운 능력의 은사보다도 귀하고 값진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인류를 위한 희생과 사랑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특히 중풍병 환자, 한센인, 세리장, 윤락여성, 신체장애인, 정신장애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저 역시, 세상이 혐오하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조현병 환자로서,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죠. 이제 조현병이 귀신들림인지, 단순한 정신병인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제게 중요한건 조현병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크고 특별한 축복의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병이 고쳐지고 안 고쳐지고를 떠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저는 그분의 사랑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보다도,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찾아옵니다. 질병은 물론 사고나 사건으로, 때로는 가난과 이별의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때로는 장애를 입어, 과거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저처럼, 정신적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요. 그럴 때면, 내가 왜 이런 고난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자책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원인을 찾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고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잠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것마저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가끔 제게 고민을 털어놓는 목회자나 성도 분들이 계십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성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묻곤 합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와 공동체에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가진 한 두 명의 청년이나 성도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조언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저 자신도 고민에 빠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답은 결국 성경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예수님이 이 땅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심지어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모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병의 원인을 찾으려는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낼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심지어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이 땅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심지어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나가는 글

저는 오늘 밤도 약을 먹고 기도를 하며 잠 들 것입니다. 약 없이는 수면조차 취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좀 더 겸손해지고, 갈급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의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무사히 밤을 보낸 감사함을 안고 일터로 나아갈 것입니다. 조현병의 원인으로 누군가를 탓하며 과거에 얽매이거나, 치료에만 매달려 현재의 삶을 소홀히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기 위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제가 조현병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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