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연구] 여성 정신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 ‘여성차별철폐협약’ 심의를 앞두고
[해방연구] 여성 정신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 ‘여성차별철폐협약’ 심의를 앞두고
  • 이한결
  • 승인 2024.03.0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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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신보건연구회 이한결 기고

 

제9차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국가이행보고서 갈무리
제9차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국가이행보고서 갈무리

대한민국 정부는 1984년 유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이하 여성차별철폐협약)’에 비준하였다. 1980년대보다는 여성 인권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그 속도는 매우 더디고 체계적이며 구조적인 여성 차별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협약 비준에 따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이행 사항에 관한 보고서 등 의견을 제출하여 여성에 대한 차별이 철폐되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젠더 기반의 차별을 이야기하는 시민단체와 여성장애인 단체는 있지만 정신장애 영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담한 여성 차별을 이야기하는 단체는 거의 전무하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혹은 더 취약할 수 있는 정신장애 영역에 대해서는 문제제기와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는 점은 매우 속상한 일이다. 특히, 생물학적 모델에 근거하여 손상의 관점을 가지고 정신장애를 바라보고 있는 현재의 정신건강 시스템에서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는 쉽게 억압되거나 병리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독특한 현실세계와 정신적 상태를 경험하는 여성 당사자의 젠더기반 폭력은 쟁점화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여성 당사자는 직·간접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하고 때때로 생명의 위협이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젠더기반폭력은 신체적, 정신적 혹은 성적 위해나 고통,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위협, 강요 및 기타 자유의 박탈을 가하는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젠더기반폭력은 여성이기 때문에 또는 결과가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훨씬 더 불균형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 당사자가 겪는 차별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강제적인 또는 선택권 없이 강요된 약물복용의 폭력성이다. 당사자에게 약물선택은 자기결정이 보장되지 않는 대표적 분야 중 하나이다. 법적 능력에 대한 박탈, 불균형적인 정보제공 등 다양한 이유로 고지된 동의에 기반한 약물선택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 당사자에게 더 큰 폭력적 영향을 미친다. 일부 항정신과약물은 임신, 수유, 여성내분비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고 또한 리스페리돈 등 일부 항정신과약물은 월경주기를 변화시키거나 무월경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화학적 약물을 투여함으로써 신체의 자연적 반응에 인위적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유즙이 분비하거나 월경이 중단되는 등의 부자연스러운 피해 상황을 감당해야하는 것은 온전히 여성 당사자의 몫이다. 이는 엄연한 여성억압이자 폭력이다.

둘째, 강제적인 또는 선택권 없이 강요된 입원치료 과정에서의 폭력성이다. 대한민국 정신의료기관 중 대부분은 폐쇄병동(79.5%)으로 이루어져있고 정신의료기관의 폐쇄성으로 인하여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단절은 여성 당사자가 겪는 억압과 차별을 외부에 알리기 어렵도록 구조화하고 있다. 특히 정신의료기관 내에서 발생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억압과 차별은 법적 보호와 절차적 권리 구제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나아가 이를 입증하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와 같은 억압적 구조는 정신의료기관 내에서 벌어지는 여성 당사자를 향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묵인하도록 만든다. 실제로 2021년 전북 지역의 모 정신의료기관에서 입원한 남성이 다른 입원한 여성을 성폭행했지만 해당 층에 있는 간호조무사 등 4명이 이를 알아챈 것은 15분 뒤였다. 이후 조치도 법적 처벌이 아닌 여성 당사자를 다른 입원실로 옮기는 것이었다. 해당 병원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이유는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여성 환자가 저항하지 않는 듯 보였고 이후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신의료기관 보호사, 정신과전문의 등 당사자의 회복과 치료에 힘써야할 종사자가 여성 당사자에게 성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였다. 특히, 권력관계를 악용하여 성적 폭력을 가하거나 약물복용과 격리 및 강박 등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이와 같은 젠더기반폭력은 정신적 상태와 독특한 현실세계의 경험, 그리고 항정신과약물의 작용 등으로 인하여 쉽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체계적이고 위험성이 큰 폭력과 억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사회구조적 문제를 여성 개인의 병리적 현상으로 감추는 위험성이다. 이는 구조적인 요인을 고려하여 통합적으로 접근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겪는 현상을 병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구조적 요인을 은폐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대표적인 예가 섭식장애이다. 섭식장애의 경우 10명 중 8명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이 의료기관을 방문할 확률이 높다. 이는 여성이 더 취약해서가 아닌 사회가 만든 왜곡된 신체 이미지와 외모지상주의라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우울증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우울증으로 치료받는 비율이 약 2배 높다. 이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경제적 역할 감소 및 상실을 경험할 확률이 높고 여러 사회 영역에서 차별과 불합리를 경험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성이 겪는 사회구조적 문제보다는 빠르고 간편한 정신과 약물을 선택함으로써 본질적인 젠더기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이는 여성차별철폐 협약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자연스러운 현상 또는 인간의 다양성을 병리적으로 해석하는 위험성이다. 대표적인 예가 월경전불쾌장애(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 PMDD)이다. 월경전불쾌장애는 월경 전 나타나는 불안, 우울, 피로감 등의 정동 및 인지적 변화와 여드름, 식욕 변화, 두통 등의 신체적 변화를 의미한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 병리화한 월경전불쾌장애(PMDD)와 관련된 비판적 견해로는 남성, 여성 모두 신체 호르몬의 변화를 경험하는데 여성만을 질병화하는 것은 의료 영역이 남성 우월적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라는 견해와 월경전불쾌감을 조사할 때 부정적인 영역에 집중하여 설문함으로써 여성의 자연스러운 현상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지적 등이 있다. 한편,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자체가 인간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기제라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으로 성적 지향의 경우 `1970년대 DSM-Ⅱ에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으나 `1980년대 DSM-Ⅲ에서는 본인이 불편감을 호소하는 경우로 바뀌었고, `1990년대부터는 정신질환이 아니게 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다양성을 병리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인권침해의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을 높이지만 그와 동시에 병리화의 결과로 파생되는 약물복용의 작용은 또 다른 폭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요컨대, 약물과 입원치료 과정에서의 직접적인 젠더기반 폭력과 여성의 자연스러운 현상 및 사회구조적 원인을 은폐·왜곡하는 정신건강 시스템에 경종을 울릴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 당사자의 증언이 보장되어야 하고 여성 당사자가 정신건강 정책 및 제도 개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여성 당사자를 위한 단체 설립을 지원하고 여성 당사자가 젠더를 고려한 인권 기반 및 권리 중심의 정신건강 축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대를 담아, 다가오는 2024년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관한 심의에 있어서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이한결 경기동료지원센터장.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해방정신보건연구회 이한결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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