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우리도 결혼할 수 있을까?
정신장애인, 우리도 결혼할 수 있을까?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10.29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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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호감이 가도 병 때문에 망설여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글쎄...쉽게 결정 못해
결혼 후에도 부모들의 간섭에 갈등 심화
결혼한 성인으로 인정해야 갈등 줄어

서로 호감 가도 병 때문에 망설여

“서로 눈만 마주쳐도 기분이 좋아져요. 함께 낮병원에 다니며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해요. 또 서로 음악을 전공했다는 것이 기대가 돼요. 그 전에는 혼자 병실에 나와 오보에를 연주했는데 피아노를 전공한 연훈 씨 때문에 같이 합주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서로 틀린 것도 교정해 주면서 음악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정말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교제한 지 2년이 되는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많은 것이 설레요.”

낮병원에 다니는 백지영(28.여) 씨는 자신만의 연애의 감정에 이같이 기대하며 말했다. 그녀는 2년 전부터 낮병원에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무미건조한 프로그램에 지루하기도 했지만 음악 시간이 되면 자신의 특기를 최대한 살려주는 낮병원의 호의에 힘을 얻어 오보에를 연주하게 됐다.

음악팀을 구성해 고아원, 양로원 등에서도 특별공연을 하곤 한다. 그녀의 삶을 변화시킨 동기는 바로 낮병원에 다니는 정연훈(28) 씨의 조력 때문이었다. 그는 피아노를 전공해 음악적인 심취도가 높았는데 조현병의 발병으로 낮병원에 나오게 됐다. 음악 프로그램 시간에 지영 씨의 오보에 연주에 감동을 받아 함께 음악에 대해 공감을 하고 함께 연습하는 등 부지런히 그녀를 찾았다.

“첫 느낌이 좋았습니다. 함께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시너지 효과가 있었고 보통 때면 홀로 새침하게 지내던 지영 씨가 음악 시간만 되면 활발해지는 것을 보고 아, 이 여자와 통하는 것이 있구나 하며 감동이 왔고, 함께 연주할 것을 권유했죠. 이렇게 2년 동안 음악이 필요한 분이 있으면 찾아가 연주함으로 서로 공감이 되고 힐링의 순간을 맞이하는 거죠. 만족합니다.”

정연훈 씨는 지영 씨에게 이같이 호감을 나타냈다. 이성적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 연훈 씨는 그녀를 위해 못할 것이 없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하늘의 별을 따줄 태세다.

그런 그가 요즘 고민에 빠져있다. 바로 조현병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환청과 불안에 시달린다. 잠을 자다가도 이유 없는 음악소리에 놀라 잠을 설치기 일쑤며 매사 불안하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집까지 따라와 자기를 해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지 오래됐다. 자기가 하는 일에 모든 사람들이 방해하는 것 같아 사교성도 떨어진다.

그런 힘든 상황에 지영 씨를 만났다. 연훈 씨는 조현병이 있는 자신이 지영 씨의 연인이 된다는 것이 죄스럽고 우울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영 씨만 보면 힐링이 된다.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연훈 씨는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병 때문에 지금 느끼는 감정을 포기한다면 그 스스로 용서가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직하게 나가자면서도 자꾸 주저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죽이기엔 너무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비록 병이 있더라도 담대히 나가렵니다. 둘이 사랑을 하면 혼자 우는 것보다 백 번 나을 것입니다.”

연훈 씨와 지영 씨는 지금 사랑을 키운지 2년 밖에 되지 않지만 서로의 병 때문에 자신들을 부정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나태라 정의하고 오늘도 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잊혀지지 않는 그림을 말이다.

연애는 OK 결혼은 NO

많은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사랑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들도 똑같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인생을 공부한다. 비정신장애인들과 같이 기뻐하고 환호성도 지른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하면 한숨 쉬고 눈물짓는다.

사랑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지만 막상 머뭇거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결혼이다.

가정을 꾸민다는 것이 첫 번째 부담이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느냐가 의문이다. 자식이 생기면 누구 못지 않게 잘 키울 수 있느냐도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젊었을 때 열정을 태우고 싶지만 평생 아내와 자식을 위해 책임을 지는 것은 싫다는 두 가지 마음 안에서 갈등을 느낀다.

“저야 좋죠. 절 사랑해줄 수 있다면요. 같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서로 의지하고 자식을 키우며 책임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죠. 이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이라는 단어가 저의 가슴에 돌덩어리를 얹어 놓은 것 같습니다. 내가 조현병자로서 조현병 아닌 정상적인 아내를 얻는다 해도 알지 못하게 내려눌리는 이 압박감 때문에 숨을 못 쉬겠습니다.”

결혼 적령기지만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조현병 당사자 김성례(36) 씨의 말이다. 많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병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각종 불안과 의심, 망상, 환청에 시달리는 그들은 언제 병이 도져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젊은 당사자들은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연애만 하려고 한다. 남녀 간의 감정을 탐방해 그들만의 열정으로 위태로운 모래성을 쌓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 몰래 계약동거를 하자는 원인 같지 않은 원인도 댄다.

현재 여타 장애유형 중에서 정신장애인의 결혼율이 가장 낮고 이혼률도 높다. 당사자들이 고지식한 것도 문제지만 모두가 결혼의 상대자로 비당사자를 원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문제다. 더 나은 조건의 결혼상대자를 기대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여러 옵션도 바란다. 이와 같은 문제로 조현병 당사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하려는 주된 이유다.

결혼해도 부모 간섭에 갈등 심화

“이건 결혼 안 하는 것보다 못 한 겁니다. 이렇게 결혼시켜 놓았으면 지켜보시면 되는 것이죠.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입니다. 아침 인사부터 식사까지 잔소리가 스무 개가 넘습니다. 같은 조현병 당사자끼리 결혼시킨 게 걱정은 되시겠습니다만 우리도 성년이니 부부끼리 해결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지지해주었으면 합니다. 사소한 것까지 이렇게 신경쓰다 보면 우린 어떻게 삽니까?”

올 봄에 결혼한 조현병 당사자 양성광(32) 씨는 부모의 간섭에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10대에 발현한 조현병으로 20대를 우울하게 보냈다. 전문대학을 어렵게 졸업한 후 작은 회사에서 조명기사로 일했다. 같은 직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한 지 3년 만에 결혼했다.

그녀 또한 조현병 당사자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부터 성광 씨 부모의 간섭이 심했다. 성광 씨 부모는 신부가 당사자 출신으로 집안도 변변치 못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신부는 경증 조현병 환자로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남편의 허점을 보완해 주고 그의 활동을 지지해주었다. 보기에는 정상인과 별 다른 바 없었다.

그렇지만 결혼할 때부터 성이 안 찼던 성광 씨 부모는 처음부터 열까지 내내 간섭하고 작은 실수에도 비난을 했다. 이렇게 성광 씨 부모처럼 당사자끼리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하다. 당사자 부모들은 결혼할 아들이나 딸보다 병증이 경미한 상대방을 원한다. 심지어 비정신장애인을 원하기도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결혼한 자식들이 서투르고 불안하기만 하다. 서로 감정이 앞서서 결혼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고 젊은 부부들이 싸우지 않나 걱정돼 그들에게 조언해준다는 것이 오히려 심한 간섭이 되고 만다. 정상인 부부들도 지나친 시댁과 친정의 간섭에 반대하는데 조현병 당사자들은 어떻겠나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나 부모들은 그들을 성인으로 보고 인격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현병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면 이것 또한 인권 탄압의 일종이 되어 버린다.

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결혼한 자녀들의 생활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주어야 그들이 신이 나서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않겠는가"라며 "당사자들에게도 계획이 있고 꿈도 있다. 일단 그들의 뜻대로 가정이 굴러가게 해주고 보조수단으로 부모들이 개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현병 당사자들에게 결혼생활의 모범이자 선생이 바로 부모들이다. 그들이 선의의 모습을 보였을 때 당사자 또한 감동을 받고 순종해 나갈 것이다. 조현병 당사자 부부에게 결혼 생활이 하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도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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