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흔들릴 때 심리상담으로 들어가 보라…다만 치료는 전문 심리사를 통해서만”
“생이 흔들릴 때 심리상담으로 들어가 보라…다만 치료는 전문 심리사를 통해서만”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4.23 18: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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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펠트 1집 앨범 발매...혼란스럽던 시간 심리상담 1년 받아
심리상담가 “음악 대신 글로 풀어보라”는 권유에 글쓰기 시작
“누구에게나 결핍 있어...그걸 드러내는 게 수치스럽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돼”

기자는 50대에 접어들면서 어느새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20~30대 가수들은 거의 모른다. 스마트폰의 그 다양한 기능도 알지 못해 인터넷 보고 문자 보내고 전화하는 용도로만 쓴다. 거기에 계산기 기능과 알람 기능만 이용할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기자는 걸그룹 원드걸스의 노래 ‘노바디’는 알고 있었다. 물론 아는 노래는 거기까지다. 그렇지만 그 노래는 흥겨웠다. 모모랜드의 노래 ‘뿜뿜’을 알게 된 것은 1년 전쯤이다. 길거리를 걷다가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혹해 관심을 가져 인터넷을 뒤지다가 걸그룹 이름과 노래 제목을 알게 된 것이다. 꼰대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기자도 좀 억울한 마음이 있다. 20대 후반에 조현병이 시작되면서 그 이후 20년 동안 이 질병과 싸워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50대 초반에 신문을 만들면서 사회생활을 하게 됐으니 마음 한 곳에서는 무언가 억하심정이 쌓여 있었던 터다. 남들이 은퇴 계획을 세우는 나이에 기자는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

그렇게 음악을 몰랐다. 남진과 나훈아와 조용필과 서태지와아이들에 공감하지만 지금 20대 초반의 가수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내 고통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오늘, 핫펠트(30)라는 여성 가수가 첫 단독앨범을 낸다는 기사를 읽었다. 핫펠트가 뭘까. 당연히 기자는 모른다. 그런데 그 핫펠트가 과거 원더걸스 멤버라는 기사를 읽고 무릎을 치고 말았다. 아아, 원더걸스.

핫펠트는 2007년 원더걸스 멤버로 데뷔할 때 예명은 예은이었다. 2014년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오늘(4월 23일) 첫 번째 정규앨범 ‘1719’를 발매했다.

핫펠트는 2017년과 2019년 사이에 내면적으로 방황의 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어둡고 지독했던 3년이었다”며 “한때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그녀에 따르면 원더걸스를 떠나 본격적 홀로서기에 나선 게 2017년 초였다. 그의 나이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그녀는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열정은 안 생기고 어떻게든 애를 써보려고 하다가 잘 안 되니까 눈물이 나기도 하고…마치 사춘기를 겪는 10대처럼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은 우열을 가리는 물리적 차이가 아니라 심리라는 지극히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다. 즉 어느 누구도 누구에 대해 절대적으로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자는 그녀의 삶을 눈여겨 보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심리적 고통의 처리를 위해 일 년 동안 심리상담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녀는 “한창 음악 작업이 안 풀릴 때 병원 원장님이 ‘음악 대신 글로 풀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했다”며 “그 조언대로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있던 복잡한 생각들을 꺼내놓고 나니까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저 병원이 정신병원이었는지 아니면 대형병원의 정신과였는지, 혹은 심리상담소였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그렇지만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주위의 권유에 따라 심리상담에 참여했다는 용기에 대해 기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 시대의 모순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병들게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모순의 중심고리를 풀어내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고리는 너무나 강력해서 한 번에 물리칠 수 없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정신의 건강함을 지키려면 개별적인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바로 심리치료다.

핫펠트 역시 그랬다. 한국의 연예인들은 보통 자신의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정신적 질환에 대해 과거형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연예인들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심리 상황을 이야기하고 치료받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는 무슨 차이를 가지는 것일까.

한국의 연예인은 비록 정신적 고통이 있었지만 이를 이겨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의 자유로워졌음을 고백하는 게 가치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고통과 대면하고 있는 현재보다는 과거에 그러했다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속어의 의미와 겹쳐진다. 따라서 정신적 고통의 현재형은 무시된다.

핫펠트는 일 년 간 심리상담을 받았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그 시기를 지나고 인생에서 가지는 욕심을 많이 내려놨다. 책에서도 다루지만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고 싶다’는 감정보다 ‘매 순간 충실히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그녀는 또 “인생은 짧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과거엔 일을 우선순위로 두는 삶을 살았는데 삶의 밸런스도 중요해졌다”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고 나의 취미 생활이나 취향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은 물론 그녀의 오래된 심리적 고통 속에서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자는 핫펠트의 세계관을 재구성하게 된 데는 그녀의 심리상담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핫펠트 1집 앨범 '1719'

기자 역시 1년 가까이 집단미술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기자는 실패해 버린 삶에 대해 분노했고 아팠고 생의 나락에 떨어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기도 했다. 미술치료사는 그런 나에게 그 분노를 그림으로 표현해보라고 했다.

기자의 그림은 온통 검은색만으로 구성되는 ‘어두운’ 심리를 드러내곤 했다. 그렇게 일 년이 흐른 후 나 자신도 모르게 ‘살아야 해’라는 일말의 절규 같은 생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기자는 핫펠트의 심리상담이 남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저 자신을 향한 기준이 엄격했어요. 흠 잡히지 않으려는 삶을 살았죠. 그런데 지난 2년을 보내면서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드러내는 것이 창피하거나 수치스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요. 저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한계를 두지 않고 경계 없이 음악 안에서 뛰어놀면서요.”

심리 치유의 최종적 단계는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게 하고 그 실현된 가치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공동체에 공감과 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혼자만의 슬픔과 고통 때문에 치유를 받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그 고통의 에너지를 승화시켜 주변에 그 기운을 전하는 것이리라.

기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마음에 고통이 있고 혼자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심리상담을 받으라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심리상담이 유독 한국에서는 낙인이 되어 그 상담 자체를 꺼리도록 만드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다.

핫펠러처럼 힘겨울 때 조금은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물론 심리상담사는 많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심리학을 전공한 석사 이상의 전문 상담사를 선택하는 일이다. 세상에는 너무 몰지각하고 어리석고 탐욕스런 자가 전문 상담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심리상담 세계에서 걸러져야 할 ‘돌팔이’들이다. 그들에게 상담을 받으면 외려 받지 않는 것보다 못한 상처를 남기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치료를 받더라도 검증된 심리상담사를 찾아가야 한다. 그 검증이 어렵다면 한국심리학회(회장 조현섭)를 찾아보라. 거기에는 심리학 석사 이상을 전공한 1급 전문상담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을 추천하고 싶다.

'1719' 스토리북에 포함된 삽화.

기자는 꼰대의 나이로 넘어오면서 생각한 게 있다. 어쩌면 그때 심리치료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를 해석하고 있거나 내가 걸어온 길만이 옳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가치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심리적 기제가 물질적 성공과 실패라는 부분과는 별도로 하고서라도 말이다.

따라서 조금은 부드러운 꼰대가 되기 위해 기자는 심리를 좀더 돌보는 자가 되고 싶다. 내가 나를 존중할 때 나는 주변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핫펠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부분은 정말 꺼내기도 쉽지 않았고 정리도 잘 안 됐다. 글을 천천히 써내려가면서 정리를 했다. 글을 고쳐나가면서 당시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처연해졌다. 그 과정들을 거치면서 엉켜있던 감정들이 풀어지고 정리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

핫펠트는 심리치료를 받았을 당시 적었던 글들을 엮어 150페이지 분량의 한정판 스토리북을 제작했다. 스토리북의 제목은 앨범과 같은 ‘1719’, 부제는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이다.

모순은 중심고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해서 그 모순의 정치적 부분을 한 번에 제거할 수는 없다. 대신 그 모순을 잊지 않고 지켜보기 위해 우리는 개별적인 상담을 받는다. 그 치유된 정신들이 모일 때  모순의 중심고리는 해소될 것이라는 게 기자의 소망이다. 핫펠트, 그녀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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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태 2020-05-03 06:37:29
애써 숨기지 않는 사회, 자연스럽다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