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 칼럼] 코로나블루의 시대, 정신장애인은 고립감 등 한계 극복 위해 더 치열해져야
[노희정 칼럼] 코로나블루의 시대, 정신장애인은 고립감 등 한계 극복 위해 더 치열해져야
  • 노희정
  • 승인 2022.01.24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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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정신장애인 삶 더 막막…건강하게 버티는 방편 찾아야
‘혼자 살기·혼자 놀기’ 등 고립된 관계망을 넘어설 자기 지지 필요

인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성장력, 문제 해결 능력을 잃었다.

‘망연자실.’

치료할 백신을 개발했으나 변이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생동하고 인류는 예상했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드디어 돌입했다. 아니 돌입이 아닌 본격적인 진행인지도 모른다.

(c)lgda.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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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열풍으로 5대양 7대륙이 긴밀한 커넥션으로 이어져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모든 영역이 확대된 오늘날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이동의 자유에 대한 환희는 막을 수 없는 전염성을 낳게 했다.

인류의 장을 폐허로 만들었던 페스트, 멕시코 독감, 아편, 1차·2차 세계 대전, 이라크 걸프 전쟁은 모두 국지적이었다. 이처럼 모든 인류가 지구상에서 동시에 겪은 재앙은 여지껏 없었다.

마치 SF영화가 눈앞에서 재현되고 현실로 체감되는 시나리오가 펼쳐진 것이다. 온 세계는 외계인의 습격과도 같은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언제 전쟁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을지는 막연하기만 하다.

모든 것은 정지했고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규제와 통제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약자인 대상이 위협적인 공격에 먼저 노출되기에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재난 시국에 정신장애인은 복지의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

코로나 감염 예방 우선 접종은 병원이나, 요양원, 주거 시설에 거주하는 정신장애인에게만 국한됐지 다른 정신장애인들은 우선 접종자 순위에서 제외됐다. 미국에서는 부스터샷 접종 대상에 정신질환자를 우선적으로 포함시켰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부스터샷도 60세 이상 노인층이 우선순위였다.

A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출근하듯이 국립정신건강센터로 향한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못하고 사례 관리도 받지 못하기에 병원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거나 병원 밖 흡연실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병원 문이 닫힐 때까지 하루를 보낸다. 다행히 국립정신건강센터 내에 있는 동료상담실은 운영되기에 매일 짧지만 상담도 받는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있는 지하철 7호선 중곡역을 나오면 병원에 이르기도 전에 곳곳에 놓인 벤치 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 환자들을 늘 볼 수 있다.

A씨처럼 병원을 주간재활시설처럼 찾아가 하루를 보내는 정신장애인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매일 만나는 얼굴이다 보니 소속은 달라도 또 소속이 없어도 서로 동병상련의 친구가 되어간다.

B씨는 디스크 환자임에도 용돈을 벌기 위해 주말이면 로드숍 화장품 홍보 알바를 한다. 평소 같으면 늘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알바 제의 연락이 왔건만 코로나 이후 알바 자리를 구하지 못해 두 달째 휴대폰 요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C씨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동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그나마 오후가 되어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오면 혼자 동네를 돌아다닌다. 길거리에서 자주 마주치기에 동네 사람들 중 C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의 유일한 대인 관계였던 정신건강복지센터 동아리 회원들과의 대화도 나눈 지 오래 됐으며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당뇨약을 복용하게 됐다.

이제 정신장애인은 갈 곳이 없다.

우리 곁의 정신장애인들은 스스로 장애인이 되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다. 대부분 병으로 인해 돈을 벌 기회를 잃었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정신장애인이 수급비를 받고 장애수당을 받아도 생계를 꾸려가려면 집 밖에서 외식을 하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기는 힘들다.

돈이 들지 않는 곳. 무료로 갈 수 있는 곳. 더위와 추위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 그런 공간들이 모두 사라졌다.

밀집된 공간을 벗어나 산책을 나가도 공원의 벤치까지 거리 두기를 위해 묶어두어 앉아 있을 곳이 모자라고 지하철을 이용하다가도 사람 사이에 간격을 두어야 해서 지하철 탑승장 앞에 놓인 의자에도 가까지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은 코로나 시국 모든 국민이 겪는 일이지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의자들이 없어진 지금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더욱 고립되고 사회와의 연계망을 잃게 되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

그 섬 안에서 혼자 살기. 혼자 건강 찾기. 혼자 놀기를 위해 정신장애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머리를 짜내고 행동 강령을 지켜야 하게끔 됐다.

평소 여행에 관한 책들을 많이 펴낸 정여울 작가는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어 답답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 질문에 답하듯 작가는 이 상황에서도 누릴 수 있는 혼자만의 아주 특별한 여행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읽으며 전 세계를 여행하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으며 이탈리아의 베로나 지역을 맛보며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를 읽으며 그리스 신화 속으로 빠져들어 본다는 것.

코로나 일상에서 우리는 자기만의 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

체육시설 이용이 제한되자 사람들은 ‘홈트’(홈트레이딩 시스템)에 열중했다. 유튜브의 채널을 통해 스트레칭, 근력 운동, 요가, 댄스를 집안에서 익히기 시작했다. 종교 모임이 제한되자 인터넷이나 줌을 통한 비대면 예배와 미사로 방편을 찾았다. 줌이나 카톡 단톡방을 통해서 성경 공부와 친교 모임을 계속해 가고 있다.

콘서트, 뮤지컬, 연극, 연주회 같은 공연 감상은 새로운 장이 열렸다. 네이버 TV 실시간 라이브로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손에 쥔 휴대폰 하나로 더욱 가까이에서 여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집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때 서울시 평생학습 포털 홈페이지에 들어가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컴퓨터, 자격증, 취미, 대학 연계 강의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c)paho.org
(c)paho.org

모두가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 코로나 블루에 시달린다. 그 속에서 정신장애인들의 삶은 더욱 막막하고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정신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다양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보다 더욱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 몰입해야 한다.

‘혼자 살기’와 ‘혼자 건강하게 버티기’ ‘혼자 놀기’를 위한 방편을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찾는 수밖에 없다.

많은 화가들은 BLUE를 통해 우울한 정서를 표현해 왔다. 하지만 파란색 물감은 우울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쓰인 것 만은 아니었다. BLUE는 고급스러움의 상징으로 귀족이나 품격 있는 대상에게 쓰였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옷감이 푸른색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BLUE에는 우울 외에 다른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프랑스의 국기의 세 가지 색 중 WHITE는 평등, RED는 박애, BLUE는 자유를 대변한다. 현재의 코로나로 인한 BLUE가 자유의 BLUE가 되기 위해선 단지 백신을 개발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방역 지침을 논의하는 이들의 몫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기말적 재앙, 재난 상황이 가져오는 위협과 불안 속에서 건강하고 담대하게 그리고 여유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일상의 ‘소확행’으로 정신 무장을 해나갈 때 국가 안에서 그리고 인류 안에서 반드시 인간에 대한 예의로써 존중받아야 하는 정신장애인 개개인 역시 BLUE를 우울에서 자유로 이끌어낼 수 있는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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