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래스 상담에서 동의한 적 없는데 맘대로 동의서 써서 부모님께 알려졌어요”
“위클래스 상담에서 동의한 적 없는데 맘대로 동의서 써서 부모님께 알려졌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10.19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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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정신건강위원회, 청소년 정신건강 보고서 발간
청소년 정신건강 교육, 주입식 영상의 시간 때우기...학생 참여 고민 필요
학교 정신건강 교육에 섭식장애, 성소수자 교육도 포괄적으로 다뤄져야
청소년 정신과 상담은 Z코드로...낙인 피하고 필요 시 동의 얻어 부모에게 알려야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정신건강위원회 소속 청소년 위원들. (c)멘탈헬스코리아 제공.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정신건강위원회 소속 청소년 위원들. (c)멘탈헬스코리아 제공.

학교 안/밖 청소년의 시선으로 한국의 정신건강 시스템의 문제와 한계, 그리고 대안을 찾아보는 보고서가 발간됐다.

정신장애인 소비자 운동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정신건강위원회는 최근 ‘2022 대한민국 청소년 정신건강 보고서’를 발간하고 오는 21일 보건복지부·국립정신건강센터가 주최하는 정신건강 포럼에서 청소년 위원들이 이를 발표한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소년정신건강위원회는 정신건강의 조기 예방과 조기 개입 생태계 구축을 위해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 혁신에 반영한다는 목적으로 올해 출범한 조직이다. 보고서는 청소년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과 가용되는 전문 인력의 보강, 국가 예산의 증액 등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학교 안/밖 청소년 정신건강 교육의 혁신 ▲정신건강에 관한 청소년 권리 옹호 및 차별 금지 방안에 대한 혁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청소년 정신건강을 위하 학교 및 사회제도 서비스의 혁신 등 3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우선 학교 안/밖의 청소년 정신건강 교육 실태 분석에 따르면 자해 청소년의 급증,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10년 연속 ‘자살’인 문제, 자살예방에 대한 교육과 학교 차원에서의 관심의 발전 정도를 담았다.

이어 청소년 정신건강에 대한 다양한 차별과 낙인,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권리들을 분석한다. 자해와 자살 생존자 청소년,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 청소년을 중심으로 학교, 가정, 사회에서 받았던 부당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됐다. 코로나 엔데믹(풍토병) 상황에서의 청소년 정신건강 옹호를 담았다.

위원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국내 정신건강 교육의 현실은 5점 만점에 2.7점이었다. 4점을 고른 비율은 25.9%인 반면 ‘매우 만족’을 의미하는 5점의 경우는 0%였다.

학교가 실시하는 청소년 정신건강 교육은 일방적인 주입식 영상을 통해 시간 때우기식 교육이라는 지적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은 수동적 강의가 아닌 학생 참여형 수업과 교사와의 소통을 욕구하는 정도가 컸다.

특히 매년 유사한 주제를 가르치고 연 단위로 일회성으로만 진행되는 것, 형식적이고 현실과 괴리가 있는 부분, 어른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내용은 청소년들에게 형식적이라는 지적이다. 

위원회가 정신적 아픔을 겪은 청소년이 해당 주제에 대해 정신건강 교육을 진행한다면 들을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85.2%에 달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더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자살 위험성이 중증도의 위기에 놓인 청소년의 비율은 학교 안 청소년들보다 2배 높았다.

꿈드림센터, 청소년수련원 등 학교 밖 청소년 대상의 교육 기관들이 있지만 정신건강 보다는 취업 및 진로 체험, 검정고시와 관련된 교육이 주를 이뤄 정신건강 문제는 배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제공.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제공.

현재 정부가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교육은 자살예방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성교육 등이다. 하지만 자살예방교육은 형식적이어서 자살 충동의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에게 실효성이 없다는 점,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정서적 지지와 도움을 받을 실질적 방법을 제시해주지 않는 점, 성교육이 성의 다양한 영역을 배제하고 생물학적 성에 고착돼 설명하고 강사의 시선이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위원회는 이 세 개 교육 영역에 더해 자해예방교육, 섭식장애 예방교육, 가족폭력 예방교육, LGBTQ(성소수자)+교육, 셀프 케어 및 행복 교육, 애도 교육, 정서조절 교육 등의 정신건강 교육이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 교육과 관련해 제도적 문제로 정신건강 예산 편성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중고등학교 정신건강 교육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에 따라 청소년들은 우울증, 자살 충동 및 행동, 섭식장애 등 다양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우게 되고 학교 시스템 내에서 도움을 구하는 방법도 배우게 된다.

미 정부는 이외에도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을 위해 8천500만 달러(1190억 원)의 지원금을 발표했고 이는 학생과 교사, 교직원들이 위험 단계에 있는 학생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사용된다.

반면 한국의 경우 서울시 교육청이 발표한 2022년 예산 규모는 10조5886억 원이지만 서울시 기준으로 학생상담센터 운영 비용은 12억 원 수준에 불과한 형편이다.

영국 런던정경대 연구진 분석에 따르면 정신질환 조기 발견 프로그램에 1파운드(1600원)를 투자하면 10.3배, 정신질환 조기치료에 투자하면 18배, 자살예방 교육 훈련에 투자 시 44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2021년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복지 예산은 4065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2.7%에 불과하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5%의 절반 수준이다. 자살예방 예산은 일본의 160분의 1수준이며 교육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위원회는 초·중·고등학교 내 정신건강 상담을 책임지는 위(Wee) 클래스의 문제도 제기했다. 2020년 기준 위클래스가 개설돼 있지 않은 학교는 초등학교 46.8%, 중학교 83.1%, 고등학교 85.9%에 이른다. 초·중·고 위클래스 평균 설치율은 65.6%였으며 지역적 편차도 심해 전라북도의 경우 31.4%에 불과했다.

특히 청소년들이 위클래스 이용에 불만을 가진 이유로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위원회와 인터뷰를 한 고등학교 A군은 “부모님한테 이야기해도 된다고 동의서 쓴 적 없는데 맘대로 동의서 써서 보내고 다 알려 버렸다”고 토로했다. 상담 교사의 자질 문제, 시설 불편감, 비지속적이고 분절적인 상담, 인력 부족도 문제로 제기됐다. 고교생 B양은 “우리 위클래스 샘은 제 상담 사실을 여기저기 다 소문내고 다녔어요”라고 말해 신뢰에 기반한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다.

위원회는 위클래스와 관련된 법률 제정을 통해 상담교사의 정의와 자격 요건을 규정하고 비밀 보장과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상담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고 제안했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청소년이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병원의 경우 청소년에 진단 및 약물 처방을 할 경우 보호자의 항의에 직면할 수 있고 비용 지불 능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진료를 거부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청소년이 계속 상담을 받고 싶어 해도 부모가 반대할 경우 지속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위원회는 대안으로 청소년 단독으로 진료를 보러 올 경우 첫 진료는 정신과 상담 기록이 남지 않는 Z코드로 상담할 것을 권했다. 이후 상담 과정에서 약물 처방, 입원 등 부모 동행이 필요할 시 청소년과 논의 후 부모에게 연락해 설득하는 과정을 취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자해 및 자살시도 청소년의 교육권 강제 박탈을 예방하는 조례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위원회 측은 “자해, 자살 시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의 의사와 상관 없이 학교, 센터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막을 조례가 필요하다”며 “교육기본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이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신체적 조건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제공.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제공.

위원회는 학교가 자해·자살 시도를 이유로 교육권뿐 아니라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청소년들이 교육받을 권리와 건강을 추구할 권리를 위해 사회와 학교가 또래끼리 어울리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뉴욕 주는 지난 2010년 학생인권조례(Dignity for All Student Act)를 신설해 학교 내 차별로 상처받은 학생들이 없도록 보호하고 있다. 단순히 특정 항목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괴롭힘 행위에 대응하는 조항을 교육위원회 행동 강령에 포함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한국도 정신건강에 대한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례도 필요하지만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들이 교육되고 실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이번 보고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청소년 생태계의 실태와 문제점을 청소년 관점에서 구체적 혁신 방안을 제시하는 ‘대한민국 청소년 정신건강 혁신 보고서’를 12월에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1일 열리는 2022 대국민정신건강포럼은 오후 2~5시까지 진행되며 국립정신건강센터 유튜브(http://마음투자포럼.kr)을 통해 실시간 중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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