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
  • 박목우 작가
  • 승인 2023.11.03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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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박목우 작가의 에세이
어쩌면 기도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와
비록 보잘것없다고 해도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게 지지해줘야
사랑이란 세상에서 가장 내밀한 희망과 가장 깊은 두려움을 나누는 것
박목우 작가 제공.
박목우 작가 제공.

⁂ 그리움보다 넓은 공간은 없고, 그 그리움에 견줄 만한 우주는 없다

누구를 만나기 전에 이미 도착해 있는 그리움. 그것을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요. 당신의 모습은 꼭 그래 보였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도 전에 날 사랑해 주고 있었어요.

사람의 말이, 어떤 작은 행동 하나가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경험은 아주 오랜만이었습니다. 아침이 오면 사위가 밝아오듯 나의 긴긴 밤에도 새벽과 아침이 도착했고 나는 그것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다는 것이 참 환하고 곱기만 했습니다.

넓게 펼쳐진 하늘에 구름이 흐를 때, 우리는 문득 자신의 감각이 무언가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내재하는 감성으로 우리 앞에 세워진 수많은 벽들을 지나기로 해요. 그때는 내가 곁에 있을게요. 곁에서 그리움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요. 꽃들이 그렇듯 산 하나를 넘는 강하고 부드러운 자연의 침묵 속에서 울리는 그리움이 다시금 사랑을 부를 수 있도록 말이에요

⁂ 이름을 불러 주세요. 그 순간 상대는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살아가는 기쁨을 느낍니다

우리는 쉽게 겉모습에 휘둘립니다. 누군가의 참모습을 못 본 채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의 가슴에서 이름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가 정말로 불리고 싶은 이름은 한가지씩 있고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의 곁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사람들. 너무 오래 잊고 있었습니다. 그 고마움을요. 기쁨으로 호명되었던 나의 존재를요. 눈 밝은 이가 되어 저도 불러보고 싶습니다. 긴긴 그리움으로 남을 아름다운 사람들을요. 사랑의 소유와 이기심 너머에서 모두가 아름다운 이들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박목우 작가 제공.
박목우 작가 제공.

⁂ 한편으로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기도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을 바꿔나가기에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우리가 힘을 모을 수 없고, 가끔 이해 못 할 배신을 당하고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있을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들으면 상한 마음이 따듯이 부풀어 오릅니다. 뜨거운 오븐에 넣어진 듯 말입니다. 빵 냄새를 풍기는 거리에서처럼 알 수 없이 안도하게 됩니다.

"생의 막다른 곳에서 우러나는 상냥함"이라고 하셨던가요. 그 연약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싶습니다. 죽음을 이긴 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는지요. 잊지 않을게요. 당신이 주었던 생의 긍정을. 삶의 마지막에는 상냥함이 있어 남은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허름하고 겸손히 가꾸어 온 한 생의 모습을, 누구도 미워하지 않은 영혼을, 눈물겨운 입맞춤을 남겨 놓습니다

⁂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어떤 슬픔은 너무 깊어 그저 웃어버릴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핏물이 우러나듯 그런 웃음은 상처를 지니고 있게 마련이지요. 그럴 때, 너무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웃고 있을 때, 가만히 안아주고 싶습니다. 괜찮다고, 이상하지 않다고,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고 조용히 말 건네고 싶습니다.

우리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고 대화를 끝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의 마음이건 이별의 아픔이건 지쳐가는 노동이건 뼈아픈 고립이건 나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그러니 말갛게 웃고 있는 당신에게서 제가 슬픔의 기미를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는 것도 무능력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어쩌면 기미, 라는 말이 열쇠가 되어 줄까요. 당신의 처음을 나는 알았고, 마지막을 알았기에 내가 더 사랑해야 할 듯한 예감을요. 그래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당신 안에서 태어나는 생명처럼 알의 안쪽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는 소리를요. 그 소리를 듣고 당신에게서 왔던 사랑을 갚아나갈 것입니다. 당신 안의 아름다움과 희망과 생명의 약동을 당신 자신인 것처럼 들려줄 것입니다.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온 기쁨을 함께 할 것입니다

박목우 작가 제공.
박목우 작가 제공.

⁂ 사람의 준말이 삶이다. 우리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온다

하나) 우리는 우리 모두의 환경이라서 오늘 당신이라는 꽃이 핍니다. 광활한 세계를 보며 아마 당신은 생각했겠지요. 저 큰 산맥의 바위가 될까, 새들이 쉬어가는 푸른 바다의 섬이 될까, 사람의 세상으로 내려가 복잡한 인간사를 살아볼까. 그러다 당신은 결심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과 영혼을 비추는 꽃이 되자고 말입니다.

한해 덧없이 피고 지지만 핏줄처럼 섬세하게 뻗어있는 꽃맥은 당신이 살아있기 위해 얼마나 숨가쁜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려 줍니다. 이 작은 존재의 미래를 위해 당신이 있었습니다. 그리움이 아니었더라면 피어날 수 없는 꽃이었기에 그렇습니다

둘) 당신은 무심히도 꽃을 지나치지만 꽃은 평생의 약속을 짓습니다. 욕심 없이 지고 나서 당신이라는 이름의 꽃을 또다시 피우기 위해 씨앗을 맺을 거라는 간절한 약속을. 세상에는 당신을 비추는 꽃이 있고 그 꽃은 당신의 영혼을 아름다운 빛깔로 지켜줍니다.

저만치 떨어져서, 어쩌면 아주 아득히 멀어져 피어도 당신을 비추는 꽃. 언젠가 꿈에서 보시겠지요. 그 꿈에서조차 은은한 당신의 영혼을. 아마도 함께 지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긴 기도문을 적듯 새겨지는 마음이 당신의 이야기를 품고 당신 얼굴에 어렸겠지요. 당신 보시지 못해도 산을 넘는 꽃의 깊이로 우리는 충만하기만 합니다. 당신 안의 깊이 패인 상처가 꽃의 그리움을 불러냈다는 걸 당신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익숙한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것. 비록 보잘것없다고 해도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다

혼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지낸 날들이 길었습니다. 아무도 내게 설명해 주지 않던 많은 것들. 세상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고 저는 망연히 세상을 떠돌고만 있었습니다. 희망을 품는 것이 너무 아파 차라리 희망을 질식시켰던 깊은 절망의 날들.

그날들을 지나 당신을 만났습니다. 나를 알아봐 주고 차근차근 발견하도록 용기와 힘을 주는 당신. 무엇보다 절망보다 깊은 사랑이 제게 포근히 스미는 그 평온이 고마웠습니다. 그건 마음과 마음이 오고 가야 가능한 것이기에 그랬습니다.

당신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일 새롭게 발견해 갑니다. 당신이라는 필름을 거치면 고여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 그리고 사람들. 미만한 생의 모든 것들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내게 사랑이 왔구나, 압니다. 밤하늘에 깊이 잠긴 별들처럼 세상에 평범히 잠긴 당신이 그럼에도 빛나는 것을 기쁘게 봅니다. 별처럼 다가온 당신이 있어 이 생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박목우 작가 제공.
박목우 작가 제공.

⁂ 사랑이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꿈을, 가장 내밀한 희망을, 가장 깊은 두려움을 나누는 것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이들과 만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어떤가요. 나와 다른 사람을 시야 밖으로 지워버리나요. 아니면 그의 감추어진 진실을 축복하고 싶어 오래 귀를 기울이나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알아차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진심입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한 생명이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소박하고 뼈아플 이유가 누군가의 귀에 닿는 느낌을 가진다면 그는 용기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씩 열리는 오감으로 다시 삶의 기쁨을 노래할지도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요. 살면서 그런 구원을 보고도 싶었습니다. 그를 아는 모든 이가 기뻐할 그런 환한 기적이 한 사람 안에 깃들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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