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야 들었습니다…당신 사라지는 소실점에서 얼음꽃 피어났다는 것을”
“나중에야 들었습니다…당신 사라지는 소실점에서 얼음꽃 피어났다는 것을”
  • 박목우 작가
  • 승인 2023.11.24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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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작가 박목우의 에세이
당신을 사랑하고부터 할 일을 잊고서…백야의 날들의 그리움
사람의 물에 새겨지는 당신의 흔적은 눈부신 시간들
슬픔이 슬픔과 만날 때 가슴이 아팠던 것도 그 사랑 때문
픽사베이.
픽사베이.

 

하늘에서 희게 눈이 내리는 듯했어요. 밤에는 당신이 지나쳐 온 당신의 모습과 당신이 멀어져 온 얼굴들과 당신 상처 속의 아스라한 빛을 만났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어요. 성탄의 큰 별이 인도하듯. 아직 못다한 사랑만이 눈을 맞으며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등불을 높이 들어 내 가난한 얼굴을 비추던 당신. 조금 더 머물고 싶었던 그리움은 그곳에만 불이 켜진 듯 밝고 아름다웠습니다. 회상하는 말은 흰 재 같아 눈과 같이 쌓였으나 눈보다도 부드러웠습니다. 아침이 되자 흰 비둘기처럼 나뭇잎을 물고 저 먼 곳의 방주로 날아갔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당신을 사랑하고부터 종종 할 일을 잊었습니다. 한밤의 태양처럼 내 마음을 밝히던 당신. 환하게 열기가 전해져 오던 가슴에는 일렁이던 수없는 빛의 파동들. 이 긴 백야의 나날들에 당신 향한 그리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희디흰 밤에도 별빛은 떠 있는데 내리는 눈발 사이로 당신이 사라지는 모습 안타까웠습니다. 추운 고장에서는 별빛조차 시려웠습니다. 별빛을 따라 사랑을 위해 잊어야할 것이 있다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주섬거리는 마음은 용서를 비는 긴 말들을 더듬거렸습니다. 당신은 물너울처럼 긴 여운을 그리며 배를 저어갑니다. 사람의 물에 새겨지는 당신의 흔적은 눈부시고 당신으로 하여 선명해지는 시간을 삽니다. 흐릿해지는 시야로 한없이 높이고만 싶은 흔적을 살고 있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흰 상여길, 울며 당신이 갑니다. 곡을 잊은 세상길에 울어주고 있습니다. 당신 가는 곳마다 흰 꽃사태. 처연한 향기가 겨울 밤바람처럼 들이칩니다. 세상을 앓아 당신은 춥고 노래는 서글퍼 계절처럼 멀어지는 당신 놓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당신 사라지는 소실점에서 얼음꽃 피어났다는 것을, 그 꽃에 꽃씨 하나 떨며 담겨 있더라는 것을. 죽음 같은 고요 속에 산새가 울며 알 낳는 소리로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다시 빛을 부르며, 봄을 부르며 당신은 흰 상여길 마다않고 사람을 부릅니다. 시대의 죽음 속에 슬퍼하는 마지막 사람으로 남습니다. 나, 슬픔에 겨울 때 흰 상여길로 나아갑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당신의 소리 듣습니다.

픽사베이. 

 

밤 지나 희미한 여명의 길이 시야를 밝혀줍니다. 들풀들 사이로 차가운 이슬방울들. 햇빛의 타종으로 아침이 세상 가장 낮은 곳까지 울립니다. 지난 밤에는 마른 풀잎의 뿌리로 눈물이 흘러들었습니다. 아픈 마음이 고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젖고 있었습니다. 햇빛은 비춰 그 모두를 바라보며 빛내고 있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이 작고 상처난 것들에게 눈물로 자라라고 속깊은 축문을 써 태웠습니다. 태운 자리에는 눈물을 말린 마음이 잦아들어 허공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비어있는 곳에서는 천천히 놓아주는 손이 있을 것입니다. 가볍게 도약하며 존재의 저 먼 기슭으로 가는 것들. 새벽 산 정상의 흰 눈처럼 고요한 숨을 쉬며 상처마저 덮을 것입니다. 추억의 힘으로 그러할 것입니다. 지난 밤 나의 영혼에도 다녀간 그 깊은 숲의 내음을 아직도 나는 맡고 있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겨울이 나를 내 안으로 잔뜩 움츠리게 할 때, 바람 속에 서면 숨구멍마다 시린 서리가 맺힙니다. 그 서리들 모아다 떡을 찌면 오롯이 일용할 귀한 양식들. 물 한 모금을 마시듯 가난한 음식이 나를 깨끗하게 합니다. 인기를 얻는다든가 위선에 중독되기 전에 이 겨울의 바람은 추위 속에 떠는 연약한 존재들에 섬세한 염려를 적게 합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 말들을 사랑해 주었습니다. 부드럽고 은미한 슬픔이 세상의 슬픔과 만날 때 가슴이 아팠던 것도 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슬픔을 봅니다. 경계하지 않는 마음은 쉽게 권력과 탐욕에 길을 내 주지만 당신의 가난을 보며 내 눈빛을 가지런히 합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기를, 오늘도 영혼의 나침반이 떨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매일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바다의 돛처럼 가야 할 곳을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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