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조용히 그 희망을 적는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이제 조용히 그 희망을 적는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
  • 박목우 작가
  • 승인 2023.11.23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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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작가 박목우 에세이
작고 아픈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 가슴에 길 하나 내는 책 쓰고 싶어
이별이 무엇인지 안 뒤로 당신의 모든 아련함을 적을 것
안으로부터 밖으로 번지는 것들은 생의 실상을 알게 해
안개는 치열하게 부딪던 것들이 남겨놓은 생의 의지
픽사베이.
픽사베이.

 

바라는 책. 정밀한 문체로 한 세계가 품을 수 있는 울림을 주는 책. 깨어나는 책. 영혼의 움직임과 힘이 느껴지는 책. 나를 믿어보기로 합니다. 누군가 언젠가는 만나보고 싶었던 책. 그리움으로 남겨 두었던 책을 써 보는 것입니다. 차마 갈 수 없던 길에 대해 겸손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들을, 두고 온 것들을 쓰고 싶습니다. 먼저 징검돌을 놓은 이들이 지닌 경이로운 시작을, 그 자세한 사랑을 본받고 싶습니다.

삶과 죽음을, 사랑과 용서를 말하며, 슬픔과, 허위를 이겨내는 영혼들의 진실을 부지런히 읽고 살고 쓰는 것입니다. 그게 평범한 우리의 일상일 뿐이어도 때로 세상에 연약하게 맺히기도 하는 책. 작고 아픈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 가슴에 길 하나 내는 책, 기쁨과 용기로 통해 있는 책. 풀꽃 같은 존재들의 삶을 쓰고 싶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씨앗처럼 번진 활자가 생의 약동을 지니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숨을 쉬는 것 같이 조용한 단어들이 세계를 비추는 깊고 깊은 물 위에서처럼.

픽사베이.
픽사베이.

 

매미 소리 드는 여름의 새벽에는 깊어가는 것들이 소리를 냅니다. 소리가 차안으로 스밀 때에야 조용한 계절이 오리라고 여름의 폭우 속 해변을 떠돌며 유령들은 귀를 기울입니다. 경계에서 유령들은 흰 물보라가 됩니다. 아주 사라지지는 않고 희미한 안개처럼 서리는 잠시의 차가움. 그 얼어 있는 세상에서는 아직 흰 눈이 내립니다.

소리의 파고가 높아갈수록 듬성해지는 눈은 욕망을 내려놓은 것들의 푸른 그리움 때문입니다. 푸르름이 넓어지며 맑고 개인 아침처럼 다시 시작하는 지극한 소리들의 시간. 그럴 때 사람의 욕망은 따듯해서 한 세계를 편안히 품어줍니다. 겹을 이룬 포옹이 비로소 발견하는 영토에서 길고 긴 흐느낌들 모여 듭니다.

지상에서 발 떼지 못해 갈 수 없는 마음은 하늘을 펼쳐 언제나 흰 구름 속입니다. 흐르고 있는 시간에 형태를 정하지 않은 마음으로 남습니다. 다만 한 가슴에는 처음 그랬듯이 물보라로 맺혀 있습니다. 두 손을 포개고 기도하는 나즈막한 탄원. 사라진 이들을 기리는 슬픔은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어서 그마저 잃게 되면 깃들 수 없는 세상에 젖는 것들 많습니다.

가만히 배어나오는 눈물이 가난한 이들의 얼굴을 적시고, 불면의 밤에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의 알코올로 젖습니다. 춥고 외로운 영혼들의 땀 흘리는 노동이 되어 세상이 젖습니다. 마음은 늘 번지려 합니다. 한 아름다운 사람의 죽음에는 내 속으로 받아들이는 사연들이 있습니다. 검은 연필로 쓰는 유령에 대하여, 거기 서리는 눈동자에는, 영혼의 어른거림이 깊어, 피안마저도 들릴 듯 들리지 않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려 합니다. 생의 저 먼 곳에서 당신은 희미하게 흔들릴 뿐이라 해도요. 그 모든 아련함을 저는 적겠지요. 언젠가는, 이별이 무엇인지 안 뒤로는. 저는 하나의 흔적. 물결이 지나간 무늬입니다. 파도를 가지고 흥정하지 않습니다. 깊은 시간이 오고 저는 격렬하게 앓을 테고 상처를 앓는 동안 찾아드는 통증도 파도와 함께 더 아프게 저며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보여주는 것은 희망일 것입니다. 저는 이제 조용히 그 희망을 적는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의 아픔에 다가서려 합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삶의 긴 울림이 산허리를 감싸 안개를 피어 올리게 합니다. 그 산을 오르는 이들, 옷섶이 젖습니다. 세상에는 너르고 깊은 것이 있어 생의 한숨조차 그 안으로 스밉니다.

안개는 산의 바깥이어서, 태어나고 있는 기운이 산의 품 안에서 흐르며, 사람의 슬픔을 잊지 않습니다. 안으로부터 밖으로 번지는 것들은 생의 실상을 알게 하지요. 생의 감각으로 푸르른 안개. 안개는 비로소 드러난 생의 간절한 목소리입니다. 치열하게 부딪던 것들이 남겨놓은 생의 의지입니다.

생과 사를 넘어서 있던 열망이 의탁하던 산의 깊은 얼개가 솟아납니다. 그것은 하나의 비유, 하나의 유동하는 힘. 자리를 지키던 모든 것들은 알 수 없어지고 다만 흐름만이 유일합니다. 함께 흐를까요, 넌지시 건네는 손에는 흰 모시 손수건. 슬픔의 바닥 같은 얼룩진 얼굴을 씻어줍니다. 약하고 덧없어 흩어지기만 하던 것들이 돌연 생기를 띠고 조용한 악기를 연주합니다. 이 큰 품을 어찌해야 할까요.

산의 안개는 그칠 줄을 모르고 서려 있습니다. 어느 맑은 날이면 산의 내부가 그리워질 것입니다. 희디희게 인가 가까운 곳까지 내려와서 생의 비밀을 고지하던 날들에 젖던 이유가. 숭고한 것들은 남아 곁에 오래 머뭅니다. 이유를 모르는 채로도 그렇습니다.

안개 가까이, 안개를 볼 수 없던 이들과, 안개 속에서 알 수 없이 위로받던 마음이 만나, 공평하게 서로를 나눕니다. 안개는 매일 뜨는 해처럼, 생성되는 것들을 낯설고도 부드럽게 드러내고 비춥니다. 자연의 이치가 지금 여기입니다. 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물러서지 않던 산의 깊은 내음이 안개로 남던 날에, 하늘의 끝까지 걷고 싶었습니다. 갈 수 없었습니다. 하늘은 땅과 바다를 감싸고 있었기에 그랬습니다. 두 손을 모으듯 둥글었기 때문입니다. 끝과 시작이 숨결처럼 맞물려 있어 암석 사이에서 푸른 보석이 단련되듯 숨 쉴 수 있는 공기로 매번 다시 태어나야 했기에 그랬습니다.

생은 와서 이제 곧 긴 어둠이 내릴 것이라 해도 내 가슴을 움직이는 당신은 이 밤의 바람 속에서 진실한 것이 아직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끝 알 수 없었습니다. 봄이면 꽃이 핀다는 신비처럼 생의 씨앗을 품고 석류 열매처럼 모여 있는 당신의 비밀들을 나는 다 열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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