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신장애인들의 삶은 존엄하다, 그 존엄을 위해 지금 권력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모든 정신장애인들의 삶은 존엄하다, 그 존엄을 위해 지금 권력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12.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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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정신자립생활센터들 예산 '반토막'…5억2천에서 센터당 2억7천만 원으로 삭감
기존 직원 12명에서 예산 삭감시 4명만 남고 나머지 떠나야
정신장애인연합회, 14일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 진행
윤 대통령 “정신장애, 국정 아젠더할 것”…중앙정부와 엇박자내는 서울시의회
14일 중구 서울시청 정문에서 정신장애인 활동가들이 시의회의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 삭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14일 중구 서울시청 정문에서 정신장애인 활동가들이 시의회의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 삭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어쨌든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이 삭감될 거라는 것만 알아주길 바랍니다.”

지난 달 14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석주 위원장이 시의회 보건복지위 행정사무감사에 출석한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들에게 한 발언이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이 삭감 발언은 현실이 됐다.

최근 서울시의회는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을 기존 5억2천만 원에서 2억7천만 원으로 반토막냈다. 서울시 지원을 받는 이 센터들은 시 정신장애인자립생활지원 조례에 따라 현재까지 서울 송파와 관악, 마포에 각각 설립돼 활동 중이다. 3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다.

시의회 예결산위원회를 통과한 이 예산 배분안은 본회의를 앞두고 있다.

지난 8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정신장애 운동가들, 관련한 인권운동 진영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긴 시간 정신장애 진영이 요구해 온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참석 의원 169명 모두 찬성했다.

이 법 개정안에는 동료지원인 양성, 동료지원쉼터, 절차보조인, 성년후견인 들이 담겨 있다. 애초 정신장애계가 요청한 보호의무자입원과 동의입원의 폐지, 공공이송체계의 확립, 개정안 서두에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인권적 이념을 넣을 것을 요청했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일부가 잘려나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게 위의 4가지 조항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5일 국민의 정신질환에서의 회복을 돕는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대통령 직속의 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의가 주요 의제로 담겼다.

그런데 서울시의회는 중앙정부의 기조와 엇박자를 냈다. 서울시 3개 센터에 예산을 절반으로 깎는 데는 절박한 이유가 없었다. 이 정신질환자들이 일하는 센터들이 왜 서울시의회에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까.

이는 강석주 위원장이 정신건강 관련 센터들을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강 위원장은 지난 4월 시의회 보건복지위 임시회의에서 “시민 혈세가 20억 원 들어간 서울정신건강통합센터를 해체해야 한다”는 골자의 발언을 했다.

이 통합센터는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 통합 거점 센터 전망을 갖고 지난해 4월 공식 운영에 들어간 사회복귀 종합재활시설이다.

통합센터는 당사자 외에도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여기에는 취업훈련 과정, 정신질환 특성을 고려한 신규 직종 개발 등 취업지원 서비스 등이 제공되고 있었다.

하지만 강 위원장은 이 통합센터가 서울시 각 구에 하나씩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기능이 겹치고 이른바 ‘환자’들을 집단으로 모아 놓고 활동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과 전문의와 간호사 등 전문가들이 없이 정신질환자들이 꾸려가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혐오의 시선이었다. 통합센터는 지금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다.

비가 내리고 그 비를 맞으며...12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의회의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 삭감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비가 내리고 그 비를 맞으며...12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의회의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 삭감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이 센터를 해체시킨 강 위원장의 시선은 전국에 3개뿐인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향했다. 예산 삭감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정신장애인 활동가들과 지지 단체들은 14일 중구 서울시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을 모이게 만든 건 예산 삭감의 문제뿐만은 아니었다. 권력자가 사회적 약자인 정신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분노였고 이에 따는 저항의 시작을 선포한 것이었다.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운영 기간 동안 매년 5억2천만 원의 지원금을 받고 사업을 진행해 왔다. 당사자와 비당사자 12명 정도가 센터 하나를 꾸리고 있다. 이들이 한 센터 당 6~7개 기초지자체(구)를 담당해 권익옹호와 자립지원 등 임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예산이 삭감되면 한 센터에서 평균 6~7명은 떠나야 한다. 남은 인력은 많아야 4~5명 정도다. 이 인력으로 지역 정신건강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이는 결국 문을 닫으라는 얘기다.

정신장애인들의 기초생활수급권자 비율은 69%에 이른다. 경제적 위치도 전체 장애유형 중 가장 낮은 ‘하층’에 속한다. 일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고 막상 일을 시작해도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긴 시간 노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돼 버렸다. 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주는 일정량의 ‘부조’를 통한 ‘생존’이었다. 강 위원장은 이 같은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삶을 눈여겨본 적이 있을까.

기자회견에서 이승주 송파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자립생활센터가 생기면서 그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다”며 “스스로 일해 임금도 받고 세금도 납입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롤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노동을 하면서 돈을 버는 행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생존의 방식이다.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센터에서 법적 노동시간에 맞춰 노동을 하고 그 임금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가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간략한 회복의 의미를 서울시의회는 지금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예산이 깎이면 이 같은 당사자의 사업추진 동력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이들 중 몇 명은 센터를 떠나야 한다. 인간이라는 고유한 삶의 존재가 노동의 세계를 잃을 때, 인간은 다시 질병의 위치로 되돌아간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안에서만 살아갈 확률이 높고 사회와 격리된 이후 증상이 악화되면 다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 장기적 입원 기간으로 모든 사회적 관계망이 훼손된 채 퇴원하게 되고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버린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지난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되면서 더 강화됐다. 강제입원은 쉽게 이뤄졌고 입원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의 의사와 자기결정은 손쉽게 무시됐다. 자기 삶을 자기가 책임지려는 신념을 의료집단과 무지한 권력이 가로막아 버린 것이다.

이후 회복의 길에 나섰던 정신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는 가두지 말라는 것. 그리고 지역사회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인프라를 만들어달라는 것. 그 정치적 싸움은 3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된 약자들의 삶을 옹호하려는 신념체계가 없다면 법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만 약자들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알려질 때, 정치권력은 잠시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일상은 이어지고 이들은 다시 잊혀진 존재가 된다.

권력이 천부적 인권을 지원하지 않을 때 약자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지금 4호선 지하철역에서 이동권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신체장애인들의 싸움은 시간에 쫓기는 듯 살아가는 비장애인들에게 철저한 ‘분노’의 표적이 된다. 이 시민들은 권력자들에게 약자의 삶을 지원하고 옹호하라는 요청 대신 다만 지금, 현재 자신의 일상적 삶을 파괴하는 약자들을 향한 원망과 비판, 욕설로 대응할 뿐이다.

서울시청 앞 삭발, 비가 내리고...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왼쪽)과 박근호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이 삭발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서울시청 앞 삭발, 비가 내리고...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왼쪽)과 박근호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이 삭발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방준혁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왼쪽)와 이슬하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삭발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방준혁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왼쪽)와 이슬하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삭발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도 그렇다. 이들은 한 번도 국가정책의 주요 의제로 올려진 적도 없다. 정치적 의무가 아닌 시혜적 시선만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이에 의한 강력 사건이 터지면 정신장애인은 ‘범죄자’의 자리로 옮겨지고 사회 안전을 위해 ‘관리’되거나 ‘배제’되는 존재로 추락하게 된다. 그에 대한 저항이 30년이었다.

서울시의회가 자립생활센터 문을 닫으려는 의도에 대한 저항의 맥락 안에 오늘,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에 들어 있는 것이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정신장애인들은 깨닫게 된다.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가두지 말라는 요청만으로는 이 세계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기초지자체에 정신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센터를 개소해 아직 회복되지 않은 많은 동료 정신장애인들의 삶을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센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제 시작에 불과한 정신장애인들의 자립과 권익옹호 센터를 다시 권력자들이 무너뜨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센터가 지속된다고 해도 4~5명의 인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설마 스타트업 기업처럼 소인력으로 의미있는 결과들을 생산하라는 비정신장애인 권력의 시선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정신건강복지법에 들어간 동료지원인은 그냥 타자를 돕는 시혜적 제도가 아니다. 회복된 정신장애인이 아직 어려움을 겪는 또다른 정신장애인을 돕는 행위는 회복된 자가 도움을 통해 자신도 치유를 경험하고 회복을 도움받는 이들에게는 앞서 회복된 이들이 ‘롤모델’로 여겨져 치유와 회복의 동기를 강화하는 선순환의 구조인 것이다.

이처럼 동료지원가에 의한 회복의 성과는 미국 등 서구의 정신장애운동에서 늘 큰 의미를 차지해 왔다. 그래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국가 예산인 ‘메디케이드’로 동료지원가들에게 임금을 지급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제도를 서울시의회는 무너뜨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권혜경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동료지원 활동가는 “동료지원을 했던 분들이 회복돼서 집밖으로 나오게 되거나 잃었던 꿈을 되찾아가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민주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임 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부민주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임 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배준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도 “고통과 어려움을 다른 곳에서는 못 해도 센터에 와서는 이야기한다”며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지원을 함으로써 고통의 상태와 약물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고 밝혔다.

회복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국가가 기초생활수급비를 준다는 시혜적 답변보다 정신장애인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무엇이 정신장애인들의 삶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인지 그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회복은 그때,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회복적 사회통합이다.

종일 비가 내리는 서울시청 정문에서 외치고 삭발까지 감행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신장애인들은 본회의에서 예산 삭감이 결정되더라도 다시 서울시청 앞에 모일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 존엄을 위해 권력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추신: 보도 이후 이튿날인 15일 서울시의회는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을 원상복구해 본회의를 통과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 지역 3개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내년도 예산 5억2000만 원씩을 각각 지원받게 됐습니다. 서울시의회는 애초 내년 센터 예산을 2억7천만 원으로 삭감해 정신장애인 운동진영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계 기자회견 진행 등을 보도해왔으며 이에 서울시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이 원상 회복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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